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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 최대 IPO를 이끈 슬루트만 CEO 

 

스노플레이크 CEO 프랭크 슬루트만은 창업주가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이 창업한 회사를 대박으로 이끄는 능력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지금까지 IPO를 세 번이나 진행한 ‘IPO 베테랑’ 슬루트만이 자신의 전술을 독점 공개한다.
노동절이 되자 프랭크 슬루트만(Frank Slootman, 62)의 세 번째 IPO(기업최초공개)는 이전 두 번의 IPO와 규모가 다를 것이란 점이 명확해졌다. 여름에 잠시 주춤하던 코로나19가 2차 유행을 시작했을 때다. 얼굴을 맞대고 점심을 먹거나 호텔 미팅룸에서 파워포인트 발표를 하는 글로벌 투어는 불가능하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그는 데이터 웨어하우징 기업 스노플레이크(Snowflake)의 로드쇼를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슬루트만은 캘리포니아주 더블린에 있는 스노플레이크 사무실 2층의 평범한 회의실을 점령한 채 온라인 회의를 이어갔다. 시간당 가치로 치면 마크 저커버그가 하버드 기숙사 방에서 가졌던 코딩 세션과 맞먹는 회의였다. 일대일 회의부터 대규모 프레젠테이션까지, 9월 중순에 일주일간 이어진 여러 회의에서 천성이 무뚝뚝한 슬루트만은 1000명이 넘는 사람을 줌으로 만났다. IPO에서 한몫 챙겨보려는 펀드매니저나 투자은행가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었다.

보통 회사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들이 나오기 마련인데, 사람들은 대부분 조르기 바빴다. “‘이 회사가 마음에 드는가?’보다 ‘그래서 대체 몇 주를 줄 수 있냐’가 관심사였다”고 네덜란드 억양이 들어간 말투로 슬루트만이 말했다. 온라인 IPO에 대해서는 “완전 좋았다”고 평했다.

2019년 4월 스노플레이크에 들어온 슬루트만은 엄청나게 효율적으로 일을 진행하며 남은 IPO 절차를 거침없이 이끌었다. 취임 후 6개월 만에 드래고니어 투자 그룹과 마크 베니오프의 세일즈포스 등 앵커 투자자를 줄줄이 확보했고, IPO 이후 주가 강세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리서치 애널리스트들과 만나 필요한 정보를 제공했다. 그리고 상장 당일 자신과 담당팀이 뉴욕 증시에서 (예상만큼 어색한 모습으로) 가상 종을 칠 때 세일즈포스를 비롯한 투자사들이 직접 참여해 응원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투자금을 34억 달러까지 모집하는 데 성공했다. IPO에 참여한 투자자들에 대해서 슬루트만은 “이전 IPO를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이라고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슬루트만이 합류할 당시 40억 달러였던 스노플레이크의 기업가치는 IPO 첫날 두 배 이상 상승했고, 그 후에도 큰 폭의 상승을 이어갔다. 회사는 5억8000만 달러가량의 과거 매출을 기준으로 시가총액 810억 달러를 자랑한다. 이에 따른 슬루트만의 순재산가치는 22억 달러로 추정됐다. 초창기 창업주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금액이다.

데이터 도메인(Data Domain)과 서비스나우(ServiceNow)에서도 IPO로 대히트를 쳤지만 슬루트만은 별다른 비법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면서 패턴을 유심히 지켜보면 그게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항해 경험이 있는 슬루트만은 온갖 장비가 들어간 초고속 선박을 운영하듯 IPO 준비 기업들을 관리한다. 조금이라도 반항기가 보이는 선원은 바로 배 밖으로 던져버릴 수 있는 카리스마 선장을 보는 것 같다.

“젊었을 때는 지금보다 아량이 많았지요. 다른 사람들이 역량을 맘껏 발휘하도록 코칭을 하는 게 가능하다고 믿었습니다.” 슬루트만이 말했다. “그런데 100번 중 99번은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이제는) 방아쇠를 훨씬 빨리 당기는 편입니다. 지금도 누군가를 너무 성급히 해고했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아요. (항상) 너무 늦게 해고했을 뿐이죠.”

