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의 화두인 ‘자유’엔 ‘민주와 공화’라는 근본 가치 부족尹정부 탄생 원동력인 ‘공정’과 ‘상식’ 갈구한 민심 늘 되새겨야
▎4월 총선은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모두에게 나라와 자신들의 미래를 가를 ‘중대선거’다. 두 사람의 갈등이 일찍 봉합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사진은 두 사람이 1월 23일 충남 서천군 서천읍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을 둘러보고 있는 모습. /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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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윤석열·한동훈 충돌 사태’의 교훈‘윤석열·한동훈 충돌 사태’가 정국을 강타했을 때 보수층은 큰 충격을 받았다. 시국의 엄중함을 우려한 일반 시민들도 부정적 반응 일변도였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약속 대련’이라고 힐난했지만, 권력의 배타적 속성에서 비롯된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충돌’로 읽는 것이 훨씬 설득력이 있다. 2인자를 용납하지 않는 윤석열 대통령의 독불장군 리더십도 ‘윤석열·한동훈 사태’의 한 배경이다.4·10 총선을 눈앞에 두고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결별하는 건 국민의힘 몰락을 의미하므로, 두 사람에겐 합리적 선택지가 될 수 없었다. 차기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참패하면 한 국가 안에 대립하는 두 정치권력이 통치권을 두고 싸우는 이중권력이 현실이 된다. 공룡 야당은 대통령 탄핵과 개헌으로 조기 대선을 유도하려 할 것이다. 총선 대패로 보수우파가 괴멸하고 좌파 포퓰리즘이 득세하는 건 ‘정치인 한동훈’에게도 재앙이다. 결국 4월 총선은 윤·한 모두에게 나라와 자신들의 미래를 가를 ‘중대선거(critical election)’다. 두 사람의 갈등이 일찍 봉합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윤 대통령으로선 4월 총선이 표류하는 국정을 정상화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윤 대통령의 행정권력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입법권력이 무한 대치하는 분점정부(分占政府·Divided Government)의 대혼란을 풀 수 있는 결정적 전환점이다. 극단적 이중권력은 내란을 초래하는 경향이 있다. 민주주의의 위대함은 투표 결과로 드러나는 민심이 유혈 사태 없이 이중권력을 해소한다는 데 있다.그럼에도 미래권력은 현재권력에겐 불편한 존재이므로, ‘윤석열·한동훈 갈등’은 내연된 형태로 계속될 게 분명하다. 임기 절반도 안 지난 윤 대통령으로선 떠오르는 권력인 한 위원장의 독립적 행보가 불편할 수밖에 없다. 한 위원장으로선 대통령 분신이라는 세간의 통념을 깨야 미래가 열리기 때문에 언젠가는 윤 대통령의 자장(磁場)에서 벗어나 홀로서야만 한다. 한 위원장의 홀로서기는 정치인 한동훈의 자격을 얻기 위한 필수적 통과의례다.
불안한 ‘윤석열·한동훈 이인삼각’두 사람 사이의 균열은 이처럼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국민의힘 공천 과정의 긴장은 학습 효과 덕분에 물밑에서 타협할 가능성이 크다. ‘윤석열·한동훈 이인삼각’ 경주는 4월 총선까진 비교적 순탄하게 가겠지만 총선 후 2027년 대선이라는 결승선까지 순조롭게 이어질 수 있을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국민의힘이 4월 총선에서 승리하거나 선전한다면, ‘윤·한 관계’는 새로운 긴장 국면을 맞게 된다.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조율 문제가 최대 현안이 된다. 총선 후 ‘자신의 삶이 꼬이게 될 것’이라는 한 위원장 말은 예언적 발언이 아닐 수 없다.친윤계 인사들은 한 위원장 등장 이후에도 정권 견제론과 정권 지지론 사이의 격차가 개선되지 않는다며 불평하곤 했다. 윤 대통령의 멘토로 불린 신평 변호사는 한 위원장에게 중도 확장성이 없다는 이유로 조기 사퇴를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이는 성급한 진단이다. 한 위원장이 유연한 행보로 여론의 점수를 따면서 정권 견제론과 정권 지지론 사이의 차이는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신평 변호사는 여권 내부 힘의 지형 변화를 두고 한 위원장 쪽의 ‘궁정 쿠데타설’을 강변했는데, 음모론에 가까운 억설(臆說)이다. 제왕적 대통령인 윤 대통령이 궁정 쿠데타를 용인할 리 만무하다. 제왕적 대통령제에 순치된 여권 권력 지형이 변하고 있다면 그것은 자생적 변화일 터이다. 총선을 눈앞에 둔 정치인들의 생존 본능 때문이다.민주정치에선 민심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정치인이 세(勢)를 얻게 된다. 대통령 영부인 문제에서 한 위원장이 대통령(실)의 사퇴 압박을 버텨낸 힘도 한동훈식 처방을 합리적이라고 보는 여론에서 나왔다. 영부인 문제에서 윤 대통령은 줄곧 리더십 실패를 드러내 왔다. 권력 공학에 매몰된 친윤계 책략가들은 정치의 요체가 살아 있는 권력을 옹위하는 데 있지 않고 민심 존중에 있다는 자명한 이치를 외면한다.
