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생활

Home>월간중앙>문화. 생활

[고혜련의 지구촌 인문기행(10)] ‘동유럽의 파리’ 체코 프라하의 낭만 

억압과 분노의 역사를 예술로 응축한 도시 

카를교로 상징되는 신성로마제국의 수도이자 보헤미아왕국의 중심지
작가 카프카·쿤데라, 음악가 스메타나·드보르자크 등 배출한 문화 산실


▎체코의 수도이자 동유럽 여행의 관문처럼 여겨지는 프라하의 야경. 문화의 후광으로 더욱 로맨틱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 사진:체코관광청
흐르는 강물을 천천히 보고 있노라면 복잡다단했던 세상도, 그 안에 담겼던 사람들도, 아픈 기억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어디론가 흘러가 버린다는 감상에 젖는다. 체코의 수도 프라하를 관통하는 몰다우 강가에 서서 프라하 시내를 바라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강가에서 보헤미안 떠돌이 악단들이 들려주는 ‘나의 조국’을 듣게 되면 체코의 지난 세월과 전설, 아름다운 강산, 민족 저항의 역사 속으로 곧바로 진입하게 된다. 이 나라의 민족음악가인 스메타나(Smetana)가 들려주는 교향시 ‘나의 조국’처럼. 이들의 상징 기호인 ‘프라하의 봄’ 음악제는 매년 그의 기일에 열리면서 개막곡으로 ‘나의 조국’을 연주한다.

타지에서 온 일반 여행객에게도 익숙한 ‘나의 조국’은 체코인의 정서를 묘사하는 6개의 서정적인 테마를 담고 있어 외지인들조차 그 이야기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구슬픈 보헤미안들의 지난 세월에 이끌리게 된다. 체코라는 이름부터 이 나라를 형성하는 세 개의 지방 가운데 하나인 보헤미아의 체코어 표기인 ‘체히’(Cechy)에서 유래된 말이다.

집을 떠나 밖으로 한참 떠돌다 보면 종종 ‘조국’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꽂힐 때가 있다. 마치 흔하디흔한 사랑이란 단어가 그렇듯, 별 도리가 없이 쓰게 된다. 내가 태어나 몸담고 있는 나라, 그 근거지의 소중함이 감사하기 때문이다. 돌아갈 곳이 없는 여행은 방랑에 다름 아니고 외로움임을 때때로 느끼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외세의 지배 딛고 독립 쟁취


▎프라하의 상징물처럼 각인된 올드타운 광장 구 시청사의 천문시계탑. / 사진:고혜련
프라하는 인구 132만 명을 보유한 체코 최대의 도시이자 수도다. 중부 보헤미안 지방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다. 한때는 신성로마제국의 수도로 찬란한 영광과 위세를 누린 후 오스만 제국과 오스트리아 등 외세의 침략으로 억압과 분노의 세월이 흘러간 곳이다. 이어 300년간의 오스트리아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저항하고 독립운동을 했다. 한동안 그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국가로서의 위상을 찾았으나 20년 후 다시 나치 독일의 점령과 합병을 거쳐 2차 세계대전 후 1945년에는 소련의 위성국이 된 나라가 체코슬로바키아였다.

1968년 헌법으로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이 됐다. 1989년 11월 벨벳혁명을 통해 체제 전환을 시작했고, 1993년 1월 1일 국가 분리를 단행해 슬로바키아와 결별, 체코공화국이 됐다. 벨벳혁명으로 의회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받아들였고 1999년 북대서양 조약기구인 나토(NATO), 2004년 유럽연합에 가입했다. 파란만장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민주공화국으로 살아남은 것이다. 지금은 프라하특별시와 13개의 주로 구성돼 있다.

프라하는 제2차 세계대전의 무차별적 파괴 속에서도 본래의 옛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한 도시로 사랑받는다. 게다가 ‘프라하의 봄’이라 명명된 저항운동을 통해 극적으로 국가 운영 체제를 변신시킨 그 기억의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소중함을 더해준다.

