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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추얼 아이돌, 신한류의 주역 될까 

 

여경미 기자
버추얼 아이돌은 신한류의 주역이 될까. 과연 K팝 팬들은 ‘가상’이란 공간과 인물에게서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매력을 얻을 수 있을까.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순(2024년 2월 기준)으로 보면 버추얼 아이돌 시장을 주도하는 리더는 이세계 아이돌(66만2000명), 플레이브(56만3000명), 아뽀키(33만9000명), 메이브(24만9000명), 이터니티(10만8000명)이다. 이들의 활약이 반짝인기로 끝날 것인지, 시장의 판도를 좌우할 수 있을지 알아봤다.

▎메이브는 한국, 프랑스, 미국, 인도네시아 등 지역별 특색을 넣어 글로벌 K팝 시장을 겨냥했다. / 사진:넷마블
코로나 팬데믹으로 비대면이 일상화되면서 3차원 가상 세계(Virtual Worlds)에서 상호작용할 수 있는 ‘메타버스(Metaverse)’가 화두로 떠올랐었다. 아름답거나 귀여운 비주얼이 돋보이는 버추얼 아이돌의 등장은 K팝을 즐기는 새로운 방식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초창기 버추얼 아이돌은 동물과 사물을 활용한 캐릭터, 게임 캐릭터를 활용한 비주얼 제작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후 전형적인 아름다움이나 잘생긴 얼굴, 이와 함께 퍼포먼스와 노래 실력까지도 뽐내는 버추얼 휴먼 아이돌이 등장했다. 현재 버추얼 시장은 유튜버, 가수, 셀러브리티, 인플루언서, 게임 캐릭터 등 여러 분야로 확장 중이다.

버추얼 아이돌의 등장엔 신문, 방송, 라디오 등 전통 매체에서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로의 미디어 환경 변화가 큰 역할을 했다. 버추얼 아이돌은 휴먼 아이돌과 마찬가지로 소셜미디어와 같은 플랫폼에 뮤직비디오나 안무 연습 영상 등을 올려 신곡을 홍보하거나 활동 방향을 넓히고 있다. 소셜미디어는 버추얼 아이돌 시장에서 해외 진출의 필수적인 요소이자 대중의 직접적인 참여와 공유를 유도하는 동력이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버추얼 아이돌 대다수는 유튜버로 활동한다. 유튜브 구독자 24만9000명을 보유한 메이브는 신곡 ‘왓츠 마이 네임(What’s My Name)’을 2023년 11월 30일에 공개했고 뮤직비디오 공개 후 12일 만에 조회수는 1000만 회를 돌파했다. 메이브의 안무 연습 영상 조회수도 일주일 만에 100만에 육박하는 등 탄탄한 팬덤을 자랑했다.

버추얼 아이돌 시장에서 주목받는 건 실재 인간과 유사한 모습인 버추얼 휴먼(Virtual Human)이다. 버추얼 휴먼이란 ‘가상’과 ‘인간’의 결합어로, 실재 인간이 아닌 소프트웨어로 만든 가상 인간이자 디지털 공간에서 활동하는 가수 캐릭터다. 정유영과 이혜선이 쓴 [버추얼 휴먼과 버추얼 아바타의 차이점에 대한 연구] 논문에서는 “AI를 학습시키기 위한 모션 캡처 기술이 활용되나 실재 인간이 존재하지 않고 독립적인 개체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버추얼 휴먼”으로 정의한다. 이때 버추얼 휴먼은 가상성, 자아나 페르소나, 독립성이 모두 성립돼야 한다. 이와 달리 독립적인 개체로 존재할 수 없고 인간의 개입도가 높으면 버추얼 아바타로 정의한다.

