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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X(수도권 광역 급행철도)는 출퇴근 시간 줄이는 ‘교통복지’ 

지지부진한 GTX 사업 

연 7000억원 교통혼잡 비용도 절감 기대 … 수도권 경쟁력 강화의 지렛대

▎비 내린 7월 16일 서울 사당역 버스정류장에 경기도행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다.



경기도 수원시 정자동에 사는 장상교(가명·29)씨는 건설사에 다니는 직장인이다. 서울 광화문의 회사까지 매일 출근전쟁을 치른다. 매일 아침 6시 10분 길을 나선다. 집 앞 버스정류장에서 서울 사당역으로 가는 7780번 광역버스를 탄다. 광역버스 요금은 2000원. 버스는 서울로 출근하는 직장인과 학생으로 늘 만원이다.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에 억지로 몸을 밀어 넣는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 다음 버스를 기다리는 일도 부지기수다.

버스가 20여 분을 달려 의왕 톨게이트를 지나자 길이 막히기 시작한다. 수도권에서 서울로 출근하는 차가 한꺼번에 몰리는 상습 정체 구간이다. 장씨는 “사람사이에 껴 불편한 자세로 서 있기도 힘든데,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버스에서 몸의 균형을 잡느라 힘을 주다 보면 어느새 팔다리가 뻐근해지고 짜증이 난다”고 하소연했다.

40여분의 사투를 마치고 사당역에 도착하자 한숨이 다 나온다. 지하철로 갈아타기 위해 가까운 3번 지하철 입구로 뛰어간다. 출입구 쪽에는 수도권에서 광역버스를 타고 오는 출근길 인파가 몰린다. 출입구 위에는 ‘다른 출구를 이용하시면 더 빨리 가실 수 있습니다’라는 안내 현수막이 걸려 있다. 장씨도 80m를 더 걸어가 다른 출입구를 이용한다. 지하철로 시청역을 거쳐 회사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7시 53분. 그가 집에서 나와 사무실까지 가는데 걸린 시간은 총 1시간 43분이다.

“회사 근처에 방을 얻을까 생각도 합니다. 하지만 결혼자금을 마련해야 하고 서울은 집값이 비싸서 힘들어도 참아요. 길에서 버리는 시간이 정말 아깝지만 어쩌겠어요.” 퇴근길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퇴근시간 사당역 주변의 인도는 광역버스를 기다리는 긴 줄 인파로 꽉 막혀 보행자가 지나다니기 어려울 정도다. 버스가 자주 와도 승객이 워낙 많다 보니 별 소용이 없다.

노선마다 50m 이상 긴 줄이 이어진다. 두 줄로 선 노선도 있다. 좌석용 줄과 입석용 줄이 따로다. 긴 줄에서 기다리느니 서서 가더라도 빨리 집에 가고픈 승객들이다. 장씨의 출퇴근 거리를 계산하면 총 70km. 하루에 길 위에서 보내는 시간은 대략 3시간40분이다. 하루 4600원의 교통비를 들이고 시속 19km로 출퇴근하는 셈이다.

시속 19km의 출·퇴근 지옥

통계청에 따르면 장씨처럼 경기도에서 서울로 통근하는 인구는 하루에 125만명이다. 서울에서 경기·인천 등 다른 지역으로 통근하는 인구는 275만명에 달한다. 수도권 거주 근로자 4명 가운데 1명이 매일 행정구역을 넘나들며 출·퇴근을 하는 셈이다. 출퇴근 시간대 광역버스 혼잡률은 평균 141%다. 정원의 절반 가까이 더 타는 셈이다.

수도권 근로자 360만명은 매일 편도 한 시간 이상의 장거리 통근에 시달린다. 특히 경기도의 경우 2000년 74만명이던 장거리 통근자가 2010년에는119만명으로 늘어 61%의 증가율을 보였다. 서울은 89만명에서 115만명으로, 인천은 19만명에서 26만명으로 증가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대상 23개 회원국의 평균 통근시간(38분)의 두 배에 가깝다. 순위로는 최하위권인 22위다. 수도권의 교통혼잡 비용은 약 16조9014억원으로 전국 교통혼잡 비용의 61%를 차지한다.

