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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평양] 연말연시의 북한 풍경 

식량·비료·화장품·의복·자동차… 소비재 산업이 핫 이슈 

글 박용한 중앙일보 군사안보연구소 연구위원, 북한학 박사 park.yonghan@joongang.co.kr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 못한 주민들 목표 초과 달성에 총력전… 롤렉스·아디다스·폭스바겐과 같은 세계 브랜드에 필적하겠다는 야심도

지금도 한국인들에게 소개되는 북한은 그들이 보여주고 싶은 것에 국한될 수밖에 없다. 대표 매체는 북한 노동당에서 발행하는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 오늘날 북한 사회가 관심을 쏟는 의제를 알 수 있는 유력한, 유일한 신문과 방송 매체라고 하겠다. 이들이 전하는 북한 소식은 정치와 군사 테마에 주로 한정돼 있다. 체제 선전과 이념 홍보에 투철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음은 물론이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은 베일 뒤에 놓여 있다. 월간중앙은 북한 주요 매체를 통해 전해지는 콘텐트에 녹아 있는 북한 사회의 속살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국내 언론에서 잘 다루지 않는 정보들이 북한 주민들의 소소한 일상과 애환, 사회의 변화상을 더 생생하게 대변할 수도 있다. - 편집자 주


▎12월 9일 조선중앙TV에 방영된 을밀대피복전시장 소개 영상에 등장한 북한 소비자들. / 사진:조선중앙TV
우리의 주식인 쌀은 남북 공동의 관심사다. 남한에서는 쌀값 인상을 요구하는 농민들이 12월 12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국회의원 회관 사무실에서 농성을 벌였다. 80㎏ 기준 쌀 가격을 24만원으로 올려달라며 이 대표 면담을 요구했다.

‘부닥치는 애로와 난관을 과감히 뚫고 올해 전투목표를 기어이 점령하자’. 12월 9일 노동신문 1면 기사 제목이다. ‘쌀로써 당을 받들어갈 일념 안고 다음해 농사 차비를 다그친다’라는 부제가 달렸다. 기사는 “농업 전선은 사회주의 수호전의 전초선입니다”라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발언으로 시작한다. 선전 문구 사이에는 북한 주민의 고단한 삶도 엿보인다. 양강도에서는 예년보다 감자 농사, 삼지연에선 비료 생산이 크게 늘었다는 소식을 전한다. 북한 각지에서 발효퇴비와 유기질 비료 생산에 힘겹게 나선 노력도 소개한다. 삼지연에서 비료 6000t을 생산했고 희천시 협동농장에선 8000t을 확보하는 성과를 거뒀다는 소식도 있다.

북한은 비료 생산에 온 국가가 매달린다는 인상이 든다. 식량이 넉넉지 않은 탓이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한국농어촌공사 산하 농어촌연구원의 김관호 책임연구원은 “북한에서 내놓은 설명과 달리 화학비료를 많이 사용한 토양이 산성화한 탓에 생산성을 끌어올리는데 한계가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대도시에서 인분을 동원하는데 오히려 토양이 더 황폐되는 악순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과거 김일성 주석은 북한 주민들에게 “흰쌀밥에 고깃국을 먹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도 현실은 힘겹기만 하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2018년 9월 ‘작황 전망과 식량 상황’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북한을 외부 지원이 필요한 39개 대상에 포함시켰다. 보고서는 2018년 7월 중순부터 한 달여 간 이어진 폭염과 가뭄 탓에 수확량이 감소했을 거라고 추정했다. 부족 식량 규모는 64만t 수준인 것으로 집계됐다. 때문에 한국에선 이미 사라진 보릿고개가 북한에선 여전하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북한에서도 치열한 연말 실적 경쟁


▎1. 북한 당국은 “분배에서의 평균주의가 생산의욕을 떨어뜨린다”고 비판한다. / 2. 식량사정이 열악한 북한은 가을걷이철에 증산을 독려하는 기사를 싣는다. / 사진:노동신문
연간 목표 달성이 중요한 분야는 농업만이 아니다. 노동신문은 12월 7일 ‘연간 화물자동차 생산 계획을 수행한 승리자동차연합기업소 소식’을 전했다. 2017년 11월 김정은 위원장이 기업소를 찾았던 현지지도를 상기하면서 구체적인 성과를 소개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다녀간 뒤 기업소 사정은 달라졌을까. 노동신문은 기업소가 화물자동차 질적 지표를 개선하고 생산원가를 낮췄다고 보도했다. 기술협의회도 수시로 개최한 덕으로 평가했다. ‘따라배우기운동’을 통해 부품 조립 시간을 단축해 납기일을 앞당겼고, 기술 혁신에 나섰다는 사례도 더했다. 화물 트럭 수십 대를 세워 두고 찍은 사진도 실어 성과를 과시하는 모습은 우리의 1960~70년대 산업현장을 떠올리게 한다.

