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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다 다이사쿠 칼럼] 미국 하버드대학교 강연 ‘21세기 문명과 대승불교’(2) 

‘열린 마음’으로 나누는 ‘열린 대화’를 

차이에 대한 집착을 극복해야 평화와 인권 창출
부당한 권력에 맞설 땐 단호함으로 교만 꺾어야


▎이케다 다이사쿠 국제창가학회(SGI) 회장은 1993년 9월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가진 두 번째 강연에서 전쟁을 멈추고 문명간 평화를 가져올 방법은 서로의 차이에 대한 집착을 극복하고 열린 마음으로 대화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미국 뉴욕 유엔본부 앞에 놓인 스웨덴 조각가 로이터베르티의 작품, ‘비폭력(Non Violence)’.
1993년 9월,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 국제창가학회(SGI) 회장이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21세기 문명과 대승불교’라는 제목으로 두 번째 강연을 했습니다(첫 번째 강연은 1991년 9월). 이 강연을 4회에 걸쳐 소개합니다. 이번 2회에서는 대승불교가 21세기 문명에 공헌할 수 있다는 관점을 세 가지로 요약해 소개합니다(다음 3회는 6월호).

'전쟁과 혁명의 세기’가 남긴 비극은 인간의 행·불행을 결정하는 요인이 외형만의 변혁에는 없다는 교훈을 명확히 남겼습니다. 따라서 다음 세기에는 이러한 생사관·생명관의 변혁이 가장 중요해질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대승불교가 21세기 문명에 공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관점을 제 나름대로 세 가지로 요약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평화 창출의 원천’입니다.

예로부터 불교가 평화의 이미지로 채색된 가장 큰 이유는, 폭력을 배제하고 일반적으로 대화나 언론을 철저히 중요시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야스퍼스는 석존의 죽음을 애도하는 제자들의 슬픔을 “말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사람을 잃었다”고 정확하게 평했습니다.

어느 불전(佛典)이 석존을 가리켜 “기쁜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고, 얼굴 찌푸리는 일 없이 밝은 안색으로 스스로 먼저 말을 거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듯이, 그의 생애는 일체의 도그마(독단)에서 벗어나 ‘열린 마음’으로 ‘열린 대화’를 나눴습니다. 여든 살 고령에 이른 석존의 마지막 여정을 엮은 불전은 전쟁의 의도를 언론으로 설득해 막은 일화로 시작합니다. 다시 말해, 석존은 이웃 나라 밧지를 정복하려는 패권주의 대국 마가다의 대신에게 직접 충고하지 않고, 나라가 성쇠(盛衰)하는 도리를 절묘하게 설하며 침략을 엄연히 저지했습니다.

또 이 불전의 마지막 장에는 임종을 앞둔 석존이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법(法)과 수행(修行)에 관한 것 등을 남기고, 후회가 남지 않을 만큼 두 번 세 번 대화를 권유하는 감동적인 장면이 그려져 있습니다. 마지막 여정의 시작과 끝이 이처럼 언론의 광채를 부각시키고 ‘말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사람’의 면목을 생생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석존의 눈에 비친 ‘마음에 꽂힌 한 자루 화살’

어떻게 석존이 자유자재로 대화할 수 있었는가. 그것은 이 각자(覺者)의 광대한 경애가 모든 도그마나 편견, 집착에서 자유로웠기 때문입니다. 석존은 “나는 보이지 않는 한 자루의 화살이 사람의 마음에 꽂혀 있는 것을 보았다”라고 말했습니다. ‘한 자루의 화살’이란 한마디로 말하면 ‘차이에 대한 집착’이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요. 당시 인도는 큰 변혁기를 맞아 비참한 전란이 계속되었습니다. 석존의 투철한 눈은 그 분쟁의 근저에서 무엇보다도 부족이나 국가 등의 차이에 대한 집착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미국 철학의 황금기를 구축한 로이스 하버드대학교 교수는 금세기 초에 “개혁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내면에서 일어나야 한다. 사회 전체는 어떠한 과정에나 좋든 싫든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이 결정하는 것이다”라고 논했습니다.

‘민족’이든 ‘계급’이든 극복해야 할 악(惡), 다시 말해 ‘한 자루의 화살’은 외부가 아니라 자신의 내부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에 대한 차별의식, 차이에 대한 집착을 극복하는 것이야말로 평화와 보편적 인권을 창출하는 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요건이며, 열린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황금률(黃金律)입니다. 또 그렇게 해야만 상대의 특성이나 능력에 따라 법을 설하는 ‘대기설법(對機說法)’과 같은 자유자재의 대화도 가능합니다.