#2. 尹의 수구 자유주의가 초래한 민심이반윤석열·한동훈 사태’ 배경엔 윤 대통령의 독불장군 리더십이 자리한다. 이는 대통령이 권력과 정부를 운용하는 방식에 대한 비판이다. 이보다 본질적 문제는 윤 대통령 화두인 ‘자유’엔 21세기 한국에 맞는 미래지향적 내용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지난 2년의 성과를 인정한다고 해도 윤석열 정부는 한국 우파의 고질병인 수구 자유주의로 퇴행하는 모습을 분명하게 드러냈다.‘정치인 윤석열’의 등장을 가능케 한 궁극의 힘은 공정과 상식을 갈구한 민심의 열망이었다. 보수우파는 지난 대선에서 국민적 갈망을 최대 연합정치로 견인했음에도 겨우 승리했다. 국민의힘도 필사적이었고 당시 윤석열 후보는 사즉생의 결기와 민심을 읽는 안목과 포용력이 있었다. 보수와 청년 세대가 앞장서고, 중도층과 합리적 진보가 동참한 최대 정치연합의 승리였다. 이것은 국정 성과에 대한 국민적 동의로만 유지될 수 있는 느슨한 우파·중도 정치동맹이었다. 윤석열 정부가 최대연합의 정치에 충실해야 했던 이유다.그러나 윤 대통령은 정반대 방향으로 갔다. 자신을 추종하지 않으면 ‘국정의 적’으로 공격하고, 절대 충성을 요구하면서 불공정한 인사와 불통의 정책을 고집했다. 자신만의 힘으로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오만과 착시가 화근을 키웠다. 여론이 지금처럼 차가워진 데는 또 다른 결정적 이유가 있다. 미증유의 민생고가 서민과 중산층을 덮치고 있는데도 윤석열 정부는 무능하고 무력하다.그 결과 최대 정치연합은 무너지고 강성 보수와 올드 라이트, 노인층과 영남만 남았다. 윤 대통령의 오만과 무능, 우편향이야말로 민심 이반의 주범이다. 대통령 지지율이 30%대에 머물면 어떤 정부도 추진력을 갖기 어려운데, 윤석열 정부는 취임 초를 제외하면 줄곧 30% 박스권에 머물러 있다. 지난 1월 말~2월 초 갤럽조사에선 대통령 지지율이 29%로 추락하기도 했다. 결국 윤석열 정부는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었다. 윤 대통령이 한동훈이라는 마지막 구원투수를 불러낼 수밖에 없었던 맥락이다.
