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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대 HK+ 한자문명연구사업단·월간중앙 공동기획 | ‘한자어 진검승부’(8)] 석유(石油)-바위 틈 사이로 흘러나온 기름 

평범 넘어선 획기적 발상 전환이 세상을 바꿨다 

염수 찾다가 우연히 발견… 쓸모없어 버려지다 문명의 혈액으로
이젠 화석연료 한계 노출, 지구 멸망의 위험 눈앞에 와 있는지도


▎석유를 머금은 검은 모래 ‘오일 샌드’. 모래에서 역청을 분리한 뒤 정제 과정을 거치면 액체 상태의 원유가 된다.
1. 석유, 미미한 발견

“중국 서북쪽의 고노(高奴)라는 곳에 불에 타는 ‘유수(洧水)’라는 강이 있다. 그곳에는 옻칠한 것처럼 검은 기름기를 품은 물이 강물 위로 흐르는데, 그것을 떠서 등불을 밝히는 데 사용했다.”

바로 석유 이야기다. 동한 때의 반고(班固)가 쓴 [한서(漢書)](80년경), 서진(西晉) 때의 장화(張華)가 쓴 [박물지(博物志)](267년경), 당나라 때의 단성식(段成武)이 쓴 [유양잡조(酉陽雜俎)](863년경) 등에 버전을 달리하며 계속해 언급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천수백 년이 지나 저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도 비슷한 광경으로 기록된다. 소금을 채취하는 염정(鹽井) 이야기다. “염수와 함께 갈색의 기름이 분출하면 기름이 수면에 뜨는 원리를 이용해 저수조의 상부에 모아뒀다가 근처의 강으로 흘려보냈다. 그리하여 오하이오 강 유역에서는 수십 ㎞에 걸쳐 강물이 불꽃으로 뒤덮이는 장관을 이루기도 했다.”

1800년대의 미국인들이 기록한 석유의 초기 모습이다. 마치 유등(油燈) 축제를 보듯, 크리스마스의 불꽃놀이처럼, 석유는 그 큰 강을 뒤덮은 채 며칠이고 계속해서 활활 타오르며 불꽃을 내뿜었을 저 장관을 상상해보라.

2. 발상의 전환, 진정한 석유의 시대로 염수

고대 중국이 했던 것처럼, 당시 미국에서도 제염업자들은 염수(鹽水)를 찾다가 석유를 발견하곤 했다. 그들은 석유를 쓸모없는 것이라 여겨 강물로 흘려보냈고, 잘못해 불이 붙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러나 소금보다 천대받던 석유, 아무 쓸모없는 것으로 버려졌던 골칫거리 이 석유가 채 100년도 안 돼 세상을 지배하는, 세상의 신이 될 줄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하지만 시절을 타고 난 운 좋은 풍운아도, 시대를 잡는 영웅은 언제나 있는 법이다. 석유왕 록펠러가 그였다. 사실 그보다 이전 월가의 주식 전문 변호사였던 조지 비셀은 고향에 들렀다가 우연히 석유 샘플을 보게 됐고, 당시에 의학 용품으로 한정돼 팔리던 석유를 조명용으로 팔면 큰돈을 벌겠다는 생각에 유정을 개발하게 된다.

1859년 펜실베이니아에서 처음으로 유정 개발에 성공한 이후, 세상은 급속도로 바뀌었다. 양초와 고래 기름에 의존하던 조명이 등유로 바뀐 것이었다. 세상의 밤을 싼값에 낮으로 바꿀 수 있었다. 인류사의 일대 혁명이었다. 온 사업가들이 유정 개발에 나섰다. “꺼져가던 골드러시 열풍을 대신할 황금의 기회를 석유가 대신할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모건과 록펠러]).

