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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이 쓰는 ‘생명의 비밀’] 화려하고 싱그러운 진분홍빛 꽃무리 ‘엉겅퀴’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곤드레로도 불리며 아삭하고 향긋한 특유의 향미가 일품… 콜레스테롤 수치 낮추고, 간경화·황달·항염증이나 항산화·당뇨에도 좋아

▎엉컹퀴에는 까칠까칠한 가시가 촘촘히 나 있다. 초식동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자구책일 것이다.
밉게 보면 잡초 아닌 것이 없고, 곱게 보면 꽃 아닌 것이 없다 한다. 또 자세히 봐야 예쁘고, 오래 봐야 사랑스럽다고 하지. 사랑하면 누구나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가 되고, 티 없는 어린이는 늘 고운 눈과 착한 마음을 갖는다. 나 비록 나이를 먹을 대로 먹었지만 천둥벌거숭이어린애가 되리라! 자 그럼 엉겅퀴(곤드레)를 보러 가자.

한데 엉겅퀴란 말은 어디서 온 것일까? 꽃이 열매를 맺을 때 하얗게 흐드러지게 센 머리털이 서로 엉켜 쥐어짜는 것처럼 보여 ‘엉겅퀴’라고 불렀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갑작스런 하혈(下血)에 엉겅퀴뿌리즙을 내어 마시면 즉효로 퍼뜩 피를 ‘엉키게(지혈)’한다 하여 엉겅퀴라고 불렀다는 설도 있다. 또한 엉겅퀴는 스코틀랜드 국화(國花, floral emblem)로 꽃말은 ‘엄격’, ‘권위’라고 한다.

여름이면 여느 때처럼 으레 엉겅퀴가 옹기종기 덤불을 이뤄 우부룩하게 자란다. 키다리 엉겅퀴는 화려하고 싱그러운 진분홍빛의 꽃무리를 이루고, 그 탐스런 꽃에 호랑나비가 팔랑팔랑 춤추며 총총히 찾아 든다. 엉겅퀴는 어느 것이나 잎줄기에 까슬까슬한 흰색 가시 털이 나고, 어긋나게 달리는 길쭉한 잎은 타원형으로 가장자리가 깊이 패어 들었고, 까칠까칠한 가시가 촘촘히 나 있다. 그래서 돋아난 가시에 대뜸 찔릴 것 같아 가까이 다가서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식물전신이 빳빳한 바늘가시투성이라 찔리면 깔끄럽고 따끔거리기에 만지기가 겁나고 두렵다. 이것은 초식동물들에게 먹히지 않기 위한 방어용(적응현상)이다. 한국에 자생하는 엉겅퀴에는 고려엉겅퀴·엉겅퀴·흰고려엉겅퀴·큰엉겅퀴·바늘엉겅퀴·지느러미엉겅퀴 등이 있다.

그중에서 고려엉겅퀴(高麗엉겅퀴, Cirsium setidens)는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 한국 특산종이고, 전국에 분포하며, 향명(鄕名: 예전부터 민간에서 불러 온 동식물 따위의 이름)은 구멍이·고려가시 나물·곤드레 나물이다. 아무튼 ‘곤드레’, ‘곤드레 나물’은 다름아닌 바로 이 고려엉겅퀴렷다.

고려엉겅퀴(Korean thistle)는 전국 곳곳에 널리 분포하고, 주로 산·들에 자라며, 전체에 거미줄 같은 흰 털이 많다. 잎은 타원형 꼴로 어긋나고, 깃꼴로 양면에 거친 가시털이 있다. 또 잎 가장자리에 불규칙한 날카롭고 깊게 갈라진 톱니가 있으며, 예리한 가시도 있다. 그리고 곧은 줄기는 높이가 1m에 달하고, 위에서 많은 가지가 갈라진다. 같은 국화과식물인 우엉처럼 뿌리가 곧고, 사실 우엉과 엉겅퀴의 꽃망울은 모양도 그렇지만 색깔도 산뜻한 자주색으로 한결 산뜻하고 청초하다.

꽃은 꽃잎이 없고, 암술과 수술로만 이루어지며, 붉은빛을 띤 보랏빛으로 물든다. 지름 3~4㎝인 자주색 두상화(頭狀花, flower head)가 가지 끝과 원줄기 끝에 위를 향해 1개씩 달린다. 암술이 성장하기 전에 수술이 먼저 성장해 꽃가루를 방출하는 웅성선숙(雄性先熟) 식물이고, 열매에는 백색 갓털(관모, 冠毛, thistle down)이 붙었고, 바람에 의해 널리 퍼진다.