“경영자의 특권을 행사합니다.” 그가 덧붙였다. “정당화할 필요 없고, 설득할 필요도 없어요. 그냥 내가 원한다는 걸 알면 됩니다. CEO의 존재 이유는 단 하나, 승리하는 겁니다. 이기기만 한다면 누구도 나를 거스를 수 없어요. 그러나 진다면 누구에게도 동정을 받을 수 없죠.”

아메리칸 드림의 성공

IPO를 통해 억만장자가 되어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슬루트만의 여정은 자동차와 보트 산업에 납품하는 노가하이드 인조가죽 좌석에서 시작됐다. 네덜란드에서 참전 군인과 초상화 예술가 부부의 아들로 태어난 슬루트만은 어렸을 때부터 학업 성적이 뛰어났고 소형 보트로 항해를 배웠다. 로테르담에 있는 에라스무스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매우 우수한 성적으로 1년 조기 졸업을 하고 미국에서 인턴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가 목표로 삼은 회사는 IBM이었다. 그러나 ‘빅 블루’ IBM 입사에 계속 실패한 그는 1982년 “단돈 100달러를 간신히 손에 쥐고” (직원들은 이 말을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었다)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에 도착하여 장래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인조가죽 업체에서 인턴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 경험에서 하강하는 엘리베이터에는 절대 타면 안 된다는 걸 배웠다”고 말했다. “내가 얼마나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습니다. 하강하는 엘리베이터를 타면 결국 밑으로 내려가는 거죠.” 결국 그는 상승하는 엘리베이터, 즉 컴퓨터 산업으로 갈아탈 수 있었다. 처음에는 디트로이트에서 일하다가 미시간주 앤아버로 가서 메인프레인 컴퓨터 고객들을 좀 더 현대적인 서버로 옮기는 일을 맡았다. 기회는 두 번째 회사였던 컴퓨웨어(Compuware)에서 찾아왔다. 암스테르담에서 진행되던 인수 협상이 1995년 파행으로 치달은 것이다. 사태를 수습할 직원이 필요했다. 이때 나이는 어려도 네덜란드어를 모국어로 할 수 있는 슬루트만이 간택된 것이다.

닷컴 호황이 한창이었던 1998년이 되자 슬루트만은 컴퓨웨어의 캘리포니아 지사를 운영하는 직책을 맡았다. 그 자체로 하나의 도전이 되는 업무였다. 당시 컴퓨웨어는 실리콘밸리에서 급부상한 경쟁기업들에 인재를 뺏기고 있었다.

잠재력이 높은 인재 원석을 찾아내 이들의 역량을 개발하는 데 집중한 슬루트만은 결국 컴퓨웨어를 안정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 후 그는 미시간으로 돌아가는 대신 볼랜드 소프트웨어(Borland Software)로 이직했다. 1980년대에는 촉망받는 데이터베이스 기업이었지만, 이후 심각한 경영난에 빠진 회사였다. 슬루트만은 이 회사에서 자바 소프트웨어 개발과 테스팅 사업을 성공적으로 확장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2003년에 데이터 스토리지 부문의 스타트업인 데이터 도메인으로부터 처음으로 CEO직을 제안받게 된다. 그러나 이는 구조 신호나 다름없었다. 데이터 도메인은 현금이 바닥나고 있었다. 회사가 보유한 기술은 이론적으로 기존 대안보다 훨씬 강력했지만, 개발 속도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느렸다.

슬루트만은 자신의 기술을 갈고닦기 시작했다. 단기 매출에 좀 더 집중하며 제품을 개선했고, 파산을 막기 위해 현금을 모집했다. 그 결과 데이터 도메인은 무려 4년간 연 200% 성장세를 이어갔고, 2007년 나스닥에 상장되던 날에는 주가가 66% 급등했다. 2년 뒤에는 EMC가 경쟁업체 넷앱(NetApp)과 입찰 경쟁을 벌인 끝에 24억 달러를 주고 회사를 인수해갔다.

