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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 주목 받는 재계 출신 총선 출마자들 

삼성전자·현대차 사장에서 스타트업·사회적기업 대표까지 

조득진 월간중앙 선임기자
경영 전문성 앞세워 각 당 영입 홍보전… ‘전략공천’으로 맞불 놓기도
‘산업 생태계 변화’ 기대하지만 ‘패거리 정치 탓 존재감 없어’ 지적 나와


▎지난 1월 22일 국민의힘은 고동진 전 삼성전자 사장, 더불어민주당은 공영운 전 현대자동차 사장의 입당 환영식을 열며 세를 과시했다. 고 전 사장은 서울 강남병에, 공 전 사장은 경기도 화성을에 출마했다.
4월 10일 치러지는 22대 국회의원선거(총선)에서 재계 출신 인사들의 출마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연말 국민의힘은 강철호 전 HD현대로보틱스 대표를 경제인 1호 인재로, 더불어민주당은 이재성 전 엔씨소프트 전무를 기업인 인재 1호로 영입하면서 치열한 경쟁을 시작했다. 하이라이트는 1월 22일 같은 날 치러진 국민의힘의 고동진 전 삼성전자 사장 영입식, 민주당의 공영운 전 현대차 사장 영입식이었다. 이들 4명을 시작으로 여야는 기업인 영입에 속도를 냈다.

그 결과, 국민의힘에서는 고동진 전 사장(서울 강남병), 강철호 전 대표(경기 용인정), 한정민 전 삼성전자 DS부문 메모리사업부 연구원(경기 화성을)이 지역구에 출마했고 심성훈 패밀리파머스 대표, 최수진 파노르스바이오사이언스 대표, 임형준 네토그린 대표, 박충권 현대제철 연구개발본부 책임연구원, 정혜림 SK경영경제연구소 리서치펠로우 등이 비례대표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공영운전 사장(경기 화성을), 이재성 전 엔씨소프트 전무(부산 사하을)가 본선 무대에 올랐다. 제3당을 노리는 조국혁신당에서는 구글 출신의 이해민 오픈서베이 최고제품책임자(CPO)가 비례대표에 나설 전망이다. 3월 14일 현재 지역구 공천 확정 5명, 비례대표 출마 예상 6명 등 이번 총선 본무대엔 11명이 출마할 것으로 보인다. 낙선자를 감안하면 지난 21대 총선(2020년)에서 처음 국회의원 금배지를 단 재계 출신 인사 7명보다 다소 줄어들 전망이다.

정치권이 재계에서 인재를 영입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실무와 현장 경험이 풍부한 기업인의 능력을 백분 활용해 선거를 앞둔 당의 경제정책 방향을 홍보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총선에서는 과학기술 인재 영입이 치열했다. 4년 전에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에 대응하기 위해 원자력 전문가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감염병 전문가들이 발탁됐는데, 이번엔 여야를 막론하고 우주·로봇·기후환경 등 미래세대와 관련된 전문가들이 영입됐다. 핵심산업인 반도체 분야 인재들은 4년 전과 마찬가지로 중용되고 있다.

與 삼성전자 고동진, 野 현대차 공영운 영입

단연 눈에 띄는 후보는 고동진 전 삼성전자 사장과 공영운 전 현대차 사장이다. 같은 날 두 사람의 영입환영식을 열 만큼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꼽는 ‘재계 스타’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빨간색 점퍼를,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파란색 점퍼를 입혀주는 장면은 재계와 정치권의 주목을 받았다. 고동진 전 사장은 한 비대위원장이 전화로 삼고초려해 영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아이폰을 사용하는 한 비대위원장은 환영식에서는 삼성 갤럭시 휴대폰을 챙겨 고 전 사장과 ‘셀카’를 찍었다. 이재명 대표는 공 전 사장에게 “생산 기반 문제, 기업정책 부분에 있어 현장 경험으로 큰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고동진 전 사장은 ‘갤럭시 신화’로 유명하다. 1961년 서울에서 태어나 성균관대학교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서섹스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4년 삼성그룹에 입사해 삼성전자 모바일경험(MX) 사업부의 전신인 IM 부문장을 맡으며 IT·모바일 사업을 진두지휘했다. 특히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장으로 갤럭시노트7 단종 사태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후속제품인 갤럭시S8과 갤럭시노트8의 흥행을 이끌면서 2018년 삼성전자 대표에 올랐다. 위계서열 대신 수평적 조직문화를 강조하고 특유의 화통한 성격 덕에 직원들의 신망이 두터웠다는 평가다.