통계청은 북한 연간 자동차 생산량을 4000여 대 수준으로 추정한다. 1985년 1만8500대까지 올라갔지만 경제 사정이 악화되면서 대폭 오그라들었다. 북한에서 등록된 자동차는 약 30만 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의 1.3% 수준에 못 미친다. 북한에서는 여전히 숯을 연료로 작동하는 목탄차와 소달구지도 거리를 활보하는 등 친근한 교통수단으로 활용된다.

북한은 사회주의 계획경제로 작동된다. 당국이 생산량과 가격을 결정하고 분배 과정도 중앙에서 계획해 집행한다. 여기에도 우선순위가 있다. 매년 최고지도자가 발표하는 신년사를 바탕으로 그해 달성해야 할 목표가 결정된다. 그래서 노동신문에는 지난 한 달간 성과를 보여주는 지표 관련 기사가 자주 등장한다. 연말 성과 달성 여부가 중요한 건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예컨대 12월 6일 노동신문은 채취기계 공업국 자료를 인용해 11월말까지 연간 공업총생산액 계획을 110% 달성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11월에는 금바위광산 소식을 전하면서 설비가동률을 130% 수준으로 높인 덕에 8월에 이미 연간 생산계획을 달성했다는 자랑도 했다.

최고지도자의 동선을 따라가면 그 나라가 어디로 가는지,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12월 1일 노동신문은 김 위원장의 동해지구 수산사업소 현지지도 소식을 전했다. ‘1월8일 수산사업소’의 경우 어선마다 1000t 이상 어획량을 올렸다는 실적이 모범사례도 소개됐다. 연간 3000t 이상의 어획량을 확보하라는 김 위원장의 지침을 초과 수행했다고 보도했다. 북한 당국은 학생과 노인들에게 공급되는 생선류의 규모를 일일 300g에서 400g으로 상향조정하라는 지침을 내리는 등 수산물 증산에 자신감을 내비치는 모습이다.

연말 성과급은 한국 직장인들의 로망이기도 하다. 북한과 같은 사회주의체제에서도 PI(Productivity Incentive, 생산성 격려금) 또는 PS(Profit Sharing, 초과 이익 분배금) 지급될까. 물질적 ‘인센티브’는 북한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특히 평등을 지향하는 북한에서 평균주의를 경계하는 모습은 이채롭기도 하다.

분배에서의 평균주의 비판


▎지난 11월 중국 단둥에서 촬영한 북한 신의주 모습. 한 주민이 가을걷이가 끝난 논을 둘러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노동신문은 11월 2일 일정한 토지와 밭을 책임지고 경작하도록 하는 ‘포전담당책임제’ 소식을 전했다. 작업반마다 다른 수확량을 한 데 모아 사람 수로 나눠 분배하는 평균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신문은 “분배에서의 평균주의가 농업근로자들의 생산의욕을 떨어뜨리며 가을걷이에도 영향을 준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비판했다. 나아가 “이는 생산물 분배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당의 농업 정책 관철과 직결된 심각한 문제”라고 사안의 중대성을 부각시켰다. 숙천군 약전농장을 비롯한 분배 개선 조치 성과를 소개하면서 더 많은 성과를 올리는 작업반에는 더 많은 보상을 한다는 원칙을 밝혔다. 결국 일 잘하는 개인에게는 더 많은 이익을 분배하겠다는 것이다.

북한 협동농장 말단 단위인 ‘분조’는 농민 10∼15명으로 구성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4년 ‘전국 농업 부분 분조자 대회’에서 포전담당책임제 실시를 지시했다. 가족 단위 3∼5명이 하나의 ‘포전’(일정한 면적의 논밭)을 경작한 뒤 일정 몫만 당국에 바치고 나머지는 수확량은 개인이 처분할 수 있다. 노력한 만큼 개인에게 더 많은 성과를 보장하겠다는 북한 당국의 개혁 조치다. 노동신문에서 “수매계획을 수행한 농업근로자들에 대해서는 즉시 현장에서 분배하도록 했다”는 설명과 “성과가 뚜렷했고 농업근로자들의 반향도 대단했다”는 소식을 강조한 이유다.