尹·韓 갈등, 내연 형태로 이어질 것
▎민주주의의 위대함은 투표 결과로 드러나는 민심이 유혈 사태 없이 이중권력을 해소한다는 데 있다. 사진은 윤 대통령이 1월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가진 국민의힘 지도부와의 오찬에서 창밖을 보며 한 비대위원장과 대화하는 모습. / 사진:대통령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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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으로 볼 때 윤 대통령의 화두인 ‘자유’엔 ‘민주와 공화’라는 근본 가치가 태부족하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래 일관되게 ‘자유’를 강조해 왔지만 자유주의의 역사는 윤 대통령 버전의 자유가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윤 대통령식 자유 이념의 우편향은 윤석열 정부의 사상적 빈곤과 미래 비전 부재로 이어진다. 윤 대통령은 문재인 정권의 좌편향을 제자리로 돌려놓는다는 명분으로 국정의 막대를 반대 방향으로 너무 기울였다.자유주의는 원래 중세 봉건 체제를 무너뜨린 서양 근대 시민계층의 저항 이념이다. 자유주의가 신흥 시민계급의 시민권과 재산권을 핵심 원리로 삼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법치주의·입헌주의·삼권분립 같은 제도는 시민권과 재산권을 지키기 위해 도입한 장치였다. 그런데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재산을 축적한 시민계층이 기득권으로 떠오르는 과정에서 빈부 격차가 커진다. 자유주의의 목적인 자유와 민주주의의 목표인 평등 사이에 첨예한 갈등이 양산된다.자유민주주의는 이런 상황에 대한 타협의 산물이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각각 양보해 자유와 평등의 기본 가치를 절충한 결과물이다. 자유를 존중하되 빈부 양극화를 줄여 사회적 평형을 확보하려 한 시도였다. 자유민주주의가 태생적으로 개혁적 자유주의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그런데 윤 대통령이 강조하는 ‘자유’는 개혁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 지상주의로 퇴행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중시하는 프리드먼(M. Friedman·1912~2006)의 신자유주의는 시장 효용성을 앞세워 ‘가진 자의 자유’를 강조한다. 그 결과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로 통합된 역사적 맥락이 무시된다. 윤 대통령 자유관의 우편향은 경제발전과 복지를 조화시키려는 21세기 한국의 시대정신과도 날카롭게 부딪힌다.군사독재 시절 한국 수구 우파는 권위주의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자유민주주의를 악용한 원죄가 있다. 그들은 냉전반공주의와 천민자본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포장해 유통시켰다. 냉전반공주의는 안보를 빙자해 언론·결사·집회의 자유, 법치주의, 입헌주의적 견제와 균형 같은 자유주의 원칙을 침해했다. 천민자본주의는 경제적 효율성을 앞세워 공정한 시장경제를 왜곡했다. 그 결과 개발독재 시대엔 자유라는 보편 가치가 가진 자들의 자유로 왜곡되고 말았다.한국 좌파는 수구 보수의 우편향을 빌미 삼아 정반대인 좌편향으로 치달았다. 좌파는 냉전반공주의와 천민자본주의를 비난하면서 시민권과 재산권이라는 자유주의 가치 자체를 적대시하는 치명적 오류를 범했다. 재앙으로 끝난 문재인 정부의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는 그런 좌편향의 결과다. 반면 윤석열 대통령의 비민주주의적 자유주의(non-democratic liberalism)엔 민주와 공화의 근본 가치에 대한 감수성이 없다.
민주와 공화에 대한 감수성 없는 尹의 자유주의자유를 화두로 삼은 윤석열 정부에서 권위주의적 통치가 재현되고, 비판의 자유가 후퇴하는 현실이 그 증거다. 함께 살아가는 삶을 지향하는 민주와 공화의 근본 가치를 경시한 윤석열식 자유관의 사상적 빈곤이 위기를 증폭시키고 있다. 한국 우파가 구태의연한 냉전반공주의와 천민자본주의에 집착하는 한 세계 최저 출산율과 세계 최악의 자살률로 압축되는 한국 사회의 자기 붕괴를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대한민국을 성숙한 공화정으로 도약하게 하는 두 날개다. 새로운 보수우파의 개혁적 자유주의는 수구 자유주의를 넘어 민주와 공화의 가치를 포용해야 한다. 한국 보수는 가진 자의 자유를 강조하는 자폐적 태도에서 벗어나 함께 사는 자유의 문을 열어젖혀야 한다. 이것은 ‘동료 시민’과 함께하는 정치를 표방한 정치인 한동훈의 존재 이유와 직결되는 정치철학적 문제 제기다.