인수를 통해 성공적으로 ‘엑시트’를 이룬 슬루트만은 2011년부터 자신이 활약할 수 있는 다른 기업을 찾아 나섰다. 그가 택한 회사는 당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산타클라라의 소프트웨어 스타트업 서비스나우(ServiceNow)다. 억만장자 프레드 러디(Fred Luddy)가 창업한 서비스나우는 긍정적 현금흐름에 매출이 2배나 성장하고 있었지만, 직원이 부족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슬루트만은 “피가 부족한 상태”라고 표현했다. 투자자인 세쿼이아는 세계 최대 기업들을 공략할, 영업팀 구축 경험이 많은 중역을 원했다. 포브스 ‘마이더스의 손’ 순위에 오른 투자자이자 세쿼이아 공동 리더였던 더그 레온이 참여했던 이사회는 슬루트만을 찾아내 데이터 도메인을 구해준 것처럼 서비스나우를 발전시켜달라고 부탁했다. 2018년 포브스 인터뷰에서 러디는 “프랭크 덕분에 우리는 덩치만 컸던 스타트업에서 덩치가 큰데도 순조롭게 돌아가는 조직으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이전처럼 슬루트만은 영업에 먼저 집중하고 이를 바탕으로 상품을 개선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존슨앤드존슨을 비롯한 대기업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그는 (회의실에서 CEO들을 흥분시킬 일이 거의 없는) 업무지원용 IT 솔루션에서 CIO(최고정보책임자)가 필요로 하는 툴은 모두 줄 수 있는 서비스로 사업을 재정의했다. 슬루트만이 합류하고 약 1년 뒤 서비스나우는 뉴욕증시에 상장했다. 그 과정에서 투자자들은 그의 거친 리더십 스타일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이사회 회의 중 레온이 슬루트만의 말을 가로막고 요청하지도 않은 충고를 건네는 실수를 저지른 적이 있다. 그러자 슬루트만은 이렇게 답했다. “더그, 말해줘서 고맙군요. 이사회회의 진행 방식을 제가 한번 말해볼까요? 이사회의 임무는 CEO 선임 또는 해임입니다. 제가 일을 못하면, 당신이 나서서 해고할 수 있죠. 그런데 그런 경우를 제외하면, 회사는 제가 나서서 경영하는 겁니다.”

슬루트만이 보여준 ‘맘에 안 들면 나가’라는 식의 태도는 2019년 4월 26일 스노플레이크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파란을 일으켰다. 스노플레이크 공동 창업자 베노아 데이지빌과 티에리 크루안스가 마이크로소프트(MS) 출신의 밥 무글리아 CEO에게 더는 그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불과 몇 시간 전에 통보했기 때문이다. 이 결정이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스노플레이크가 어떤 기준에서도 힘든 상황에 처해 있지 않았고, 업계에서 명성이 자자한 무글리아는 좋은 평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노플레이크는 2012년 8월 오라클에서 데이터베이스 전문가로 일했던 프랑스 출신의 데이지빌과 크루안스가 공동으로 창업했다. 주요 투자사는 서터힐이다. 서터힐에서 벤처투자자로 있었던 마이크 스파이서는 스노플레이크의 첫 CEO가 됐다. 스노플레이크는 AWS가 데이터 스토리지를 서비스로 관리해주는 것처럼 고객사들이 자사 서버에서 직접 호스팅했던 데이터 웨어하우스를 서비스로 제공할 수 있다고 약속했다. 클라우드의 유연한 컴퓨팅 아웃풋을 하나의 거대한 슈퍼컴퓨터로 활용하는 스노플레이크 소프트웨어는 소비자 정보와 제품 매출, 직원 간접비 등 날로 증가하는 고객사의 엄청난 데이터를 파악하고 조직한 후 저렴하고 신속하게 의미를 찾아내어 데이터의 유용성을 유의미하게 개선할 수 있다.

