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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욱의 평양리포트] 김정은의 갑진년 신년 독백, 속마음을 들여다보면… 

“더 이상 동족이 아니니 남한도 핵 공격 대상” 

“미 대선 전까지 핵과 미사일로 위협 수준 높이면 트럼프가 선거운동 활용”
“주애가 후계자? 면종복배 말라는 메시지 인민들에게 선전하는 전략일 뿐”


▎2023년 11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딸 김주애와 공군 주요 시설을 방문했다. / 사진:조선중앙TV 캡처
평양도 새해가 시작됐다. 연말에 닷새 동안 당·정·군 간부 1000여 명이 참석한 전원회의를 개최하고 장장 1만 자가 넘는 만연체 결의문이 발표됐지만 상투적인 표현으로 북한의 금년도 정책 방향을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복심과 복안을 추정해보는 것이 역설적으로 갑진년(甲辰年) 한반도 정세 파악에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새해 들어 김정은의 말 폭탄이 터지고 북한군이 서해에서 해상 사격 훈련을 전개했다. 글의 전반부는 김정은의 생각을 추정해 적은 ‘김정은의 신년 독백’이다. 가상이지만 사실을 바탕으로 했기에 새해 북한의 정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후반부에서는 독백을 토대로 연초부터 서해 사격 훈련 등 긴장이 고조되는 현상 분석을 시도해 한반도 정세를 입체적으로 파악하고자 한다. 다음은 김정은의 신년 독백 부분이다.

“지난해는 위대한 전환의 해였다. 가장 큰 성과는 군사정찰 위성 발사의 성공이다. 두 차례나 실패해 체면을 구겼지만 러시아 기술자들의 도움으로 마침내 성공했다. 아직은 공화국의 첨단 우주항공 기술이 많이 미흡하다. 정찰위성인 만리경-1호의 촬영사진이 여전히 해상도가 약해서 보완이 필요하다. 러시아의 지원이 필요한 분야다. 올해 세 차례 정도 군사정찰 위성을 발사하면 하루에도 서너 번씩 남측과 미국을 촬영할 수 있다. 남조선과 미제가 유엔 대북제재 해제와 북핵 용인에 대한 우리의 요구를 수용할 날도 머지않았다.

지난 연말 고체연료를 사용해 발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형’은 핵과 함께 대미 압박의 핵심 수단이다. 고각 발사를 통해 일본 홋카이도 북측 공해에 낙하했지만 각도를 낮추면 태평양에 낙하할 것이다. 2021년 공언한 5대 첨단무기 중에서 극초음속미사일, 고체연료 ICBM, 정찰위성 등 3개가 성공했다. 다탄두 개발 유도 기술(MIRV) 및 조만간 SLBM 발사가 가능한 핵추진잠수함 등 나머지 2개가 등장할 경우 그동안 인민들의 허리띠를 졸라매 이룩한 군사 강국이 허언이 아님을 과시할 수 있다.

러시아 보스토치니에서 열린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은 최고의 외교 성과였다. 평양과 모스크바가 주고받을 것이 확실하니 회담의 성과가 적지 않았다. 탄약과 미사일을 실은 2000여 개의 컨테이너를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선적한 후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지각 대장 푸틴이 먼저 와서 기다리는 것을 보니 역시 외교는 상대가 원하는 것을 갖고 있어야 한다. 러시아에서 포탄과 미사일을 지속적으로 요구하니 군수공장을 24시간 가동하라고 담당 기관인 제2경제위원회에 지시했다. 일부 오래된 재고가 불발탄이라니 품질 개선도 신경 쓰라고 했다. 최근 미국과 우크라이나 및 중동에서 우리 미사일 사용 증거를 내보이며 경고를 보내고 있는데 포탄에 한글로 된 마크를 지우라고 해야겠다.