프라하 시내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찾게 되는 곳이 프라하를 관통하는 몰다우강이고, 그 위에 세워진 ‘카를교’다. 그 다리를 건너기 전이나 후에 도시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에 올라가는 것이 그 다음 순서다. 칼날처럼 뾰족하고 급경사의 수직적인 첨탑이 위세를 뽐내는 중세 고딕 양식의 백탑(百塔)이 즐비하다. 무려 100여 개의 첨탑이 하늘로 뻗어 경쟁하듯 손짓을 해대니 자연스레 ‘백탑의 도시’라 이름 지을 만하다. 프라하만의 독특한 도시 미관을 형성한다.

프라하의 랜드마크 카를교

유럽에서 가장 사랑받는 다리임을 인정받는 이 대교에 이름을 내준 인물도 살펴야 한다. 카를은 바로 이 다리를 14세기에 완공(1367~1402)한 당시 보헤미아 왕국의 국왕 카를 4세(1316~1378)의 이름이다. 그는 62세까지 생존하는 동안 재위 기간만 32년(1346~1378)으로 이 유명한 다리를 탄생시킨 장본인이다.

그는 신성로마제국 황제였던 하인리히 7세의 손자였으며 보헤미아 국왕 겸 룩셈부르크 백작의 맏아들이었다. 1331년에는 아버지와 함께 이탈리아와의 전쟁에 참여했다. 결국 이탈리아 국왕도 지냈으며 신성로마제국의 황제(1355~1378) 자리도 23년이나 거머쥔 절대 권력의 소유자였다. 카를은 당시 흑사병이 확산되지 않았던 프라하를 신성로마제국의 수도이며 보헤미아 수도로 정한 이후 프랑스 파리를 모델 삼아 도시 재건사업을 밀고 나갔다. 이곳을 문화·교육의 중심지로 확장해가기 위해 중부 유럽 최초의 대학교인 프라하 카렐대학교를 설립한 황제이기도 하다. 프라하가 ‘동유럽의 파리’라고 불리는 단초를 제공한 셈이다.

원래는 보헤미아 바츨라프 2세 국왕이었던 외할아버지 이름을 딴 바츨라프였지만 고모부였던 프랑스의 샤를 4세의 이름을 본떠 카를로 개명했다. 어린 시절 샤를 4세의 프랑스 궁정에서 7년 동안 거주하면서 프랑스식 교육을 받았다. 그의 족적을 되새기게 되는 카를교는 19세기 초까지는 프라하 올드타운과 소지구 등을 연결하는 유일한 다리였기에 지난 700여 년 동안 프라하의 상징인 양 시민들의 아낌을 받아왔다.

길이 600여m의 카를교는 오랫동안 동서 유럽을 연결하는 주요 교역로 역할을 했다. 폭 10m 정도의 도로가 항상 관광객으로 바글거린다. 특히 16개의 둥그런 아치 아래로 선박들이 다니게 한 이 석조다리 위에는 마치 전시장을 연상케 하는 30여 체코 성인들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어 볼거리를 제공한다. 전 세계 관광객들이 운집하는 곳이다 보니 자연스레 거리의 화가나 악단의 공연과 전시가 시시때때로 열린다.

700년의 세월을 거슬러 카를 4세를 접견하려면 프라하 성채로 가야 한다. 성채 안의 비투스 대성당에 그의 유해가 안치돼 있다. 프라하성은 세계에서 가장 큰 중세 성채 단지로 현재 기네스북에 올라 있는 프라하의 랜드마크다. 카를교를 지나 직진한 후 나오는 오르막길을 따라 오르면 1918년 이후 현재까지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 중인 성채에 당도한다.