엔터테인먼트사가 주목하는 버추얼 아이돌


▎버추얼 아이돌 이터니티는 2023년 10월 14~15일 양일간 경기 광명시 아이벡스 스튜디오에서 첫 단독 콘서트를 성료했다. / 사진:펄스나인
우리나라에서 첫 번째 버추얼 가수는 1990년대 나온 ‘사이버 가수’ 아담으로 볼 수 있다. 아담은 아담소프트에서 제작해 1998년 1집 앨범 [세상엔 없는 사랑]으로 데뷔했다. 아담의 외형은 3D 그래픽 기술로 제작됐고 실재 인간처럼 성격, 성향, 인간성 등이 부여됐다. 당시 아담의 목소리는 가수 박성철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수 활동 외 CF 등에 등장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아담의 실패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과거 기술력의 한계로 완벽한 3D 그래픽의 버추얼 휴먼을 기대하기 어려웠고, 비용적인 측면에서 이를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에는 걸그룹 에스파(aespa)와 같이 실재 아이돌그룹에 멤버별로 대응하는 디지털 아바타, 소위 온라인게임에서 ‘원래 캐릭터가 아닌 또 다른 캐릭터’인 ‘디지털 부캐’가 나타났다. 노래나 음성 연기는 실재 인물이 하되, 아이돌 그룹에 멤버별로 대응하는 디지털 아바타가 부여되고 시각적 이미지는 가공의 아바타로 구현했다. [버추얼 휴먼과 버추얼 아바타의 차이점에 대한 연구]에서는 버추얼 휴먼의 구현 기술을 인물에 2D 혹은 3D로 제작된 가상의 얼굴 합성인 ‘실사 합성’, 에셋(Asset)·스컬핑(Sculpting)·3D 모델링 기술을 이용해 얼굴을 비롯한 전신을 제작한 유형인 ‘풀(Full) 3D’, 딥러닝을 통한 이미지 학습이나 캡처 정밀도 향상을 바탕으로 움직임을 보정하는 ‘인공지능 AI’로 구분한다.

엔터테인먼트사가 버추얼 아이돌 중 버추얼 휴먼 아이돌에 주목하는 이유는 소비자들의 직접적인 구매 행위를 끌어내는 매력성(Attractiveness) 때문이다. 매력적인 외모가 실재 인간과 유사해 그들의 퍼포먼스 등에 대한 몰입을 극대화한다는 것이다. 또 최근 연예계가 학교폭력이나 음주운전, 마약 등 끊임없는 이슈로 몸살을 앓았던 데 반해 버추얼 아이돌은 사생활 논란의 이슈가 없다는 점이 장점으로 부각된다. 인간의 모습을 닮은 휴먼 아이돌의 인기가 상승하는 추세지만, 아직은 이세계 아이돌, 아뽀키 등 게임 캐릭터나 동물 등을 활용한 초기 버추얼 아이돌이 유튜버 구독자 수 상위권에 올라 있다.

팬덤과 소통을 중시하는 버추얼 아이돌


▎※ 유튜버 구독자 수(기준: 2024년 2월) / 사진:각 사, 인스타그램
버추얼 아이돌은 대중의 관심과 서사 속에서 영향력을 발휘한다. 버추얼 아이돌의 장점 중 하나로, “시공간을 뛰어넘는 초월성을 바탕으로 팬덤과의 상호작용”을 꼽을 수 있다. 메이브 제작자인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는 국내 자연언어처리(Natural Language Processing) AI 개발 회사인 업스테이지(Upstage)와 ‘페르소나 AI’를 공동 개발해 ‘챗 시우(Chat SIU:)’를 3주간 운영했다. 리더인 ‘시우’의 특유한 개성을 정교하게 학습한 생성형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개발된 챗 시우는 메이브 데뷔 1주년을 기념해 메이브 공식 홈페이지와 카카오톡 MAVE 채널에서 팬들과 한국어, 영어, 일본어, 인도네시아어로 대화했다. “팬들은 시우와 어떤 대화를 하고 싶어 할까?”란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멤버들 간의 관계성, 데뷔 일화, 팬들에 대한 감정 등을 시나리오로 만들어 시우의 캐릭터를 점차 구체화했다. 팬덤과 소통하는 시우에게는 자연스럽게 인격성이 부여됐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2023 캐릭터산업 동향'에서 “대화형 AI 캐릭터는 새로운 대화 차원으로 그 열기가 뜨거워질 예정”이라 전망했고 김기덕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 버추얼 휴먼 디렉터 역시 “인간과 비인간의 상호작용 속에서 버추얼 아이돌이 팬덤과 소통하는 것은 엔터테인먼트 사업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라고 소개했다.

