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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욱의 평양리포트] 이스라엘의 정보 실패로부터 얻어야 할 교훈 

정치 분열에 세계 최고 정보기관마저 무력화됐다 

네타냐후, 정권 유지하는 데 정부 역량 집중하다 하마스 공격 징후 간과
냉철한 정보 분석·판단·대응의 장애물인 ‘정보 분석의 정치화’ 경계해야


▎지난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가 수천 발의 로켓포로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했다. 이후 반격에 나선 이스라엘군의 조명탄이 가자지구 서쪽 하늘을 밝게 비추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 2001년 9·11 테러를 조사한 미국 의회 진상조사 보고서는 정보당국이 기습공격을 저지할 기회가 10회나 있었다고 결론 내렸다. 뉴욕의 무역센터 쌍둥이 빌딩과 국방부 건물을 공격해 3000여 명의 인명피해를 냈던 항공기 자살테러 사건을 무산시킬 수 있는 사전 징후를 정보당국이 여러 차례 놓쳤다는 것이다. 미국 국가안전보장국(NSA)은 테러 발생 9개월 전 항로를 답사하기 위해 쿠알라룸푸르를 방문한 테러리스트 세 명의 통화를 감청했으나 이를 각 정보기관에 전파하지 않았다. 중앙정보국(CIA)은 6개월 전에 태국으로부터 테러범이 로스앤젤레스행 비행기에 탑승했다는 정보를 연방수사국(FBI)과 공유하지 않았다. FBI는 의심스러운 이슬람 비행훈련생을 조사하지 않고 단순 추방해 용의자 추적에 실패했다.

요컨대 전대미문의 미 본토 테러는 통합된 정보 공유체제가 작동하지 않아서 벌어진 참사였다. 미국이 본토 공격을 당한 것은 역사상 처음이며, 미국 안보 정책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됐다. 미국 본토를 대비하는 국가 안보체계는 9·11 테러 전후로 구분된다.

전쟁은 기습공격으로 시작된다. 전쟁 개시를 선언했을 때 이미 최전방은 쑥대밭이 되어 있다. 예고된 공격은 필패다. 손자병법의 철학은 기만과 기습이다. 상대를 속이고 기습하는 것이 승리의 법칙이다. 전쟁 전략은 전·평시로 구분된다. 평시에는 정보전으로 상대의 동향을 파악하는 데 주력한다.

정보 수집·분석 역량이 안보전략 성패 좌우


▎3000여 명의 희생자를 낸 미국 9·11 테러는 정보 실패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미국 의회 조사 결과 여러 정보기관이 수집한 첩보를 제때 공유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정보기관은 기술정보(TECHINT)와 인간정보(HUMINT)를 활용해 상대의 인사이드 스토리를 파악하는 데 주력한다. 특이 동향이나 징후 관련 첩보(information)는 분석관들의 체계적이고 깊이 있는 분석 평가 및 해석을 통해 정보(intelligence)로 전환되어 사용자에게 보고된다. 첩보와 정보를 구분하는 과정은 매우 전문적인 중간단계를 거쳐야 한다. 자료(Data) → 첩보(Information) → 정보(Intelligence) 과정에서 정교한 분석과정은 필수적이다.

선진국들은 우수한 대학 졸업자를 선발해 분석관과 수집관을 양성한다. 선진국들은 1, 2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전문 정보기관 설립에 주력했고 2차 대전 이후 오늘날의 형태를 구축했다. 미국은 CIA, 영국은 MI5, 프랑스는 DST, 독일은 BfV, 러시아는 KGB를 개편한 FSV와 SVR 등이 대표적이다. 전문 정보 세계에서는 두 개의 국가만 존재한다. 전문 정보기관을 가진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다.

정보기관의 업무는 평시에는 국익을 수호하기 위한 방첩과 상대국에 대한 첩보 수집 활동이 핵심이다. 특히 위해를 가할 적의 기습이나 동향을 파악하는 것은 핵심 업무다. 적의 동향을 파악해서 적시성, 객관성 및 정확성을 기초로 해서 경고 보고를 하고 대응은 정부 전 부처와 군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9·11 테러는 사전 경고 실패(warning failure)로 인한 정보 실패(intelligence failure) 사례다.

