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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격 인터뷰] 정치권에 발 들인 노무현·문재인 외교안보 책사 박선원 

“남북 관계를 적대, 교전국이라는 김정은 주장은 자가당착” 

박성현 월간중앙 지역전문위원
■“김정은 정권은 유한하지만 한민족은 영원… 5000년 민족 개념 부정할 권리 없어”
■“한·미·일 군사협력 구조화하는 윤(尹)대통령, 외교안보 방향감각 상실”
■“美 트럼프, 대선 승리하면 대통령직인수위 단계부터 북한과 교신할 듯”


▎박선원 전 국정원 제1차장은 3월 12일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한·미·일 안보 협력 명목으로 우리 군을 대만해협에 보내자는 정부의 주장은 과도한 발상”이라고 우려했다.
박선원 전 국정원 1차장은 진보 정부의 외교안보 분야 주요 직책을 섭렵했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전략기획실 행정관, 대통령비서실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을 지냈고, 문재인 정부에서는 국정원의 외교안보특보·기조실장·제1차장 등의 커리어를 쌓았다. 반면, 보수 정부에서는 예외 없이 야인의 신분에 머물렀다. 최근 민주당 영입 인재로 정치권에 재진입한 그는 인천 부평을 민주당 경선에서 승리, 4월 10일 본선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정치권과 언론이 그를 주목하는 이유는 지난 20년 동안의 진보진영 내부의 외교안보 현안에 정통한 점 외에도 그가 한국과 미국의 동맹 문제에 깊이 천착해온 연구자이기 때문이다. 영국 워릭대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한 그의 박사학위 논문 제목은 ‘한국의 정권교체기에 나타난 미국과 일본의 대한(對韓) 정치적 영향력’이다. ‘동맹 내부의 정치학’이라는 분석틀을 활용해 군사공동체 내부의 역학 구도와 이익 관철 방식을 조망했다.

3월 12일 월간중앙과 만난 박선원 전 차장은 한국 안보의 근간인 동맹 문제에 임할 때는 냉철한 현실주의자가 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최근 남북 관계를 ‘적대국·교전국가 관계’로 규정하면서 통일과 민족을 부정한 북한에 대해서는 “자가당착적 주장일 뿐 아니라 김정은은 그런 말을 할 권리가 없다”고 반박했다.

대한민국 안보를 규정하는 궁극적 ‘힘’과 ‘원리’에 대한 관점을 듣고 싶다.

“대한민국 안보를 규정하는 가장 궁극적인 힘의 원리는 철저하게 지정학적이다. 한반도가 대륙과 해양 세력 어느 쪽으로 기우는가, 누가 한반도 주도권을 행사하는가에 따라 패권 지형이 달라진다. 그 힘의 충돌과 경합의 중심에 대한민국이 존재한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안보를 결정하는 힘이자 원리이다. 이런 객관적 조건 위에서 어떤 주관적 전략을 세우느냐에 따라 우리가 능력을 발휘할 기회, 국익을 실현하는 방식이 좌우되는 구조이다.”

예컨대 미·중 간의 대립과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전략적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조언한다면?

“역사적으로, 지정학적으로 우리에게 미국과의 동맹은 거의 운명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중요한 전략적 선택의 결과물이다. 그렇다고 미·중 갈등 속에서 우리가 중국과 적(敵)이 될 필요는 없다. 거꾸로 우리가 중국과 전쟁공동체 즉 군사동맹이 되는 것도 굉장히 힘든 일이다. 중국과 전쟁공동체가 됐을 때 균형성과 호혜성 보장도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헤징(hedging, 위험 분산) 전략이 있어야 한다. 동맹의 갈등에는 두 부류가 있다. 하나는 방기(放棄)의 갈등, 즉 어밴든먼트(abandonment)가 있다. 동맹이 원하는 대로 따라가지 않아서 방기 또는 포기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말한다. 둘째는 연루, 함정(entrapment)의 갈등이 있다. 우리가 미국의 이익에 너무 깊이 빠져들어 함정에 놓이는 경우다. 참여정부의 이라크 파병을 앞두고 방한(訪韓)한 파키스탄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아랍 민족의 칼은 날카롭고, 기억력은 매우 오래간다. 현명한 선택을 하라.’ 당시 아랍 민족과 이슬람을 적으로 돌리지 않으면서 동시에 미국과도 협조해야 하는 게 우리 처지였다. 참여정부는 인트랩먼트 수준을 고려한 전략적 판단에 따라 비(非)전투 부대를 파병한 것이다. 방기는 회피하면서, 연루는 적당한 선에서 관리하는 게 동맹의 관리이자 우리의 과제이다.”

