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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I 집중분석] 이성윤의 '그것은 쿠데타였다'로 본 ‘윤석열 사단’ 속살 

“윤 사단, 집단이기주의에 빠진 ‘이권 카르텔’이었다”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욕 입에 달고 산 윤석열” “수사하듯이 정치”… ‘하나회’ 견주며 신랄하게 비판
이성윤도 살아있는 권력에 맞서려 ‘정치검사’의 길… “尹과 다르지 않아” 지적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주최한 행사에 참여해 윤석열 대통령을 비판했던 이성윤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에 대한 검사징계위원회가 열린 2월 14일 오후 정부과천청사에 이 위원이 입장을 밝히기 위해 법무부로 향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군사정권이 물러간 지 30년이 지난 지금, 그 자리에 검찰정권이 들어섰습니다. 근무지만 서초동에서 용산으로 옮긴 듯, 윤석열 전 검사는 수사하듯이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2월 14일 오후 경기도 과천의 법무부 청사 앞에서 서울중앙지검장을 지낸 이성윤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은 미리 준비해온 입장문을 읽어 내려갔다. 이날은 이 연구위원에 대한 징계위원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지난해 9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신간 [디케의 눈물]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윤석열 사단은 전두환의 하나회에 비견된다”고 말한 게 빌미가 됐다.

검찰은 이 연구위원에 대해 법무부에 중징계를 요청했다. 한때 수사 대상이었던 조 전 장관과의 교류가 부적절하고, 검찰 업무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발언을 해 윤리강령을 위반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성윤 검사는 정권을 향한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1월 말에는 작심하고 책을 냈다. [그것은 쿠데타였다]라는 제목이 보여주듯 윤석열 정권의 탄생을 쿠데타로 규정한 작심 비판이었다. 자전적 회고록이지만, 대부분 ‘윤석열 사단’과 정치검찰에 대한 고발장이나 다름없었다.

첫 장에서부터 마지막 장까지 그는 시종일관 ‘윤석열 대통령’이란 칭호를 한 번도 쓰지 않았다. ‘윤석열 전 총장’이 그나마 가장 점잖은 축이다. 30년 가까이 검찰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사법연수원 동기인 두 사람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성윤 연구위원의 비판은 크게 두 갈래다. 윤 대통령 개인과 윤석열 사단이라 불린 특수부 라인이다. 윤 대통령에 대한 그의 평가는 신랄하기 그지없다. “문재인 정부의 개혁 의지에 동참할 듯한 언행으로 임명권자를 기만하고, 개혁을 열망하는 국민을 배신해 권력을 거머쥔 자”,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그리하여 자기들만의 조직에 충성하는 검찰주의자”라는 것이다. 또 윤석열 사단은 “집단이기주의에 빠진 ‘이권 카르텔’”이라고 규정했다. 그의 주장은 “윤석열에게 속았다”고 한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정부 관계자들의 주장과 같은 맥락이다.

아웃사이더 눈에 비친 윤석열 사단은 ‘이권 카르텔’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해치는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징계가 청구된 이성윤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은 자신의 저서 [그것은 쿠데타였다]에서 “헌법은 무너지고 검찰개혁은 실패했다. 그 증거가 대통령 윤석열이다”라고 주장했다. / 사진:교보문고 홈페이지 캡처
이 연구위원이 정치검찰의 득세 시기로 지목한 때는 2017년부터 2021년 초까지다. 국정농단 수사로 정권교체의 계기를 마련한 윤석열 검사의 귀환은 화려했다. 적폐 수사를 명분으로 윤석열 사단에 칼을 쥐여준 것은 다름 아닌 문재인 정권이었다.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발탁된 윤 대통령은 박근혜 정부에서 좌천돼 전국으로 뿔뿔이 흩어졌던 특수통 검사들을 서울로 불러 모았다. 그 규모가 폐지된 중앙수사부(중수부)에 맞먹을 정도로 커서 ‘중수부의 부활’이라고도 불렸을 정도였다. 중앙지검은 사방에서 적폐수사의 컨트롤타워가 됐다.

당시에는 문 대통령과 국민적 여론이 윤석열 사단에 지극히 우호적이었다. 정권을 지지하는 여론의 목소리가 특수부의 지나친 비대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를 압도했다. 검찰을 민주적으로 완벽히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취해 검찰개혁의 당위는 후순위로 밀려났다.

하지만 대검 중수부 폐지 과정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문재인 정권의 치명적 실수가 드러난다. 과거 대검 중수부를 폐지한 명분은 검찰의 정치화로 인한 폐단을 막는다는 데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할 때에도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서거를 계기로 천신만고 끝에 해체된 검찰의 ‘특수부 카르텔’을 문재인 정부가 ‘윤석열 사단’을 통해 되살린 셈이다.