이 성채에는 구(舊)왕궁과 비투스 대성당 및 이성의 정원, 황금 소로(小路) 등이 자리 잡고 있다. 르네상스 스타일이 혼재된 정원 안에는 화려한 꽃밭과 아름다운 분수들로 구성돼 있으며, 현재는 국가 행사장으로 종종 쓰이고 있다.

프라하성의 제3정원에 자리 잡고 있는 비투스 대성당은 길이 124m, 너비 60m, 높이 33m 규모로 웅장하고 화려한 자태를 자랑한다. 기골이 장대해 단연 프라하의 대표 건축물임을 드러낸다. 바츨라프 1세가 9세기에 지어 첫 원형을 이루고, 2~3차례의 재건축을 통해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을 가미해 지금에 이르렀다. 무려 1100년에 걸쳐 이룬 성당인 셈이다.

성당 남쪽 탑은 96.5m, 서쪽 탑은 82m에 이른다. 성당 가운데에는 이곳을 지배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페르디난트 1세와 그 가족들이 잠든 16세기 묘소가 있다. 제단 오른쪽에는 ‘체코의 국민적 성인’으로 왕에 의해 순교당한 얀 네포무츠키의 묘와 2t의 은을 사용해 만들었다는 좌상이 놓여 있다. 왕비이자 자기 아내의 고해성사 내용을 알려달라는 보헤미안 왕 바츨라프 4세의 명령을 거부, 몰다우강에 던져진 네포무츠키는 끝까지 침묵으로 저항한 신부로 널리 숭상 받고 있다. 또 유럽을 대표하는 아르누보의 아이콘이라 알려진 체코 태생, 알폰스 무하(Alphonse Mucha, 1860~1939)의 작품도 있으니 눈여겨볼 일이다.

보헤미안 정신의 본고장


▎프라하를 가로지르는 몰다우강과 카를교 전망. 신성로마제국 황제였던 카를 4세가 세운 다리다. / 사진:고혜련
빨간 지붕과 회백색의 담장이 현란하고 산뜻한 조화를 이루는 수십 채의 상가 및 가정집으로 둘러싸인 구시가지, 올드타운 광장은 사람들이 밀물처럼 몰려드는 곳이다. 12세기 초 유럽 무역의 교차로 역할을 한 곳인데, 독특한 외양으로 눈길을 끄는 틴 성모교회와 600년 전에 설치된 천문시계, 다양하고 유서 깊은 건축물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래서 ‘세계 건축의 박물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광장 한가운데 서 있는 동상은 가톨릭 개혁을 주장하다 화형당했다는 종교지도자, 얀 후스(Jan Hus)다. 이곳 시민들은 이 개혁자로 인해 체코민족이 불의에 눈감지 않고 저항하는 ‘보헤미안 정신’의 계승자가 됐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광장 한쪽, 프라하 구 시청사의 천문시계탑은 천문을 관측하는 데 유용한 매우 정밀한 시계다. 세계사에서 거론되는 대표적인 천문시계다. 1410년께 프라하 시청사의 요청으로 두 명의 시계공과 수학자가 제작한 것이다. 두 개의 시계판 중 위쪽 시계판은 왕과 귀족들이 볼 수 있는 시계로 해와 달의 움직임을 표현했고 또 하나는 문맹자 농민들에게 계절마다 농사 관련 날씨 정보를 알려주기 위한 것이었다. 여행객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그 시계의 외관상 아름다움뿐 아니라 매 시간 정각이 되면 종이 울리며 예수의 열두 제자를 상징하는 인형들의 퍼포먼스 때문이다. 근처의 틴 성모마리아 성당도 하늘을 찌를 듯 송곳처럼 치솟은 2개의 종탑이 약간은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주기에 그냥 지나치기 힘들다.