“한·미동맹은 운명적이자, 중요한 전략적 선택”


▎2006년 9월 미국 워싱턴 백악관 한·미 정상회담. 왼쪽 조명 밑에서 대화를 받아 적는 이가 박선원 당시 청와대 통일외교 안보전략비서관. / 사진:노무현재단
그런 관점에서 한·미동맹 관리는 잘되는 편인가?

“미국의 동맹정책은 기본적으로 자국 우선주의, 일방주의이다. 이건 인정하고 들어가야 한다. 동등하게 협력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 양보한다고 해서 미국이 고맙다며 더 이상 요구하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점도 알아야 한다. 하나를 주면 하나 더 달라고 하는 게 ‘제국(帝國)’의 본성이며. 그래야 헤게모니가 유지되는 법이다. 국방비 상위 8개국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국방비를 투입해서 패권을 유지하는 미국이다. 그걸 어떻게 감당하겠나? 비용 분담이라는 명분으로 동맹국의 협력과 참여를 이끌어내고, 필요할 때는 동맹국의 손목이라도 비틀어대는 모습을 보인다. 이게 동맹의 기본이다.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일각에는 용미(用美)론이라고 미국을 이용하자는 시각도 있다. 저는 미국을 이용할 생각을 아예 말라고 한다. 우리가 협력하는 척하면서 말로 때우고 비용은 안 대는 걸 미국이 눈감아 줄까? 그런 건 없다. 미국은 우리가 협력을 통해 좋은 결과를 얻고자 노력해야 하는 나라이지, 의무 이행을 면제해주는 나라는 아니다. 동맹에서는 냉철한 현실주의자가 돼야 한다.”

최근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남북 관계를 적대국·교전국가 관계로 규정하며, 북한 헌법에 대한민국을 ‘제1의 적대국·불변의 주적’으로 명기해야 한다고 했다. 나아가 북한은 통일과 민족 개념을 부정하면서 각종 기록에서 삭제하고 있다. 이런 결정의 배경과 남북 관계에 미칠 영향을 어떻게 평가하나?

“북한의 3대 세습, 북한의 (1950년) 대한민국 남침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가? 없다. 다만 북한과는 결국 대화를 통해 교류협력을 해야 하고, 또 사실상의 통일을 지향해야 하는 국가적·민족적 목표가 있기에 우리는 하고 싶은 말도 자제하고 있다. 북한이 유일 지도자가 결정을 내리든, 수십 명이 모여 집단적 결정을 내리든 한민족의 역사와 정체성에 비추어 적절하지 않은 것은 바로 잡혀져야 한다. 김정은 정권은 시한이 있지만 한민족은 영원하다. 반면 우리는 5000년 유구한 역사와 문화, 혈통적 연대를 가진 민족이다. 그가 말 한마디로 헌법을 고쳐 대한민국을 적국으로 규정한다? 그런 말을 하면 안 되는 것이고, 잘못된 주장이다. ‘교전국가 관계‘와 같이 남북 관계 전반을 부정하는 그런 말도 자가당착(自家撞着)’이다. 교전국가 상태라면 지금 전쟁을 해야 한다는 말인데… 현재의 정전체제, 정전협정을 거스르는 발언과 다름없다. 정전 상태를 평화로 끌고 가는 노력을 해야 할 책임은 대한민국에만 있는 게 아니다. 북한도 한반도 평화를 유지하고 긴장을 완화해야 할 책임 있는 주체이다. 북한이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이런 식으로 5년, 10년 가다 보면 대한민국 국민도 생각을 달리할 수 있다. 그런 상황이 북한에 과연 좋은 것인가?”

북한의 동향 변화는 단지 일시적·전술적으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북한은 대한민국에 대한 입장과 태도를 바꿔야 한다. 2018년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평양은 잠 못 이루는 밤을 맞았다. 우리 대통령이 평양 5·1경기장에서 얼마나 멋지고 훌륭한 연설을 했나. 그런데 그 후로 유감스럽게 남북 대화, 고위급회담에 진전이 없었다. 정치학자로서 분석하자면, 북한이 남한과 만나면 만날수록 긍정적 효과보다는 사회심리적 충격이 더 클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 그 뒤로 북한이 미국을 직접 상대했는데 (북한이) 미국하고 상대가 되는가? 이게 북한의 한계이자 비극이다. 대한민국 없이는 북한은 국제사회에 못 나간다. 북한 지도자는 이걸 알아야 한다. 대한민국과 협력 없이 북한의 미래가 있다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대한민국과 협력하지 않는 북한을 국제사회가 받아들일 것 같은가?”