위기 경고 실패 사례는 부지기수다. 멀리는 1941년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진주만 공격, 1973년 이집트의 이스라엘 기습작전인 욤 키푸르 전쟁이 있으며, 최근 들어서는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등이 국가정보학 교과서에서 케이스 스터디로 다뤄진다.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토대로 전문성을 갖춘 정보기관이 적의 기습을 사전에 경고하지 못하고 군과 당국은 무방비로 있다가 꼼짝없이 기습공격에 당했다.

사전 경고도 최종적으로 휴민트(HUMINT)가 결정하기 때문에 일정 부분 실패는 불가피하다. 원인은 다양하다. 학계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은 정보 실패는 정책 실패(policy failure)이며 결국 정부 실패(government failure)에서 비롯된다는 논리다. 일차적인 원인은 우선 정보분석의 정치화 현상에서 비롯된다. 정책결정권자의 구미에 맞게 분석 보고서를 맞춤형으로 작성한다. 2002년 CIA는 이라크 사담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공격 의도에 맞춘 오판 보고임이 훗날 드러났다.

정보조직 체계의 결함이나 관료조직의 경직성도 정보 실패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정부 부처 간 경쟁, 관료들의 타성이나 경직된 사고 등은 정보 예측의 허점을 불러온다. 정보기관의 불합리한 인사관리가 정보 왜곡이나 실패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정보수집과 분석의 전문성을 경시한 결과다. 냉전 시대 소련의 군사력에 대한 미국 정보기관의 과대평가 등이 그 사례다.

최근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기습해 1400여 명의 민간인과 군인을 살해하고 220명의 인질을 납치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대한 보복 시가전을 개시했다. 물러설 수 없고 결코 끝나지 않을 전쟁이 시작됐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2국가 병립체제를 미국이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실현 가능성은 요원하다. 전쟁이 2단계로 접어들면서 사망자는 벌써 1만 명을 넘어섰다.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전쟁의 원인을 ‘영역에 대한 싸움’이라고 진단했다. ‘누가 요르단 강과 지중해 사이에 있는 땅에 살 권리가 있는가(Why Israel Has No ‘Right to Exist’? 2019년 5월호)’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및 중동 국가들은 발을 딛고 사는 땅에 대한 소유권을 둘러싸고 100년 넘게 갈등과 충돌을 지속하고 있다.

이스라엘-아랍 분쟁의 씨앗은 영국의 일구이언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력을 자랑하는 이스라엘의 정보기관은 3개로 나뉜다. 왼쪽부터 해외 정보를 주로 다루는 모사드, 국내 방첩 및 보안을 담당하는 신베트, 군 정보기관인 아만이다.
분쟁의 씨앗은 1차 세계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 편을 든 오스만 제국 제압을 위해 영국은 오스만 제국 지배에 저항하는 아랍 민족주의 세력과 자본을 보유한 유럽 유대계 세력의 동시 지원이 필요했다. 영국은 1915∼1916년 오스만 제국에 봉기하는 조건으로 전후 팔레스타인에 아랍 독립국가 건설을 약속하는 ‘맥마흔(McMahon Declaration) 선언’을 작성한다. 2년 뒤에는 유대계 자본을 받는 조건으로 팔레스타인에 유대 독립국가 건설을 약속하는 ‘밸푸어 선언(Balfour Declaration)’도 발표한다. 1916년 맺어진 사이크스피코 협정과 팔레스타인 내 유대 민족 국가 건설을 지지하는 밸푸어 선언은 맥마흔 선언과 모순됐다. 1962년 개봉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이러한 중동 상황의 배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영국의 모순된 외교 정책은 후에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중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 건국을 부정하는 근거로 인용되고 있다. 영국의 계획대로 패전한 오스만 제국은 해체되고 영국은 팔레스타인을 위임 통치한다. 하지만 영국은 유대인과 아랍 민족에게 모순되는 약속을 지킬 방법이 없었다. 일구이언(一口二言)에 따른 두 민족의 무력 충돌을 우려한 영국은 1939년 백서(White Paper)를 통해 밸푸어 선언의 효력을 사실상 폐기하지만, 갈등의 불씨는 이미 크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1930년대 들어 독일 나치 정권의 박해와 홀로코스트를 피해 지금의 요르단 강 서안으로 이주한 대규모 유대인들은 땅을 매입해 정착촌을 확대했고 점차 유대 국가가 성립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및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이라크 등 주변 아랍국들은 1956년 수에즈 운하 위기, 1967년 6일 전쟁, 1973년 욤 키푸르 전쟁 등으로 충돌했다. 대체로 서방의 지원과 우수한 무기를 앞세운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다. 6일 전쟁으로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서안지구, 시나이반도, 골란고원을 손에 넣었다. 가자지구 등으로 유대인 집단 이주가 시작되자 반발하는 팔레스타인 세력은 테러를 비롯한 유혈 투쟁으로 맞섰고 현재 진행형이다.

