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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인터뷰] ‘골프 유목민’ 왕정훈의 도전 

“승부근성을 키운 건 모험과 고난” 

정영재 스포츠 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
앳된 얼굴에 강철 심장, 2016 유러피언 투어 신인왕 기염… 세계랭킹 50위 유지하면 4월 ‘꿈의 무대’ 마스터스 출전 가능

▎1. 지난해 유러피언 투어 신인왕에 빛나는 왕정훈은 생명력 강한 잡초에 비유된다. 올해도 1월 커머셜뱅크 카타르 마스터스에서 유러피언 투어 3승째를 올리며 산뜻하게 출발했다. / 2. 지난해 8월 브라질에서 열린 리우올림픽 남자골프 한국대표팀에 선발된 왕정훈이 벙커샷 연습을 하고 있다. 뒤쪽은 탁구 커플 안재형·자오즈민의 아들인 안병훈.
스물두 살 왕정훈(한국체대)은 ‘골프 노머드(nomad·유목민)’다. 얼굴에는 아직 앳된 기가 남아 있지만 심장은 강철처럼 단단하다. 한국-필리핀-중국을 거치며 여느 스무 살 청춘이 경험하지도, 감당하지도 못할 어려움을 겪어 냈다. 온갖 시련이 그를 강하게 단련했다.

왕정훈은 지난해 유러피언 투어 핫산 2세 트로피 대회에서 깜짝 우승한 뒤 바로 다음 대회인 모리셔스 오픈에서도 우승컵을 안았다. 그 덕분에 2016 유러피언 투어 신인왕에 올랐다. 올해도 유러피언 투어 카타르 마스터스에서 우승하며 세계랭킹을 39위까지 끌어올렸다. 왕정훈이 세계랭킹 50위 밖으로 내려가지 않는다면 4월 6일 개막하는 ‘꿈의 무대’ PGA 마스터스에 초청받게 된다.

왕정훈은 지금도 세계 각국을 돌며 혼자서 대회에 출전하고 있다. 월간중앙이 그의 성장기를 듣기 위해 아버지 왕영조 씨와 그를 지도하는 박영민 한국체대 교수를 만났다. 그러나 정작 왕정훈과는 전화 인터뷰마저 이뤄지지 않았다. 멕시코로, 미국으로 돌아다니며 대회에 출전하는 바람에 시간이 맞지 않았다. 결국 카카오톡으로 간신히 대화하고, 이메일로 질문과 답을 주고받았다.

은사 박영민 교수 “황금똥 꿈꾸고 제자가 우승”


▎골프채를 잡은 지 1년쯤 된 초등학교 4학년 때 왕정훈의 훈련 모습. 뒤쪽에서는 아버지 왕영조 씨가 스윙 연습을 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왕정훈과 아버지 왕영조 씨는 약간의 의견 충돌이 생겼다. 왕정훈이 북아프리카 모로코에서 열리는 핫산 트로피 대회에 나가겠다고 고집했기 때문이었다. 왕정훈은 대기순번 3번이었다. 참가선수 중 세 명의 결원이 생겨야 출전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었다. 더구나 왕정훈은 비슷한 시기에 열리는 KPGA(한국프로골프협회) 메이저 대회인 매경오픈에 출전할 예정이었다.

박영민 교수가 전해주는 당시 상황은 이렇다. “정훈이 아버지가 ‘가지 말라고 하는데 애가 자꾸 가고 싶다고 한다. 가도 안 될 텐데 비행기값만 날리는 것 아닌가’라며 심란해 하기에 ‘경험도 쌓을 겸 보내세요’라고 얘기해줬다. 그런 뒤에 내가 황금똥을 누는 꿈을 꿨다. 한국체대 선수들 세 명이 매경오픈 출전했으니 거기서 누가 우승할 꿈인가 보다 했다. 그런데 정훈이가 첫날부터 잘 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결국 그게 정훈이 우승 꿈이었다.”(웃음)

대타로 나선 왕정훈의 우승 과정은 극적이었다. 최종일 18번 마지막 홀에서 왕정훈은 5m 버디 퍼트를 남겨두고 있었다. 내리막에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휘어지는 까다로운 라인이었다. 코스를 잘 아는 교민 갤러리들은 “저기서는 힘들 텐데” 하면서 마음을 졸였다. 그러나 왕정훈이 이 버디 어려운 퍼트를 집어넣어 나초 알비라(스페인)와 공동선두로 연장전에 나가게 된 것이다.

