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한 마케팅이나 펀딩 없이 자본금 1억5000만원으로 시작해 론칭 1년 만에 매출 132억원을 올리며 명품 이커머스 플랫폼의 다크호스로 등장한 스타트업이 있다. 차별화된 큐레이션, 브랜딩을 앞세워 포화 상태의 명품 이커머스 시장을 예리하게 파고들었다. 이제 글로벌시장으로 영향력을 확대해 ‘파페치’에 대항하는 플랫폼이 되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드러냈다.
코로나19 여파로 소비시장이 크게 위축되었지만 명품만큼은 여전히 높은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꾹꾹 눌러둔 소비심리가 폭발하면서 ‘오픈런’으로 대표되는 보복 소비와 MZ세대의 과시형 소비 문화가 확산되며 명품시장의 세대 확장을 만들어냈다. 언택트 트렌드에 힘입어 명품 이커머스 시장도 호황을 맞았다.신생기업부터 대기업까지 뛰어들며 날이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명품 이커머스 시장에 후발 주자로 합류한 젠테는 국내 온라인 시장에서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며 주목받고 있는 플랫폼이다. 지난 2020년 4월 설립 이후 2년 만에 기업가치 500억원을 인정받으며 100억원 규모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2022년 상반기 매출만 171억원으로, 설립 첫해의 연 매출을 넘어서며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이러한 젠테의 행보가 화제를 모으는 이유는 ‘3세대 명품 플랫폼’을 지향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형태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1세대 플랫폼이 국내 명품 병행수입 업체를 모아놓은 입점형, 2세대가 병행수입 업체 입점과 해외 편집숍 크롤링, 직접 사입 방식이 공존하는 형태라면, 3세대는 해외 부티크로부터 직접 제품을 소싱하고 판매하는 플랫폼이다. 1세대, 2세대 플랫폼이 거쳐야 하는 복잡한 유통 과정이 생략돼 가격경쟁력을 확보하면서도, 모든 제품의 유통 과정을 직접 컨트롤해 최근 논란이 되었던 온라인 명품 플랫폼의 가품 가능성을 원천 차단한 것이 장점이다.젠테가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었던 비결을 꼽을 때 부티크와 국내 기업을 연결하는 B2B 서비스 ‘젠테 아 젠테(jente a gente)’도 빼놓을 수 없다. 젠테 아 젠테는 부티크 소싱에 어려움을 느끼는 국내 유통 대기업과 국내 명품 플랫폼을 대상으로 기업 간 거래를 통해 상생을 도모할 뿐만 아니라, B2C 플랫폼에만 의존하지 않고 매출 통로를 다각화해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만드는 핵심 전략이기도 하다. 2022년 7월까지 이미 B2B 서비스 만으로 400억원의 선주문을 완료하며 1000억원 이상의 연 매출을 예측케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100% 부티크 소싱을 표방하는 젠테는 국내 유통 대기업과 명품 플랫폼의 부티크 사입 규모를 확대해 젠테 아 젠테를 통한 B2B로 바잉 파워를 입증했다. 젠테 스토어에서는 다양한 브랜드와 카테고리 판매를 입증하며 부티크의 두터운 신뢰를 등에 업고 B2B, B2C 양방향 협업 구조를 완성했다.지난 12월 5일, 신사동에 자리한 젠테빌딩에서 업계의 집중 조명을 받고 있는 정승탄 대표를 만나 젠테만의 차별화된 성장 스토리를 들어보았다.
어떻게 젠테를 설립하게 됐나.한국에도 명품의 가치를 제대로 보여주는 플랫폼이 있었으면 했다. 국내에도 명품을 다루는 다양한 형태의 이커머스 플랫폼이 있지만 여전히 해외 직구 사이트를 선호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탈리아의 역사 깊은 부티크나 영국과 포르투갈 기반의 파페치(Farfetch)처럼 단순히 유명 브랜드나 최신 유행 제품을 판매하는 것을 넘어 명품의 본질을 이해하고 가치를 알릴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었다. 나를 포함해 패션과 명품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던 전문가 4명이 의기투합해 이탈리아어로 ‘사람들’을 뜻하는 ‘젠테’라는 이름을 붙여 명품의 가치를 알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플랫폼을 만들었다. ‘우리 인생의 마지막 도전’이라는 각오로 시작했는데, 다행히 반응이 좋아 짧은 시간에 큰 성과를 낼 수 있었다.