그렇게 검찰 내에서 최대 파벌로 다시 떠오른 특수부 라인과 거리가 멀었던 이 연구위원의 눈에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에 집중된 윤석열 사단의 득세가 곱게 보일 리 만무했다. 이 연구위원은 책에서 자신을 검찰 내 ‘아웃사이더’였다고 했다. 김학의 전 차관 출금 수사 관련 직권남용 혐의에 대한 재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전직 법무부 고위 관계자의 증언은 이랬다. “이성윤 전 고검장은 서울대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부정적인 세평이 떠돌았다. 문재인 정부에서 그 점을 높이 샀기 때문에 법무부 검찰국장, 서울중앙지검장에 보임된 것이지 그가 실세였기 때문에 그 자리를 맡은 것이 아니다.”

그와 윤석열 검찰의 관계를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2020년 1월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발령 난 직후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부임신고를 하려고 대검을 방문했을 때다. 마침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주친 대검 간부가 마치 들으라는 듯이 하는 말이 귀에 박혔다. “반부패부장, 검찰국장, 서울중앙지검장을 연이어 하는 사례는 처음 아닌가?”

이 연구위원은 당시 ‘추미애 라인’으로 분류돼 있었다. 검찰 인사를 놓고 추 장관과 윤 총장의 대립이 극에 달했던 시기다. 이 연구위원은 법무부 장관의 메신저 역할인 검찰국장이었다. 그런 그가 중앙지검장으로 발탁됐으니 검찰 내부 시선이 고울 리 없었다.

중앙지검장이 된 뒤 그를 고립시키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그 시도에 ‘눈먼 돈’으로 지적을 받아온 검찰총장의 특수활동비가 활용됐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중앙지검장으로 발령받은 뒤 그가 직접 수사 지휘를 하는데도 수사팀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수사비가 넉넉하지 않으면 수사팀의 사기가 떨어지게 마련. 개인적으로 대출을 받아서라도 수사비를 줘야 하나 고민하던 와중에 윤 총장이 중앙지검장인 자신을 건너뛰고 자기 부하에게 수사비를 직접 준 사실을 알게 됐다.

중앙지검장 패싱하고 ‘총장 특활비’로 직접 관리


▎이성윤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9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신간 [디케의 눈물]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윤석열 사단은 전두환의 하나회에 비견된다”고 말해 검사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 / 사진:MBC 뉴스데스크 캡처
이 연구위원은 한동수 전 대검 감찰부장이 자신의 SNS에 올린 글을 인용해 검찰총장의 특수활동비가 갖는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첫째, 업무와 관련 없이 지급된다면, 돈을 받은 사람을 ‘내’ 사람으로 만든다. 현재 또는 미래에 ‘나’를 위해 일할 수 있도록 한다. 둘째, 업무와 관련해 지급한다면, 돈을 받은 검사에 대해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그가 담당하고 있는 사건 수사의 속도와 범위, 방향과 결론에 관한 분명한 메시지가 전달되게 된다. 특히 지휘계통에 따라 기관장을 통해 내려간 게 아니라, 검찰총장이 검사 개인에게 직접 지급했을 때에는 당사자에게 다가오는 의미가 확연히 차이가 난다.”

이 연구위원은 자신을 패싱하고 건네진 그 돈의 의미를 모르지 않았다. 그는 이것이 “‘윤석열 사단’을 전두환의 ‘하나회’에 비견된다고 한 이유”라고 했다. 윤석열 사단을 ‘하나회’에 견줘 신랄하게 비판한 것은 비단 이 연구위원뿐만이 아니다. 추미애 전 장관도 “검찰의 가장 큰 문제는 ‘하나회’처럼 군림하면서 사건을 독식하고 그것을 통해 명성을 얻으면서 ‘꽃보직’을 계속 누려온 특수통 출신, 이른바 윤석열 사단”이라고 한 적이 있다.

이 연구위원의 수난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급기야 모욕에 이르는 사건이 벌어졌다. 서울중앙지검에서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관련된 채널A 사건을 수사하던 중에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수화기를 들자마자 거친 쌍욕이 넘어왔다. “니가 지금 뒈질라고 환장했냐.” 이 연구위원은 “몹시 모멸감을 느꼈지만 새로울 것도 없었다. 그는 원래 시정잡배의 욕설을 입에 달고 살았다”고 했다.

서울중앙지검장 발령 직후 겪었던 또 다른 일화도 있다. 당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던 최강욱 전 의원이 조국 전 장관의 아들에게 허위 인턴증명서를 발급해 준 사건을 두고 윤 총장의 기소 명령을 이 연구위원이 거부하자 화가 난 윤 총장이 전화를 걸어 욕설을 쏟아낸 것이다. “야, 이 ××야, 니가 이렇게 내 지시를 따르지 않고 협조도 안 하면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최강욱이는 허위증명서 해주고 비서관으로 간 놈인데, 그런 ××가 인사검증을 담당하면 안 되잖아. 이 ××, 당장 기소해.”

이 사건은 결국 윤 총장의 지시에 따라 기소가 이뤄졌다. 두 사람의 대립은 특수부와 형사부의 기질적 차이를 극명히 보여준다. 윤 대통령은 2013년 10월 국정감사장에 여주지청장으로 출석해 이런 말을 남겼다. “수사라는 게 초기에 사태를 장악해야 한다. 표범이 사냥하듯 수사해야 한다.” 사건이 고도로 복잡하고 힘 있는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많은 특별수사의 특성상 수사의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선 일면 맞는 말일 수 있다.