2년간 조용히 소프트웨어 판매에 집중하던 스파이서 CEO는 2014년 자신의 후임으로 무글리아를 영입했다. 스티브 발머가 사티아 나델라를 CEO로 임명하기 전 MS 사장 4명 중 한 명이었던 무글리아는 대단한 능력자였다. 그는 스노플레이크를 시장에 선보이기 위해 빠르게 움직이며 AWS처럼 구독형 대신 사용한 만큼만 요금을 내는 초당 요금제를 설정한 후 아마존 경쟁 제품인 레드시프트 고객을 대상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해피 홀리-데이터’처럼 진부하지만 익숙한 문구를 담은 옥외 광고판이 실리콘밸리 주요 고속도로인 101번 국도를 따라 늘어섰다. 포브스는 무글리아가 해고되기 1년 전인 2018년 초 뉴욕 호텔에서 그와 조찬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있다. 이때 가트너의 한 애널리스트가 휴가 중 무글리아의 인터뷰를 목격하고 바로 끼어들어 열렬한 팬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위워크의 메가톤급 IPO 시도가 무위로 돌아가며 시장이 차갑게 식기까지 불과 몇 개월 남은 그때, 스노플레이크는 기술업계의 또 다른 실패 사례로 처절한 교훈을 남기기 직전이었다. 아마존과 그 경쟁업체들로부터 클라우드 저장 공간 크레디트를 매입하는 동시에 자체 소프트웨어를 운영했기 때문에 엄청난 돈이 지출되고 있었다. 호주를 비롯한 신시장으로 진출하는 중이어서 비용은 더욱 확대되고 있었다. 오라클, 테라데이터를 비롯한 다른 데이터베이스 업체보다 더 신속하게 클라우드 데이터 웨어하우징을 제공할 수 있는 스노플레이크의 기술은 틈만 나면 레드시프트, 구글 빅쿼리, MS 애저 시냅스의 도전을 받았고, 이 때문에 회사는 R&D에 지속적으로 엄청난 투자를 해야 했다. 조용히 사업을 진행했던 초기 2년 동안은 투자금이 500만 달러를 약간 상회했지만, 기업가치가 18억 달러로 늘어난 2018년 초에는 비용 충당을 위해 5억 달러를 모집해야 했다. 그리고 9개월 후 회사는 기업가치를 40억 달러로 평가받고 또다시 투자금 4억5000만 달러를 모집했다.

자본을 먹어 치우는 속도가 빨라지자 불안해진 스파이서는 자신이 투자했던 또 다른 회사 퓨어 스토리지 이사회에서 알게 된 슬루트만에게 접근해 스노플레이크 이사회에 들어올 수 있는지 의사를 타진했다. 2017년 서비스나우의 시가총액을 140억 달러(시가총액은 이후 7배로 성장)로 키운 슬루트만은 캘리포니아 프로요트 경주 주최를 위해 뛰며 몬태나 목장에서 자연보존 및 동물복지 재단을 운영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그는 매우 무료한 상태였다. “절대 은퇴하지 않는 쿼터백이 많지 않습니까. 그들의 마음을 공감할 수 있어요.” 그가 말했다.

슬루트만이 스노플레이크 CEO직에 관심이 있음을 표명하자 세쿼이아와 서터힐이 뛰어들었다. 언론 앞에 좀처럼 나서지 않는 스파이서는 오랜만에 언론 인터뷰에서 무글리아를 해고하는 결정이 매우 어려웠다고 밝혔다. “회사를 역대 최고의 ‘게임 체인저’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면 그 기회를 잡아야죠.”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쿠데타나 다름없는 결정을 발표하는 날까지 아무도 무글리아에게 내용을 알려주지 않은 것이다. 무글리아는 포브스 인터뷰에서 스노플레이크를 떠나던 날을 처음으로 소회하며 충격을 극복하기까지 수개월이 걸렸다고 말했다. “돈을 쓰라고 말한 건 이사회입니다. 이사회가 경영 방향을 강력히 지지했기 때문에 확신을 가지고 했던 일이에요”라고 말한 무글리아는 그가 떠난 후 스노플레이크의 지출이 전반적으로 더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저는 이걸 ‘술 취한 선원’의 돈 쓰기라고 표현했습니다. 제가 ‘지금 술 취한 선원처럼 돈을 쓰고 있다’고 말하면 이사회는 ‘맞다, 계속 그렇게 하자’고 답했습니다. 그 방향이 맞기도 했고요.”