패션 관련 이력도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캐나다에서 대학을 다니다 한국에 돌아와 카투사 복무를 마쳤다. 패션에 대한 관심만으로 루이비통 코리아의 면접을 본 계기로 패션계에 발을 들이게 됐다. 상품 개발에 관심이 있던 차에 ‘케이트 스페이드’ 제조사인 JS코퍼레이션으로 이직해 뉴욕과 중국의 퉁관(潼關), 선전(深圳), 칭다오(靑島) 등에 있는 생산기지들을 방문하면서 유통·생산은 물론 소재·문화까지 명품 산업 전반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그 시절 적어도 50여 개국에 있는 고급 가죽 회사들과 접촉해 새로운 시즌을 위한 가죽과 원부자재들의 샘플들을 받아보는 일을 담당하고 있었다. 국가별로 샘플을 분류했는데 유독 이탈리아의 샘플은 차원이 다를 만큼 독보적인 퀄리티가 인상적이었다.막연히 이탈리아의 패션 시장을 더 경험하고 싶다는 마음에 이탈리아로 떠나 이탈리아어를 공부하고, 어학 시험에도 합격했다. 불가리, 만다리나덕, 구찌 등 이탈리아 패션 회사에서 면접을 보고 인턴십 경험을 쌓으며 자신감이 많이 붙었다. 이탈리아에 머물며 케이트 스페이드에서 일하며 알게 된 이탈리아의 가죽 회사들과도 지속적으로 연락을 했는데, 그중에서 3개월 만에 그들과 이탈리아어로 소통이 가능해진 것을 신기하게 여긴 한 가죽 업체와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이탈리아에 간 지 1년도 안 돼서 현지의 가죽 회사에서 아시아 지역을 총괄하는 영업 지사장을 맡으며 구찌, 프라다, 돌체앤가바나 등 다양한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가 어떻게 유통되고, 부티크가 어떤 식으로 운영되는지를 직접 체험했다. 1년에 한두 번 잡히는 한국 출장에서는 국내 유명 패션 대기업과 명품 플랫폼 기업 등을 만나 유럽의 패션 시장에 대해 컨설팅을 하기도 했다.
이탈리아어로 직접 소통하며 다양한 부티크와 신뢰 관계를 구축하고, 국내 기업과도 탄탄한 연결고리를 만들어온 것이 현재 젠테의 기반이 됐다.
▎2022 FW 시즌의 광고 캠페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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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대 명품 플랫폼이라고 불린다. 기존 플랫폼들과 차별화된 젠테만의 전략은 뭔가.우선 제품 유통 과정이 다르다. 기존 플랫폼들은 ‘명품 브랜드→명품 부티크→해외 구매 대행사→국내 구매 대행사→국내 도소매’ 순으로 제품을 유통한다. 이런 유통 과정으로 운영되는 플랫폼은 단순히 제품 구매를 중개하는 경우가 많아 고객이나 상품의 관리, 품절 관리가 어렵다. 또 여러 유통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가격은 높아지고 가품이 생길 위험도 있다. 반면, 젠테는 이탈리아와 프랑스, 스위스 등 유럽 각지에 있는 럭셔리 부티크와 직접 공급계약을 체결해 100% 부티크 소싱으로 운영한다. 그 덕분에 중간 유통 수수료를 아껴 저렴한 가격에 브랜드 제품을 상시 공급할 수 있다. 무엇보다 검증된 부티크로부터 직접 제품을 공급받고 있어 가품 논란을 해소했다.기존 플랫폼들과 타깃 자체를 달리한 것도 차별점이다. 대중이 선호하는 유명 브랜드가 아니라 패션 고관여층인 ‘얼리어답터’, ‘트렌드세터’를 메인 타깃으로 삼았다. 베스트셀링 브랜드 판매 데이터만 봐도 전통적인 명품 브랜드가 상위권을 차지하는 타 플랫폼과 달리 오트리, 이자벨마랑, 가니 등 트렌디한 브랜드가 높은 순위에 올라 얼리어답터 고객 확보를 증명했다. 명확한 타깃팅 덕분인지 재구매율이 50%에 육박한다. 또 명품 플랫폼 최초로 월 1회 무료 반품을 도입해 반품비에 대한 부담을 줄여 긍정적인 온라인 구매 경험과 새로운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자체 ERP 시스템인 젠테 포레(Jente Foret)도 큰 차별성 같은데.‘제2의 파페치가 되겠다’며 부티크의 문을 두드리면서 그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친분 이상의 준비를 해야 했다. 그중 하나가 내부적인 백 오피스의 구현이었다. 젠테 포레는 ‘내가 어떤 사람과 악수하기 전에 손은 깨끗이 씻었나?’라는 질문을 하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젠테 포레라고 부르는 ERP 시스템을 개발하기까지 1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다양한 ERP 시스템을 구축해주는 기업은 정말 많지만, 부티크 비즈니스에 특화된 ERP는 특정 변수를 인지하고 구현할 수 있는 내부 직원과 함께 자체적으로 구축할 수밖에 없었다.젠테 포레를 통해 부티크들과 재고 시스템을 통합 운영함으로써 각 부티크의 상품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동시에 젠테의 주문 상황도 연동돼 제공되기 때문에 재고관리도 용이하다. 부티크의 단독 할인율이 즉각 반영돼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고, 물류나 품절 이슈를 해결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덕분에 3% 미만의 품절률을 기록할 만큼 국내에서는 유일무이한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B2B 서비스도 함께 운영 중인 것이 눈에 띈다.유럽 부티크와 국내 기업을 연결하는 B2B 서비스인 젠테 아 젠테(jente a gente)를 운영 중이다. 발로 뛰며 친분을 쌓은 유럽 부티크들이 늘어나면서 소싱 능력을 인정받고 나니 바잉을 제안하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그 당시 온라인 명품 플랫폼인 젠테 스토어를 준비 중이었는데, 명품 이커머스 플랫폼이 인기를 얻으며 업체들 간의 출혈경쟁도 갈수록 심화되던 때였다. 가품 이슈를 비롯한 여러 가지 이슈가 겹쳐 법정 공방까지 가는 모습을 보고 아쉬움과 함께 다른 기업과 경쟁하기보다는 상생이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싶었다.먼저 나를 믿고 부티크 제품 소싱을 제안해준 기업들과 B2B 서비스를 시작했다. 1억원 남짓한 자본금으로 시작한 회사를 믿고 맡겨준 덕분에 이듬해 B2B 서비스 매출을 동력 삼아 B2C 서비스도 성공적으로 론칭할 수 있었다. B2C 서비스로 다른 기업들과 선의의 경쟁을 하고 있지만, B2B 서비스를 통해 경쟁기업들에도 부티크 상품을 대량으로 공급해줄 수 있는 신뢰 있는 채널을 만들 수 있었다는 데 큰 의의를 두고 있다.
