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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찬이 만난 부울경 혁신 리더(9) | 조인호 네오넌트 대표 

뿌리기술이 가져가야 할 영원한 화두 

장진원 기자
트렌디한 변신이 기업의 생존 조건으로 꼽힌다. 하지만 더 좋은 제품을 생산하겠다는 다짐은 제조업에 주어진 영원한 화두임이 분명하다. 정밀주조 전문 기업 네오넌트가 스마트팩토리 조성에 나선 이유이기도 하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해 12월 5일부터 3일간 ‘2022 스마트제조혁신대전’을 개최했다. 5일 열린 개막식에선 스마트 제조 혁신 유공자 및 단체에 대한 정부 포상이 이뤄졌는데, 경남 양산의 ‘네오넌트’가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네오넌트는 대표적인 ‘뿌리기술’ 중 하나인 정밀주조 전문 기업이다. 대한민국 산업 경쟁력의 주축인 자동차, 조선, 기계 등은 모두 주조와 사출, 프레스, 정밀가공 같은 뿌리산업이 든든해야만 최종 제품 단계에서 글로벌 수준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정부도 이러한 뿌리산업·기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2011년 ‘뿌리산업 진흥과 첨단화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2012년 국가뿌리산업진흥센터를 설립하는 등 지원에 나선 지 오래다.

네오넌트는 부울경 지역 중소·중견 제조기업 중 대표적인 스마트팩토리 혁신 사례로 꼽힌다. 이번 대통령 표창도 그간의 노력을 인정받은 결과다. 흔히 ‘3D 업종’으로 불리는 주조산업은 사람의 손이 많이 가는 공정 특성과 소규모 사업체가 많다는 등의 이유로 스마트팩토리 적용이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네오넌트는 이러한 한계를 넘기 위해 지속적인 투자와 실천을 이어왔다. 지난 2016년부터 자동차 및 산업기계 등에 들어가는 정밀주조 부품 생산을 위해 스마트공장 구축을 시작해 고도화(중간 1단계) 수준의 스마트 시스템을 도입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2021년에는 ‘K-스마트 등대공장’에도 선정돼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기반의 고도화된 스마트공장(중간 2단계)을 구현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열악환 환경에 놓인 뿌리기업도 제조 혁신을 통해 얼마든지 스마트한 혁신을 이뤄낼 수 있다는 모범 사례로 꼽히는 이유다. 최영찬 선보엔젤파트너스 대표가 조인호 네오넌트 대표를 만나 제조업의 스마트 혁신 과정과 미래를 물었다.

네오넌트는 정밀주조라는 뿌리기술 기업 가운데 스마트팩토리를 실현한 흔치 않은 사례다. 소개를 부탁한다.

말 그대로 우리는 주조산업, 그중에서도 정밀주조 전문 기업이다. 레고블록 완성품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가령 백화점에 전시된 레고 우주선에는 홈이 3, 4, 5개씩 나 있는 범용 블록이 많이 쓰인다. 하지만 우주선을 만들려면 이런 일반적인 블록 말고, 특수한 형태의 개별 블록이 있어야 한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정밀주조 기술을 활용해 이런 특수 부품을 만들어낸다.

정밀주조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궁금하다.

일반적으로 가장 오래된 주조 공법은 사형주조다. 모래에 쇳물을 붓는 방식을 말한다. 네오넌트는 모래틀 대신 왁스를 이용해 사출하는 방식이다. 왁스는 양초 같은 파라핀 재질로, 그 위에 8번 정도 여러 차례 코팅을 한다. 열과 압력을 가하면 왁스, 즉 파라핀 성분이 녹으면서 빠져나가고 남아 있는 코팅 자체가 틀이 된다. 이렇게 코팅한 틀을 도자기처럼 열에 구워 단단하게 만들면 1600℃ 쇳물에도 견딜 수 있는 그릇이 된다. 여기에 쇳물을 부어 원하는 부품을 만들어내고 코팅된 주물을 깨뜨려 제거(탈사)한다. 주조 자체를 우리가 새로 개발한 것도 아니고, 이미 신라시대에 왕관을 제조할 때도 썼던 방법이다. 원청사에서 정밀주조가 필요한 특수 부품 제조를 의뢰하면 고객사와 만나서 어떤 제품인지, 제조가 가능한 부품인지를 논의해 생산을 결정한다.

네오넌트만의 경쟁력은 어디서 나오나?

