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종.심층취재

Home>월간중앙>특종.심층취재

[세태 취재] MZ 여성들의 유행이 된 스포츠 ‘직관’ 

카페 대신 농구장·야구장으로… 요즘 MZ들은 경기장으로 출근한다 

김도원 월간중앙 인턴기자
‘2030여성’들 스포츠 직관 즐기며 가성비 만끽
소비력 앞세운 여성 팬덤에 구단도 마케팅 분주


▎잠실야구장에서 열띤 응원을 펼치고 있는 여성 팬들. 스포츠 경기를 직관하는 MZ세대 여성들이 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스포츠 경기를 직관(직접 관람)하는 MZ세대 여성들이 늘고 있다. 지난 1월 14일 경기도 고양시 소노 아레나에서 열린 프로농구 올스타전. 놀랍게도 농구장을 가득 메운 관중의 70%가 여성 팬이었다. 그 여성 팬들의 절반이 20~30대들이었다. 마치 아이돌 공연장을 농구 경기장에 옮겨 놓은 듯 젊은 여성들의 응원과 함성 소리가 터져 나왔다.

경기장에서 만난 황채연(22) 씨는 자신이 틈만나면 농구 경기장을 찾는 열성 농구 팬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인기 아이돌의 공연 관람보다 농구 직관에서 더 재미를 느낀다고 했다. 그가 농구 직관을 즐기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유명 아이돌의 콘서트나 팬미팅에 비해 농구는 경기도 자주 있고, 티켓을 구하기도 쉽고 가격도 저렴하다”고 말했다. 황씨에 따르면 실내 체육관에서 진행되는 농구는 ‘선수’와의 접근성이 특별한 매력이다. 황씨는 “경기장이 크지 않아서 선수들의 숨소리와 감독들의 작전 지시까지 다 들린다”며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도 축구나 야구에 비해 적어서 개개인의 활약에 집중하기 쉽고, 경기 외에 이벤트나 사진 촬영 등 선수와의 만남이 쉽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았다.

프로 농구팀 SK 나이츠의 팬이라는 황씨는 “지난 시즌에 비해 농구를 직관하는 사람이 늘었다”며 “인기 팀들이 대결하는 경기는 입장권 예매가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황씨는 자신이 좋아하는 농구 스타로 김선형 선수를 꼽았다. 황씨는 김 선수에 대해 “농구계 최고 스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베테랑이면서도 구단이나 KBL(한국농구연맹)에서 만드는 SNS 콘텐트에도 자주 출연하고, 겸손한 태도로 뭐든 열심히 하는 게 인상적”이라고 했다. 황씨는 “김선형 선수는 경기장에서건 퇴근길이건 팬들에게 정말 친절한 선수”라고 엄지를 높이 치켜세웠다.

아이돌 세계 팬덤 문화가 스포츠계로 이식


▎인천 SSG 랜더스필드에 가득 들어찬 관중. SSG 랜더스는 지난해 창단 첫 100만 관중 (106만8211명) 돌파 기록을 세웠다. / 사진:연합뉴스
전통적으로 스포츠 직관은 남성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지만 이제는 옛말이다. 아이돌 세계에서 보던 팬덤 문화가 스포츠계로 이식됐다고 할 정도로 스포츠 경기장을 찾는 젊은 여성 팬들이 부쩍 늘었다. 지난해부터 MZ세대들의 농구 열기를 부쩍 실감하고 있다는 KBL 관계자는 “미디어 노출 영향이 컸다. 농구를 소재로 한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웹툰 ‘가비지 타임’이 인기를 끌면서 농구 직관 열기를 몰고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여기에 스타급 농구 선수들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젊은 여성들의 농구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고 했다.

여성 팬 증가는 농구뿐 아니라 전통적 인기 종목인 야구, 축구에서도 확인된다. 두 종목 역시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을 극복하면서 역대급 인기몰이에 성공했다. 스포츠 경기장에 젊은 여성 팬들이 대거 늘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여성 팬들은 대부분 ‘접근성’이 좋다는 점을 꼽았다. “지하철 등 대중교통 기반이 잘 마련돼 있어 경기장에 오가기 편하다”는 것이다.

자신을 프로 야구팀 LG 트윈스 팬이라고 소개한 김고은(22) 씨는 “시즌 중에는 거의 매일 경기를 하기 때문에 평일에도 수업을 마치고 카페에 가듯 경기장에 간다”고 말했다. 그는 “야구는 평일이고 주말이고 표를 구하기가 어렵지 않다. 가격도 저렴해 부담 없이 갈 수 있다”며 “최근 살인적인 물가 상승 속에서도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가성비 취미’”라고 강조했다. 야구 직관을 즐긴다는 김씨는 “4~5벌 정도의 직관용 유니폼이 있다. 응원용 굿즈를 많이 샀는데, 최소 50만원은 넘게 쓴 것 같다”며 자신이 좋아하는 팀을 위한 소비는 아깝지 않다고 했다.