롤 모델로 생각하는 곳이 있나.전 세계에 있는 부티크로부터 제품을 사입해 판매하는 파페치를 모델로 삼았다. 파페치는 명품 패션 플랫폼계의 아마존으로 불리는 글로벌 1위 플랫폼이다. 2016년 무렵 파페치에 올라온 사진이 너무 마음에 들어 눈여겨봤던 기억이 난다. 동시에 ‘어떻게 이런 다양한 상품을 소싱할 수 있을까’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유럽의 부티크들이 입점되어 있는 구조였다. 파페치는 온라인 플랫폼이 없던 부티크부터 공략해 파페치라는 플랫폼에서 부티크를 알리고 온라인 판매를 권장하는 등 부티크의 온라인 홍보대사를 자처하며 다양한 부티크로부터 양적·질적으로 뛰어난 제품들을 바잉할 수 있었다.홍콩에 있는 이미지 스튜디오에서 부티크들이 보내온 샘플들로 직접 촬영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명품 패션을 소개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소비자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명품의 이미지를 구현해내는 큐레이팅이라고 생각한다. 그들만의 방식으로 전달하는, 명품의 본질을 말해주는 상품 정보야말로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 신사옥 지하 2층에 젠테만의 이미지를 만들 수 있는 스튜디오를 구축했다.다만 규모가 커지면서 부티크들에게 지나친 수수료를 요구하거나, 재고 연동 문제로 품절이 발생하면 페널티를 부과하는 등 파페치의 대처에는 아쉬움이 있었다. 결국 상품 가격이 계속 올라가고 그로 인한 부담은 고스란히 고객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고객과 부티크 중간에 있는 플랫폼은 단순히 그 둘을 연결해주는 것을 넘어 모두 함께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뤄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젠테는 파페치의 긍정적인 부분만 도입해 비즈니스 모델로 강화했다.
플랫폼 안에서 콘텐트에도 공을 들이는 것 같다.해외 부티크처럼 100년, 200년 가치를 인정받는 역사 있는 부티크가 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더 빨리 판매하고, 더 많은 상품을 판매해야 하는 일반 소비재와 달리 명품은 제품 하나를 소개하는 데도 영혼이 담겨야 한다. 오랜 시간 지속되어온 브랜드의 헤리티지와 가치, 스토리를 최대한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이 명품 플랫폼의 역할이다. 플랫폼 안에서 고객들과 간접적으로 소통하는 역할, 정보 전달의 통로가 바로 콘텐트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물건을 판매하는 상업적인 플랫폼은 지양한다. 양질의 콘텐트를 바탕으로 예술과 실용적인 영역이 어우러진 플랫폼으로 고객과 소통하는 것이 젠테의 과제다.
2023년 젠테의 계획과 목표가 궁금하다.지난해 외부 자금을 유치해 글로벌 진출을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이미 인도네시아와는 계약을 완료하고 현지 진출이 구체화되었고, 그 외에도 여러 나라로 뻗어나가 글로벌 서비스로 도약하는 데 집중할 예정이다. 우선 해외 물류 허브를 설치해 글로벌 진출의 포석을 깔고, 오프라인 편집숍을 오픈하고 새로 구축된 스튜디오를 활용해 콘텐트 강화에 주력할 생각이다. 국내 안정성 인증 절차를 마치고 키즈 사업을 본격화해 카테고리 확장에도 힘을 더하고 싶다.창업 초기부터 내세웠던 ‘패션은 삶과 가장 밀접한 예술’이라는 슬로건처럼 패션의 예술적 가치를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패션이 삶과 가까워지는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다. 한국의 파페치, 아니 글로벌 1위 플랫폼 파페치보다 더 나은 플랫폼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정소나 기자 jung.sona@joongang.co.kr·사진 최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