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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데요시의 넋을 빼앗은 이도차완은
조선 절간의 바루였다 

文化史 발굴-千年 가려진 조선 막사발의 秘密 

글/사진·정동주 작가




흙바루는 재료를 구하기 쉽고 청결을 유지하기 간편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무겁고 깨지기 쉬운 점과 만다라의 법에 따른 제작의 어려움이 단점으로 지적됐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흙바루는 석가모니 입멸 후에도 계속 사용됐다. 적어도 11세기 말에서 12세기 중반까지 중국 불교사는 계율을 중시하는 청정한 비구일수록 쇠바루보다 흙바루를 더 귀중하게 여겼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이도차완의 굽 언저리에 있는 독특한 문양과 형식들은 만다라의 법에서 정한 계율의 내용과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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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호 (202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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