연장 첫 홀에서 왕정훈은 다시 내리막 15m 버디 퍼트를 홀에 떨어뜨렸다. 상대도 버디를 해 2차 연장을 벌였고, 왕정훈은 다음 홀에서도 6m 버디 퍼트를 성공해 파에 그친 엘비라를 눌렀다. “모로코 선왕인 핫산 2세를 기념하는 대회에서 왕(王)씨가 우승했다”며 주최측은 즐거움을 표했다.

왕정훈은 이 대회 우승으로 유러피언 투어 출전권을 받았다. 더 이상 대기번호를 받고 기다리지 않아도 된 것이다. 133위에 머물던 세계랭킹도 88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왕정훈은 여세를 몰아 모리셔스 오픈에서도 우승컵을 안아 아시아 출신 선수로서는 처음으로 유러피언 투어 2연승의 기염을 토했다. 세계랭킹도 70위로 올라 리우올림픽 출전 경쟁에 시동을 걸었다. 결국 안병훈과 김경태에게 밀렸지만 김경태의 양보로 리우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다. 왕정훈은 잡초처럼 질긴 자신의 승부근성에 대해 “일찍 시작한 험난한 모험과 고난 덕분”이라고 말했다.

왕정훈은 골프선수 출신이자 교습가인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초등학교 3학년 때 자연스럽게 골프에 입문했다. 아버지의 DNA를 받아서인지 일찍부터 뛰어난 자질을 드러냈다.

초등학교 전국대회를 휩쓸었고 졸업할 무렵, 아버지는 갑자기 “필리핀으로 가야겠다”고 아들에게 말했다. 1년에 30개가 넘는 대회에 출전하는 상황에서 제대로 학교 생활을 할 수 없었고, 공부도 뒷전으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하고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가 어떻게 세계 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겠느냐는 아버지의 생각이었다.

그 정도로 아들에 대한 믿음이 컸는지를 물었더니 그는 “당연하다. 그런 목표 없이 그냥 먹고 살 정도로 하려면 아예 시키지 않았다”고 말했다.

왕영조 씨는 말을 이어갔다. “초등학생에게 너무 과중한 시합도 문제지만, 연습 환경도 안 좋았다. 골프장에서 훈련해도 시원치 않은데 드라이빙 레인지 가고, 그것도 날씨 안 좋으면 못 가고. 명마(名馬)가 되려면 넓은 데서 뛰어 놀아야지 헛간에 가둬놓고 움직이지도 못하게 해서야 되겠는가.”

필리핀에서 3년간 생활하는 동안 왕정훈은 넓은 필드를 마음껏 누비며 실력을 키웠고, 영어실력도 익혔다. 그때쯤 되자 아버지는 이젠 국내 무대로 돌아와도 되겠다 싶어서 귀국을 권했다. 당시 왕정훈은 전남 보성 득량중학교에 적을 뒀지만 출석을 하지 않아 유급이 된 상태였다. 중3 나이에 중1로 등록해서 대회에 출전해야 했다. 하지만 두 대회 연속 그가 우승을 하자 학부모들이 “중3 나이의 선수가 중1로 나와서 우승을 휩쓸어간다”며 여기저기 진정서를 넣었다. 결국 대한골프협회가 왕정훈의 대회 출전을 금지했고, 왕씨 일가는 다시 필리핀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한국 떠나 필리핀 찍고 다시 중국으로


▎카메라 앞에서 한껏 포즈를 취하고 있는 초등학생 골퍼 왕정훈. 어려서부터 승부욕과 끈기가 유독 남달랐다.
왕영조 씨가 그때를 돌이키며 말했다. “국내 중등부는 1, 2, 3학년이 학년 구분 없이 대회를 치른다. 대한골프협회에서 선수등록 받아주고, 생년월일·유급상황 등을 다 확인하고 출전을 허락해주었다. 그런데도 시끄러워지니까 우리를 희생양 삼았다. 어느 정도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줄 수 있었을 텐데 선수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결정을 내렸다. 원통하고 억울했다.” 왕정훈은 그때 상황에 대해 “당시에는 당연히 힘들었지만 애쓰시는 부모님을 보고 오히려 힘을 얻었고 더 열심히 노력하면서 극복했다”고 담담히 말했다.