그러나 진정한 주인공은 록펠러였다. 다른 사람들이 유정을 찾는 데 골몰하고 있을 때 그는 석유 시대의 미래에 대해 상상했다. 즉 석유의 발견과 개발 대신 파낸 석유를 어떻게 정제해서 유통하고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 결과 등유에서 중유와 휘발유까지 만들어지고, 체계적인 보관과 운송 및 판매 등등을 장악하는 진정한 석유의 제왕이 된 것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바로 “진짜 돈이 되는 석유 사업은 채굴이 아니라 운송과 정유”임을 일찍이 간파한 예지(豫知) 때문이었다. 마치 스티브 잡스가 스마트폰을 생각하고, 마윈이 불모지 중국에서 유통 플랫폼과 전자화폐를 구상하고, 일론 머스크가 지구를 넘어선 다행성 시대를 창안했듯, 평범을 넘어선 창의가, 발상의 획기적 전환이 세상을 바꿨다. 세상의 주도권은 상으로 주어진 선물이었다. 그 덕에 그도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됐고, 미국도 세계 최고의 부국이 됐다.

3. 신비한 사물, 진지한 탐구


▎송나라 학자 심괄의 저서 [몽계필담]. 문학·예술·역사·행정 등 다방면에 관해 기술한 책이다. / 사진:하영삼
두랑산 아래로 눈만 휘휘 휘날리는데(二郎山下雪紛紛)
자리 잡고 게르 세워 변방인 생존법 배우네(旋卓穹廬學塞人)
흰옷 온통 검게 변했어도 겨울은 여전하고(化盡素衣冬末老)
들러붙은 석유 그을음 마치 낙양의 먼지 같구나(石煙多似洛陽塵)

심괄 “석유는 돌 사이에서 나는 기름”

중국의 저명한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북송의 심괄(沈括, 1031~1095)이 쓴 시 ‘연주(延州)’다. 북송 신종 때 변법에 참여하고 왕안석의 인정을 받아 잘나가던 심괄이었지만 무상한 것이 세상인 법, 갖은 질투와 모함을 받아 1080년 저 서북쪽 끝 버림받은 땅으로 쫓겨난다. 그것도 한겨울, 도착한 그곳에는 눈만 펄펄 날릴 뿐 내려갈 곳도 머물 곳도 없다.

눈에 든 것이 몽골족의 이동식 천막 ‘게르’, 그것을 배워 임시 거처를 겨우 지었다. 거기서는 석유를 태워 난방하고 있었다. 시커먼 그을음이 가득했다. 눈을 덮어써 휜 옷이 온통 새까매졌지만 그래도 겨울은 끝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덕지덕지 들러붙은 그을음, 그것을 수도 서울 낙양에서의 그 음흉한 무리의 모함, ‘낙양의 먼지’로 표현했다. 흰옷과 검은 옷, 흰 눈과 검은 기름, 나아가 서울과 변방, 정의와 불의를 정교하게 대비시켰다.

심괄이 처절한 심경으로 읊었던 그곳에서 그는 ‘석유’의 존재를 실증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그가 쓴 중국 과학사의 위대한 저작 [몽계필담(夢溪筆談)], 여기서 그는 석유의 존재를 말했고, 그것이 암석의 틈 사이로 흘러나옴을 살폈으며, 그리하여 ‘돌 사이에서 나오는 기름’이라는 뜻의 ‘석유(石油)’라는 이름을 붙였다. 오늘날 쓰이는 ‘석유’라는 명칭은 바로 이 책에서 처음으로 탄생한다.

그는 이렇게 기록했다. “부연(鄜延)에서 나는 석유는 바로 고노현(高奴縣)의 지수(脂水)를 말한다. 물가의 사석(沙石) 틈에서 나와 샘물과 서로 섞여 정신없이 흘러나오는데 그곳 사람들은 꿩의 꽁지 털을 묶어 그 기름을 채취해 항아리에 담는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게르’의 천정 통풍구 주위로 덕지덕지 들러붙은 석유의 그을음을 가져와 ‘먹’을 만들었다. 덕분에 소나무에서 나오는 송진을 태워 만든 송연묵보다 훨씬 나은 ‘먹’의 질적 개량도 이뤄졌다.

