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본질과 비본질 

 

권오준 포브스코리아 편집장
기성 기업의 젊은 경영자나 창업 후 일정 규모에 올라 현재 시점에서 성공한 스타트업 경영자들을 만나보면 간혹 비본질적 사안에 천착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이들은 비본질적 문제에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본질적 문제를 비본질적 방법으로 해결하려 든다. 작년 이맘때였다. 소재부품 기업을 운영하는 경영자에게 주요 관심사가 뭐냐고 물었더니 NFT(Non-Fungible Token)라고 답해 놀란 적이 있다. 당시 블록체인과 NFT가 세상을 바꿀 것처럼 요란했으니 관심을 갖는 것은 뭐라 할 수 없지만 소재부품 기업 경영자라면 당연히 신소재나 공정 혁신 이야기가 가장 먼저 나올 줄 알았다. 물론 NFT를 사업다각화의 방편이나 지식재산권(IP) 차원에서 고려할 수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비본질적인 사안을 사고의 중심에 놓는다면 곤란하지 않을까.

또 다른 예로 ‘일하는 방식’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사무실 환경 개선에 과도하게 힘을 쏟는 경영자가 적지 않다. 이 또한 본질에서 벗어나 보인다. 직원들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하도록 만들겠다는 의도는 높이 살 만하나, 단순히 사무실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일을 잘할 수 있는 직접적인 동기부여로 작용할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일’(본질)의 문제를 ‘일 외적인’(비본질) 방식으로 풀려는 것으로 보였다. 예를 들어 평소 관계가 좋지 않은 부부가 있다고 치자. 더 큰 집으로 이사 가고 소파와 침대를 새것으로 교체한다고 해서 과연 부부 사이가 좋아질까. 행복과 보람을 느끼며 열심히 일하는 조직문화를 구축하려면 각자가 하는 일에 가치를 부여하고, 서로 공감하고 배려하며 신뢰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서 이를 조직의 힘, 기업의 비전으로 승화시키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스마트팩토리나 디지털전환 같은 문제도 본질과 비본질을 구별해야 한다. 스마트팩토리의 경우 공정의 스마트화도 중요하지만 제품 자체의 스마트화가 더 본질적인 사안이다. 디지털전환도 마찬가지로, 시스템의 디지털화도 중요하지만 더 필요한 것은 일하는 사람의 디지털화다. 기업경영은 사람으로 시작해서 사람으로 끝난다는 말을 형식적으로 이해해선 안 된다.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주야장천 ‘업의 본질’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호텔업의 본질이 서비스업이 아니라 부동산업과 장치산업이라고 정의했다는 일화는 수없이 회자됐다. 이 회장이 “나는 일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먼저 파악한다. 본질을 모르고는 어떤 결정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는 데 고개가 끄덕여진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의 제1원리(First principles) 사고법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제1원리 사고란 ‘물질의 근본적인 것까지 파고들어서 그로부터 다시 생각해나가는 것’이다. 물론 본질의 개념은 기업마다 다를 수 있다.


따라서 남의 것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정의 내려야 한다. 장수하는 기업의 공통점은 기술(경쟁우위·차별화), 신뢰(브랜드 파워), 가치(기업의 가치·사회적 가치) 등 3가지가 기업문화로 잘 구축된 경우라고 본다. 이를 토대로 비본질적인 고민의 비중을 낮추고 본질적인 문제에 더 집중하는 것은 어떨까. 바람이 심하게 불때는 피할 곳이 없는지 이리저리 기웃거리다 오히려 넘어지기 쉽다. 다리에 힘을 주고 허리를 숙인 채로 중심을 잘 잡은 뒤 근본에 더 충실하면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 권오준 포브스코리아 편집장

202306호 (2023.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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