그러나 필리핀이라고 해서 사정이 만만치는 않았다. 필리핀에서 왕정훈은 국가대표 선수들이 출전하는 대회에서 3연속 우승을 일궈내자 현지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나라에서 급여를 받는 국가대표들이 어린 외국 선수에게 연속해서 패배하자 분위기가 험악해진 것이다. “자꾸 그러면 재미없다”는 말도 들었다. 빈말이라도 오싹했다. 필리핀에서는 당시에도 한국 교민들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종종 벌어졌다. 왕씨 부자는 결국 짐을 싸서 중국으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16세 나이에 중국 투어에 데뷔한 왕정훈은 그것에서도 빛을 발했다. 최연소 상금왕에 오른 것이다. 중국은 또 어떤 나라인가. 어처구니없는 차별과 불이익 속에서 경기를 치러야 하는 날이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스스로 풀어나가야 할 문제였다. 아버지 왕씨는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본인의 멘털이 강해지고 심리적인 자산을 많이 만들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아시안투어 퀄리파잉(Q) 스쿨을 최연소로 통과한 왕정훈은 2014년 중국투어 미션힐스 하이커우오픈에서 프로 첫 우승을 거머쥐었다. 2015년 아시안투어에서 우승은 없었지만 세 번의 준우승을 포함해 톱10에 여덟 번이나 진입했다. 당시 성적을 바탕으로 2016년에 자신이 원하는 한국체대 입학도 가능해졌다.

박영민 교수는 왕정훈의 입학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처음 아버지를 만났을 때 ‘제 아들이지만 인성이 정말 좋습니다’라고 하더라. 속으로 픽 웃었는데 겪어보니 정말 인성이 좋고 겸손하더라. 성적 좀 냈다고 거들먹거리지도 않고. 어려운 상황에서 마음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 것 같다. 우리 학교에 들어와 동료·선후배들과 어울리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은 것 같다.”

국립대인 한국체대는 학사 관리가 철저하다. 출석을 철저히 체크하고, 해외나 지방 대회 때문에 수업에 빠지면 리포트를 제출해야 한다. 지난해 1학기에 유러피언 투어 대회에 많이 나갔던 왕정훈은 2학기 때 학업을 보충하느라 애를 먹었다. 리포트와 시험 때문에 연습 라운드 한 번도 못 하고 경기에 출전한 경우도 있었다.

왕정훈은 “한국에 들어가면 늘 학교는 열심히 가고, 조금 힘들지만 시합 때는 리포트도 쓰면서 학업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학업을 사실상 포기하고 ‘스윙머신’으로 키워지는 한국의 골프 꿈나무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은지 물어보았다. 그는 “물론 골프 스윙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란 걸 꼭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박영민 교수는 이런 제자가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쓰럽다. 그래서 해외 투어 중일 때는 자주 문자를 보내 위로한다. ‘결국은 체력관리다. 시차적응·영양섭취·컨디션 조절을 위해 이런 걸 잘하라’는 내용이다. ‘경기가 안 풀릴 때는 복식호흡을 하라’ 같은 구체적인 조언도 있다.

박 교수는 왕정훈의 장점에 대해 “드라이버를 멀리 치면서 숏게임과 퍼팅도 강하다. 특히 트러블 샷을 잘한다”고 소개했다. 왕정훈의 올시즌 평균 드라이버 거리는 288야드다. 그는 “일단 거리에서는 그렇게 떨어지는 편이 아니다. 내가 가장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은 드라이버 정확도와 아이언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지난해 리우올림픽은 왕정훈에게 아쉬움이 남는 무대였을 것이다. 선배 김경태의 양보로 어렵게 출전권을 따냈지만 컨디션 난조로 경기를 망쳤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뛰다가 한국으로 와서 예방주사를 5대나 맞고 전지훈련지인 미국으로 간 게 탈을 불렀다. 컨디션이 급격히 떨어졌고 결국 바이러스성 뇌수막염에 걸려 한 달가량 고생했다. 왕정훈은 “그런 부담감은 처음 느끼는 거였고 그걸 통해서 많은 경험을 했다. 몸은 많이 아팠지만 나에겐 정말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왕정훈은 올 1월 커머셜뱅크 카타르 마스터스에서 유러피언 투어 3승째를 올렸다. 마테오 마나세로(이탈리아), 세베바예스테로스(스페인)에 이어 역대 셋째로 어린 나이에 이룬 유러피언 투어 3승이다. 그런데 우승컵을 들고 찍은 사진에는 그의 모자에는 아무런 로고가 없다. 그때까지도 메인 스폰서가 없었던 것이다. 다행히 선글라스를 만드는 국내 업체 ‘SNRD’와 최근 스폰서 계약을 맺었다. 국산 의류 브랜드인 ‘애플라인드’도 왕정훈의 후원자가 됐다.