국민의힘은 당초 비례대표 출마가 점쳐졌던 고 전 사장을 서울 강남병에 전략공천했다. 강남구 삼성동·도곡동·대치동 등이 속한 강남병은 보수정당의 대표적인 ‘텃밭’으로 꼽힌다. 민주당은 제20대 국회에서 비례대표를 지냈고 문재인 정부 청와대 마지막 대변인을 지낸 박경미 전 국회의장 비서실장을 이곳에 전략공천했다. 고 전 사장은 정치 입문 이유로 “첫 화두는 청년의 미래이고, 두 번째는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 세 번째는 소프트웨어 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인력 양성, 네 번째는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에 대한 좀 더 적극적인 배려”라고 말했다. 일자리 창출 등 자신의 전문성과 관심 분야를 살려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내놓을 것으로 관측된다.

공영운 전 사장은 1964년 경남 산청에서 태어나 진주 동명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1991년 문화일보에 입사해 2005년까지 기자로 일했으며 2005년 현대자동차 전략개발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뒤 해외정책팀장, 홍보실장(부사장) 등을 거쳐 2018년 전략기획담당 사장에 올랐다. 내수 중심의 현대차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공 전 사장은 민주당 입당식에서 “경제가 악순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새로운 성장 모멘텀 발굴이 시급하다. 정치권이 세상의 더 넓은 주제를 다루고, 미래 논쟁으로 시야를 확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경기 화성을에 공 전 사장을 전략공천했다. 화성을은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도전장을 내밀면서 ‘핫’해진 곳이다. 국민의힘은 한정민 전 삼성전자 DS부문 메모리사업부 연구원을 전략공천했다. 공 전 사장은 “지난 18년간 현대자동차에 몸담아 화성 시민들의 도움 덕분에 남양연구소 1만3000명과 기아차 화성공장 1만4000명이 성장과 혁신을 함께했다”며 “화성에서 산업을 일궈온 경험을 바탕으로 시·도의원과 원팀이 돼 혁신산업 융합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화성의 청년들에게 더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필드’에 강한 IT 전문가 등 속속 출마


▎22대 총선에 출마하는 재계 출신 후보들. 왼쪽부터 이재성 전 엔씨소프트 전무(더불어민주당), 강철호 전 HD현대로보틱스 대표(국민의힘), 이해민 전 오픈서베이 CPO(조국혁신당).
부산 사하을에서 출사표를 던진 민주당 이재성 전 엔씨소프트 전무는 IT업계에서 잔뼈가 굵었다. 서울대 계산통계학과를 졸업하고 33세에 CJ그룹 이사가 된 뒤에는 넷마블, 엔씨소프트 등에서 임원으로만 16년을 일했다. 2009년 국내 최대 게임행사 ‘지스타’ 부산 유치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NC다이노스 야구단 창단을 주도했다. 자율주행 스타트업 새솔테크 대표로 벤처 업계도 경험했다. 이 전 전무는 정치 입문 이유로 ‘지역 IT 밸리 성공 사례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부산을 세계적인 ‘e스포츠 성지’로 만들고,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사하을에 ‘치매 예방 관리 거점 센터’와 ‘뇌기능 향상센터’를 만든다는 구상이다. 5선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과 맞붙는다.

조국혁신당 인재 영입 2호인 이해민 전 오픈서베이 최고제품책임자(CPO)는 구글에서 15년 넘게 제품책임자(PM, Product Manager)로 일했고, 지난 2월 오픈서베이에서 퇴사했다. 이 전 CPO는 인재 영입식에서 “AI의 시대, 미국은 마치 로켓엔진에 부스터를 더한 것처럼 속도를 높이고 있는데 대한민국은 놀랍도록 거꾸로 가고 있다”며 “신속하게 연구·개발 예산을 정상화하는 일부터 뛰어들겠다”고 말했다. 당에서 ‘우리 모두의 미래, 과학과 기술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그는 IT·기술생태계 육성, 공공데이터 개방, 청년과학자 지원 등의 공약을 차례로 발표할 계획이다.