4. 어원과 파생


▎미국의 사업가이자 석유왕인 존 데이비슨 록펠러.
석유는 글자 그대로 “돌 틈으로 나오는 기름”이라는 뜻이다. 석(石)은 암벽에서 떨어져 나온 큰 돌덩이를 그렸고, 유(油)는 기름을 말하는데 ‘물에서 연유했다’는 뜻을 담아 ‘물의 한 부분’으로 봤음을 말해준다.

참 잘 지은 이름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영어의 어원도 마찬가지이다. 즉 영어 ‘petroleum’은 “특정 암반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유성 인화성 물질”을 지칭하는데, 이는 라틴어에서 ‘바위’를 뜻하는 ‘petra’와 ‘기름’을 뜻하는 ‘oleum’이 결합해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etymonline.com).

어둠 밝히고 불화살로 만들어져 전쟁에 활용

‘petra’는 ‘매우 단단하다’는 의미의 ‘petrous’와 어원을 같이 하는데, 이는 예수의 수제자인 베드로(Peter the Apostle)의 이름과도 관련됐다. ‘넓고 평평한 큰 돌’을 일컫는 반석(盤石)이 바로 베드로(Petros)의 뜻이다. 예수의 사상을 계승하여 기독교의 큰 바위처럼 든든한 기틀이 되라는 염원을 담은 이름이다. 우리 주위로도 많이 보이는 ‘반석교회’는 바로 이 정신을 담았다. 바티칸에 있는 성 베드로 성당도 베드로의 무덤 위에 지어졌다는 의미와 함께 바로 이러한 의미를 이중적으로 담았다.

그런가 하면, “화장품의 원료, 기계류의 녹 방지제·감마제 따위로 쓰이는” 바셀린(vaseline)도 석유와 관련된 어휘다. 이는 “1872년 석유로 만든 연고의 상표인데, 독일어 Wasser(물)와 그리스어 elaion(기름)에다 과학성을 나타내는 어미 -ine이 결합해 만들어진 단어다”(etymonline.com). 바셀린이 석유 젤리(petroleum jelly)라 불리며 피부보습제로 사용됐던 당시의 출발을 잘 반영했다. 사실 석유는 옛날부터 피부염이나 치통 치료제 등으로 쓰였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 ‘바셀린’으로 발전한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5. 다양한 명칭

중국에서 석유의 발견과 기록은 사실 [몽계필담] 훨씬 이전부터 이뤄져, 다양한 이름으로 기록됐다. 석유(石油) 외에도 석지수(石脂水)·석칠(石漆)·니유(泥油)·화정유(火井油)·유황유(硫黃油)·맹화유(猛火油)·부연지(鄜延脂)·석뇌유(石腦油)·석지수(石脂水)·석촉(石燭)·석칠(石漆)·웅황유(雄黃油)·지유(地脂)·화유(火油)·화정유(火井油) 등이 그렇다.

이들 이름을 보면 오늘날 ‘석유’가 통칭으로 확정되기 전까지 그들이 석유’를 봤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예컨대 ‘속성’을 이야기한 것으로 ‘동물성 기름(~脂)’이나 ‘식물성 기름(~油)’ 혹은 ‘액체(~水)’, 심지어 칠(~漆)이나 진흙의 일종(泥~)으로 본 것의 차이를 반영한다. 다음으로는 ‘연원’을 이야기한 것으로 ‘돌(石~)’, ‘땅(地~)’이나 ‘생산지(鄜延~)’를 반영했다. 나아가 기능을 반영해 ‘불(火~)’이나 ‘등(~燭)을 지피는 데 사용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또 포함된 성분을 구체적으로 밝혀 ‘유황’이나 ‘석웅황’ 등의 성분을 구체적으로 반영한 경우(硫黃~, 雄黃~)도 있다.

서구에서는 석유의 발견이 기원전 10세기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의 고대 이집트나 바빌론에서는 아스팔트(瀝青)를 채취해 건축·장식·제약용으로 사용했고, 심지어는 관의 틈새를 메우고 미라를 제작할 때 방부용으로도 사용했다고 한다. 5세기경에 이르면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 수사(Susa) 부근에서 수공에 의한 유정이 개발됐다. 나아가 [일리아드]의 기록처럼 불화살로 만들어져 전쟁에도 활용됐다([바이두백과]).

