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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고난을 겪어본 장관만이 할 수 있는 일 

노유선 기자
2022년 5월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고리타분한 취임식 대신 흰 셔츠에 검정 운동화를 신고서 ‘비전 발표 프레젠테이션(PT)’을 선보였다. 국회의원직 사임 후 새롭게 도전한 자리였다. 그는 “20년간 IT 벤처를 운영했던 공학도로서 국회는 참 낯선 곳이었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것 같았다”고 했다. 8개월 차 장관인 지금, 그에게 중기부는 어떤 곳인지 물었다.

국회의원 시절 ‘디지털’, ‘데이터’, ‘과학’이란 단어를 입버릇처럼 말하던 이영(54)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 장관이 처음 내정됐을 때 기대가 큰 만큼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정보기술(IT) 벤처기업가 출신인 그를 두고 ‘4차 산업혁명 시대 맞춤형 장관’이란 반응이 전반적이었지만,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스타트업을 두루 아우르는 부처 장관으로 적합하냐는 의문도 적지 않았다.

이에 보란 듯이 이 장관은 취임 후 첫 현장 행보로 서울 종로구에 있는 통인시장을 택했다. 그는 “지금까지의 경력처럼 평소 디지털전환에 관심이 많은 것도 사실”이라며 “하지만 시기가 시기인 만큼 소상공인의 목소리를 먼저 경청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여파가 가시기도 전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물가·고금리·고환율 3중고가 닥쳐왔던 시기다. 이후에도 이 장관은 소상공인 피해 회복을 위한 고삐를 놓지 않음으로써 세간의 우려를 불식했다.

2022년 12월 9일, 어느덧 취임 8개월 차에 접어든 이 장관을 만났다. 그간의 소회를 묻자 “항상 강점으로 내세웠던 도전정신과 추진력만으로는 부족한 자리라고 생각한다”며 “현장의 어려움에 공감하는 따뜻함을 겸비하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답했다. 이 장관이 지급한 소상공인 손실 보전금은 약 23조원으로, 중기부 역대 최대 규모다. 이 외에도 납품대금 연동제 입법화, 기업가형 소상공인 육성을 위한 ‘쇼케이스데이’ 개최 등 다양하게 활약해왔다.

“뭐든 도전을 즐기는 성격이라 기업인에서 국회의원으로, 국회의원에서 부처 장관으로 역할이 바뀌는 데 주저하지 않았어요. 장관직 역시 녹록지 않더군요. 정책을 제안하면 무엇 하나도 처음부터 지지받는 경우가 없었어요. 그럴 때마다 가슴속에 ‘태연자약(泰然自若)’을 새기며 버텼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뚝심 있게 나아가자고 스스로를 다독였어요.”

“내 삶을 부정할 수 없었기에 버텼다”

이 장관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 대학원에서 수학과 석사, 수리과학과 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공계 학도다. 2000년 디지털 보안 솔루션 업체 ‘테르텐(Teruten)’을 창업한 뒤 IT·보안 전문가로서 능력을 인정받아 한국여성벤처협회장과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이후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 미래한국당(현 국민의힘) 비례대표로 당선돼 국회에 입성했다.

어떻게 ‘태연자약’을 실천했나.

평소 노자의 『도덕경』을 읽으며 마음을 다스린다. 틈날 때마다 읽는 편이다. 『도덕경』을 처음 읽게 된 건 대학원 박사과정이 끝날 즈음이었다. 당시는 집안 사정으로 정신세계와 철학 서적에 도취돼 있던 때였다. 이공계 학도로서 납득하기 힘들었던 수많은 일이 이 책 한 권으로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도덕경』은 주변 환경에 쉽게 흔들리지 않으면서도 유연하게 사고할 수 있도록 나를 단단하게 잡아주는 책이다. 오랜 세월 우리 곁에 있는 고전은 그 세월만큼 존재 이유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끔 정신 수련에 도움이 되는 티베트 서적도 읽는 편이다.

장관으로서 중압감은 어떻게 해소하나. 태극권 실력이 아마추어 수준 이상이라고 들었다.

오랜 기간 수련으로 체력을 단련해왔다. 하지만 요즘은 시간이 부족해 자주 하지 못한다. 태극권만큼이나 즐기는 건 라틴댄스다. 예전만큼은 자주 못 하지만 업무가 끝나면 활기찬 라틴댄스로 하루의 스트레스를 털어내곤 한다. 아무래도 직업이 여러 번 바뀌면서 스트레스와 긴장이 쌓일 수밖에 없었다.