올림픽 불운 털고 산뜻한 출발 ‘2017’


▎왕정훈이 지난해 유러피언 투어에서 신인왕에 오른 뒤 환하게 웃고 있다.
왕정훈은 열아홉 살 때부터 혼자서 전 세계를 누비고 다닌다. 그는 “짐가방은 어떤 상황에서도 20분 안에 다 쌀 수 있다. 음식이 좀 맞지 않는 것 빼고는 불편함을 못 느낀다”고 말했다. 아버지 왕씨도 “정훈이는 어리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을 정도로 자기철학과 소신이 강하다. 별도로 교육시킨 것도 아닌데 스스로 자의식을 확립한 것 같다. 그 어린 나이에 혼자 다니라고 놓아줬을 때는 더 강해지라고 그랬던 거고, 그래서 더 강해졌다”고 말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왕정훈은 “솔직히 어릴 땐 아버지를 좀 원망하기도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은 감사하다. 나에게 아버지는 인생의 선배님이고 선생님이고 없어서는 안될 분”이라고 그는 아버지에 대한 절절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왕정훈에겐 더 크고 새로운 무대가 다가온다. 세계랭킹 40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왕정훈은 PGA 투어를 비롯해 월드골프챔피언십(WGC) 등에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 첫 무대로 3월 2일에 개막한 WGC 멕시코챔피언십에 참가했다.

3월 말까지 세계랭킹 50위 이내를 지키면 4월 6일 개막하는 마스터스에도 출전이 가능하다. 그는 “만약 나가게 된다면 내겐 엄청난 경험이 될 거고 정말 좋은 기회가 아닐까 생각된다. 마스터스라고 해서 특별히 준비하는 건 없다. 항상 하던 경기와 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설렌다”고 말했다.

왕정훈의 깜짝 등장은 여자골프(KLPGA)에 치여 살다가 부활의 기지개를 켜고 있는 국내 남자골프(KPGA)에도 큰 힘이 될 듯하다. 지난해 13개 대회만을 치렀던 KPGA는 올해 대회 수를 19개로 대폭 늘렸다. 현대자동차가 후원하는 총상금 15억원짜리 대회도 생겼다.

KLPGA의 급성장은 LPGA 무대에서 한국선수들이 거둔 눈부신 성과에 힘입은 바 크다. 사실 국제무대에서 남자 골프의 선수층은 여자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두껍다. 그러나 내막을 잘 모르는 국내 팬들은 LPGA 대회를 휩쓰는 ‘코리언 시스터스’에 열광한다.

왕정훈은 한국 남자골프도 ‘국제 경쟁력’이 있다는 걸 보여줄 블루칩이다. 박호윤 KPGA 사무국장은 “지금까지 국내 팬들은 PGA와 미국 시장만 봤다. 그런데 왕정훈을 통해 유러피언 투어에도 눈을 돌리게 됐다. 왕정훈의 도전과 성취는 국내 남자선수들에게 자극이 되고 팬들에게 남자골프의 존재감을 어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골프 노마드’ 왕정훈은 자신의 영토를 어디까지 늘릴 수 있을까. 예측할 순 없지만 분명한 건 있다. 그가 국내 스포츠에 오랜만에 등장한 ‘잡초류’라는 것, 그리고 잡초는 번식력이 매우 강하다는 것이다.

- 정영재 스포츠 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

201704호 (2017.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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