철도망이 부족하다보니 막히는 도로에 승용차가 쏟아져 나온 탓이다. 광역버스가 있다고는 하지만 넘쳐나는 승객을 태우기에는 숫자가 태부족이라 정류장에서 20~30분씩 기다리는 게 예사다. 서울과 경기·인천을 넘나들며 통근하는 인구가 무려 400만명에 달하는 상황에서 교통난 해결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전문가들은 이런 문제를 해소할 대안이 철도, 특히 수도권 광역 급행철도(GTX)라고 주장한다. GTX는 급속히 증가하는 수도권의 통행량을 분산시키고 장거리 출퇴근 시민의 통근 시간을 줄이기 위해 2008년 경기도가 제안했다. 서울 삼성역과 서울역·청량리역 등 3개 역사를 거점으로 서울을 X자 형태로 관통하는 3개 노선이 계획돼 있다.

KTX와의 공용노선을 포함하면 총 연장은 174㎞에 이른다. A노선(동탄~킨텍스축)은 경기도 화성 동탄2신도시에서 판교와 서울 강남, 은평뉴타운을 가로질러 경기 서북부인 일산 킨텍스역을 향한다. B노선은 인천 송도에서 여의도를 거쳐 청량리역까지, C노선은 경기 동북부인 의정부에서 경기 서남부인 군포 금정까지 이어진다.





영국·프랑스 광역철도망에 열심

열차의 최고 속도는 시속 200㎞로 현재 서울 지하철보다 세 배 이상 빠르다. 완공되면 경기도 화성 동탄에서 서울 강남 삼성역까지는 19분, 경기도 일산에서는 22분이면 도착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동탄에서 서울 강남까지 어떤 교통 수단을 이용하든 최소한 1시간20분 정도 걸리는 점을 고려하면 출퇴근 고통지수가 4분의 1로 줄어드는 셈이다. 경기도 일산과 의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박병선 경기도 GTX 과장은 “우리나라는 30~40년간 도로에 집중 투자해 국가 도로망이 잘 갖춰졌지만 이로 인해 자동차 통행 증가를 유발했다”며 “유럽과 미국 등의 선진국은 이미 1980년대부터 자동차·도로 중심에서 철도 중심으로 투자를 전환했다”고 말했다.

프랑스 정부는 6월 27일 교통 계획 ‘모빌리테(Mobilite) 21’을 발표했다. 도로·철도·항만 등 전반적인 교통 사업이 담겨 있지만 그중 철도가 가장 역점사업이다. 특히 파리 대도시권의 광역급행철도망 GPX(Grand Paris Express)가 핵심이다. 파리 도심과 외곽을 잇는 급행 열차에 230억 유로를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영국은 한층 발 빠르게 런던 대도시권 철도망을 건설 중이다. 시속 160km로 달리는 고속열차가 2017년 런던 대도심을 가로질러 운행하게 한다는 목표다.

고속열차는 런던 도심부에 만드는 9개의 신규 역사와 런던 외곽을 연결한다. 런던 대도시권은 지하철·경전철을 포함해 이미 총연장 1253km 철도망을 갖췄다. 한국 수도권(887km)의 1.4배다. 인구 1만 명당 연장(1.67km)은 무려 5배 가까이 차이 난다. 그럼에도 새로 광역 고속철도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크로스 레일(Cross Rail) 프로젝트’라 불리는 이 사업에 영국은 159억 파운드(약 27조원)를 쏟아 붓기로 했다.

선진국이 대도시권 철도망을 고도화하는 것 역시 도심의 교통 체증을 해소하려는 목적이다. 도로를 새로 내거나 넓혀 교통 문제를 해결하려는 데는 한계가 있다. 자동차가 덩달아 늘어서다. 미국 경제학자 매슈 터너는 도로가 늘어나면 이에 정비례해 자동차 대수와 주행거리가 증가한다는 ‘도로 혼잡의 기본 법칙’을 2010년 발표했다. 도로 조건이 좋아져 차를 몰고 다니기 편해지면 그만큼 운전을 많이 하게 된다는 얘기다. 선진국에서 철도 사업이 다시 각광받는 이유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수도권 철도망 계획인 GTX 사업은 6년째 제자리다. 예비타당성 조사조차 끝내지 못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11년 12월 예비타당성 조사를 시작했지만 1년7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철도 예산도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5월 28일 재정전략회의에서 앞으로 4년간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11조6000억원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철도 예산 역시 20% 정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복지 지출을 늘리려는 데 따른 것이다.

