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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반려견의 눈으로 인간을 보다 

아우슈비츠와 도살장의 차이는? 

심영섭 영화평론가
인간과 동물 경계에서 던진 도발적 질문… 소유물 아닌 타자로 볼 때 새 지평 열린다

우리는 흔히 ‘짐승만도 못한’이란 말로 사람들을 욕한다. 하지만, 이 말을 듣는 동물들이 스스로 인간보다 덜 진화되었거나 열등한 존재라고 믿을까. 영국 킹스 칼리지 명예교수인 저자 레이먼드 게이타(Raimond Gaita)는 “동물이 자신을 인식할까, 인식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인식할까” 등의 질문을 던지면서 흥미롭게도 동물에게 철학을 적용한다. 읽다 보면 결국 ‘인간의 고유성은 무엇인가’하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저자는 어머니 없이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이주 노동자였던 아버지와 함께 호주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외로운 밤이면 그는 기르던 애견 ‘올라프’와 함께 침대에서 잠들곤 했다. 올라프 외에도 그는 자신이 길렀던 다양한 동물을 회상하며 책을 시작한다. 여기에는 충견 올라프 외에도, 셔츠 장사를 해서라도 입원비를 대야 했던 셰퍼드 ‘집시’, 집시에게 물려서 죽음을 맞은 고양이 ‘토스카’ 등이 등장한다.

반려동물은 신비로운 타자다. 셰퍼드 집시가 고양이 토스카를 물어 죽였을 때 ‘살해 충동’ 같은 인간적 심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심리를 대입할 수 없기에 동물은 불가해하다. 때문에 종종 우리는 불안감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물은 우리처럼 생명체로 존재한다. 우리는 동물에게 인간만큼의 장례식을 치러주지는 않지만, 소박한 이름을 붙여주고 매장시켜 준다. 즉 동물의 개별성이 우리 인간처럼 뚜렷하지 않지만, 동물에게도 ‘개별성’이 미약하게 존재한다는 뜻이다. 저자는 개별성을 지닌 생명체를 대하는 인간의 태도에 관해 여러 가지 사유의 방식으로 성찰한다.

‘존 쿳시’는 유기동물 보호시설에서 일하는 직원이다. 쿳시는 안락사가 이루어진 다음 날 아침이면, 직접 사체를 승합차에 실고 소각로로 가져가 화장하곤 한다. 인부들에게 맡기지 않고 고역을 자처한다. 동물의 사체일지언정, 병동에서 나온 폐기물과 악취 나는 오물 따위가 뒤섞인 쓰레기 더미 위에 방치하지 않겠다는 의지에서였다.

저자는 동물에게 자유란 무엇인지도 탐구한다. 인간처럼 스스로 ‘우리는 자유로운 존재’라고 선언할 형편은 못 된다. 그러니 ‘본래 자유로운 존재’라거나 ‘훈련을 통해 진정한 자유로 나아가는 존재’라고 보긴 어렵다. 그러나 저자는 반려동물 역시 주인과의 진정한 관계 맺기를 통해 일정한 자유를 향유할 수 있다고 말한다.

레이먼트 게이타는 우리가 권태와 취기, 조급함, 두려움, 진부함, 억측, 상투성 같은 사유의 이해를 왜곡하는 미망들을 배제하고 세상을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보기를, 동물과의 관계에서도 그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책을 읽다 보면 반려동물에게 옷을 입히고, 중성화 수술을 하고, 자신이 일터에서 돌아 왔을 때까지 자신을 기다리도록 집에 혼자 두는 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행동인지 돌아보게 된다.

연민, 상상력, 반성이 인간이란 종(種)에게 내려진 축복이라면, 세상 만물과 역지사지가 가능한 관계를 맺어보라고. 레이먼트 게이타는 동물들을 통해 또 다른 동물인 우리 자신을 바라보게 만든다.

※ 심영섭 - 1966년생. 영화평론가. 대구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장, ‘심영섭 아트테라피’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영화, 내 영혼의 순례] [대한민국에서 여성평론가로 산다는 것] [영화치료를 위한 영화수첩] [지금, 여기, 하나뿐인 당신에게] 등이 있다.

201804호 (2018.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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