김정은 시대 이후 북한 경제는 다양한 변화를 경험한다.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초기부터 화장품 공장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2013년 부인 이설주를 대동하고 평양 시내 쇼핑몰 화장품 판매점도 찾았다. 2015년 평양화장품공장에서는 “외국산 마스카라는 물에 들어가도 유지되는데 우리 제품은 하품만 해도 너구리 눈이 된다”고 비교했다. 화장품 산업은 양적인 평가보다 질적 평가가 더 중요하게 다뤄지는 분야다. 11월 7일 노동신문은 “피부 보호 및 자외선 방지 기능을 가진 BB크림을 새로 연구개발했다”며 평양화장품공장 소식을 전했다. 이 신문은 “화장품의 질을 더욱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기기 위한 사업에서도 성과가 이룩됐다”고 평가했다.

한국에선 여전히 오디션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끈다. 북한에서도 이와 비슷한 경연대회가 있어 눈길을 모은다. 경연대회 소식이 노동신문 지면을 장식하기도 한다. 11월 1일 이 신문에는 ‘노동이 노래로, 기쁨으로’라는 행사 안내 기사가 실렸다. ‘제16차 전국근로자 노래경연’에 참가한 순천시멘트연합기업소 근로자들이 독창과 4중창에서 1등을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온 기업소가 노래경영소식으로 막 끓고 있습니다”라며 현장 근로자의 소감도 전했다. 혹독한 노동에 내몰리는 북한 주민들에겐 소소한 재미가 아닐 수 없다. “노동이 창조의 기쁨으로 되고 아름다운 노래로 되고 있는 내 조국의 자랑찬 현실이 가슴 뿌듯이 안겨왔다”는 노동신문의 극찬은 유난스럽게 느껴진다.

“옷은 예술이다”


▎지난 8월 대동강수산물식당 1층에 마련된 수조 안의 물고기를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는 북한 주민들.
사회주의 체제인 북한에선 어떤 옷을 입을까. 배급받은 옷은 사이즈만 다를 뿐 디자인이나 색상에 별반 차이가 없을까. 12월 9일 조선중앙TV는 “아름다운 계절옷을 다양하게 만들려면 을밀대피복전시장에서”라는 제목의 영상을 15분 분량으로 편집해 방송했다.

방송은 “어떤 옷이 아름다고 나에게 잘 어울릴까”라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했다. 을밀대피복전시장 책임자 이미화는 평양시내를 활보하면서 “옷도 예술이다”고 활짝 웃는다. 매장에 들어선 방송 진행자는 “전시장도 커졌고 남여 다양한 옷을 전시한다”면서 “을밀대양복점에서 을밀대피복전시장으로 이름을 바꿨다”고 소개했다.

매장에서는 고객 인터뷰도 이뤄졌다. 조선영화촬영소 배우라고 소개한 한 여성은 “직업상 의상에 신경을 쓴다”며 “여기 옷은 항상 마음에 들고, 길거리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 좋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과거 축구선수였다고 소개한 다른 여성은 “의상을 고를 때 축구선수도 까다롭기는 마찬가지”라며 미소를 지었다. 이어 “다른 곳에선 3~4번 옷을 수선해야 마음에 들지만 여기서는 한 번에 다 해결한다”고 추켜세웠다.

방송은 ‘아름다운 옷을 만드는 묘술’이라며 디자인과 가공 과정을 소개했다. 방송 진행자는 “고유한 민족적 특성과 우리 인민의 미적지향을 옳게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우리 민족은 현란한 색을 멀리하고 연하고 선명하면서도 품위 있고 깊이가 있어 보이는 것을 선호했다”고 규정했다. 이어 “양장을 입어도 키가 큰 서양사람 기준이 아닌 조선사람 기호와 성격과 생활풍습을 반영해야 한다”는 김일성 교시를 덧붙였다.

북한에서도 발전의 개념은 강조된다. 방송에서도 “발전하는 시대적 요구를 반영해야 한다”고 대목은 인상적이다. 남성 2명과 여성 4명이 등장해 마음에 드는 옷을 골라 입고 평가를 해보는 코너도 영상에 잡혔다. 검은색 원피스를 입고 등장한 여성은 “검은색을 입으면 매력이 있어 보일 것 같아 골랐다”고 말했다. 이에 전시장 책임자는 “젊고 얼굴이 하얗기 때문에 더 밝게 입어야 한다” 조언했다. 회색 재킷을 입고 나온 여성에겐 “단색으로 회색이나 검정색만 입으면 옷에 재미가 없다”며 “옷깃으로 효과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겨울 외투를 입은 남성이 “움직임이 편하다”고 말하자 “손으로 모든 재봉을 했기 때문에 부드럽다”고 설명했다. 방송의 말미에 전시장 책임자는 당당한 포부를 밝혔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 롤렉스·아디다스·폭스바겐과 같은 대표적 브랜드에 필적하는 상품을 만들겠다.”

201901호 (2018.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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