사실, 석존이 펼친 대화의 특징은 물로 인한 부족 간의 분쟁을 중재할 때도, 흉악한 강도의 마음을 바로잡을 때도, 걸식행(乞食行)에 이의(異議)를 제기하는 사람의 얕은 생각을 훈계할 때도, 항상 내면의 악인 ‘한 자루의 화살’을 깨닫게 하는 데 있었습니다. 그 유례가 드문 인격의 힘은 어느 왕마저도 “세존이여, 우리가 무기를 가지고도 항복시킬 수 없는 자를 당신은 무기를 갖지 않고도 항복시켰다”고 감탄하게 했습니다. 차이에 대한 집착을 극복하는 것은 종교가 민족종교를 초월해 세계종교로 비약하는 도약대이기도 합니다. 니치렌(日蓮) 대성인이 자신에게 박해를 가하는 일본의 최고책임자를 가리켜 “조그마한 소도(小島)의 국주(國主)”(어서 911쪽)라고 일축하신 데서 국가를 초월한 보편적 가치, 세계종교의 지평을 분명히 엿볼 수 있습니다.

군국주의에 분연히 저항한 창가학회의 스승들


▎창가학회는 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의 군국주의에 정면으로 대항했다. 마키구치 쓰네사부로 초대 회장(오른쪽)과 그의 제자인 도다 조세이(왼쪽) 제2대 회장의 목숨 건 저항정신은 현재 SGI(국제창가학회)가 세계 192개국·지역에서 전개하고 있는 ‘평화·문화·교육’운동의 초석이 됐다. / 사진:한국SGI
물론 대화가 항상 봄바람 같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불을 내뿜는 듯한 언론의 돌팔매질이 상대의 교만한 마음을 꺾는 경우도 있습니다. 석존이나 용수(龍樹) 등 그 이름만 들어도 원만함 그 자체인 듯한 인상을 주는 불교인들도 지배자들에게서는 ‘일체(一切)를 부정하는 자’라고 비난을 받았습니다. 니치렌 대성인도 서민에게는 어버이도 미치지 못할 만큼 세심하게 애정을 쏟았지만, 사악한 권력과 싸울 때는 결코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몸에 무기라고는 하나도 지니지 않고, 오직 언론과 비폭력으로 철저히 일관하는 자세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먼 섬에 유배됐을 때 외친, 다음과 같은 사자후(師子吼)로 상징됩니다.

‘개종(改宗)하면 일본의 국왕으로 삼겠다’는 유혹을 받고도, 또 ‘개종하지 않으면 부모의 목을 베겠다’는 협박을 당해도 “지자(智者)에게 아의(我義)가 타파되지 않는 한 채용(採用)하지 않으리라.”(<개목초>, 어서 232쪽)라고 말했습니다. 참으로 언론에 건 신념이 금강과 같이 굳건했습니다. 만약 이러한 대화의 자세를 철저하게 관철한다면, 대결이 나아가는 바는 틀림없이 대립이 아닌 조화를, 편견이 아닌 공감을, 분쟁이 아닌 평화를 불러올 것입니다. 진정한 대화에서는 대립도 결합을 위한 하나의 표출이기 때문입니다.

창가학회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의 군국주의에 정면으로 대항했습니다. 그로 인해 마키구치 쓰네사부로(牧口常三郞) 초대 회장을 비롯해 많은 벗이 투옥되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50년 전의 일입니다. 마키구치 초대 회장은 자신을 취조한 검사나 간수에게까지 의연히 불법(佛法)과 평화를 이야기하다 일흔세 살에 옥사했습니다.

그 유지(遺志)를 이어받은 도다 조세이(戶田城聖) 제2대 회장은 2년에 달하는 옥중투쟁 뒤에 ‘지구민족주의’라는 이념을 내걸고, 고뇌하는 민중 속으로 뛰어들어가 좌담(座談)의 파도를 넓혔습니다. 핵 폐기도 은사가 청년에게 의탁한 유훈(遺訓)입니다. 이 역사적 연원을 원점으로 삼아 우리 국제창가학회(SGI)는 현재 세계 115개국(1993년 9월 기준, 현재 192개국·지역)의 민중과 연대하며 ‘평화·문화·교육’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미력하나마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이 자리에 계신 여러 선생님을 비롯해 세계의 석학과 계속 대화할 것을 다짐합니다(6월호에 계속).

※ 이케다 다이사쿠(1928~2023) - 국제창가학회(SGI) 회장 역임. 소카대학교·소카학원·민주음악협회·도쿄후지미술관·동양철학연구소 등 설립. 유엔평화상·대한민국 화관문화훈장 등 24개국 훈장, 세계계관시인 등 수상 다수. 전 세계 대학으로부터 409개의 명예박사·명예교수 칭호 수여. 토인비 박사와의 대담집 [21세기를 여는 대화]를 비롯한 저서 다수.

202404호 (2024.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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