“인민들의 허리띠 졸라매 군사 강국 이룩”

새해에는 남조선과 미제에 선거가 있다. 미국 대선은 초미의 관심사다. 나와 싱가포르·하노이·판문점 등에서 세 번이나 만났던 트럼프가 다시 백악관에 입성할지 매우 궁금하다. 그가 당선된다면 러시아를 등에 업고 빅딜도 시도할 수 있다. 지난 두 차례의 정상회담은 처음이라 긴장도 되고 밀당이 여의치 않아 노딜(No deal)로 끝났다. 정상회담을 다시 하면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어 성과를 거둘 수 있다. 트럼프의 정책보고서를 보니 북핵을 용인하는 내용도 들어 있어 빅딜이 가능할 것 같다. 11월 미 대선 전까지 핵과 미사일로 위협 수준을 높여야 트럼프가 자신이 해결할 수 있다고 선거운동을 할 것이므로 정교하게 도발 캘린더를 만들어야 한다. 최근 완공된 영변 실험용 경수로의 시운전을 마치면 플루토늄 생산량을 증가시키라고 했다. 북핵을 용인받고 대북 제재만 해제된다면 발 뻗고 편히 잘 수 있을 것이다.

남조선 역시 4월 총선이라 그냥 있을 수 없다. 평양이 남한 선거에 투표권은 없으나 선거 결과가 북남관계에 큰 영향을 주니까 예의주시해야 한다. 9·19 군사합의는 휴지 조각이 됐으니 긴장은 불가피하다. 남한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과거의 ‘북풍’(北風) 사태처럼 휴전선에 군사도발을 유도하거나 충돌을 방치하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했다. 나에게 보내는 미묘한 시그널 같다. 윤석열 대통령과 여권이 4월 총선 판세를 유리하게 이끌고자 북한 문제를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우려인 것 같다.

하지만 대적 관계를 선포한 남한은 보수든 진보든 다 똑같다. 평양이 야당 대표의 발언을 고려할 필요는 없다. 방어용에서 공격용으로 바뀐 핵 무력을 동원해 남한 전 영토를 평정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더 이상 동족이 아니니 남한도 핵 공격 대상이다. 도발로 남측 민심이 뒤숭숭해지면 이 모든 게 서울에서 9·19 군사합의를 파기해 벌어진 일이라고 선전하는 인지전과 온·오프 병행의 하이브리드 전략도 필요하다는 통전부 보고서도 올라왔다. 총선을 앞두고 민심을 교란하는 심리전을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여동생 여정이를 통해 남측의 전·현직 대통령을 갈라치기하는 이간계(離間界)를 실행했다. 가짜뉴스 등 정부에 불리한 유언비어를 확산시키는 방안을 사이버 기관에서 추진한다니 지켜보자.

“딸아이 주애는 최고의 히트 상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새해 첫날 만경대 학생 소년궁전에서 진행된 ‘2024년 설맞이 공연’을 관람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일 보도했다. / 사진: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공화국의 살림살이는 여전히 어렵다. 최근 남한의 통계청 자료를 보니 공화국의 실질 국내총생산이 3년 연속 감소하면서, 남북한의 1인당 소득 격차가 30배까지 벌어졌다. 연말 자화자찬식 경제 성과의 홍보와 함께 인민들에게는 미제의 제재 때문에 살기가 어렵다고 선전을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지난해 여름 양강도 혜산에서 소고기를 내다 판 9명을 총살형에 처한 것은 불가피하다. 병든 소라도 생산수단을 도축해서 거래하는 것은 경제범이 아니라 정치범이라 일벌백계다.

생활이 어렵다 보니 일부 반동분자들이 공화국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문란한 행태를 보이는데 절대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사회안전성에 지시했다. 남한의 드라마나 영화를 몰래 보는 악질 행위는 2020년 제정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에 따라 엄벌을 지시했으나 근절되지 않고 있다. 젊은 세대들의 사상이 과거처럼 확고하지 못하니 2021년 제정한 청년교양보장법을 강력하게 시행할 것을 지시했다. 모기장을 촘촘히 쳐서 남한의 자본주의 물결이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지 못하면 공화국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릴 것이다. 공포정치가 필수적인 이유다.