#3 ‘정치인 한동훈’과 공화 자유주의의 길한 위원장의 대표 상품인 ‘동료 시민’ 레토릭은 명백히 윤석열 정부의 권위주의적 수구 자유주의와는 거리를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까지 제시된 한 위원장의 연설에선 자유주의의 공화주의적 전환, 즉 공화 자유주의의 흔적들이 드러난다. 그럼에도 우리는 ‘한동훈 현상에 어떤 사상적 실체가 있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을 피할 수 없다.이념적 콤플렉스에서 자유로운 신세대 신한국인을 상징하는 그의 젊음, 세련된 강남 우파의 풍모, 유창하고 논리적인 언변, 반듯해 보이는 품성 등은 대중 정치인으로서 소중한 자산이다. 하지만 한 위원장이 차세대 우파 정치인으로서 어떤 실질적 미래비전을 증명했는가? 이 근본적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한동훈 열풍’도 일과성 거품으로 전락할 수 있다. 문재인 정권의 좌파 포퓰리즘에 맞서 자유주의를 강조함으로써 한때 신선하게 여겨졌던 윤 대통령의 때 이른 퇴조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정치의 위기는 철학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윤석열 정부의 위기는 한국 보수우파가 직면한 정치사상의 위기로 읽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보수우파엔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을 구성하는 자유주의, 민주주의, 공화정이라는 세 가지 정치이념의 한국적 상호관계와 동역학에 대한 철학적 고민이 부재한다. 따라서 한동훈식 공화 자유주의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유와 민주, 공화라는 가치의 내용과 선후 관계를 분석해야 한다.
현대 정치철학에서 근본 가치는 자유
▎국민의힘이 4월 총선에서 승리하거나 선전한다면 ‘윤·한 관계’는 새로운 긴장 국면을 맞게 된다.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조율 문제가 최대 현안이 된다. 사진은 윤 대통령이 1월 23일 충남 서천군 서천읍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에서 한 비대위원장과 만나 현장을 점검하는 모습. /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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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정치철학에서 자유는 양보할 수 없는 근본 가치다. 인류 역사는 자유 실현을 위한 고난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자유 이념에는 인류의 피땀이 녹아 있으므로, 자유의 지평에서 정치와 사상은 분리 불가능하며, 자유야말로 인권과 인격의 근원이다. 자유 없는 평등은 있을 수 없고, 자유를 억압하는 정의는 무의미하며, 자유가 배제된 민주주의는 형용모순에 불과하다. 정치철학의 개념적 연결고리에서 자유주의는 민주주의와 공화정으로 나아가는 보편적 필요조건이라는 교훈에 주목해야 한다. 공화 자유주의가 자유주의를 혁신케 만든 핵심 통찰은, 자유 이념이 자유의 자기 제한을 동반한다는 사실이다. 성숙한 개인주의는 타인에 대한 책임의식과 공동체에 대한 의무감과 동행한다. 이게 바로 자유주의보다 진화한 공화 자유주의의 출발점이다.다음은 공화주의와 민주주의의 긴장 관계를 살펴볼 차례다. 민주주의가 민중의 지배(kratia)인 데 비해 공화주의는 정당하지 않은 모든 형태의 지배를 거부한다. 바꿔 말하면, 공화정의 핵심은 비(非)지배자유(non-dominant freedom)를 지향한다. 민주주의가 소수에 대한 다수의 지배에 그치는 데 비해 공화정은 다수결을 거부하면서 다수와 소수의 공존을 중시한다. 