삼순구식 시절의 구황식물


▎곤드레밥은 요즘 건강식으로 인기를 끈다.
꽃자루가 짧고, 꽃송이는 둥근 종(鐘) 모양으로 길이 약 2㎝이며, 여기에 끈끈한 꽃물(nectar)이 묻어 있어 많은 곤충이 모여든다. 열매는 긴 타원형으로 11월에 익고, 마치 민들레 씨앗처럼 하얀 솜털인 회갈색의 부푼 갓털을 달고 바람에 흩날린다.

술은 음식인데 이렇게 과하게 마셔 취하면 어쩌나. 술이나 잠에 몹시 취하여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몸을 못 가누는 꼴을 일러 “곤드레만드레됐다”고 한다. 아마도 한소끔 데치고 난 고려엉겅퀴(곤드레) 잎사귀가 맥없이 푹 숨 죽어 우그러든 모습에서 이 말이 유래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고려엉겅퀴 말고도 다른 엉겅퀴도 곤드레 나물로 쓸 터이다.

그리고 ‘곤드레밥’으로 유명한 강원도 정선에선 한때 고랭지배추를 심던 산밭에 곤드레를 지천으로 심는단다. 곤드레는 4~5월에 어린 순과 여린 잎을 나물이나 밥에 얹어먹는데 요새 한창 건강식으로 인기를 끈다. 대학동창들이 자주 만나는 음식점에도 이 음식이 있어서 다들 그걸 시켜 먹는다. 옛날엔 어쩔 수 없이 먹었던 그것을 말이다.

곤드레는 참으로 유용한 산나물로 아삭하고 향긋한 특유의 향미가 난다. 곤드레 잎으로 된장국이나 해장국을 끓여도 좋고, 어린잎과 줄기를 데쳐 우려낸 다음 묵나물·국거리·튀김·무침·볶음·데침으로 요리한다. 특히 보릿고개 철에는 밥에 고려엉겅퀴를 섞어 밥을 불렸다.

술을 고주망태로 마셔 곤드레된 사람의 간(肝)을 곤드레로 고친다니 신통방통하도다! 술을 자주 마시는 남성들의 간 건강식품으로 ‘밀크시슬(milk thistle)’이 주목받고 있다. 밀크시슬은 흰무늬엉겅퀴(Silybum marianum)를 이르는 것으로 유럽과 북아프리카가 인접한 지중해가 원산이고, 1년 또는 2년생 엉겅퀴다. 잎사귀에 하얀 우윳빛 띠가 사방 퍼져 있어 붙은 이름으로 식물체에 가시가 없는 것 외에는 다른 엉겅퀴와 별로 다르지 않다. 열매는 얇은 껍질에 싸인 민들레씨와 같다하고, 씨앗에서 든 약물질인 실리마린(silymarin)은 간에 관련된 간경화·황달·간염·담낭 이상 따위 말고도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항염증이나 항산화, 당뇨에도 좋다 한다. 우리 엉겅퀴들에도 실리마린이 많이 들어 있지 않을까?

돌이켜보면 고려엉겅퀴(곤드레)에는 피죽 한 그릇도 먹기 어려웠던 쪼들린 한세월을 살다간, 아득히 먼 옛사람들의 애통함이 담겨 있다 하겠다. 이는 과거에 30일 동안 아홉 끼니밖에 먹지 못한(삼순구식, 三旬九食) 몹시 가난할 때의 구황식물로 애용됐던 것이다. 요새는 먹을 게 넘쳐나 군살 걱정을 하는 판인데 말이지.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세상사는 것이 고르지 못해 결코 끼니 걱정하는 사람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아무튼 곤드레란 것이 엉겅퀴풀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권오길 - 1940년 경남 산청 출생. 진주고,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수도여중고·경기고·서울사대부고 교사를 거쳐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 정년 퇴임했다. 현재 강원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상 저작상,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주요 저서로는 <꿈꾸는 달팽이> <인체기행> <달과 팽이> <흙에도 뭇 생명이> 등이 있다.

201710호 (2017.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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