버추얼 아이돌의 팬덤층은 대부분 10대나 Z세대에 한정돼 있다. 이런 팬덤의 한계를 역발상해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한 사례도 있다. 버추얼 인플루언서로 알려진 로지는 현재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며 Z세대 코드로 여겨진 요소들을 차용한 일종의 ‘현지어 구사하기(Vernacularization)’로 팬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간다. 로지의 여행 사진에 한 팬은 “선물사왕”이란 댓글을 달았고, 이에 로지는 “모 갖고 싶어!”라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 이처럼 홍보 전문가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가 아닌, 아마추어가 만들어낸 것처럼 보이는 이미지를 생산해 게시하는 브랜딩 전략을 추구했다. 이병민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역시 “버추얼 아이돌의 향후 팬덤 형성은 미디어 소비 습관, 문화나 사회규범 변화 등 여러 요인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며 “K팝 산업 환경이나 브랜드 마케팅 전략, 새로운 기술과 캐릭터에 대한 관용성, 사회 인식 변화 등이 팬덤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버추얼 아이돌 시장 성장성

그렇다면 버추얼 아이돌의 음악성은 어떨까. 김석인 연성대학교 영상콘텐츠학과 교수는 “버추얼 아이돌도 음악성을 인정받거나 히트송을 만들려는 니즈는 마찬가지”라며 “앨범 콘셉트 차별화나 아이덴티티(Identity)를 원하는 프로듀서는 버추얼 아이돌 세계관 등을 가사로 표현하거나 유명 작곡가·AI 작곡가와 협업해 이슈를 생산한다”고 설명했다.

버추얼 아이돌은 음악이나 퍼포먼스 외에도 하나의 버추얼 아이돌 IP(Intellectual Property)를 웹툰, 웹 소설, 영상, 게임 등 다양한 장르에 자연스레 확장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메이브는 데뷔 당시 설정된 세계관을 바탕으로 카카오 웹툰 ‘MAVE: 또 다른 세계’를 공개했고, 넷마블 게임 등에서 메이브 세계관과 연결된 새로운 콘텐트와 즐길 거리를 제공했다. 현재 다양한 IP 개발로 글로벌 팬덤 확대를 위해 노력 중이다.

김 교수는 버추얼 아이돌 시장 성장성에 대해 “불특정 다수를 위한 콘텐트보다 개인을 위한 맞춤형 콘텐트 성장성을 기대할 수 있다”며 “VR 기기를 활용한 콘서트와 팬 미팅 등이 기획·제작되고, VR 세상에서 팬덤과의 대화 등 지금보다 더 팬 밀착형 콘텐트가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버추얼 아이돌 산업이 전체적으로 발전하려면 ‘기술 진보의 접근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재는 대형 기획사나 인공지능 그래픽 전문기업 등 일부 공급자 중심으로 사업 영역이 확장되고 있지만, 소규모 소프트웨어 회사들도 이 시장에 뛰어들어 버추얼 유튜버가 활성화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업계는 기대하고 있다.

버추얼 아이돌 시장이 확대될수록 법리 분쟁도 잇따를 전망이다. 곽재우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앞으로 버추얼 아이돌의 초상권을 인정하는가와 관련한 법리 다툼이 꾸준히 생길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버추얼 아이돌 시장에서는 초상권과 AI 보이스(Voice) 이슈에서 쉽게 모방할 수 없는 개성 강한 얼굴과 보이스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비주얼 에셋과 같은 소품 역시 표절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

버추얼 아이돌 시장성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도 있다. 김석인 교수는 “국내에서 버추얼 휴먼 콘텐트를 제작하는 기업은 200여 곳이지만 대중의 관심을 받는 버추얼 아이돌은 극소수”라며 “이미 전 세계적으로 많은 버추얼 아이돌이 활동하지만, 코로나 이후 실재 아이돌에 밀려 버추얼 아이돌의 경쟁력이 조금씩 사라지는 추세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는 “굳건한 팬덤을 가진 버추얼 아이돌보다 새롭게 시장 진입을 시도하는 신생 버추얼 아이돌이 더 큰 위기”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여러 우려의 목소리가 존재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23년 음악산업백서'에서는 “버추얼 휴먼이 사회의 외모 지상주의를 부추길 수 있다”는 비판과 함께, “가상 아이돌에 대한 악성 댓글, 딥페이크 음란 영상 배포, 성추행이나 스토킹 범죄에 적용되는 법률에 근거한 처벌이 이뤄질 수 있으며, 버추얼 아이돌이 완전한 가상일 경우 범죄행위가 아예 성립하지 않거나 복잡한 문제를 양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버추얼 아이돌 시장은 새로운 플랫폼에서 이들을 활용한 콘텐트가 있어야만 희망적인 시장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 여경미 기자 yeo.kyeongmi@joongang.co.kr

202403호 (2024.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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