딸아이 주애는 최고의 히트 상품이다. 남측의 안보책임자는 물론 서방언론도 군 최고 책임자들이 주애에게 바짝 엎드리는 사진을 보고 후계자로 격상됐다느니, 존칭이 달라졌다는 등 각종 평을 내놓는 것을 보니 외부세계는 권위주의 가부장제 공화국을 모른다. 12살 여아(女兒)를 두고 후계자 운운하니 사회주의 권력이 총구에서 나온다는 마오쩌둥의 발언도 이해하지 못한다. 내 나이 40세인데 앞으로 20~30년 후의 일을 어떻게 예측하겠는가? 최근 선전선동부에서 주애에게 하이힐을 신으라고 했는데 키가 어른처럼 커 보여서 사진이 훨씬 그럴듯해보인다. 4대 세습으로 공화국이 영원히 지속되니 면종복배(面從腹背)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인민들에게 홍보하는 선전전략을 자본주의 국가들이 알 리가 없다. 평양 순안공항 청사 정면에 내걸린 100m 길이의 선전판에 다음과 같은 구호가 새겨져 있는지 보면 알 텐데 말이다. ‘김일성, 김정일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하신다.’ 하긴 세습체제는 유엔 회원국 중에서 우리 공화국이 유일하니 그럴 만도 하다. 올해도 주애는 부지런히 나와 함께 공식 석상에 나설 것이다. 주애가 출현해야 구글의 검색 수가 올라간다니 자본주의 국가들은 중차대한 핵미사일보다는 우리 패밀리에 호기심이 많은가보다. 싫지 않은 일이다.

올해 푸른 용띠해도 국내외 정세는 격변의 한 해가 될 것 같다. 내부 단속에서는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국제정세 역시 복잡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및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포성이 지구촌 여기저기서 울리고 있다. 러시아와 관계를 밀착했으니 중국을 끌어들여 북·중·러 3국 연대로 한·미·일에 대응하는 신냉전 구도를 형성하려는데 중국이 소극적이다. 외교는 타이밍인 만큼 타이완 해협에 긴장이 고조될 때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 오늘 아침 거울을 보니 흰머리가 많이 늘었고 건강도 예전 같지 않다. 2012년 처음으로 권좌에 올랐을 때와 비교해서 세월이 흘렀다. 내 나이 불혹의 40세가 돼 보니 선대 지도자들은 이 힘든 일을 지난 60여 년간 어떻게 수행했는지 궁금하다.”

연초 대남 도발은 민생파탄 책임 전가 전술

지금부터는 현상 분석이다. 연초부터 김정은 위원장의 말 폭탄이 쏟아지고 있다. 동시에 서해에도 실제 포성 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말 폭탄이 끝나기가 무섭게 북한군은 1월 5~7일에 걸쳐 백령도 북방 장산곶 일대와 연평도 북방 등산곶 일대에서 300발 이상의 해안포 사격을 실시했다. 우리 군도 맞대응 성격의 해상 사격 훈련을 실시했다. 우리 군이 2018년 9·19 남북군사합의 체결 이후 서북도서에서 대응 사격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남북은 2018년 9·19 남북군사합의를 체결하면서 해상 무력충돌을 방지하려 서해·동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에 해상 완충 구역을 설정했다. 이곳에서 포 사격을 하면 9·19 군사합의 위반이다. 합참은 이날 북한군의 포탄이 서해 완충 구역에 낙하했다는 점에서 이번 사격훈련을 도발로 규정하고 대응 사격 훈련을 실시했다.

9·19 합의 1조 2항에 따른 적대행위 중지구역은 △육상에선 군사분계선(MDL)을 기준으로 남북 각각 5㎞ 구간 △해상에선 서해 남측 덕적도 이북으로부터 북측 초도 이남까지의 수역 △공중에선 MDL 동 서부 지역 상공에 설정된 비행금지구역이다. 이는 남북의 우발적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한 것으로, 남북은 이곳에서 포사격, 연대급 이상 야외기동훈련, 고정익 항공기의 공대지 유도무기 사격 등 실탄사격을 동반한 전술훈련을 중지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제 합의는 백지화됐다. 우리 군은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른 지상·해상의 적대행위 중지구역(완충 구역)은 없다”고 선언했다. 2월부터 서해 NLL을 향해 사격한다. 해군 함정들은 함포 사격을 재개할 것이다. 비행금지구역에서도 아파치 헬기를 이용한 공대지 유도무기 사격이 가능하다. 한편 북한은 해상 사격훈련에 이어 육상에서 신형무인기를 동원한 수도권 침투 공작도 전개할 것이다. 단거리·중거리 미사일 발사 등으로 긴장을 한 단계 끌어올릴 것이다. 미국 대선이 가까워지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와 정찰위성 추가 발사 카드 등도 흔들 것이다.

김주애를 동반하고 김정은과 김여정 남매가 쏟아내는 연초의 말 폭탄과 국지적인 도발은 극장정치(cinema politics)로 인민들의 혼을 빼는 전술이다. 그의 최근 대남 도발 위협과 적대 발언 저의는 다음과 같다.