중국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앞서 말했듯 반고의 [한서 지리지], 장화의 [박물지], 여도원(酈道元)의 [수경주(水經注)] 등에 “고노(高奴)의 유수(洧水)”에 대한 언급이 나오며, 당나라 때의 단성식의 [유양잡조]에서도 비슷한 기술이 보인다. “석칠(石漆)은 고노현(高奴縣)에서 나는 석지수(石脂水)인데, 기름진 물로 검은 옻 같은 모습으로 물위로 뜬다. 이를 채취해 수레에 기름칠하거나, 등을 밝히는데 대단히 밝다.”([물이(物異)]) 이미 당시에 수레의 윤활유로 쓰거나 등을 밝히는 등유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6. 한국의 기록


▎[천공개물(天工開物)]에 실린 염정 채굴 모습. / 사진:하영삼
한국은 어떤가? 조선 후기 실학자 한치윤(韓致奫)이 찬술한 [해동역사(海東繹史)]에는 ‘석유’에 대한 기록이 제법 상세하게 나온다. 그는 중국 문헌에서 언급된 ‘고려’ 땅의 석유에 대한 언급을 죄다 모아놓았다.

“맹화유(猛火油)는 고려의 동쪽 수천 리 밖에서 나는데, 해가 돌을 뜨겁게 달구면 나오는 액체다.” “이것은 오직 진짜 유리로 만든 그릇으로만 저장할 수가 있다. 물에 들어가면 물방울이 일어나면서 몹시 맹렬하게 불꽃이 일어나며, 타고 남은 힘이 물속으로 들어가 물고기가 모두 죽는다. 변방 사람들이 적을 막는 데 쓴다. 이는 석뇌유(石腦油)다.” 이는 남송(南宋) 때의 시인 강여지(康與之)가 쓴 [작몽록(昨夢錄)]에서 인용한 말이고, 황충(黃衷)의 [해어(海語)]에서도 비슷한 언급이 보인다.

20세기 인류 모든 에너지의 근원으로 부상

명나라 이시진의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는 더 상세하게 기술했다. “석유(石油)는 고려에 있다. 석암(石巖)으로부터 흘러나오는데, 샘물과 서로 뒤섞여 솟아 나오며, 미끄럽기가 고기 기름과 같다. 그 지방 사람들이 풀에 적셔서 항아리 속에 보관한다. 색은 검어서 자못 옻칠(漆)과 같으며 웅류기(雄硫氣)를 만든다. 그곳 사람들이 대부분 이것으로 등불을 밝히는데, 아주 밝다. 물과 만나면 더욱 맹렬하게 타며, 먹을 수 없다. 그 연기가 아주 짙어서 그을음을 긁어모아 먹(墨)을 만드는데, 광택이 나면서도 옻처럼 검어 송연묵(松烟墨)보다 좋다.” 이미 등불을 사용했고, 심지어 양질의 먹을 만드는 데까지 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가 하면 강화도 조약 체결 후 일본에 수신사로 다녀온 김기수(金綺秀)의 [일동기유(日東記游)](1877)에서도 ‘석유’에 관해 언급했다. 일본에서는 메이지 유신으로 석유가 등불의 기름으로 이미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어 수신사의 눈길을 끌었지만, 석유가 어디서 나는지 어떻게 채취하는지에 대해서는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고 했다.