어쨌든 슬루트만의 시대가 시작됐다. 처음 몇 주간 슬루트만은 자신의 단출한 사무실로 중역들을 한 명씩 불러 면담했다. 그동안 회의실에서는 슬루트만에게 처음 CEO직을 제외했던 스파이서가 그를 대신해 회의를 주관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슬루트만은 과거 했던 기술을 그대로 되살려 작업에 착수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대기업 고객을 중소기업과 구분하여 영업팀을 재정비하고 덩치 큰 고객을 낚는 데 집중한 것이다. 그다음에는 사무실 암투를 즐기는 것처럼 보이거나 자신의 말을 그대로 실천하지 않는 사람과 바로 작별했다. 그러고는 데이터 도메인과 서비스나우에서 자신의 최고 부관이었던 두 사람, 마이크 스카펠리와 셸리 비건을 영입해 각각 재무와 HR 총괄을 맡겼다. 슬루트만의 틀에 맞지 않거나 그의 방식을 따르는 상사와 맞지 않는 중역이나 영업 대표들은 다 내보냈다.

딱 한 달이 지나자 스노플레이크는 슬루트만 통치 아래 성과 기반 기업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체계적인 영업조직에서 경험이 부족했던 최고매출책임자 크리스데그난은 슬루트만의 결단에 따라 경험이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회사를 떠나야 했다.

스카펠리는 스노플레이크의 재무 개선에 착수했다. 스노플레이크는 아마존과 같은 요금제를 적용했기 때문에 고객들이 손쉽게 서비스 사용을 늘릴 수 있다. 그러나 부작용도 있다. 이들 기업의 요금이 빠르게 증가하면 나중에 청구된 요금을 보고 뒤늦게 충격을 받을 수 있고, 스노플레이크 입장에서도 향후 매출을 정확히 예측하기가 어려웠다. 좀 더 월스트리트 구미에 맞는 회사로 만들기 위해 스노플레이크는 대형 고객들을 대상으로 불필요한 보고서 작성이 어디에서 돈 낭비로 이어지는지 분석해주기 시작했다. 모델링을 개선하고 대형 고객에 우선순위를 두면서 고객의 이용량 증가나 계약 여부를 예측하기도 좀 더 수월해졌다.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됐을 때 스노플레이크는 이미 준비된 상태였다. 2월 초 세일즈포스 등 투자자로부터 4억7900만 달러 모집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여행 등 피해 산업은 계약 재협상 없이 사용을 줄이기만 하면 되고, 전자상거래나 식품 배달에서는 수요가 5배로 급증했기 때문에 스노플레이크의 전체 매출은 코로나19 이후에도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았다. 그래도 슬루트만은 긴축 모드에 돌입해 상품과 엔지니어링, 영업, 법무 등 매출을 주도하는 부문에 자원을 집중하고 마케팅처럼 덜 급한 부문에 들어가는 자원을 줄였다. “‘아메리카스컵’에 참여해 요트 경주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 매일 속도를 높이는 것”이라고 스노플레이크의 데니스 퍼손 CMO가 말했다. “조직 전체가 한곳을 바라보도록 하는 게 관건입니다.”

아직까지 스노플레이크는 경쟁자들을 앞서고 있다. 애널리스트들은 아마존 등 거대 기술기업과의 정면 승부에서 스노플레이크가 계속 이기고 있다고 말한다. 향후 회사가 좀 더 성장하면 더 많은 요금을 받을 수 있고, 이는 운영비용을 낮춰줄 것이다.

