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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지도 위에서 신화를 측량하다 

 

문상덕 기자

오이디푸스와 헤라클레스. 그리스신화에서 손꼽히는 두 영웅은 고향이 같다. 아테네에서 북서쪽으로 100㎞가량 떨어진 테베다. 이곳에서 오이디푸스는 자신도 모르는 새 친부살해와 근친상간의 비극을 써내려 갔다. 사생아 헤라클레스에게는 여신 헤라가 내린 시련을 견뎌야 하는 장소였다. 그만큼 테베는 그리스신화의 주무대였다.

그러나 테베는 황량해진 지 오래다. 마케도니아에 이어 로마제국에 짓밟히면서 테베는 평범한 시골 마을로 전락했다. 테베뿐만 아니라 고대 그리스 도시 모두가 겪은 고난이었다. 칭송해 마지않는 파르테논 신전조차 복원을 시작한 지 불과 30년이 지났을 정도다. 저자는 도시마다 깃든 신화를 복원해 여행자들이 그리스를 제대로 맛볼 수 있도록 안내한다.

고향을 잃은 신화는 우화(偶話)일 뿐이다. 성실하게 살자는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처럼 단순한 교훈만 남게 된다. 그러나 신화에는 당대의 사회가 녹아 있다. 단지 신들의 관계로 표현됐을 뿐이다. 홍길동이 향한 ‘율도국’이 상상이 아닌 실제 오키나와인 걸 알았을 때, 신화는 역사가 되는 셈이다.

저자는 오이디푸스 신화 속에는 당대에 비일비재했던 영아살해와 그에 대한 죄의식이 담겨 있다고 설명한다. 철인(哲人)을 키워내기 위해 영아살해를 긍정했던 플라톤의 사상도 엿보인다. 소아시아 지역(현재의 터키)에 위치한 에페소에서 여신 아르테미스와 성모(聖母) 마리아가 만나는 장면도 흥미롭다.

책에서 소개된 여정은 발칸반도 중부에 있는 올림푸스 산에서 시작돼 서부 항구도시 에피라에서 끝난다. 순서대로 읽지 않는 편이 좋다. 재미있을 법한 도시 한 곳을 출발지로 삼아 충분히 만끽하자. 여행이 으레 그러하듯이 말이다.

- 문상덕 기자

201710호 (2017.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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