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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이 쓰는 ‘생명의 비밀’] 200년 개량의 역사 비단잉어 

돌연변이 → 교잡 → 선택 → 순계분리 거쳐 티 없이 맑고 아름다운 품종으로 거듭나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비단잉어는 일본에서 개량한 품종이 주류를 이룬다. / 사진·중앙포토
춘천의 어느 막국수집의 조그만 연못에는 거짓말 좀 섞어 팔뚝만한 비단잉어와 죽이 맞은 야생잉어, 이스라엘잉어들이 노닐어서 갈 때마다 나를 반기듯 부리나케 못가로 몰려나온다. 사실 막국수보다 늠름하게 일렁대는 그놈들의 자태를 보는 재미로 그곳에 간다. 일본의 시냇물에도 비단잉어들이 유유자적(悠悠自適), 지천으로 설렁설렁 헤엄치고 다니던데!

비단잉어와 야생잉어는 잉어목(目) 잉엇과(科)의 민물고기로 몸 빛깔이나 무늬가 다를 뿐 크기나 모양 등 그 특성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암튼 남이 한다니까 덩달아 나선다거나 제 분수는 생각하지 않고 덮어놓고 잘난 사람을 뒤따르는 것을 비꼬아 “잉어가 뛰니까 망둥이도 뛴다”라고 한다.

강에서 야생하는 잉어(carp)는 긴 원통 모양이고, 옆으로 납작(측편, 側偏)하며, 눈은 작은 편이고, 아래턱이 위턱보다 조금 짧다. 주로 바닥이 진흙이고, 물 흐름이 느린 큰 강이나 호수에 서식하며, 잡식성이라 잔물고기나 알, 수생곤충, 민물새우, 조류(藻類), 물풀 등을 닥치는 대로 먹는다.

잉어는 붕어와 생김새가 흡사하나 붕어보다 몸이 길고, 몸 높이가 낮으며, 무엇보다 위턱 양쪽에 양반다운 두 쌍의 수염이 있는 점이 다르다. 좀 더 보태면 잉어는 위턱 양편에 두 쌍의 수염(barbel)이 있고, 옆줄(측선, 側線)의 비늘 수가 33개 이상인 반면에 붕어는 상악(上顎)에 수염이 없고, 측선비늘 수는 32개 이하다. 잉어는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동부, 유럽 일부에 분포한다.

빛깔이 비단처럼 고운 비단잉어(fancy carp)는 금리(錦鯉), 코이(koi)라 불리고, 보통 잉어(Cyprinus carpio)중에서 체색, 무늬, 비늘의 구조·배열이 돌연변이(突然變異, mutation)를 일으킨 것을 끈질기게 달라붙어 교잡(交雜, hybridization), 선택(選擇, selection), 순계분리(純系分離, pure line isolation)하여 속된 티가 없는 맑고 아름다운 새로운 품종을 얻는다. 물론 좀처럼 쉬이 얻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비단잉어는 1820년경 일본에서 처음 개발되었고, 20세기에 와서 여러 색상의 잉어를 개량하여 사랑받기에 이르렀다. 그 이후 세계적으로 개량 품종이 22가지가 넘고, 비단잉어는 일본에서 사육, 개량한 것이 주류를 이루는 탓에 세계적으로 잉어란 뜻인 일본어 ‘코이’로 통한다.

그런데 자연 상태에서 여러 세대를 이어 기르다 보면 야생 환경에 적응하면서 다시 야생잉어로 되돌아간다고 한다. 살아 진천(생거진천, 生居鎭川) 죽어 용인(사거용인, 死去龍仁)이라 했던가. 우리나라에서는 1960년대 용인 자연농원에서 우수 품종을 들여와 사육, 보급하기 시작하였고, 한때 충북 진천의 비단잉어는 한 해 약 40억원(2006년 기준)의 외화소득을 올린 수출효자품목으로 각광받다가 바이러스 감염에 따른 집단 폐사로 사양길에 접어들었다고 했다.

