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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티. 듀퐁클래식에 새긴 그의 스토리 | 전용복] 

바꾸는 것이 전통이다 

대담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
전용복은 36살에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옻 공예의 집대성이라 할 만한 메구로가조엔 복원공사를 지휘했다. 복원 기간 3년에 1조원이 투입된 대형 프로젝트에 그가 한국에서 데려간 옻 기술자는 300명이 넘는다. 이후 일본에서 칠예가로 인정받으며 자신의 박물관도 세운 그는 예순을 훌쩍 넘겨 한국으로 돌아왔다.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서다. 미국 맨해튼에 미술관도 건립한다. 옻을 알리기 위해서다. 그는 세상을 온통 옻으로 칠하고 싶어 했다.

▎경기도 안성에 마련된 티센크루프 엘리베이터코리아 칠예연구소에서 전용복 선생이 자신의 칠예 도구들을 바라보고 있다. / 사진:S.T.듀퐁클래식 제공
송길영: 장인의 길을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전용복: 자신만의 철학이 필요하다. 수입을 생각하면 고난의 길을 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우선 남이 간 길은 내 길이 아니란 생각을 해야 한다.

송길영: 셔츠에 새기신 ‘바꿔야 전통이다’를 말씀하시는 건가?

전용복: 전통을 잘못 해석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전통은 바꾸면 안 되나? 모방과 답습은 필요하지만 일정 범위를 넘어서면 안 된다는 건 무식한 말이다. 백자는 이성계의 고려 문화 말살정책에 의해 만들어진 것 아닌가. 고려청자 위에 석회를 섞어 흰 칠을 한 것이 백자다. 복식문화도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우리 민족은 파격적인 민족이다. 바뀌는 것이 전통이다. 그래서 요즘 난 옻을 엘리베이터에 칠하고 있다.

※ 박양춘 티센그루프엘리베이터 코리아 대표는 우연히 일본 메구로가조엔에서 옻칠한 엘리베이터 문을 보고 전용복 선생에게 티센그루프의 엘리베이터 문에도 옻칠을 부탁했다. 전용복 선생은 안성 티센그루프엘리베이터 코리아 사무실 인근에 별도의 연구실을 만들었다.


송길영: 철에도 옻이 붙나? 긁히거나 마모되지 않을까?

전용복: 금속에 옻을 붙이는 기술은 일본에서 배웠다. 만년은 유지된다. 일본에서 이미 내구성 평가까지 마쳤고 검증된 기술이다. 게다가 일반 엘리베이터 문과 비교해 가격이 특별히 비싸지도 않다. 물론 상품과 작품의 차이는 있겠지만.

송길영: 옻을 적용한 사례가 더 있다고 들었다.

전용복: 세이코와 협업해 만든 시계는 8억원에 판매됐고 3000만원 상당의 시계도 제품 공개 첫날 37개가 모두 판매됐다. 옻을 적용해보고 싶은 제품은 자동차 내부다. 시도는 했었지만 내 방식과 생각을 존중해주지 않아 더는 진행되지 못했다.

송길영: 엘리베이터에 칠한 옻 색상이 다양하다. 원래 검은색 아닌가?

전용복: 옻나무에서 채취한 옻은 뿌연 상태다. 이를 정제하면 투명하다. 거기에 색을 넣는데 쇳가루를 넣어 까만 색상을 주로 사용해 옻이 검다고 생각하는 것뿐이다. 다양한 색상을 섞어 사용하면 미술작품이 된다.

송길영: 선생은 1조원 규모의 메구로가조엔 복원공사를 맡으면서 대중에 이름이 알려졌다. 옻 공예로 유명한 일본에서 어떻게 한국인이 공사를 맡았나? 일본에 장인이 없는 것도 아닌데.

전용복: 메구로가조엔은 47개 현, 도, 부의 다양한 기술이 녹아 있는 거대한 예술작품이다. 일본의 특성상 한 우물을 판 장인은 많지만 이 기술을 모두 습득한 장인은 없었다. 메구로가조엔 복원공사 가능성을 듣고는 무작정 일본어를 배우고 일본에 건너가 3년 동안 장인들을 한 명씩 만나 기술을 습득했다. 복원공사 담당자 모집에 일본 전역에서 칠 장인 3000명이 지원했는데 내가 유일한 한국인이었고 결국 내가 일을 맡았다. 일본 옻쟁이 50만 명을 제쳐 기분이 좋았다.

※ 메구로가조엔 1931년 일본 메구로 지역에 건립된 대규모 연회장. 일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모티브가 된 곳으로 애니메이션에 등장한다.


▎듀퐁은 라이터에 천연 옻칠 기법을 도입했다. / 사진:S.T.듀퐁클래식 제공
송길영: 비결이 뭔가?

전용복: 결국 전체를 볼 줄 알아야 한다. 데이터 파편을 모으니 전체를 볼 수 있었다.

송길영: 동감한다. 전산학 전공자인 나도 심리학, 철학, 인류학 전공자들과 교류하면서 대중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업에 도움을 받았다.

전용복: 나도 자개기법을 조금씩 가르쳐주고 일본의 옻을 배웠다.

송길영: 메구로가조엔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전용복: ‘오젠’이라 불리는 작은 밥상 하나를 수리하면서부터다. 밥상 하나를 내 기술로 완벽하게 수리했다. 이후에 1000개를 수리해달라고 하더라. 메구로가조엔의 밥상이었다.


▎세이코는 옻칠 장식이 된 시계를 명품 시계 시장에 선보였다.
송길영: 옻을 배우러 오는 제자가 많을 것 같다.

전용복: 도무지 고난의 길을 걸으려 하지 않는다. 전시회나 인터넷에서 내 작품을 보고 모여드는데 다들 재미를 느끼는 정도까지만 열심히 한다. 숙련공이 되려면 온종일 사포질을 하고 자개를 깎으며 수련해야 한다. 고난이 오고 망가져야 하는 순간이 오는데, 그 순간에 포기하더라.

송길영: 이용사가 많이 줄었다가 최근 다시 늘고 있다고 들었다. 영화 ‘킹스맨’의 멋진 이발소를 본떠 이발소도 계속 생겨나고 있고. ROTC 장교들이 몰려온다고 하더라. 양질의 인력이 몰려들면 그 업은 성장한다. 옻 역시 양질의 인력이 올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전용복: 조금 씁쓸하지만 외국에서 인기를 얻으면 관심을 많이 가지는 것 같다. 곧 뉴욕 맨해튼에 미술관을 오픈한다. 난 상품과 예술품으로도 옻이 가능성이 크다는 걸 알리고 싶다. 이를 위해 아카데미도 생각하고 있다.

송길영: 옻 관련 산업이 발달하려면 원료 공급도 중요할 텐데.

전용복: 중국 의존도가 높다. 우리나라에서 1년에 200kg, 일본에서 300kg 정도 생산되는데, 이는 나 혼자 사용하는 양에도 못 미친다. 중국에선 300톤이 생산된다.

송길영: 선생은 장인인가 예술가인가?

전용복: 장롱, 가구, 그릇, 시계 등에 그림을 그리니까 예술가 아닌가? 21세기 내 캔버스는 시계, 엘리베이터, 자동차다. 매니큐어에도 옻을 첨가해보고 싶다. 옻을 모든 제품에 적용해보고 싶다. 장르는 무궁무진한데 후진을 제대로 양성하지 못해 아쉽다.

- 대담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 진행·정리 유부혁 기자 yoo.boohyeok@joongang.co.kr

201808호 (2018.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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