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실수에 대해 적극적으로 사과해 국민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사진은 NBC 심야 토크쇼인 제이 레노의 ‘투나잇쇼’에 출연한 오바마. |
2008년 5월 어느 날 미국 미시간주.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버락 오바마가 크라이슬러 자동차 공장을 방문했다. 현장에 있던 여기자 페기 아가는 공장을 둘러보는 오바마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의원님, 미국의 자동차산업 노동자를 어떻게 도울 예정인가요?”
오바마는 여기자에게 “잠시 기다리세요, 스위티(sweety)”라고 하면서 답변을 미뤘다. 결국 그 여기자는 그날 오바마로부터 아무 답도 듣지 못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오바마에게 도사리고 있었다. 바로 ‘스위티’라는 표현이다.
전화 안 받자 음성메시지로 사과해
스위티는 애인이나 가까운 친구에게 쓰는 표현으로 공식적인 자리에서 여기자에게 쓸 말은 아니었다. 이는 오바마의 버릇인데, 이보다 한 달 앞선 4월에 펜실베이니아주를 방문했을 때 여성 노동자에게 같은 표현을 썼다가 구설수에 오른 적도 있다. 오바마는 실수 후 어떻게 행동했을까? 그는 직접 여기자에게 전화했다. 그녀가 전화를 받지 않자 그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남겼다.
“안녕하세요, 페기. 버락 오바마입니다. 두 가지 사과할 일이 있어 전화했어요. 하나는 당신의 질문에 대해 답을 주지 못한 것으로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지역 언론사 모두와 인터뷰를 잡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마도 당신이 속한 언론사와 인터뷰를 했지만 다른 기자가 담당한 것 같습니다.
다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두 번째는 제가 당신에게 ‘스위티’라는 표현을 쓴 것에 대해 사과합니다. 이는 저의 나쁜 버릇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누구를 비하할 의도는 전혀 없어요. 따라서 이번 실수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제게 전화 한번 주세요. 제가 다음에 디트로이트에 올 때 제 홍보팀이 당신에게 보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줄 것입니다.”
대선 후보인 거물급 정치인이 사과를 위해 기자에게 음성메시지를 남긴 것도 이례적이지만, 내용이 더 눈에 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리고 추후에 어떻게 조치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했다. 오바마는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도 몇 차례 실수를 하게 되는데 필자는 이를 눈여겨보는 중이다.
특히 그가 실수한 후에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각별한 관심이 있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첫째, 그는 21세기의 리더상을 새롭게 그려나가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미국의 광고 분야 전문지인 애드버타이징 에이지(Advertising Age)는 ‘2008년 올해의 마케터’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선정했다.
마케팅 전문가인 배리 리버트와 릭 포크는 『오바마 주식회사』라는 책에서 기업의 리더가 오바마를 벤치마킹해야 할 점을 분석하기도 했다. 둘째, 오바마 역시 사람인지라 그동안 여러 차례 실수를 저질렀다. 그가 다른 정치인이나 역대 대통령과 다른 점은 실수를 덜 저지른 것이 아니라 실수 후에 그가 보여준 행동이었다.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사과론(論)을 실천하는 것으로 보인다. 신경과학의 관점에서 ‘리더십의 언어’로 사과에 접근하는 필자에게 그는 매우 흥미로운 관찰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 당선 후 그가 저지른 실수를 좀 더 살펴보자. 2008년 11월 8일, 오바마는 대통령 당선 후 첫 기자회견을 했다.
여기에서 그는 대통령직을 준비하려고 에이브러햄 링컨을 비롯한 전임 대통령의 업적을 모두 살펴보았다고 말했는데,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부인인 낸시 레이건에 대해 말실수를 하고 말았다. “(그녀처럼) ‘혼을 부르는 의식’ 같은 것은 하고 싶지 않다”고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언급한 것이다.
이 사건은 백악관 비서실장 출신이 쓴 한 저서에 나온 ‘낸시 레이건이 점성술사를 백악관에 데려다 주술적인 행사를 했다’는 대목을 언급하면서 ‘자신이 과거를 살펴보는 작업은 낸시 레이건처럼 주술적이지 않다’는 뜻을 전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기자회견이 끝나자마자 오바마는 낸시 레이건에게 직접 전화해 정중히 사과했다.
진심을 부르는 ‘리더의 언어’
또 오바마는 첫 인선 과정에서 몇 차례 실수했다. 그의 정치적 대부로 알려진 톰 대슐 보건부 장관 내정자와 백악관 최고성과책임자로 임명한 낸시 킬리퍼가 모두 탈세 의혹으로 낙마하자 오바마의 인선 과정이 너무 성급한 것 아니냐는 비난이 일었다. 그는 “내가 일을 망쳐 놓았다” “나는 내 자신과 우리 팀에 대해 좌절감을 느낀다”는 ‘과격한’ 표현을 쓰면서 자신의 실수에 대해 적극적으로 사과했다.
이것은 조지 부시를 비롯한 기존 미국 정치인은 물론 우리나라 정치인과도 구별되는 행동이다. 특히 오바마처럼 취임 초기에 스스로 실수라고 인정하면서 대통령이 직접 공개적으로 사과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하지만 무조건 적극적으로 사과하는 것이 언제나 좋은 것일까? ‘리더의 사과’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는 필자가 최근 오바마에게 주목하는 진짜 이유는 바로 이 대목에 있다.
그것은 ‘사과의 정치학’이라 부를 만한 그의 차별화된 행동 자체보다 그 결과다. 그는 위기 때마다 적극적으로 사과했고 이는 대중에게 진심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매번 실수나 잘못을 한 후에 비난 여론이 빠르게 감소했다. 이처럼 오바마가 차별화된 사과의 리더십을 구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한 말 속에서 우리는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책임의 시대에는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수를 인정하고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해야 하며 우리는 그렇게 할 것”이라고. 책임감과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우리나라 정치인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다. 모두가 인정하듯 오바마는 리더십의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 가고 있다. 그는 실천을 통해 사과를 패자(loser)의 언어에서 리더(leader)의 언어로 만들어 간다.
“지금도 나는 어머니가 강조한 간단한 원칙, 즉 ‘네게 그렇게 하면 기분이 어떨 것 같니?’라는 말을 정치활동의 길잡이 중 하나로 삼는다. 국가 전체를 놓고 볼 때 우리는 상대편 처지에서 생각해 보는 마음이 부족한 것 같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자서전인 『담대한 희망』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는 리더의 판단에서 ‘공감’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결국 그의 ‘사과의 리더십’은 이런 공감의 철학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바마가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