국민의힘 영입인재인 강철호 전 현대로보틱스 대표는 경기 용인정에 단수공천을 받아 민주당 이언주 전 의원과 맞붙는다. 그는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해 1991년 외무고시에 합격한 뒤, 주칭다오총영사관과 주싱가포르대사관에서 근무하며 10년간 외교관 생활을 거쳤다. 이후 HD현대에너지솔루션, 현대로보틱스 대표와 한국로봇산업협회장 자리까지 오르면서 전문경영인으로서 20년을 지냈다. “기업에 있다 보니 정치가 이대로면 정말 큰일 나겠다 싶어 출사표를 던졌다”는 그는 “AI, 양자컴퓨터, 첨단 로봇 등 차세대 먹거리 산업에 대해서 적극 투자하고 지원해서 초격차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경기도 화성을에서 공영운, 이준석 후보와 맞붙게 된 국민의힘 한정민 후보는 삼성전자 연구원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특이한 케이스다. 1984년 생인 그는 고려대에서 신소재공학 전공으로 학사와 석사과정을 마친 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스핀융합센터 연구원, 삼성전자 DS(Device Solution·반도체) 부문 메모리사업부 연구원으로 일했다. ‘젊은 피’로 승부하겠다는 전략이다. 국민의힘에 과학, 바이오분야 인재로 영입된 최수진 파르노스바이오사이언스 대표는 30년 넘게 제약·바이오 분야에 종사한 전문가다. 대웅제약,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바이오PD, 산업통상자원 R&D전략기획단 신산업 MD 등을 역임했고, 화학·에너지 전문기업 OCI 부사장을 거쳐 국내 최초 단백질 구조기업 파르노스에 합류했다.

전문가에게 ‘산업 생태계의 변화’ 판 깔아줘야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에너지, 환경, 기업, 언론 등의 분야에서 MZ세대 중심의 인재 9명을 영입했다. 이들 대부분은 국민의힘이 비례대표 위성정당으로 만든 ‘국민의미래’에 공천을 신청했다.
국민의힘에서 영입한 MZ세대 기업인들은 대부분 비례대표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스마트팜 기업 네토그린 임형준 대표, 사회적기업 패밀리파머스 심성훈 대표, 현대제철 연구개발본부 박충권 책임연구원, SK경영경제연구소 정혜림 리서치펠로우 등이다. 이들은 국민의힘 비례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로 출마할 전망이다.

재계 출신이 총선에 출마, 당선까지 이르는 과정에서 산업계는 ‘전문가가 이뤄내는 산업 생태계의 변화’를 기대한다. 구체적으로는 대·중소기업 간 공정한 상생협력 조성, 소상공인 생업안전망 구축, 시대에 뒤떨어지는 규제 완화, 최저임금과 노동시간 등 노동환경 문제 해결이다. 특히 업계 전문가들이 양당에 고루 분포되면서 관련 정책도 변화를 맞이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하지만 재계에서 성공한 기업인들이 정계에서도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소신과 역량을 발휘하기 힘든 정치 구조, 특히 ‘초선’ 의원에겐 발언권이 잘 주어지지 않는 여의도 정치판 때문이다. 고질적인 ‘패거리 정치’가 대표적으로, 초선은 상대 당의 반대활동에 정략적으로 동원되기 다반사다. 미래에셋대우 사장 출신의 홍성국 민주당 의원이 ‘후진적인 정치 구조’에 낙담해 22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것, 삼성전자 임원을 지낸 양향자 의원이 당론으로 정한 법안 통과에 반대했다가 당을 나올 수밖에 없던 일이 그 예다.

이 때문에 기업인들을 총선 때만 반짝 ‘홍보 도구’로만 사용하지 말고 제대로 활동할 수 있는 판을 깔아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는 성장동력 발굴에 진심이며, 서민경제에 진정성이 있다”고 홍보하는 ‘선거용 이벤트’가 아니라 경제·산업 분야 전문가가 그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역할과 지위를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 조득진 월간중앙 선임기자 chodj21@joongang.co.kr

202404호 (2024.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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