국회 의정활동 경험이 장관직에 도움이 됐나.

짧게나마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면서 국가 경제를 넓게 바라보고 민생을 꼼꼼히 살피는 시야를 가지게 됐다. 무엇보다도 반대 입장을 설득하는 노하우를 배웠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정책으로 만들면 필연적으로 반대 의견에 부딪히게 된다. 의정활동 중 겪었던 설득 과정은 거의 끝장토론 수준이었다. 이때 체득한 설득 노하우가 장관으로서 정책을 추진해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관계 부처와 이해관계자, 여야 국회의원들을 직접 만나 설득해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약 7개월간 이뤄낸 성과 중 가장 자랑스러운 것은.

‘납품대금 연동제’ 법안 통과가 기억에 남는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거래에서 원자재 가격에 변동이 있을 경우 납품단가에 반영하도록 했다. 국회 본회의에서 단 하나의 반대표 없이 통과됐다. 너무 울컥해서 얼얼할 정도였다. 이 법안은 중소·벤처업계의 14년 숙원 사업이었다. 장관에 오르면서 법안 통과에 가장 많은 공을 들였다. (14년 동안 이루지 못한 일을 7개월 만에 해낸 셈이다.) 법안 통과는 혼자 할 수 있는 수영이 아니다. 축구 같은 단체 스포츠다. 국회의원, 중소기업 단체, 관계 부처 등 모든 선수가 함께 뛰어준 덕분에 가능했다.

이번 경기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나.

우선 볼이 하프라인을 넘어가도록 노력했다. 매번 하프라인을 넘기지 못했기 때문에 법안 통과에 14년이나 걸린 것이다. 납품단가에는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존재하는데, 다방면으로 강한 압박이 들어왔다. 일부 경제단체들이 부작용을 우려해 반대 목소리를 강하게 냈다. 하지만 나 역시 20년간 기업인으로서 살아왔기에 법안의 필요성을 확신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멈추면 그동안의 삶 자체를 스스로 부정하는 셈이었다.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왜 현장을 바꿔야 하는지 이해관계자들을 일일이 만나 설명했다.

벤처기업인 출신이기에 가능했던 일 같다.

그렇다. 지하에 들어가본 사람만이 전달할 수 있는 현장의 생생함이 있다. 햇빛은 지하까지 도달하지 않는다. 그러면 지하에 창을 내는 수밖에 없다. 아니면 지하를 반지하로 올리거나. 더 나아가서 지하를 아예 없앨 수도 있다. 나는 지하가 얼마나 습한지, 얼마나 깜깜한지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기술 강자 독식의 시대, 중기부의 역할


취임 당시 프레젠테이션에서 “국가, 정부는 기업의 (기술 변화)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디지털경제’를 비롯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정부 주도 방식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디지털경제에는 온갖 기술이 유기적으로 엮여 있다. 기술 강자 독식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시스템반도체가 있어야 컴퓨팅 파워를 유지할 수 있고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결합할 수 있다. 또 단말기에서 데이터를 긁어 모아 빅데이터를 확보해야만 AI 알고리즘으로 양질의 데이터를 도출해낼 수 있다.

인류 역사에서 산업혁명은 100년 주기로 돌아왔다. 이때 누가 기술을 선점하느냐가 향후 100년의 영화(榮華)를 결정했다. 지금이 바로 또 한 번의 변곡점이다. 기술변화 속도를 따라가려면 모든 선수를 경기장에 내보내 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술이 무한대로, 빠르게 발전할 수 있으려면 경기장에서 용기 있는 선수들이 마음껏 뛸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는 도태되지 않을까?) 정부가 모든 기업의 속도를 못 따라가는 건 아니다. 육성하고 보호해야 할 선수와 팀들도 분명히 있다. 경기장 뒤에서 질서를 잡아주고 부상자를 치료해주며 필요한 자원을 지원해주는 등 후속 조치를 취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중기부는 어떤 조치를 마련했나.