중동의 갈등은 너무나 깊고 복잡해서 도덕적 기준이나 선후 공격 여부를 둘러싸고 책임 소재를 가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세계 각지에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에 대한 찬반 시위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범지구적 차원에서 사태의 복잡성을 방증한다.

필자는 중동의 무력 충돌을 정보전 관점에서 판단하고자 한다. 관심의 초점은 아이언 돔(iron dome)으로 무장하고 첨단 ICT 방공방 시스템을 구축한 이스라엘이 어째서 하마스의 공격에 사전 대응하지 못했느냐는 점이다. 전쟁은 상대를 파괴하려는 의지의 발동이므로, 최고의 전략은 기습공격이다. 상대 또한 이를 억지하고 효과적으로 방어, 격퇴하기 위해 방첩 전략을 수립한다. 적의 기습 징후를 사전에 파악해 대응하면 정보 성공(intelligence success)이고 그렇지 않고 심각한 피해가 발생하면 정보 실패(intelligence failure)다. 정보 성공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지만, 정보 실패는 고스란히 외부에 노출된다. 정보기관의 대응은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를 수밖에 없다.

하마스의 위장 평화 전술에 넘어간 이스라엘


▎하마스 기습공격 이전부터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 대한 불신 여론이 컸다. 그가 추진한 사법부 무력화 정책에 대한 반감에 하마스 공격을 사전에 대응하지 못한 책임까지 더해 퇴진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국가정보학’이라는 학문적 견지에서 이스라엘 정보기관이 2년에 걸쳐 준비된 하마스의 침공 계획을 왜 놓쳤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가자지구 병원 폭격에 관해 하마스의 통화를 감청해 실시간으로 공개하는 세계 최강의 정보기관 모사드(Mossad)가 중요한 S급 첩보를 입수하지 못한 원인을 치밀하게 분석해야 할 필요성은 우리에게 충분하다. 북한의 기습공격에 대비해야 하는 한반도 상황을 고려할 때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최근 1년 동안 [뉴욕타임스] 국제면에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 관련 기사가 빈번하게 보도되는 것을 유심히 지켜봤다. 미국 하버드에서 박사 과정까지 수학하고 귀국해 1988년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2022년부터 세 번째 총리직을 수행한 네타냐후가 강경 극우 정책을 추진했지만, 재임 기간 부패 혐의로 기소되고 대규모 퇴진 시위가 벌어졌다는 부정적인 뉴스도 심심찮게 나왔다. 네타냐후의 사법부 무력화 정책은 그의 부패 혐의에 대한 ‘방탄용 입법’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전쟁 중에 총리 퇴진 시위가 전개되는 것은 이스라엘 역사상 매우 이례적이다.

특히 지난 7월 이스라엘의 저명한 역사학자 유발하라리 교수가 네타냐후의 사법부 권한 무력화 법안 재추진을 극렬 비난하는 것에 매우 놀랐다. 유발하라리는 “헌법도, 상원도, 연방 구조도 없는 이스라엘에서는 중앙정부 권력 견제 방안은 대법원뿐”이라면서 “정부의 대법원 장악이 성공한다면 이를 제한하는 메커니즘은 없게 된다”고 우려했다. 그의 명저 [사피엔스]는 필자에게 미래 예측의 큰 울림을 주었기에 그의 비난에서 이스라엘 내부의 심상치 않은 균열을 느꼈다. 이스라엘 예비군 4000여 명은 사법 조정안에 반대해 예비군 복무 거부 서한에 서명하는 등 시민들의 저항이 거셌다.