고대 아테네의 몰락이 증명하듯 민주주의는 포퓰리즘에 본질적으로 취약하다. 폭민 정치야말로 그 최악 사례다. 민주주의의 이런 편향을 메울 수 있는 대안이 공화 자유주의다.예컨대 로마 공화정은 아테네 민주주의와 선명하게 대조된다. 로마 공화정의 특징인 혼합정은 지배층과 민중의 폭주를 두루 제어하기 위한 장치였다. 로마 공화정은 집정관, 원로원, 민회가 각기 왕정의 지도력, 귀족정의 경륜, 민주정의 활력으로 상호 견제와 균형을 성취했다. 귀족계층을 대변한 원로원, 집정관과 평민계급을 대표한 민회, 호민관 사이 균형과 경쟁을 통한 활력과 연대가 공화정의 동력이었다. 토지 균분제와 시민군이라는 기초에 경쟁계층의 화합(concordia ordinum)과 시민적 덕성(virtu)이 합쳐졌을 때 로마 공화정은 전성기를 구가했다.키케로의 말대로 조국(patria)의 반대말은 타국이 아니라 폭정이다. 여기서 조국은 바로 공화정을 지칭한다. 결국 공화정은 시민적 덕성을 갖춘 평등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법을 지키면서 자유를 누리는 정치공동체다. 공화정(Res Publica)은 민중 계층을 비롯한 어떤 특정 계급의 독주도 허용하지 않는다. ‘시민 모두의 정의로운 나라’로 규정된 공화정이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강점을 갖게 된 이유다.공화 자유주의 사회는 시민정신과 법치주의, 혼합정만으론 유지되지 않는다. 공화국의 융성과 시민적 자유를 가능케 한 최종적 토대는 물리적 군사력에 입각한 국력이었다. ‘현대의 로마’인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도 다수의 전제(專制)와 중앙정부의 횡포를 견제하는 현대판 혼합정의 토대 위에 미국을 건설하면서 강력한 시민군의 존재를 포함시켰다.
한반도의 시대정신 공화 자유주의의 꿈북핵 위기에 직면한 대한민국은 공화 자유주의의 지평에서 국가의 본질을 묻지 않으면 안 된다. 전략 핵국가 북한의 한국에 대한 상시적 무력 협박은 무정부 사회인 국제정치의 본질을 일깨운다. 현실 국제정치에 투철한 공화 자유주의 무장 평화론은 한반도 통일과 평화 체제를 이루려는 노력과 충돌하지 않는다. 법치주의를 통한 권력 기구의 견제와 균형, 그리고 시민적 덕성과 애국심에 입각한 강력한 국력과 군사력이 민주공화국을 수호하기 때문이다.공공성을 생명으로 삼는 공화 자유주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과잉이 초래하는 치명적 문제점에 대한 맞춤형 처방전이다. 결국 공화 자유주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의 갈등을 고차적 지평에서 통합하는 궁극의 미래 비전이다. 한국 사회에서 논란의 대상인 헌법 제119조 1항(자유주의 조항)과 2항(민주주의 조항) 사이의 대립을 화해시킬 수 있는 조항이 제1조 1항(공화정 조항)이라는 사실이 의미심장하다.나아가 공화정의 화두인 공공성(公共性)은 공적인 것(the public)과 공동성(the common)을 통합한 보편 가치다. 공동성에 집착하는 민주주의의 약점을 보완하고, 사적인 것(the private)을 중시하는 자유주의의 단점을 넘어선 게 공화 자유주의다. 따라서 공화 자유주의는 자유주의·민주주의·공화정의 변증법적 통합을 상징한다. 지금까지 한국 보수 우파의 세계관엔 이런 정치철학적 성찰이 부재했다.자유·민주·공화로 구성된 삼각형의 꼭짓점엔 공화가 자리한다. 자유와 대동(大同), 민주와 공화를 통합한 공화 자유주의의 꿈은 3·1운동 이후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연면하게 흘러온 한반도의 시대정신이었다. 건국과 산업화, 민주화의 대장정은 공화 자유주의의 미래 비전으로 수렴돼 성숙한 공화정으로 나아간다. 여론의 관심을 끌고 있는 ‘한동훈 현상’이 장기 지속성을 가지려면, 한 위원장은 수구적 자유지상주의를 넘어 공화 자유주의로 도약해 나가야만 한다. 공화 자유주의는 정치인 한동훈의 홀로서기를 위한 정치사상의 거처가 될 것이다.