“북한, 나더러 친미주의자라 불러”


▎박선원 전 국정원 제1차장은 “대한민국 없이는 북한은 국제사회에 못 나간다”면서 “북한 지도자는 이걸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무현·문재인 정부 시절 북한 관료들과 접촉했을 것이다. 박 후보의 이런 스탠스에 대해 북한은 어떤 반응을 보이던가?

”북한 관료들에게 저는 이런 사람 아닐까 한다. ‘사람이 말은 좀 세게 하는데, 그래도 협조할 것은 충분히 있다. 저런 사람이 오히려 우리가 일하기 좀 더 좋을 때도 있다’는 정도로 말이다. 왜냐면 나는 북한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정확하게 알고, 분명하게 얘기를 해주니까. 한번은 편한 자리에서 북한 관료들이 저더러 친미(親美)·숭미(崇美)주의자라고 하더라. 그래서 저는 이렇게 되받았다. ‘내가 우리의 자존심을 내세우고 미국하고 잘 지내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의 정서를 대변하는 거다. 그것이 친미로 보이면 그건 너희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의 동맹 관리 방식에 대한 관전평을 해달라.

“군사공동체인 동맹은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다. 각국의 전략적 중대 결정과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자국의 이익 수호와 안전 보장이라고 하는 가장 높은 국가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방안으로서 동맹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 속에서 미국과 협력하면 되는 것인데, 그걸 잘못하면 국익에 피해가 올 수 있다. 한·미·일 안보 협력이라는 명목으로 대만해협에 우리 배(해군)를 보내서 협력하겠다고 하는 것은 과도한 발상이다. 우리가 거기서 미 해군을 지원할 게 별로 없다. 우리는 일정 선(線) 이상 깊이 들어갈 필요가 없으며, 이런 문제를 현명하게 조정해야 한다. 미국의 압력이나 요구를 우리의 틀로 재해석하면서 동맹을 관리하려는 자세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앞서 말했듯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요충지로서의 입지가 있기에 미국이든, 중국이든, 일본이든 요구가 들어와도 버티고 지키면 국익은 지켜지는 것이다. 지금 정부는 한·미동맹을 넘어 한·미·일 군사협력을 구조화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층의 친일(親日)·극우 노선을 보면 방향 감각을 상실했다는 느낌마저 준다. 국익은 나라마다 고유(固有)하다. 프랑스와 독일의 국익이 다르듯이 한국과 일본의 국익도 다르다.”

“남북 관계, 부정적 에너지 더 쌓이면 충돌할 수도”

한·미·일 군사안보 협력 체제를 강화할 때 국익에 어떤 손상이 오나?

“한·미 안보 협력의 목표는 뚜렷하다. 북한이다. 한·미·일 안보 협력으로 가면 우리의 적은 누구인가? 대한민국의 군사력은 어디로 투사되겠나? 그 대상이 중국만이 아니다. 나토(NATO) 등 전 세계로 우리 안보 역량이 동원될 수 있다. 이런 데까지 관여할 정도로 대한민국의 국익이 큰 것도, 국력이 큰 것도 아니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언급하면서 우리 군사력을 해외로 투사하는 건 안보와 부합하지 않는 선택이다.”

북한에 대해 원칙적이고 엄정한 정책을 구사하는 윤석열 정부 들어서도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이나 물리적 마찰은 없었는데.

“윤석열 정권이 2년이 돼가고 있다. 이제 (남북 관계가) 긍정 에너지에서 부정 에너지로 바뀌는 과정이다. 이 부정적인 에너지가 쌓이다 보면 충돌이 일어나는 것이다. 충돌이라는 건 처음부터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지금 안보 상황 관리를 잘해야 한다.”

올 11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승리했을 때 한반도 안보 환경에 어떤 변화가 예상되나?

“트럼프는 대통령직인수위 단계부터 북한과 교신할 것이다. 대통령을 이미 한번 해봤으므로 취임 이후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는 인물이다. 트럼프와 김정은이 주고받은 20통이 넘는 편지가 주는 친밀감, 확신 같은 게 존재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대한민국이 없는 한반도 문제의 처리’로 갈 수 있기에 조심해야 한다.”

- 글 박성현 월간중앙 지역전문위원 park.sunghyun@joongang.co.kr / 사진 김상선 기자 kim.sangseon@joongang.co.kr

202404호 (2024.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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