외부의 적은 멀리 있어도 존재가 파악됐으나, 내부의 적은 가까이 있어도 가늠하기 어렵다. 유대인 공동체의 본산인 텔아비브 내부에서 터져 나오는 파열음을 극단주의 무장세력 하마스가 놓치지 않았다. 첨단 AI 기술에 의한 영상정보와 감청 등을 피하기 위해 가장 아날로그적인 땅굴 메트로를 활용하는 뉴 하이브리드 작전을 구사했다.

대외적으로는 철저한 위장 평화 전술을 구사해 이스라엘의 의심을 피했다. 모사드뿐만 아니라 국내정보기관인 신베트(Shin Bet), 군 정보기관인 아만(Aman) 등의 창끝을 무디게 했다. 이스라엘 정보기관은 정보력과 군사력을 과신했고 하마스의 메트로 위장 전술을 완전히 오판했다. 사실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정보력은 미국 CIA, 영국 MI5, 프랑스 DST, 독일 BfV, 러시아의 KGB 등과 비교해도 최상급이었다.

물론 이스라엘의 3대 정보기관은 하마스의 공격 가능성을 최고 정보사용자에게 보고했을 것이다. 하지만 빈번한 공격 가능성 경보에 무덤덤해지는 ‘늑대소년 효과(cry wolf effect)’도 작용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국내 정치의 분열에 따른 정보당국의 보고 혼란이 치명적이었다. 네타냐후 총리는 아예 가자지구로 진격해서 하마스의 근거지를 발본색원하는 점령 작전에 관심이 많았다. 적의 기습공격 대비보다 가자지구 점령에 초점이 맞추어지면서 정보의 주관적인 정치화 현상이 발생했다. 동시에 이스라엘의 모든 정보자산 역량이 ‘친이란 헤즈볼라’에 집중됐다. 정보자산의 레이더 방향이 하마스의 성동격서(聲東擊西) 전략에 휘둘려 정반대에 집중됐다.

국내 정치 현안에 매몰돼 공격 징후 판단 소홀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제때 막지 못한 이스라엘의 정보 실패는 북한의 위협에 항상 노출된 우리에게 깊은 교훈을 준다. 2010년 11월 23일 북한의 기습 포격을 받은 연평도에서 검은 연기가 솟구쳐 오르고 있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7일 새벽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해 올 때까지 네타냐후 총리를 깨울 만큼 심각한 상황이라고 생각한 참모는 아무도 없었다”고 참사 당일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정보 실패를 묘사했다. 그러면서 모사드를 비롯한 모든 정보기관이 하마스의 공격 능력을 과소평가해 무전 도청을 1년 전에 중단했다고 보도했다. 암호해독, 첩보 신호 등 신호정보인 시긴트(SIGINT) 분야에서 이스라엘 8200부대가 7일 밤 하마스 대원들의 무전 소통 상황에 관심을 기울였다면 사태는 다르게 전개됐을 거라는 추론도 있다. 이스라엘 정보기관은 하마스가 국지적으로 이스라엘 남부 국경에 침투를 시도하는 것에 대해서도 야간훈련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마지막 판단은 휴민트(HUMINT)가 결론을 내리나, 도둑맞으려면 평소 사납던 개도 안 짖는다는 속담처럼 주관적 선입견이 고착됨에 따라 어떤 징후도 있는 그대로 분석한다는 정보수집과 분석의 원칙이 무시됐다.

네타냐후 총리는 “하마스의 전쟁 의도에 대해 어떤 보고도 받은 적이 없고, 모든 정보기관이 하마스가 도발을 단념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며 책임 회피성 입장을 ‘X’(옛 트위터)에 올렸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그는 “내가 한 말(정보기관 책임론)은 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며 서둘러 사과했지만, 정보기관 책임론은 최고 정보사용자가 해서는 안 될 발언이었다. 최근 텔아비브 시내에서 네타냐후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국민의 무려 76%가 총리의 퇴진을 원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하마스의 기습공격을 막지 못한 책임에 대해 44%가 네타냐후 총리를 지목했다. 전쟁 중에 장수를 교체하지 않는다는 병법의 불문율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총리 퇴진 요구는 점점 거세지고 있다.