우선, 북한의 심각한 민생 파탄에 대한 눈속임과 책임 전가 전술이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인민들의 민생은 나락으로 추락했다. 김정은도 이를 의식했는지 “인민의 기대에 늘 보답 못 하는 우리들의 불민함을 깊이 반성하고 뉘우치며…”라고 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경제적 해법은 없다. 인민들의 삶이 도탄에 빠졌지만, 전쟁 준비 강화와 대남 위협으로 초점을 돌린다.

총선까지 민심 교란하는 심리전 구사할 듯


▎북한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 해안포 사격을 한 1월 5일 백령도에 배치된 해병대 6여단 전차포가 이에 대응해 해상 사격을 하고 있다. 서북 도서의 해병부대가 해상 사격을 한 것은 2018년 9·19 남북 군사합의 체결 후 처음이다. / 사진:국방부
다음은, 한국과 미국의 내정에 개입하려는 노림수다. 북한이 연초부터 한반도에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은 남한 총선과 미국 대선 등을 감안한 영향력 확대의 의도다. 북한은 4월 서울과 11월 워싱턴의 정치 일정에 국가정보원의 예상대로 ‘큰 파장’을 일으키는 게 유리하다는 속셈이다. 7월에는 미국 공화당의 대선 후보가 결정된다. 평양은 트럼프의 등장을 기대하고 있다. 이후 선거 전까지 3개월 동안에는 워싱턴을 겨낭한 말 폭탄과 함께 ICBM과 정찰위성의 발사를 통해서 미국인들의 눈과 귀를 흔드는 다양한 도발을 준비할 것이다. 평양은 워싱턴과의 강 대 강 구도 형성에 주력할 것이다.

남한 총선 전에 도발로 긴장을 조성해야 선거가 ‘평화냐 전쟁이냐’ 구도로 갈 수 있으며, 9·19 군사합의의 효력을 정지한 현 정부·여당을 궁지로 몰 수 있다는 전술이다. 평양은 남한 선거에 투표권은 없으나 선거 결과가 남북관계에 중요한 변수라며 개입을 시도한다. 남한의 선언으로 9·19 군사합의가 백지화됐으니 긴장은 불가피하다는 논리다. 군사합의가 사문화됐으니 포 사격으로 남북 갈등을 유도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방어용에서 공격용으로 바뀐 핵 무력을 동원해 남한 영토의 완전정복이 최종 목표다. 더 이상 동족이 아니니 남한도 핵 공격 대상이다. 도발로 남측 민심이 뒤숭숭해지면 이 모든 게 서울에서 9·19 군사합의를 파기해 벌어진 일이라고 가짜뉴스를 확산시키고자 한다. 총선을 앞두고 민심을 교란하는 심리전이다. 4월까지 도발의 수를 잘게 쪼개서 수위를 올리는 살라미 전술(salami tactics) 구사가 있을 것이다.

김여정은 지난 1월 6일 서북도서 지역에서 포탄을 쏜 적이 없다며, 포성을 모방한 폭약을 터뜨리는 기만 작전에 한국군이 속아 넘어갔다고 주장했다. 망신을 주기 위한 ‘기만 작전’이었을 뿐, 수역에 포를 날리지도 않았는데, 우리 군이 오판을 하고 미끼를 물었다고 강조했다. 7일 조선중앙통신에 공개한 담화에서 “우리 군대는 130㎜ 해안포의 포성을 모의한 발파용 폭약을 60회 터뜨리면서 대한민국 군부 깡패무리들의 반응을 주시했다”고 말했다. 조선중앙TV는 김 부부장의 담화를 보도하면서, 북한군이 낮은 산에 둘러싸인 논밭에 폭약을 심은 뒤, 연쇄적으로 폭파하는 장면을 44초간 내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군은 발파와 포사격을 구분할 수 있다며 김여정의 주장에 대해 수준 낮은 심리전이라고 일축했다. 북측은 ‘발파-포사격-발파’ 순으로 기만전술을 전개했다. 연초부터 남한 사회를 흔드는 심리전의 일환이다. 군 소식통은 다양한 정보 자산을 통해 북한의 포사격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요컨대, 북한의 계속된 도발과 심리전은 남남갈등을 일으키고, 우리 군의 능력에 흠집을 내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다음 단계에서는 가짜뉴스 등 정부에 불리한 유언비어를 확산시키는 방안도 등장할 것이다.