#4 ‘동료 시민’과 함께 공공선의 정치로윤석열 정부와 이재명 레짐(regime)은 적대적 공생관계를 맺고 있다. 여기서 윤석열 레짐이란 윤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행태와 자폐적 권력 재생산 시스템, 좁은 지지기반, 대통령 뜻만 추종한 국민의힘의 단성적(單聲的) 의사결정 구조를 가리킨다. 한마디로 반(反)민주주의적 신자유주의로 독주해 온 ‘윤석열 체제’다. 윤석열 레짐의 강력한 겉모습은 착시에 불과하다. 다수 국민의 자발적 동의가 만드는 통치 헤게모니를 잃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한동훈 위원장의 정치 등판 직전까지 상황이었다.이재명 레짐이란 이 대표의 폐쇄적 리더십과 부패한 권력 재생산 시스템, 열광적 팬덤에 휘둘리는 편협한 지지기반, 민주당의 포퓰리즘적 의사결정 구조를 지칭한다. 한마디로 반(反)자유주의적 민중민주주의 방식으로 가동되는 ‘이재명 체제’다. 이재명 체제는 민주당을 철통처럼 장악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부패하고 반동적인 이재명 레짐이 국민 다수의 동의에서 나오는 헤게모니를 얻는 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 대표의 차기 대선 가도(街道)가 불확실한 근본 이유다.무한퇴행 관계로 맞물린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지도력 위기가 국가 위기로 비화하면서 정치의 실패가 국가 실패로 전이되고 있다. 양대 정당의 적대 정치에 볼모 잡힌 국정 과제와 민생 문제가 표류하면서 한국 사회는 통치 불가능 직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절망적 교착 상황을 타파하려면 4월 총선에서 양대 정당 독점 체제를 깨뜨리는 게 최우선 과제다.
한동훈까지 내친다면 윤석열 리더십은 파탄
▎한동훈 비대책위원장이 차세대 우파 정치인으로서 어떤 실질적 미래 비전을 증명했는가? 이 근본적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한동훈 열풍’도 일과성 거품으로 전락할 수 있다. 사진은 한 비대위원장이 지난해 12월 26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취임식에 입장하는 모습. /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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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정치 지형의 최대 문제는 양대 정당의 전쟁 정치가 권력을 사사화(私事化)해 왔다는 사실이다. 공공선의 정치는 실종 상태다. 그나마 한 위원장의 홀로서기 움직임으로 국민의힘에서 유의미한 변화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다는 점이 희망의 싹이다. 이에 비해 민주당 이재명 1인 체제는 변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여론조사 추세만 보고 민주당의 일방적 총선 승리를 점치는 정치 평론가들의 예측보다 성급한 것도 없다. 굶주린 호랑이처럼 웅크린 민심은 특권과 구태(舊態)에 매몰된 정당을 총선에서 응징하게 될 것이다.정치 정상화를 위해선 민주당 안에서도 ‘이재명 유일정당’의 색깔을 혁신할 수 있는 온건하고 합리적인 리더십이 출현해야 한다. 이것이 민주당 총선 승리를 위한 최선의 선거 대책이다. 이재명 리더십의 폐단에 대해 최소한 한 위원장 수준의 자기 성찰적 목소리가 내부에서 나올 수 있어야 한다. 민주당의 총선 승리를 바라는 시민들에겐 이 문제야말로 최대 난제다.궁극적으로 이재명 대표는 진보좌파의 고질인 민중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사회 민주주의를 개척해야 한다. 한 위원장은 보수우파의 지병인 반공 자유주의를 뛰어넘는 공화 자유주의로 나아가야 한다. 이런 정치철학적 성찰의 중요성을 감안하면 거대 양당 카르텔이 주고받는 ‘운동권 청산론’ 대 ‘윤 정권 종식론’은 피상적 의제에 불과하다.돌이켜보면 대통령(실)이 한 위원장에게 사퇴를 요구했을 때 한 위원장이 “국민 보고 나선 길, 할 일을 하겠다”며 일축한 게 중대 전환점이었다. 총체적 위기에 직면한 윤 대통령이 한 위원장까지 축출했다면, 윤석열 리더십은 파탄을 맞았을 터이다. 자신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한 위원장까지 쫓아냈다면 강골 검사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든 “나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의 호소력이 완전히 무너지기 때문이다.