SOC 예산 감축에 따라 2011년 4월 수립한 ‘제2차 국가 철도망계획’의 신규 사업은 대다수가 유예하거나 좌초될 가능성이 커졌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예산 감축이라는 큰 틀만 결정됐을 뿐 세부적인 사업 축소 등에 대해서는 기획재정부와 논의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착수하지 않은 계획 단계의 신규 사업이 변경되거나 미뤄질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2차 철도망 구축 계획에 들어 있는 대표적 사업 중 하나가 GTX다.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수도권과 국가의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높여줄 GTX가 표류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보편적 교통복지 개념으로 경기권 광역도시철도 개발에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국교통연구원 이재훈 본부장은 “GTX의 우선순위가 뒤로 밀린 이유는 정부가 이를 SOC 건설로만 바라보기 때문”이라며 “장거리 통근 문제는 사회·경제 구조에 기인한 것이기 때문에 복지 사업의 하나로 인식하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SOC뿐 아니라 교통복지 차원 논의

한국교통연구원의 ‘광역급행철도와 통근 통행의 양극화 해소’ 자료를 보면 사는 집의 가격과 전셋값이 높을수록 출퇴근 시간도 적게 걸린다는 상관관계가 나타난다. 주택가격의 양극화가 통근시간의 양극화로 연결된다는 사실이 입증된 셈이다. 이 본부장은 “서울 소재 사업장이 외곽으로 나오거나, 저소득층 근로자가 서울 시내에 집을 구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보편적 교통 서비스를 통해 출퇴근 시간을 줄이는 교통복지가 필요하다”며 “현재 노선에 급행열차를 배당하는 등 미온적인 해법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수도권을 잇는 광역급행철도가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도권 광역 철도망은 주거 복지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철도망이 잘 갖춰질수록 상대적으로 집값이 싼 대도시 외곽의 넉넉한 주거 공간까지 주택 수요가 확대된다. 전셋값이 고공행진을 하는 지금 시점에서 부동산 안정화 효과도 있다. 이현철 콜드웰뱅커 케이리얼티 사장은 “GTX가 개통되면 주택 수요가 서울 외곽으로 분산될 수 있다”며 “주택의 서울 집중도가 완화되고 공급 과잉 논란이 있는 경기권 공급 물량도 해소될 수 있다”고 말했다.

따로 노는 신도시간 시너지 효과도 기대된다. 우리나라 수도권은 각 지역을 빠르게 잇는 철도망이 없어 지역의 장점이 어우러지지 못하는 실정이다. 수도권에는 6곳의 산업형 집적단지(클러스터)가 형성돼있다. 파주출판단지를 중심으로 하는 경기 서북부의 ‘컬처로드-K’와 의정부 쪽 ‘북부 섬유·패션 클러스터’, 인천 송도를 포함한 경기 남부지역의 ‘서해안선 레저거점’, 성남·판교의 ‘융·복합 R&D특구’ 등이다.

이정훈 경기개발연구원 전략연구센터장은 “이들 클러스터는 자체적으로 일정 수준의 특성화 기능을 축적하고 있지만 이들을 묶는 이동수단이 부족한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서울대 고승영 교수는 “특성화 도시의 기능을 연계해 수도권을 광역화하는 것이 수도권 경쟁력의 핵심”이라며 “GTX가 이를 어느 정도 해결해줄수 있다”고 설명했다.

클러스터(cluster) 산업 집적단지. 유사 업종에서 다른 기능을 수행하는 기업·기관들이 한 곳에 모여있는 것을 말한다. 직접 생산을 담당하는 기업뿐만 아니라 연구개발 기능을 하는 대학·연구소와 각종 지원 기능을 담당하는 벤처캐피탈·컨설팅 회사가 한 곳에 모여 있어서 정보와 지식 공유를 통한 시너지 효과를 노릴 수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가 대표적 사례.

1198호 (201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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