네타냐후가 사법부 무력화에 매몰되어 외부 위협에 무관심했으며, 이스라엘의 느슨한 정보 판단에 따라 미국 CIA조차도 하마스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데 소홀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네타냐후 주도의 초강경 우파 연정이 사법부 무력화 법안을 가결하기 직전인 7월 24일 이스라엘 고위 관료 2명이 의회를 방문해 하마스와 헤즈볼라 등의 공격 가능성을 경고했지만, 이들의 안보 브리핑에 참석한 의원은 2명뿐이었다고 한다.

훗날 하마스 기습공격에 대한 객관적인 조사가 이뤄지면 기습에 대한 감시체계가 사전에 작동되지 않은 원인이 밝혀지겠지만, 정보 안테나의 방향이 잘못됐던 것은 분명하다. 정보 실패에 대한 책임은 최고 정보사용자에서부터 실무자까지 광범위하게 걸쳐 있을 수밖에 없다. 에얄훌라타 전 이스라엘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달 워싱턴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이번 전쟁에 관여하는 사람 중에 책임을 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북한의 기습공격 역량과 피해 규모는 상상 이상

이제 눈을 한반도로 돌려 보자. 북한의 기습공격 위험성은 하마스 못지않다. 기습공격의 질과 양적 측면에서 한반도는 중동에 버금간다. 멀리는 1950년 6월 남침부터 수많은 기습공격을 해왔다. 1999년과 월드컵이 한창이던 2002년의 1·2차 연평해전,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등 예측 불가의 공격은 부지기수였다. 최근 군사 결탁에 나선 김정은과 푸틴은 하마스의 기습공격에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푸틴은 전선이 분산되면서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이 축소될 것으로 예상했을 것이고, 김정은은 중동에서 무기 수요가 급증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무기 세일즈에 나설 것이다. 벌써 중동 국가에 넘어간 북한산 ‘방현 122㎜’ 포가 하마스 진영에서 사용됐다는 전언이다.

최근 9·19 남북 군사합의 폐기를 둘러싸고 여야의 대립이 적지 않다. 서울에서 40㎞가량 떨어진 북측 지점에서 방사포 1000문이 수도권을 겨냥하고 있다. 하마스의 공격 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텔아비브의 국내 정치 분열에 따른 정보 실패를 교훈 삼아 서울의 정보 실패 가능성을 늘 예의주시해야 한다. 한반도에서 기습공격이 벌어질 경우 서울의 피해는 이스라엘과 규모가 다를 것이다. 1000만 명이 사는 서울은 북한의 직접 공격 사정권 안에 있다.

국가정보원은 물론 국군 정보사령부 및 경찰 등 국내 부문 정보기관들이 정보의 정치화에 휘둘리지 않고 전문 역량을 발휘하도록 정치권이 종합정보 대응시스템을 구축해줘야 한다. 최근 이철우 경북지사는 안동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에게 서애 류성룡이 임진왜란의 문제점과 교훈을 정리한 징비록(懲毖錄)을 선물했다고 한다. 우리가 이스라엘판 9·11 테러에서 새겨야 할 징비록은 적의 동향을 촘촘하고 치밀하게 객관적으로 점검하고 대처하는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정보기관이 24시간 깨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최고 정보사용자 역시 편견 없이 정보기관의 보고를 확인하는 것이 책임 있는 자세다. 최고 정보사용자와 정보기관이 동상이몽으로 제각각 작동한다면 국력 낭비와 함께 이스라엘판 9·11 테러가 우리에게도 닥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 남성욱 -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고려대 북한학연구소장을 지냈다. 2013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을 지낸 뒤 후학 양성과 북한 문제 연구에 전념해오고 있다. [김정은의 핵과 경제](2022, 박영사), [북한여성과 코스메틱](2017, 한울아카데미), [한반도 상생프로젝트](2009, 나남) 등 북한 문제에 관한 다수의 책을 펴냈다.

202312호 (2023.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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