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부정할 수 없었기에 버텼다”이 장관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 대학원에서 수학과 석사, 수리과학과 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공계 학도다. 2000년 디지털 보안 솔루션 업체 ‘테르텐(Teruten)’을 창업한 뒤 IT·보안 전문가로서 능력을 인정받아 한국여성벤처협회장과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이후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 미래한국당(현 국민의힘) 비례대표로 당선돼 국회에 입성했다.어떻게 ‘태연자약’을 실천했나.평소 노자의 『도덕경』을 읽으며 마음을 다스린다. 틈날 때마다 읽는 편이다. 『도덕경』을 처음 읽게 된 건 대학원 박사과정이 끝날 즈음이었다. 당시는 집안 사정으로 정신세계와 철학 서적에 도취돼 있던 때였다. 이공계 학도로서 납득하기 힘들었던 수많은 일이 이 책 한 권으로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도덕경』은 주변 환경에 쉽게 흔들리지 않으면서도 유연하게 사고할 수 있도록 나를 단단하게 잡아주는 책이다. 오랜 세월 우리 곁에 있는 고전은 그 세월만큼 존재 이유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끔 정신 수련에 도움이 되는 티베트 서적도 읽는 편이다.장관으로서 중압감은 어떻게 해소하나. 태극권 실력이 아마추어 수준 이상이라고 들었다.오랜 기간 수련으로 체력을 단련해왔다. 하지만 요즘은 시간이 부족해 자주 하지 못한다. 태극권만큼이나 즐기는 건 라틴댄스다. 예전만큼은 자주 못 하지만 업무가 끝나면 활기찬 라틴댄스로 하루의 스트레스를 털어내곤 한다. 아무래도 직업이 여러 번 바뀌면서 스트레스와 긴장이 쌓일 수밖에 없었다.국회 의정활동 경험이 장관직에 도움이 됐나.짧게나마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면서 국가 경제를 넓게 바라보고 민생을 꼼꼼히 살피는 시야를 가지게 됐다. 무엇보다도 반대 입장을 설득하는 노하우를 배웠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정책으로 만들면 필연적으로 반대 의견에 부딪히게 된다. 의정활동 중 겪었던 설득 과정은 거의 끝장토론 수준이었다. 이때 체득한 설득 노하우가 장관으로서 정책을 추진해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관계 부처와 이해관계자, 여야 국회의원들을 직접 만나 설득해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약 7개월간 이뤄낸 성과 중 가장 자랑스러운 것은.‘납품대금 연동제’ 법안 통과가 기억에 남는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거래에서 원자재 가격에 변동이 있을 경우 납품단가에 반영하도록 했다. 국회 본회의에서 단 하나의 반대표 없이 통과됐다. 너무 울컥해서 얼얼할 정도였다. 이 법안은 중소·벤처업계의 14년 숙원 사업이었다. 장관에 오르면서 법안 통과에 가장 많은 공을 들였다. (14년 동안 이루지 못한 일을 7개월 만에 해낸 셈이다.) 법안 통과는 혼자 할 수 있는 수영이 아니다. 축구 같은 단체 스포츠다. 국회의원, 중소기업 단체, 관계 부처 등 모든 선수가 함께 뛰어준 덕분에 가능했다.이번 경기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나.우선 볼이 하프라인을 넘어가도록 노력했다. 매번 하프라인을 넘기지 못했기 때문에 법안 통과에 14년이나 걸린 것이다. 납품단가에는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존재하는데, 다방면으로 강한 압박이 들어왔다. 일부 경제단체들이 부작용을 우려해 반대 목소리를 강하게 냈다. 하지만 나 역시 20년간 기업인으로서 살아왔기에 법안의 필요성을 확신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멈추면 그동안의 삶 자체를 스스로 부정하는 셈이었다.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왜 현장을 바꿔야 하는지 이해관계자들을 일일이 만나 설명했다.벤처기업인 출신이기에 가능했던 일 같다.그렇다. 지하에 들어가본 사람만이 전달할 수 있는 현장의 생생함이 있다. 햇빛은 지하까지 도달하지 않는다. 그러면 지하에 창을 내는 수밖에 없다. 아니면 지하를 반지하로 올리거나. 더 나아가서 지하를 아예 없앨 수도 있다. 나는 지하가 얼마나 습한지, 얼마나 깜깜한지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기술 강자 독식의 시대, 중기부의 역할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한 소상공인 육성‘기업가형 소상공인’을 강조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소상공인도 기업가정신을 가지고 제품·서비스를 혁신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소상공인도 자립할 수 있다고 본다. (기업가정신은 무엇인가?) 도전정신과 창의성을 토대로 자신만의 성장 스토리를 만들며 신뢰를 쌓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신뢰다. 비즈니스는 인간관계에서 출발하고 인간관계는 신뢰에 기반한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책임감 있는 일을 맡기면서 금전이 오갈 수 없다. (육성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피칭(투자유치 발표) 실력을 갖춘 소상공인을 육성하려고 한다. ‘강한 소상공인 오디션’, ‘소상공인 쇼케이스데이’ ‘소상공인 IR대회’ 등을 개최했는데 반응이 좋았다.성공한 창업가, 협회장, 국회의원을 거쳐 중기부 장관까지 왔다. 기업경영과 자기 경영은 어떻게 다른가.다르지 않다. 끊임없이 목표를 향해 달려가려는 신념이 중요하다. 인생은 예측할 수 없지 않나. 기업경영과 협회·정부 부처 운영도 마찬가지다. 예측하지 못한 상황과 어려움 속에서 목표 달성을 위해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관철하려면 신념이 있어야 한다. 내 삶의 모토를 요약하자면 ‘흔들리지 않는 뚝심’이라 할 수 있다.한때 사업이 어려운 적이 있었는데 선배 한 분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기업을 흥하게 하는 건 운이고 기업을 망하게 하는 건 실력이다. 운이 올 때까지 실력으로 기업을 지켜라.” 요행을 기대하란 말이 아니라 초심을 잃지 않고 뚝심으로 일을 밀고 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도덕경』의 가르침과 비슷한 맥락이다.2023년의 계획은.크게 두 가지다. 위기 대응과 성장 촉진이다. 3중고 복합위기에 선제 대응하기 위해 위기 수준별 대응 전략을 마련하고 기업 맞춤형 지원 방안을 구상할 계획이다. 또 디지털경제 시대에 중소·벤처기업과 소상공인이 주역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초격차·딥테크 분야 유망 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할 방침이다. 디지털 격차 해소를 위해 소상공인과 전통시장의 스마트화에도 힘쓰려고 한다. 아직 실체가 불분명하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오고 있다. 그 변화의 바람에 중기부가 서 있겠다. 힘을 실어달라. 2023년, 한두 가지라도 기업인의 눈높이에 맞는 의미 있는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겠다.
※ 이영 1969년 출생광운대 수학 학사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KAIST) 수학 석사한국과학기술원 수리과학과 박사2010년 IT보안 전문업체 테르텐 설립2015년 한국여성벤처협회장, 한국무역협회 부회장2017년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부회장2020년 제21대 국회의원(국민의힘)2022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노유선 기자 noh.yousun@joongang.co.kr·사진 임익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