황금 소로는 애당초 프라하성을 지키던 군인 막사들의 용도로 쓰였으나 16세기 후반부터는 금과 은을 세공하던 장소라고 해서 그 이름이 주어졌다. 지금은 대부분 기념품점으로 채워졌다. 특히 황금소로의 허름한 집 중 푸른빛이 감도는 길가의 한 작은 방에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이곳 태생의 실존주의 작가이자 [변신], [성(城)] 등의 작품으로 오랫동안 연구대상이 되고 있는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의 작업실과 함께 주변에 동상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유대인 계열의 체코인 소설가로 현재 프라하 유대인 묘지에 안장돼 있다.

체코에서 출생한 유대인 작가 카프카


▎‘프라하의 봄’으로 명명된 체제 저항운동이 일어났던 바츨라프 광장 전경. / 사진:고혜련
카프카는 운명적 부조리, 존재의 불안과 허무, 소외감을 안고 살아가는 인간 존재를 통찰하는 작품 등을 써내며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체코에서 태어났으나 독일어를 쓰는 유대인으로 분류됐기에 늘 이방인으로서 고독을 숙명처럼 안고 살아왔다. 카프카는 프라하 대학에서 법률을 전공한 후 보험공사 직원으로 살았다. 하지만 문학에 대한 목마름으로 퇴근 후 여동생이 마련해준 이 허름한 공간(22번지)에 들러 글을 써왔다. 34세의 나이에 폐결핵 진단을 받고 여러 요양원을 전전하며 [성(城)], [배고픈 예술가] 등의 소설을 써오다 7년 후인 1924년 41세로 요절한다.

카프카가 평소 유언을 남긴 친구에게 토로한 문학에 대한 견해는 숙연하다.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부수는 도끼여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책은 큰 고통을 주는 불행처럼, 우리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처럼, 우리가 모든 사람에게서 떠나 숲속으로 추방당한 것처럼, 자살처럼 충격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마치 목숨을 바쳐 글을 쓰는 듯한 그의 작가 정신이 숭고하다.

근처에는 독특한 모양의 카프카 동상이 있어 눈길을 끈다. 작품명은 ‘회전하는 머리의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Rotating Head, 데이비드 체르니 작품). 수백 개의 투명한 백색 알루미늄으로 조합된 듯한 이 동상의 얼굴 조각들은 칸칸이 따로따로 회전, 그때마다 주변 상황을 그대로 비추면서 작품의 의미를 다변화한다. 마치 시시각각 변신해가는 동상이, 고뇌하는 인간이 벌레로 바뀌어가는 상황을 이끌어낸 소설 [변신]처럼 카프카적 느낌을 잘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카프카 탄생 120주년을 기리기 위해 2003년 세운 또 다른 동상은 빈껍데기 인간 위에 목말을 탄 카프카를 그려내고 있다. 조각가 자로슬라브 로나(Jaroslav Rona)의 작품이다. 높이 3.75m, 무게 800㎏에 달하며 올드타운과 구 유대인 마을 사이 경계에 서 있다. 두 작품 다 함의하는 바가 다중적이다. 카프카의 문학은 장 폴 사르트르, 무라카미 하루키, 밀란 쿤데라 등의 작가에도 영향을 미쳤다. 독일어권과 영어권에서는 난해하고 혼란스럽다는 의미의 ‘Kafkaesque’(카프카스럽다)가 형용사로 쓰일 정도다.

체코가 자랑하는 또 하나의 작가,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 1929~2023)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이라는 장편소설(1984년 발행)로 유명하다. 이 책은 영화(1988년 개봉)로도 만들어졌다. 한국에선 [프라하의 봄]이라는 제목으로 상영됐지만 여타 지역에서는 소설 원제목 그대로 쓰였다. ‘프라하의 봄’을 배경으로 4명의 남녀가 펼쳐가는 모순적인 사랑과 이중적 사고, 그들이 처한 체코의 사회적 분위기와 역사, 이데올로기의 소용돌이 속 고뇌와 맞물리면서 “결국 인간이란 더할 나위 없이 가벼운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1989년 벨벳혁명으로 체코 공산정권이 붕괴할 때까지 그의 모국에서는 금서로 지정됐었다.