끝으로, 남남갈등 심화 전략이다. 김정은은 “북남은 더 이상 동족 관계, 동질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인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됐다”고 선언했다. 김여정은 전·현직 대통령을 비교하면서 비난하는 갈라치기 전술을 구사했다.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다들 비난하지만 나는 찬양하고 싶다”며 ‘반어법’ 같은 담화를 내며 문재인·윤석열 전·현직 대통령을 싸잡아 비난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는 영특하며 교활하다는 비아냥 섞인 표현을 사용하며 비난했다. 남측의 좌경 세력을 겨냥한 묘한 메시지다. 김여정이 남한의 전·현직 대통령을 대비시키면서 싸잡아 비난한 것은 남한의 대북정책에 대해 “민주를 표방하든, 보수의 탈을 썼든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는 김정은의 연말 전원회의 발언과 같은 맥락이다.

북한에 도발은 체제붕괴라는 시그널 줘야

북한이 ‘우리민족끼리’ 정책을 포기한 듯한 발언을 쏟아내는 저의는 분명하다. 한반도의 긴장은 정부·여당의 한·미동맹 강화와 대북 강경정책 탓이라는 선전 선동으로, 지난해부터 사용하는 대한민국이라는 표현의 연장선이다. 동족 관계가 아니니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명분 축적도 가능하다. 2022년 핵무력 법제화를 통해 핵을 방어용이 아닌 공격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선언한 만큼 남한도 예외가 아니라는 우회적 협박이고 고도의 대남심리전이다.

북한은 적화통일 전략을 포기한 게 아니고, 자신들만의 남조선 전(全) 영토 평정 방식으로 추진하겠다는 복안이다. 김정은이 사용한 ‘대사변’이란 용어는 6·25 남침을 의미한다. 김정은은 간부회의 때마다 한반도 남측 지도를 가리키며 언제든 공격할 수 있다는 대남 가스라이팅(심리조종)을 해왔다.

북한의 해상 사격 훈련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남쪽의 일상은 평온하다. 일부에서는 ‘안보 불감증’이라고 걱정하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북한의 도발을 잘 짜인 한 편의 드라마로 간주, 만성적인 도발에 적응하면서 심각한 불안을 크게 느끼지 못한다. ‘김씨 일가’ 연출·주연의 ‘막장 드라마’에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평양의 연출극은 외부를 향한 것이기도 하지만 주로 내부 지배의 수단으로 활용된다. 북한은 “사상의 힘은 한계가 없다”며 자신들이 만든 허구의 세계가 영구적으로 지속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생존력 있는 사회 없이 생존력 있는 국가는 없다. 북한에 밝은 미래가 있으려면 극장 국가로서 스스로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이를 매듭지어야 한다. ‘트루먼 쇼(Truman show)’의 클로징 크레딧(closing credits)은 서서히 올라가고 있다. 다만 극단적인 내부 모순이 폭발할 때 악마적 지도자가 외부로 총구를 사용하는 순간이 다가올지 여부는 예의주시해야 한다.

북한의 기괴한 입장에 대한 유일한 대응은 강력한 군사적 억지력이다. 압도적 경제력과 국방력으로 평양의 도발이 초래할 결과는 김정은 체제의 붕괴라는 시나리오를 보여줘야 한다. 한·미 확장억제 체제를 실효적으로 가동해 핵 위협을 무력화해야 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충돌 등 지구촌 포성이 계속되는 중에 동북아, 특히 한반도는 구조적으로 불안정한 지역이다. 평양의 극장정치와 협박에 일비일희하지 말고 우리 영토에 대한 철저한 방어태세를 강화하는 게 중요하다. 적(敵)은 공격했을 때 더 큰 피해를 본다고 판단하면 결코 섣부른 공격을 하지 않는다는 게 동서고금 전쟁론의 핵심이다.

※ 남성욱 -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고려대 북한학연구소장을 지냈다. 2013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을 지낸 뒤 후학 양성과 북한 문제 연구에 전념해오고 있다. [김정은의 핵과 경제](2022, 박영사), [북한 여성과 코스메틱](2017, 한울아카데미), [한반도 상생프로젝트](2009, 나남) 등 북한 문제에 관한 다수의 책을 펴냈다.

202402호 (2024.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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