“사람은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

그런데 10여 년 전만 해도 세계 관상어시장의 80%가량을 점유하던 일본의 비단잉어 주산지인 니가타현 등지의 양어장들이 지진으로 쑥대밭이 되었다던데…. 진천 비단잉어가 날렵하게 잡아챌 기회를 잡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비단잉어의 기본색은 흑·백·적·황·청색이라 한다. 비단잉어 품종에는 아무런 무늬 없이 흰색, 붉은색, 노란색, 갈색 등이 바탕색인 단색(單色), 온 몸이 눈부시게 누런 황금(黃金), 몸 전체가 흰색 바탕에 푸른 비늘이 그물눈 모양으로 나는 담청(淡靑), 흰색 바탕에 붉은색무늬가 있는 것으로 비단잉어 품종 중에서 가장 알아주는 홍백(紅白), 흰색 바탕에 검은색무늬가 나는 별광(別光), 흰색 바탕에 붉은색과 검은색무늬가 적당히 분산 배열된 대정삼색(大正三色) 등등 아주 다양하다 한다.

“누울 자리보고 발을 펴랬다”고 한다. 야생잉어의 한 아종(亞種)인 비단잉어(C. c. haematopterus)는 강물에서는 90~120㎝ 대자 배기로 크지만 수족관이나 작은 연못에 넣어두면 15∼25㎝, 작은 어항에 넣어 키우면 기껏해야 5∼8㎝밖에 자라지 못한다고 한다. 생물이 주변 환경에 무섭게 적응함을 알려주는 일례다. 하여 “사람은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고 하는 것이리라.

다음은 금붕어(goldfish) 이야기다. 금붕어와 야생붕어(crucian carp)는 역시 잉어목 잉엇과의 민물고기로 꼴이 비슷하고, 염색체 수도 같으며, 학명도 같이 Carassius auratus로 쓴다. 야생붕어는 몸길이 20~43㎝로 옆으로 납작하고, 머리는 짧으며, 눈은 작고, 주둥이는 짧으며, 입은 작고, 입술은 두껍다. 사는 곳에 따라 몸빛깔이 다르지만 보통은 등쪽이 황갈색이고 배는 은백색에 황갈색을 띤다.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동부, 유럽 일부에만 터줏고기로 산다. 그런데 우리나라 토종붕어(C. auratus)를 일본 비와호(琵琶湖)가 원산인 굴러온 돌 떡붕어(C. cuvieri)가 박힌 돌을 밀어내고 온통 강이란 강에서 꺼드럭거리고 있단다. 게다가 낚시용으로 가져온 중국붕어(C. auratus)도 두루 적응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중국에서는 붕어를 식용으로 길러오면서 색소돌연변이(color mutation)가 일어난 것을 선택하여 영 다르게 개량하였으니 그것이 바로 금붕어다. 송나라 때(960~1279) 벌써 황색, 귤색, 백색, 적색, 백색 품종을 얻었다고 하는데 관상용으로 괜찮은 개체만 골라가면서 여러 세대 사육하다 보면 형태나 색깔이 아주 다른 변종(變種, variety/ mutant)이 생겨난다.

금붕어는 비단잉어보다 앙증맞고, 전체 몸매나 꼬리지느러미 등의 형태가 훨씬 다종다양하지만 비단잉어는 몸의 허우대는 일정하고 체색과 무늬만 여러 가지다. 금붕어와 비단잉어를 같이 키우면 이른바 종간잡종인 ‘잉붕어’가 생기지만 그렇게 생긴 잡종은 불임(不姙)이다. 조물주께서 반드시 같은 종(種)끼리만 후손을 남기게끔 해놓은 잠금장치인 것이지.

권오길 - 1940년 경남 산청 출생. 진주고,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수도여중고·경기고·서울사대부고 교사를 거쳐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 정년 퇴임했다. 현재 강원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상 저작상,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주요 저서로는 <꿈꾸는 달팽이> <인체기행> <달과 팽이> <흙에도 뭇 생명이> 등이 있다.

201611호 (2016.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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