체코 역사 속 ‘프라하의 봄’은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난 민주 자유화 혁명 운동을 지칭한다. 프라하 시내 중심부에 있는 바츨라프 광장은 이 운동의 혁명광장이며 격동적인 체코 근현대사의 무대로 알려져 있다. 이 운동은 소련 지배하의 체코 보수 정권의 소련 추종에 반발한 지식인들이 중심이 됐다. 소련은 이런 움직임이 동유럽 공산 국가들로 전파될 것을 우려해 무력침공을 감행한다. 4개월 후인 8월 20일, 소련군은 20만 명의 여러 나라 군사들을 동원해 이 운동을 저지하고 주도자들을 숙청했다. 또한 개혁파 중심인 둡체크 당 서기 등을 강제 해임하고, 개혁파를 추종한 50만 명의 당원도 제명하거나 숙청했다.

이런 위기 속에서 민족의식을 소환하는 음악과 문학 작품들은 저 아래 감춰진 기억을 불러내 곧장 현실 속에서 뜨거운 기운과 충동으로 작동하는 힘을 발휘했다. 자신의 조국을 애끓는 마음과 존경으로 흠모하며 6편의 교향시로 엮어낸 스메타나의 음악 역시 그랬다. 교향시(交響詩=symphonic poem)는 관현악에 의해 시적, 회화적, 심리적인 내용을 음악적으로 표현하는 표제음악(program music)을 일컫는다.

생전 오스트리아 통치 아래 살았던 스메타나는 혁명에 가담한 요주의 인물로 타국에 피신해 있다가 돌아온다. 몇 년에 걸쳐 작곡에 매달리다 귀가 안들리는 말년에 ‘나의 조국’을 완성하고는 마지막엔 프라하 정신병원에 입원한 후 숨을 거뒀다. 1884년 5월 12일이다. 그의 기일에 ‘프라하의 봄’ 음악제가 열리는 이유다.

문학과 음악으로 발현된 자유의 정신


▎프란츠 카프카의 동상은 그의 작품 세계처럼 부조리한 디자인이다. / 사진:고혜련
체코를 떠올리게 하는 또 한 사람의 저명한 작곡가는 드보르자크(Antonin Dvorak, 1841~1904)다. 그는 프라하에서 활동하다 미국 음악원의 초청으로 이주, 첫 교향곡으로 ‘신세계 교향곡’을 발표해 큰 성공을 거뒀다. 그 후 한동안 조국, 보헤미아의 향수를 담은 작품들을 잇달아 내놓아 관심을 끌었다. 그의 나이 54세에 프라하 음악원으로 돌아와 창작 활동에 전념하다 9년 후인 1904년 프라하 자택에서 사망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독일 시인으로 알려져 있는 불세출의 서정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 Rainer Maria Rilke, 1875~1926)까지 프라하에서 태어났다니 프라하는 이래저래 더 정감이 가는 곳으로 느껴진다. 그는 20대 초반 프라하 대학교에서 문학·법학·역사 등을 공부한 후 독일로 건너갔다.

그렇게 ‘프라하’라는 이름은 내게 매력적·자극적이고 독재적이다. 개인의 생각은 일생 자신이 소유한 편협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생겨난다. 그러니 누가 맞고 틀리다고 이야기하기 힘들다. 그래서 ‘다름’을 보려는 여행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 고혜련 - 칼럼니스트. 자연과 함께하기, 온 세상 여행하기가 요즘 주요 관심사다. 중앙일보 등 국내외 주요 일간지에서 기자·문화부장·런던특파원을 지냈다. [어머니, 당신은 내 운명], [힘내! 이제 다시 시작이야] 등 7권의 저서가 있다. 이화여대를 거쳐 미국 뉴저지주립대, 영국 런던대 대학원에서 국제정치·저널리즘을 전공했다. 현재 출판사(주)제이커뮤니케이션 대표로 일한다.

202404호 (2024.03.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