2022년 9월 ‘K-스타트업 글로벌 진출전략’을 발표했다. 디지털 시대에는 국경이 없다. 한국의 벤처·스타트업이 내수시장을 넘어설 수 있도록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고 봤다. 물론 한국 벤처·스타트업 생태계는 투자금이 상당량 유입되면서 과거에 비해 크게 성장했다. 하지만 글로벌시장에서 살아남기엔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내 스타트업들은 글로벌 진출 시 자금, 유통망·판로, 네트워크, 인력 등 다방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이 디지털경제를 선점할 수 있도록 중기부가 지원사격에 나섰다.

스타트업 혹한기라고 한다. 투자가 많이 줄었는데.

그렇다. 2022년 6월쯤부터 벤처투자 심리가 위축됐다. 이럴 때 중기부가 나서야 한다고 봤다. 지난 11월 내놓은 ‘역동적 벤처투자 생태계 조성방안’이 대표적이다. 민간자본이 유입되려면 각종 세제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법인 출자자의 세액공제(최대 8%)와 개인 출자자의 소득공제(10%), 민간 벤처모펀드 운용사의 부가세 면제 등 다양한 혜택을 마련했다. 또 투자 손실 발생 시 민간 출자자에 대한 우선손실충당 비율을 10%에서 15%로 높였다.

2010년 IT 벤처기업을 창업했다. 미래 창업가에게 조언을 한다면.

이젠 ‘패자’라는 말이 무의미하다고 전하고 싶다. 창업 선진국을 보면 기본적으로 3~4번 만에 창업에 성공하는 경우가 많다. 경험은 어디 가지 않는다. 거듭 쌓이다 보면 결실로 이어진다. 시도의 성과가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남은 인생이 박탈되는 것은 아니다. ‘실패’라는 단어에 관대해지길 바란다.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한 소상공인 육성

‘기업가형 소상공인’을 강조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소상공인도 기업가정신을 가지고 제품·서비스를 혁신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소상공인도 자립할 수 있다고 본다. (기업가정신은 무엇인가?) 도전정신과 창의성을 토대로 자신만의 성장 스토리를 만들며 신뢰를 쌓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신뢰다. 비즈니스는 인간관계에서 출발하고 인간관계는 신뢰에 기반한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책임감 있는 일을 맡기면서 금전이 오갈 수 없다. (육성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피칭(투자유치 발표) 실력을 갖춘 소상공인을 육성하려고 한다. ‘강한 소상공인 오디션’, ‘소상공인 쇼케이스데이’ ‘소상공인 IR대회’ 등을 개최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성공한 창업가, 협회장, 국회의원을 거쳐 중기부 장관까지 왔다. 기업경영과 자기 경영은 어떻게 다른가.

다르지 않다. 끊임없이 목표를 향해 달려가려는 신념이 중요하다. 인생은 예측할 수 없지 않나. 기업경영과 협회·정부 부처 운영도 마찬가지다. 예측하지 못한 상황과 어려움 속에서 목표 달성을 위해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관철하려면 신념이 있어야 한다. 내 삶의 모토를 요약하자면 ‘흔들리지 않는 뚝심’이라 할 수 있다.

한때 사업이 어려운 적이 있었는데 선배 한 분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기업을 흥하게 하는 건 운이고 기업을 망하게 하는 건 실력이다. 운이 올 때까지 실력으로 기업을 지켜라.” 요행을 기대하란 말이 아니라 초심을 잃지 않고 뚝심으로 일을 밀고 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도덕경』의 가르침과 비슷한 맥락이다.

2023년의 계획은.

크게 두 가지다. 위기 대응과 성장 촉진이다. 3중고 복합위기에 선제 대응하기 위해 위기 수준별 대응 전략을 마련하고 기업 맞춤형 지원 방안을 구상할 계획이다. 또 디지털경제 시대에 중소·벤처기업과 소상공인이 주역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초격차·딥테크 분야 유망 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할 방침이다. 디지털 격차 해소를 위해 소상공인과 전통시장의 스마트화에도 힘쓰려고 한다. 아직 실체가 불분명하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오고 있다. 그 변화의 바람에 중기부가 서 있겠다. 힘을 실어달라. 2023년, 한두 가지라도 기업인의 눈높이에 맞는 의미 있는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겠다.

※ 이영
1969년 출생
광운대 수학 학사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KAIST) 수학 석사
한국과학기술원 수리과학과 박사
2010년 IT보안 전문업체 테르텐 설립
2015년 한국여성벤처협회장,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2017년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부회장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국민의힘)
2022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 노유선 기자 noh.yousun@joongang.co.kr·사진 임익순 객원기자

202301호 (2022.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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