또 조선 최고의 변증가(辨證家) 이규경(李圭景)도 석유에 대해 변증한 바 있다. 그는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의 ‘물리소지(物理小識)와 직방외기(膱方外紀)에 대한 변증설’에서 이 두 책에 나오는 ‘석유’에 관한 정보를 소개했다. 중국은 페르시아와 중동·지중해·서구의 석유에 관한 정보가 망라됐다. 그러나 이 역시 소개에 그쳤을 뿐 우리에 대한 탐구나 활용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볼 수 없다. 안타까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7. 석유, 무한의 확장


▎중국 사천성성도시공래(邛崍) 화정진(火井鎮)의 고대 화정 기념비(古火井紀念碑). 이곳은 세계 최고(最古)의 천연가스 유정으로 전해진다. / 사진:하영삼
“록펠러는 석유 시장을 독점하려는 야망을 품고 합병에 합병을 거듭해 미국에서 생산되는 석유의 95%를 손에 쥔다. 그의 자본력을 통해 미국의 각종 사업은 활기를 띠었고 이후 발발한 세계 전쟁으로 록펠러와 미국은 각각 세계 최대 부호, 세계 최강대국으로 거듭나게 된다.”([사물의 민낯])

모든 산업이 석유 중심으로 재편되고, 특히 모든 에너지가 석유에 의존하게 됐다. 특히 20세기 문명의 꽃이었던 자동차는 이동을 상징한다. 자유로운 이동은 삶의 형태를 근본적으로 바꿔줬다. 이제 가고 싶고 살고 싶은 곳으로의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해진 것이다. 자동차·비행기·선박 등 모든 운송과 이동의 에너지원이 이전의 인력과 동력과 바람·물·석탄 등에서 석유로 바뀐 것이다. 또 에너지를 넘어서 각종 화학제품과 화장품과 의약품까지도 여기서 생산됐다.

한계 명확, 인류의 지속을 불가능하게 만들지도

석유 없이 살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석유의 장악이 세상의 권력을 잡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 석유는 ‘검은 황금’, ‘문명의 혈액’이라 불리며 부의 상징이자 인류 문명의 생명줄이 됐다. 그것은 갈수록 정교해진 정유 기술과 그에 기반을 둔 산업의 발달에 힘입은 바 크다.

오늘날 원유는 분별증류를 통해 여러 단계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분리되며 찌꺼기까지 유용하게 쓰일 정도로 환상적인 자원이 됐다. 예컨대, 비등점이 40~75도에서는 자동차의 연료로 쓰이는 휘발유가, 150~240도에서는 자동차나 비행기의 연료로 쓰이는 등유가, 220~250도에서는 디젤 연료로 쓰이는 경유가, 350도에서는 선박 연료로 쓰이는 중유가 만들어지며, 30도 이하에서는 가정 난방이나 취사용 연료로 쓰이는 석유가스(petroleum gas)가 만들어지고, 이들 모두를 정제한 이후 남는 찌꺼기는 아스팔트라 불리는 피치가 얻어진다.

아스팔트를 지칭하는 중국어 역청(瀝青)은 반고체 상태의 덩어리진 석유 찌꺼기를 말하는데, 석유를 정제해 ‘걸러내고(瀝) 남는 푸른색(青)을 띠는 물체’임을 말했다. 파라핀(paraffin)을 지칭하는 석랍(石蠟)은 ‘석유(石)에서 나오는 밀랍(蠟) 같은 존재’임을, 디젤유(diesel oil)를 지칭하는 시유(柴油)는 ‘땔감(柴)처럼 쓸 수 있는 기름(油)’임을, 경유나 중유(重油)를 지칭하는 매유(煤油)는 ‘석탄(煤)처럼 쓸 수 있는 기름(油)’임을, 휘발유(gasoline)를 뜻하는 기유(汽油)는 ‘자동차(汽) 연료로 쓰는 기름(油)’임을 표상한다. 다양한 종류의 석유가 갖는 다양한 용도를 구체적으로 적시해 쉽게 연상되도록 한 명명법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이 한자의 특징이다.

