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 변화 관리 못할 인물이라면 역사에 큰 죄 짓는 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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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룡(潛龍)들의 움직임만 분망(奔忙)한데이 글의 주제로 다시 돌아가자. 풍운은 위의 바람과 비 또는 눈·서리·물결이 등장하는 한자 낱말들과 흐름이 같다. 앞으로 닥치는 기상의 변화, 또는 위기의 요소를 머금은 그 무엇으로 먼저 쓰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달리 풀어야 할 구석이 있다.한(漢)을 세운 유방(劉邦)이 황제에 오른 뒤 자신의 고향인 지금 중국 장쑤(江蘇)의 패현(沛縣)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야말로 금의환향(錦衣還鄕)이랄 수 있었다. 그는 친지들을 불러놓고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 첫 소절의 내용이 이렇다. “큰 바람이 일어나니 구름이 치솟아 오르도다(大風起兮雲飛揚).” 이어 그는 천하의 통일을 이뤘다는 자부, 앞으로 나라를 어떻게 이끌까에 관한 포부를 노래에 담았다.따라서 노래의 맥락으로 보면 유방은 앞의 첫 소절에 등장하는 큰 바람과 구름, 즉 풍운으로써 천하에 닥쳤던 커다란 변화를 묘사한 셈이다. 그러나 예사로운 변화는 아니다. 풍운이 때로는 용(龍), 호랑이(虎)와 함께 등장하기 때문이다.<역(易)>에는 “구름은 용을 좇고, 바람은 호랑이를 따라 성인이 출현해 세상이 그를 본다(雲從龍, 風從虎,聖人作而萬物覩)”는 말이 나온다. 같은 성질의 존재끼리 모여들고 이어 세상을 구하는 좋은 인물이 나온다는 뜻이다. 용과 호랑이는 시세에 따라나오는 좋은 인물을 가리키고, 바람과 구름은 그에 걸맞은 상황을 지칭하는 것으로 풀 수 있다.그런 맥락에서 풍운이 지니는 함의는 조금 색다르다. 단순한 기상의 변화를 넘어 때로는 권력의 향배, 사회의 아주 커다란 변화, 또는 그런 시세(時勢)를 가리킨다는 점에서 그렇다. 따라서 풍운이라는 낱말은 앞의 풍우·풍설·풍파 등에 비해 정치적인 함량이 훨씬 더 높다.따라서 유방이 제 고향으로 금의환향했을 때 부른 노래의 첫 소절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천하의 권력을 쥐기 전 일었던 거대한 변화, 그 시대의 흐름 속에 용과 호랑이로 표현할 수 있는 ‘영웅과 호걸’로서 제 이미지를 다 고려한 작사(作詞)였다고 볼 수 있다.그런 곡절을 거치면서 풍운이라는 낱말은 완연한 정치적 흐름에 올라탔다. 대단한 혁명(革命)의 시대, 또는 거대한 변혁(變革)의 계절에 등장하는 정치적인 인물들을 대개는 풍운아(風雲兒)라고 적는 이유가 다 여기서 비롯했으리라고 본다.이제 우리에게도 그런 풍운이 닥쳤다. 현직 대통령의 탄핵을 두고 헌법재판소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탄핵이 이뤄진다면 곧장 새 권력 선출에 나서는 대선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는 적어도 올해 연말에는 새 대통령을 선출해야 한다.나라의 꼴이 참 많이 망가져 있는 상태다. 혁신을 이루지 못한다면 우리 대한민국의 운명은 이제 암울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그런 변혁의 꿈을 제대로 안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무수한 풍운아가 본격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중이다.그야말로 한 고조 유방의 말처럼 “큰 바람이 일어나니 구름이 치솟아 오르는” 상황이다. 종국(終局)에 누구 손에 대한민국의 다음 권력이 쥐어질지는 현재로서는 전망하기 쉽지 않다. 하늘에 아직 오르지 못한 잠룡(潛龍)들의 움직임만 아주 분망(奔忙)하다.그래도 풍운은 풍운이다. 바람에 이어 비를 내리는 구름이 몰아친다. 그 안에는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위기의 요소도 잔뜩 담겨 있다. 따라서 곧 닥치는 기상의 변화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면 그 풍운을 좇아 나타나는 인물들은 민족 앞에, 역사 앞에 큰 죄를 짓고 만다. 풍운을 좇는 잠룡들이 이 점만은 명심해야 한다.
유광종 - 중어중문학(학사), 중국 고대문자학(석사 홍콩)을 공부했다. 중앙일보에서 대만 타이베이 특파원, 베이징 특파원, 외교안보 선임기자, 논설위원을 지냈다. 현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저서로 <유광종의 지하철 한자 여행 1, 2호선> <중국이 두렵지 않은가> <백선엽의 6·25전쟁 징비록 1, 2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