정밀주조 공법은 우리나라나 미국, 중국이 모두 엇비슷하다. 네오넌트가 경쟁사에 비해 지닌 강점은 주조공법 자체보다는 자동화에 있다. 주조공법은 자동화 적용이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일일이 사람의 손으로 해야 하는 공정이 많아 한계가 있다. 우리도 전체가 아닌 코팅 등 공정 부분별로 자동화를 이뤄내고 있다. 자동화라는 말에는 안정적이고 표준화됐다는 뜻이 담겨 있다. 사람에 의해 좌우되는 게 적다는 뜻이다. 그게 우리의 경쟁력이다. 같은 공법이라도 자동화시스템을 적용하면 생산량 자체가 기존 방식보다 많고 효율도 좋을 수밖에 없다. 또 네오넌트에는 오래 일하신 분이 많다. 그분들의 노하우도 우리의 경쟁력이다.

공정 자동화가 곧 스마트팩토리를 뜻하는 건 아니잖나?

맞다. 사실 나 역시 스마트팩토리에 관심을 둔 지 얼마 안 됐다. 용어 자체도 잘 몰랐다. 정밀주조는 대표적인 3D 업종이다. 투입해야 할 사람은 많은데, 힘든 작업 환경 때문에 갈수록 인력 수급이 어려워지고 있다. 네오넌트 전에도 철판을 프레스로 찍어 자동차 차체를 만드는 회사를 경영했다. 일종의 뼈대를 만드는 작업인데, 자동차 차체는 로봇이 프레스 작업과 용접까지 다 해낸다. 국내 산업 가운데 자동화가 가장 잘된 분야가 바로 자동차 차체 프레임이다. 이를 접하다 보니 산업로봇과 자동화에 눈이 뜨이기 시작했다. ‘정밀주조에도 자동화시스템을 접목하면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겠구나’ 싶었고 그게 시작이었다.

제품 자체보다 생산 기술력 확보가 답


본격적인 자동화·스마트팩토리 추진은 언제부터였나?

네오넌트가 양산에 자리 잡은 건 2014년이다. 그전까지는 부산 사상에 있다가 기업 규모가 커지면서 이전을 결정했다. 이를 계기로 사상에 있던 시설을 그대로 옮겨오기보다 자동화를 시도해보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코팅 라인부터 하나하나 시작했다. 사실 정밀주조 전문기업이 국내에 많지 않다. 이 말은 곧 정밀주조 관련 설비업체나 인프라 자체가가 적다는 의미다. 그러니 벤치마킹할 수 있는 자동화시스템이 있을 리 만무했다. 부산에서 쓰던 시설을 그대로 이전하면 250명가량이 있어야 하는데, 자동화를 하면 몇십 명 수준으로 줄일 수 있었다. 인건비를 아끼는 차원이 아니다. 현장에서 일할 사람을 구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가보지 않은 길이니, 시행착오도 많았겠다.

물론이다. 어떤 장비는 개발하는 데만 2년이 넘게 걸렸고 일단 개발을 끝낸 장비도 버전 3까지 다시 만든 경우도 있다. 기존 장비나 설비가 하나도 없고, 모두 우리 현장에 맞는 방식으로 커스터마이징해야 하니 그만큼 어려웠다.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답답한 마음도 컸다.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스마트 혁신을 지속하는 이유는 뭔가?

차체 프레스 시절로 돌아가보자. 당시 자동차부품 기업의 CEO들, 나와 같은 젊은 2세들이 수시로 모여 세미나를 열었다. 앞으로 산업의 방향이 어떻게 갈지, 어떻게 효과적으로 대응할지 고민과 계획을 나누는 자리였다. 그때부터 ‘우리의 경쟁력은 어디서 나오나’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우리는 원청의 주문을 받는 협력업체 아닌가. 결국 제품이 아닌 공장 단위의 경쟁력에 답이 있다고 봤다. 생산력과 경쟁력 있는 공장을 어떻게 만들까? 다시 말해 생산기술력 확보가 답이었다.

대기업도 하기 어려운 게 스마트팩토리인데.

처음엔 당연히 우리 돈을 들여 시작했다. 자동화에 중점을 두고 진행하고 있었는데, 마침 정부에서 스마트팩토리 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현재 네오넌트 생산시스템이 2014년 시작 무렵보다 훨씬 더 고도화된 배경이다. 우리가 모든 경쟁사를 정말 압도적으로 넘어설 기술력을 보유했다고 장담할 순 없지만, 정밀주조 같은 3D 산업에서 스마트팩토리 구축을 시도한 사례가 거의 없다. 우리도 완성형은 아니다. 여전히 사람의 손이 가야 하는 공정도 많지만, 하나하나 계속해서 고도화해가려 노력하고 있다.