야구단 관계자들은 이런 MZ세대 여성 팬들의 등장을 반기고 있다. SSG 랜더스 김재웅 마케팅 팀장은 “경기가 자주 열린다는 것은 야구의 강점 중 하나”라며 “야구계에선 오늘 지더라도 내일 이기면 된다는 인식이 있다. 관중들 입장에서는 오늘 응원하는 팀이 경기에 졌더라도 내일, 모레도 계속 경기를 보며 응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야구를 좋아하는 관중들이 언제든지 쉽게 올 수 있도록 진입장벽을 낮추고, 야구장이라는 공간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가지고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마치 카페를 찾듯이 야구장을 찾는 충성도 높은 관중을 확보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 직관 못하면 중계라도 본다”


▎FC서울을 응원하는 서포터스 ‘수호신’. FC서울은 지난해 국내 프로스포츠 구단 중 최다 평균 관중(2만2633명)을 기록했다. / 사진:연합뉴스
축구 팬들은 어떨까? 축구는 경기가 많지 않다. 야구는 한 시즌에 팀당 144경기를 소화하는 반면, 농구는 54경기, 축구는 38경기(K리그1 기준)만을 치른다. 그러다 보니 축구 팬들은 매 경기에 대한 집중도가 높고, 팬들 역시 진심을 다해 자신이 좋아하는 팀을 응원한다. 축구장 안에서는 원정 팬과 홈 팬의 철저한 분리, 핵심 서포터스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배타적 응원문화라는 특징이 나타난다. 이는 곧 신규팬이나 가족 단위로 경기장을 찾는 ‘라이트 팬(light fan)’들에게는 입문 장벽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반면 축구의 이런 특성은 한번 빠져들면 엄청난 충성심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프로 축구팀 FC서울 팬이라는 최문경(25) 씨는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축구장을 찾곤 했는데, 그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응원 열기였다. 고등학생이 되고는 혼자서도 축구장에 가게 된 최씨는 “서포터스석에서 수호신(FC서울 팬)과 같이 뛰며 응원하는 것이 재미있었다”며 응원문화에 매력을 느껴 열성 팬이 되었다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최씨는 전형적인 ‘헤비 팬(heavy fan)’이다. 그의 삶에서 축구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됐다는 이야기다. 실제 최씨는 기자에게 “FC서울의 경기는 특별한 일이 있지 않은 이상 꼭 직관한다”며 “원정 경기도 수도권 팀과의 경기면 꼭 가는 편이고, 직관하지 못하면 중계로라도 경기를 챙겨 본다”고 말했다.

경기가 없는 날에도 그의 삶은 축구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취미가 유니폼 수집인데, 60~80벌 정도는 가지고 있다. 유니폼 구입하는 데 500만원 넘게 썼다”고 웃었다. 최씨는 “머플러를 비롯해 키링, 에어팟 케이스 등 유니폼을 제외한 굿즈 구입에도 20만~30만원은 쓴 것 같다”며 자신이 찐 축구팬임을 자랑했다. 최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계정에도 축구 관련 영상이 대부분이다. 최근 축구를 보러 혼자 유럽으로 여행을 떠난 최씨는 “유럽 여행 중 선수들을 보고 사인을 받기 위해 훈련장에서 6~7시간씩 기다리기도 했다”며 자신의 축구 사랑을 뽐냈다.

구단도 MZ 여성 팬들을 겨냥해 마케팅 늘려


▎프로스포츠계에 최근 늘어난 여성 팬들은 구단 입장에서는 ‘귀한 손님’이다. / 사진:김고은, 황채연, 최문경 제공
MZ세대 여성 팬들의 증가에 스포츠 구단들은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여성 팬들의 충성도나 소비력이 남성 팬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KBL 관계자는 “공식 애플리케이션 통계상에서 남녀 예매율의 비율 차이는 45%와 55%지만, MD 상품 구매율에서는 남성이 30%, 여성이 70%로 그 차이가 벌어진다”고 말했다. 여성 관중이 대부분이었던 올 시즌 올스타전의 MD 상품 매출도 직전 두 시즌보다 두 배 이상 상승했다고 했다.

2030세대 MZ 여성 팬들을 겨냥해 발빠른 마케팅을 선보이는 구단도 있다. 프로야구팀 SSG 랜더스는 2030 여성 팬이 많기로 유명하다. 김재웅 SSG 랜더스 마케팅 팀장은 그 이유로 “타 구단에 비해 선물, 이벤트가 많아 진입 장벽이 낮다”는 점을 꼽았다. SSG 랜더스는 여성 팬들이 매력을 느낄 이벤트와 굿즈 마련에 적극적이다. 다른 구단들도 벤치마킹하며 시행 중인 ‘레이디스 데이’는 SSG 랜더스의 전신인 SK 와이번스 시절 가장 먼저 시행한 이벤트다. 스카이박스에서 남녀 팬이 미팅을 하는 ‘로맨스데이’ 등 여성 팬들에게 특별한 경험이 될 수 있는 이벤트를 많이 기획해왔다.

“SSG는 유니폼에 ‘진심’인 구단”이라고 말한 김재웅 팀장은 각종 콜라보 유니폼도 많은 여성 팬들에게 사랑받았다고 했다. 그뿐만 아니라 “올 시즌에는 해외에서 ‘원피스 유니폼’이라 칭하는, 여성들이 선호하는 기장이 긴 유니폼도 만들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여성 팬들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을 넓히는 데 주력하는 것이 SSG 랜더스가 많은 여성 팬의 사랑을 받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1월 14일 고양 소노 아레나에서 열린 2023~2024 정관장 프로농구 올스타전. 입장권 예매 개시 3분 만에 전석(5561석) 매진되었는데, 관중 대부분이 젊은 여성들이었다. / 사진:연합뉴스
프로스포츠계에 최근 늘어난 여성 팬들은 구단 입장에서는 ‘귀한 손님’이다. 프로야구 구단의 한 관계자는 “팬덤 문화로 대변되는 이들의 스포츠에 대한 깊은 관심과 열정은 팬이 아닌 이들에게도 전염되는 ‘선순환’ 구조를 가진다”며 “모든 프로 스포츠 리그 연맹과 구단이 지금의 인기를 유지하고, 또 더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김도원 월간중앙 인턴기자 vvayaway@naver.com

202403호 (2024.02.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