노무현의 죽음으로 사라진 강압 수사, 文 정부서 부활

한때는 특별수사의 정석이었을지 몰라도 시대가 바뀜에 따라 이러한 강압적인 수사 방식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었다. 특히 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망신주기식 수사의 문제와 대검 중수부 폐지를 계기로 이 같은 토끼몰이식 수사 방식은 근절해야 할 병폐로 지목돼 점차 개선되고 있었다. 대신 절차적 정당성, 피의자 인권의 중요성이 강조됐고, 수사방식과 절차도 그에 맞게 변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같은 특수부 수사 방식이 유감없이 발휘된 것은 문재인 정부 때였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대대적으로 벌어진 적폐 수사는 그동안의 노력을 수포로 만들고 시계를 거꾸로 돌려놓았다. 전 정권 실력자와 재벌 등 사건 관계자들이 검찰청과 법원을 드나드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중계됐다.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압수수색 때문에 중앙지검에는 새벽부터 압수수색 현장으로 떠나는 미니버스가 심심치 않게 목격되곤 했다. 윤석열 사단의 압박 수사는 마치 전격전을 치르듯 신속하고 효율적인 것처럼 보였다. 이 같은 수사 방식에 대해 검찰 내에서 통용되는 ‘격언’이 있다. ‘가는 말이 × 같아야 오는 말이 곱다.’

그 뒤로도 윤석열 총장과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충돌은 몇 차례 계속됐다. 여기에 추미애 장관까지 가세해 지휘와 항명, 징계와 감찰을 주고받는 ‘혈투’가 이어졌다. 표면적으로는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와 수사 방해로 비쳤지만, 이 연구위원의 고민은 그보다 근본적이었다. 그의 눈에 윤석열 검찰의 태도는 “신기루와 같은 잠깐의 인기를 위해 조직 전체를 헌신짝처럼 팽개친 행보”로 보였다.

이 연구위원은 중앙지검장을 마친 뒤에도 직권남용을 비롯한 갖가지 이유로 재판에 넘겨지고 징계위에 회부됐다. 그에 대한 직권남용 재판은 2021년 5월에 시작해 2024년 1월 서울고등법원이 1심과 마찬가지로 무죄를 선고하기까지 3년 가까이 그를 옥죄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스스로 사직할 수도 없는 처지다.

권력의 탄압에 맞서려 ‘정치 검사’의 길 선택


▎윤석열 검찰총장과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지난 2020년 2월 10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전국 지검장 및 선거 담당 부장검사 회의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물론 이 연구위원이 책에서 밝힌 주장을 온전한 진실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가 문재인 정부에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들을 수사하면서 불거진 문제와 비판도 숱하게 존재한다. 하명수사, 방탄수사란 비판이다. 최강욱에 대한 수사팀의 보고를 묵살하는 등 비판을 자초한 점도 없지 않다. 책 곳곳에서 자신에 대한 기존의 평가와 해석을 반박하는 이 연구위원의 변론은 윤석열 검찰의 악마적 이미지를 극대화한다.

이 연구위원의 이 같은 프레임화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러 면에서 닮았다. 사법연수원 동기인 두 사람의 운명은 대립하는 듯하면서도 많은 면에서 겹치기도 한다. 정권의 후원 아래 검사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예를 누린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후 정권에 맞서 징계와 기소 등 갖은 고초를 겪은 노정도 그렇다. 자신에 대한 정치권력의 탄압에 맞설 무기로 정치를 택했다는 점도 데칼코마니다. 어쩌면 두 사람의 대척점은 각자가 추구했던 검사상(像)의 차이에서 비롯됐을지도 모른다.

이 연구위원은 2월 14일 자신의 징계위원회가 열리던 날 법무부 앞에서 총선 출마 의지를 밝혔다. 그는 “4월 10일은 민주주의 퇴행과 검찰 정권을 끝내는 시작이 되어야 한다. 누구보다 그를 잘 아는 제가 윤석열 사이비 정권을 끝장내고 윤석열 사단을 청산하는 데 최선봉에 서겠다”고 했다.

그는 책의 말미에서 “권력에 대한 욕망으로 검찰조직을 이용한 정치검사들과 그들에게 탄압을 받으며 검찰개혁을 추구한 검사들은 구분되어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검찰의 정치화가 부른 폐단을 몸으로 겪은 그가 ‘검찰 정부’에 ‘정치 검사’가 되어 맞서기로 한 것은 역설적이다. 결국 이런 형용 모순이 동력이 되어 검찰의 정치 무대는 서초동에서 용산을 거쳐 여의도로 영역을 넓혀간다.

검찰조직을 안위의 보검으로 쓰고자 했던 정치권력과 정치검찰이 가진 욕망은 경계가 모호하다. 22대 총선에 출사표를 던진 전·현직 검사는 40명이 넘는다. 각자의 이해를 좇아 여와 야로 분화한다. 자신들이 괴물이 되어가는 줄도 모른 채 서로를 절대악으로 몰아붙이는 괴물들의 싸움을 언제까지 봐야 할까.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202403호 (2024.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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