실제 현장에서 스마트팩토리가 어떻게 구현되는지 궁금하다.

로봇이나 자동화 기계를 적용하는 게 스마트팩토리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것도 중요하지만, 공정 자체를 시스템화하는 게 핵심이다. 과거의 주먹구구식 생산관리에서 벗어나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분석해 생산 계획을 수립하고 작업을 지시하는 거다. 예를 들어 사출기 20대의 현재 생산율이 84%이고, 현장 작업자별로도 A는 100%, B는 90%처럼 공정률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아침에 출근하면 공정별 생산량, 납품 시기에 맞춘 공정률 등을 바로바로 체크할 수 있다. 우리 생산 계획과 실제 생산량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런 시스템을 갖추기 전에는 일일보고서 하나 작성하는 데 사흘씩 걸렸다. 오늘 아침에 보는 보고서가 3일 전 자료인 셈이다. 지금은 생산 기한에 따른 제조 현황, 재고 현황, 불량률, 생산 계획 및 적정 수준까지 실시간 확인이 가능하다. 스마트팩토리를 구현하면서 가장 많이 달라진 점이 바로 데이터화다.

중소·중견 부품사가 굳이 이런 어려움을 감수하냐고 묻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네오넌트는 자동차 부품사냐, 그도 아니면 조선 기자재 쪽이냐고 묻곤 하는데, 우리는 말 그대로 정밀주조 기업, 즉 뿌리산업이다. 자동차만 해도 1·2·3차 협력사가 있다. 우리가 생산한 부품만으로 보면 네오넌트는 4차, 5차 협력사다. 그러나 정밀주조를 원한다면 업종을 굳이 가리지 않는다. 제조 생태계로 보면 아마 플랑크톤 정도일 거다. 제조든 그 외 어떤 업종이든 생태계 자체가 다양하고 풍성해야 좋다. 플랑크톤이라는 양질의 먹이가 존재하면 전체 제조사의 역량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정밀주조는 제조업의 영원한 뿌리기술


어떤 비즈니스든 사명과 현실은 다르다는 게 기업가의 고민인 것 같다.

정확한 지적에 공감한다. 정밀주조 부품이 필요하다는 고객사를 실제로 만나보면 실제 제품 생산까지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처음 설계 단계부터 함께하는 게 아니라, 이미 필요한 설계를 마친 후 ‘가능한지 아닌지’만 확인하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같이 논의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꼭 우리와 거래하지 않더라도, 정밀주조 부품 설계와 개념부터 함께 논의하다 보면 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 우리가 그런 역할을 계속해가길 바란다.

앞으로 네오넌트만의 정밀주조 산업을 어떻게 키워갈 계획인가?

정밀주조에도 초부가가치 영역이 있다. 우주항공, 인공관절 같은 분야다. 우주항공은 미국 등이, 인공관절은 독일 같은 나라가 절대우위다. 중국도 달에 로켓을 쏘는 나라니 이 분야에서 정밀주조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에 비해 네오넌트는 아직 자동차부품, 일반기계 등 커머셜 비즈니스라 할 수 있다. 한국은 아직 우주항공이나 인공관절 같은 시장이 제대로 열리지 않았다. 우리 같은 뿌리산업과 전방산업이 다 같이 고도화되면 좋겠다. 그게 한국 전체 산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길이다.

정밀주조는 앞서 말했듯 신라시대 때도 있었다. 인류가 쇠를 다루는 한 계속 가야 할, 그야말로 뿌리기술이다. 그런데 요즘은 기업도 너무 트렌드만 좇는 게 아닌가 싶다. 다들 재빠른 변신만이 기업의 생존 비결이라 생각한다. 사실 나도 헛갈린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제조기업이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기업도 분명 필요하다. 앞으로 정밀주조가 사라지면 모르겠지만 그럴 일은 없다. 결국 끝없는 생산기술 고도화가 내가 끝까지 가져가야 할 화두다.

※ 최영찬 대표는… 선박과 플랜트 분야 제조업을 영위하는 선보공업의 차세대 경영인이다. 제조업체들이 스타트업 및 투자 생태계와 어떻게 공존하고 미래 사업을 만들지 고민하면서 선보엔젤파트너스와 기업 연합형 CVC인 라이트하우스를 창업했다. 200여 개 스타트업에 투자했으며, 컴퍼니빌딩 프로젝트와 기존 포트폴리오 기업을 공동경영 형태로 성장시키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창업한 2개 법인과 별도로 3개 프로젝트의 공동대표로도 활동하면서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가고 있다.

- 정리=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사진 최재승 객원기자

202301호 (2022.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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