스노플레이크의 가장 큰 업적은 회사가 지금의 데이터 웨어하우스에서 데이터 허브형 ‘스노플레이크 2.0’으로 성장하여 정보 공유, 앱 개발, AI툴 데이터 입력 등을 안전하게 (또 일시적으로) 지원할 수 있음을 외부 전문가와 내부 직원에게 보여줬다는 것이다. 사업 방식을 바꾸면 공략 가능한 시장의 규모는 140억 달러에서 810억 달러로 늘어난다고 스노플레이크는 말했다. 이 변화는 계속 진행 중이다. 슬루트만은 억만장자가 된 공동창업자 데이지빌에게 이 프로젝트의 진두지휘를 맡겼다. 외부 애널리스트들은 슬루트만이 결국 길을 찾아낼 것이라 믿는다. “지금은 아주 규모가 큰 대기업들이 최소 5년은 함께할 협력업체를 찾고 있다”고 도이체방크의 패트릭 콜빌이 말했다. “그런 기업들에 아주 좋은 길을 보여주는 셈입니다. 그들이 (스노플레이크를) 선택하기가 훨씬 쉬워졌어요.”

그러나 예상치 못한 난관도 있다. 스노플레이크의 주가는 슬루트만의 예상치를 훌쩍 넘어서 1월 중순 기준 2021 회계연도 추정 수입의 140배에 거래되고 있다. 시장에서 총애를 받는 또 다른 클라우드 업체 크라우드스트라이크, 옥타, 줌보다 높은 멀티플이다. 스노플레이크가 제대로 된 실적을 내지 못하거나 회사를 둘러싼 과열이 진정되고 나면 IPO에서 돈을 번 직원들은 더는 회사에 남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 정도 멀티플은 1999년 인터넷 버블 이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수준”이라고 크레디트스위스 애널리스트 브래드 젤닉이 말했다.

CEO가 되기 위해 너무 치열하게 노력했기 때문인지, 슬루트만은 다른 일을 할 줄 모른다. 그래서 IPO를 마친 다음 날, 바로 업무에 돌입하며 중역들에게 다음 분기와 그 이후 사업계획을 보고하라고 요구했다. “별로 들뜨지 않습니다.” 그가 말했다. “제 눈은 항상 저 멀리 있는 지평선에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죠.”

특대형 상장 - 스노플레이크 IPO는 소프트웨어 부문에서 사상 최대, 미국에 본사를 둔 기술기업 전체에서는 5위를 기록했다.

뜨거운 IPO 열기 - IPO 열풍이 25년 만에 다시 시작됐다. 기업들은 IPO와 이를 변용한 스팩(SPAC: 기업인수목적회사)을 통해 엄청난 자금을 모집하며 닷컴 거품 당시 고점에 가까워지고 있다.

※ 짧은 은퇴 생활 동안 슬루트만은 52피트급 요트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으로 경주에 참여했다. “실수를 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바로 티가 나기 때문에 항해를 좋아합니다.”

※ 2012년 서비스나우를 상장할 때는 뉴욕증권거래소에 나가 직접 벨을 울렸지만, 8년 뒤 스노플레이크 상장에서는 줌으로 벨을 울렸다. 그는 “IPO는 레이더에서 ‘삐빅’ 하고 올라가는 신호이자 마라톤에서 1마일을 달렸음을 알리는 표시”라고 말했다.

※ 스노플레이크 공동 창업자 데이지빌과 크루안스는 주식시장의 각종 풍파를 뚫고 가기 위해 슬루트만과 스카펠리 CFO를 영입했다.

※ 동물보호 독지가인 슬루트만이 재택 회의를 할 때면 8개월 된 래브라도 강아지 ‘브리다’와 1살 된 골든리트리버 ‘퀸’, 10살 된 회색 얼룩무늬 고양이 ‘포샤’가 갑자기 화면에 들어올 때가 있다. 팩트체크를 위해 포브스와 진행한 회의도 예외는 아니었다.

- Alex Konrad 포브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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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호 (2021.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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