8. 석유의 시대를 넘어서


▎1976년 신년벽두 전해진 영일만 석유 시추 낭보는 국민을 가슴 벅차게 했다. 그러나 해를 넘긴 뒤로도 ‘계속 작업 중’이라는 정부 발표에 기대는 시들해졌다.
20세기는 석유의 절대지존 시대였다. 그 때문에 수 없는 전쟁도, 비극도 동시에 일어났다. 그래서 ‘문명의 재앙’이라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21세기가 시작된 지금, 석유자원은 곧 고갈될 것이라는 보고서가 제출됐고 화석연료의 종말에 대한 강력한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

석유의 종말은 우리 인류에게 어떤 국면을 가져다줄 것인가? 무엇이 석유를 대신할 것인가? 돌이켜보면, 19세기는 산업혁명의 시대였다. 인간의 힘과 동물의 힘, 바람과 물 등 자연의 힘에 의존하던 동력이 ‘기계’의 힘으로 움직이는 시대로 변했다. 엔진이라는 것이 만들어졌고, 그 엔진을 움직인 에너지는 석탄이었다.

머스크에 열광하고 테슬라에 미래 거는 이유

그러나 20세기에 들면서 석유가 절대적 자리를 차지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석유는 인류 문명의 명줄을 쥘 만큼 모든 분야의 모든 부분을 점령해버렸다. 그러나 화석연료의 대표 주자 석유는 자원의 한정성도 한정성이지만 지구 기후변화 등 환경적 한계도 너무나 명확해 인류의 지속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21세기에 든 지금 석유의 시대는 언제까지 지속할 것인가? 무엇이 20세기의 석유를 대신한 에너지원이 될 것인가? 여러 의견이 있지만 적어도 ‘전기’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전기는 이전의 석탄과 석유 등의 중앙집권적 화석 에너지에서 벗어나 다양한 재생형, 권력분산형 에너지, 즉 태양광과 풍력과 수력과 수소·우라늄 등을 이용하게 될 것이다. 정말 분명한 것은 이제 화석 연료의 수명도 분명한 한계를 보였고, 그것의 남용과 고갈로 인한 지구 멸망의 위험도 눈앞에 와 있다는 것이다.

9. 신이 된 전기

‘석유’는 글자 그대로 ‘바위틈으로 흘러나온 기름’이라는 뜻으로, 어떤 숭배나 상징 의미가 담겨있지는 않는다. 그러나 전기를 뜻하는 전(電)은 다르다. 전(電)은 번개를 뜻하는 전(电)에서 우(雨)를 더해 분화한 글자다. 그리고 전(电=申)에 시(示)를 더하면 신(神)이 된다. 그래서 전(電)에는 신성과 숭배가 담겨 있다. 번개에서 나오는 ‘전기’를 ‘신’으로 격상해 숭배했던 고대 중국인들, 마치 석유의 시대가 가고 전기가 진정한 신이 되는 시대를 예견이나 했던 것일까?

‘신이 된 전기’, 그것은 고대 갑골문, 상나라 때의 이야기가 아니라 21세기를 사는 지금의 일이고, 지구의 인류의 미래를 결정할 존재다. 이런 점에서 최근 가장 주목해야 할 사람이 테슬라의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가 됐다. 그는 스티브 잡스만큼이나 창의적이어서, 인류가 생각지도 못한 일들 불과 몇 년 만에 상식으로 만들어놓고 말았다.

곧 멸망할지도 모를 지구 외의 다른 행성에 인류가 살 도시를 건설하겠다는 다행성 시대, 모든 에너지를 태양광에 의한 전기로 바꾸겠다는 구상, 5G를 넘어서 6G 통신 시장의 선도 등등이 모두 그렇다. 태양광을 중심으로 모든 에너지를 전기에 집중하고, 그것으로 모든 이동수단을 움직이게 하며, 비행기처럼 우주를 오갈 재활용 로켓을 개발하고, 지구 내의 송신국이라는 개념을 넘어선 우주 통신위성 모델의 구축 등이 그렇다. 그것은 테슬라 에너지(Tesla Energy), 스페이스(Space) X, 스타십(Star Ship), 솔라시티(Sola City), 스타링크(Star Link) 등으로 구체화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이 머스크에 열광하고 테슬라에 인류의 미래를 거는 이유이기도 하다.

- 하영삼 경성대 한국한자연구소 소장 hayoungsam@gmail.com

202108호 (2021.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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