만약 한 위원장이 외압에 의해 물러났다면, 국민의힘은 ‘윤석열 유일정당’임을 만천하에 공표하는 셈이 됐을 것이다. 정권심판론이 정권지지론을 넘어선데다 대통령 지지율이 30%대에 고착된 현실에서 국민의힘 4월 총선 참패 가능성은 훨씬 높아졌을 것이다. 앞서 강조한 것처럼 한 위원장 축출은 윤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미래를 스스로 파괴하는 정치적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4월 총선 이후에도 ‘윤·한 관계’의 이런 구도엔 본질적 변화가 없다. 총선 이후 윤 대통령이 곱씹어야 할 가장 중요한 정치적 교훈이다.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취임 이후 대통령과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합리적 행보를 보인 한 위원장의 노력은 보수우파의 재집권 전략이란 관점에선 현명했다. 그것은 윤석열 유일정당으로 전락한 국민의힘의 수구적 색깔을 줄이는 행보였으며, 이재명 유일정당으로 변질된 민주당의 반동적 특징과도 차별화된 움직임이었다. 이게 정치판을 흔든 ‘한동훈 현상’의 근본 원천이다.정치는 살아 있는 생물이다. 한 위원장이 이끄는 최대 정치연합 복원 움직임은 국민의힘과 민주당에서 갈라져 나온 제3지대 정치세력을 개혁신당으로 전격적으로 합치게 만든 메기 효과로 작동했다. 한 위원장이 중원을 선점하면 제3지대 정당들은 설 자리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개혁신당 등장엔 물론 거대 양당, 특히 민주당이 시작한 선거법 변칙(위성정당 창설을 통한 준연동제)에 대응하는 제3지대 정치인들의 자구책이라는 측면도 있다.
변화에 저항하는 좌·우 수구세력 투표로 심판해야
▎‘정치인 윤석열’의 등장을 가능케 한 궁극의 힘은 공정과 상식을 갈구한 민심의 열망이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정반대 방향으로 갔다. 사진은 윤 대통령이 2월 4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2024년 설 명절 영상 메시지 촬영에 함께한 대통령실 합창단 ‘따뜻한 손’과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를 노래하는 모습. / 사진:대통령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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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위원장이 물꼬를 튼 국민의힘의 변화 가능성은 민주당의 자체 변화를 유도함과 동시에 개혁신당이 움직일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을 낳고 있다. 거대 양당 카르텔을 깨뜨려 여러 정당이 정책과 민생으로 경쟁하는 다원주의 정치가 열릴 수도 있다는 중대 신호다. 정치인 한동훈이 결과적으로 양대 정당의 독점 체제를 깨는 데 기여하고 나아가 공화 자유주의의 비전까지 증명해 낼 수 있다면, 한 위원장은 국민 정치인으로 승격될 수도 있다.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적대적 공생관계가 빚는 파열음이 계속된다면 시민들의 분노가 4·10 총선에서 어떻게 폭발할지 누구도 예단하기 어렵다. 정치 변화의 폭풍이 권력 기술자와 선거 전문가의 선거 예측을 모래성처럼 무너뜨릴 가능성도 있다. 현대 정치사를 100년 단위로 보면 권력자와 책사(策士)들의 권력 놀음은 지극히 사소한 것이다.정치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종합예술이다. 한동훈 위원장의 “국민 보고 나선 길, 할 일을 하겠다”는 말은 그 방향으로 가는 거대한 출사표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그리고 개혁신당과 제3지대 정당 모두 ‘국민 보고 나선 길, 할 일을 하는’ 공공선의 정치로 정면 승부를 시작해야 한다.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동료 시민’과 함께하는 국리민복의 정치다.4월 총선의 향방은 활짝 열려 있다. 우리 시대는 민심을 읽고 시대의 소명에 응답하는 정치인의 책임 윤리와 실천 의지를 갈구한다. 한국인들은 국가 실패를 초래할 정치인과 정당을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한국 정치사는 변화에 저항하는 좌·우 수구세력을 시민들이 ‘투표 짱돌’로 심판해 온 처절한 생사의 기록이었다.-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명예교수 pjyoon@h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