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경성대 HK+한자문명연구사업단·월간중앙 공동기획 | ‘한자어 진검승부’(11)] 우편(郵便)-인류 역사 비약적 증대 이끈 가동성(可動性) 

우리 일상 지탱하는 간접 대면의 인프라로 

1840년 영국에서 우체통 통해 편지 수거한 것이 근대 우편제도 효시
코로나19로 남의 손 빌려 언어·물품 실어 나르는 비대면 소통 더 늘어


▎전자우편이 보편화하기 전만 해도 우편물을 한아름 안고 배달에 나선 집배원을 길거리에서 만나는 게 어렵지 않았다. 2002년 연말 한 여성 집배원이 우편물 배달을 위해 주소를 확인하고 있다.
소통하고 뭔가를 주고받으며 눈에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서로 나누는 행위는 인간의 생존과 행복을 위한 본능적인 행위가 아닐까? 만약 서로 가까운 곳에 머물고 있다면 직접 만나서 실행할 수 있겠으나, 때로는 멀리 떨어져 있어서 직접 찾아가기 어려운 상대와 소통하고 뭔가를 전하고 싶을 때도 있게 마련이다.

인류 문명의 역사는 가동성(可動性, mobility)의 비약적인 증대와 함께해왔다. 그러나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인해 인류는 자신의 몸을 움직여 직접 이동할 수 있는 반경이 갑작스럽게 줄어들고 말았다. 이렇듯 직접 대면의 가동성이 큰 제약에 맞닥뜨렸지만, 남의 손을 빌려 언어와 물품을 실어 나르는 간접 대면의 가동성에는 큰 영향이 없다. 아니, 오히려 그러한 간접 대면의 방식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높아진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오늘날 전화나 인터넷과 같은 통신망으로 연결된 세상에서 언어를 통한 원격 소통은 그러한 인프라를 통해 대부분 처리할 수 있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본다면 그렇게 전달된 음성이나 이미지 등은 통신 기술을 통해 최대한 원본에 가깝게 재현된 것이지 않은가? 재현물이 아닌 원본 그 자체로 가치가 인정되는 것, 혹은 재현 자체가 불가능한 것들은 또 다른 인프라를 통해 보내고 받을 수밖에 없다. 바로 우편이다.

누구나 비용 지불하면 원하는 사람에게 소식 전해


▎한국 최초의 우편행정관서로서, 조선 후기 우체업무를 관장한 우정총국의 모습.
전화와 인터넷이 공공 인프라로서 기능한 역사는 그리 오래지 않다. 서울과 인천에 공중전화소가 설치되고 개인 전화 서비스가 시작된 것은 1902년으로 120년이 채 되지 않는다. 더구나 1970년대까지 전화는 일종의 사치품으로 인식됐기 때문에 지금과 달리 이용 장벽이 높은 통신 인프라였다. 집집마다 전화 한 대씩 갖게 된 것은 1980년대이며, 휴대전화의 본격적 보급은 1990년대의 일이다.

반면 근대적 우편 제도는 1884년의 우정총국(郵征總局)이 개국 직후 폐지됐다가 1893년 전우총국(電郵總局)이 출범해 안정적이고 보편적인 통신 인프라로 자리 잡아 왔다. 누구든 소정의 비용을 지급하고 일정한 규격만 맞춘다면 원하는 상대에게 편지글이나 소포를 부칠 수 있는 우편이라는 제도. 오늘날 우리에게 그 존재가 너무도 당연한 이 제도적 인프라는 근대 이전의 사람들은 흔히 누릴 수 없었던 것이었다.

1837년, 영국의 교육자 롤랜드 힐(Rowland Hill, 1795~1879)은 일정한 무게 이하의 편지에 대해 1페니의 균일요금을 징수하는 방식의 우편제도 개혁을 주장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840년, 영국에서 세계 최초로 우표를 발행했다. 우표를 통해 편지를 부치는 데 필요한 요금 지급 사실을 증명하고 확인할 수 있게 됐고, 우표가 붙어 있는 우편물이라면 우체통을 통해 비대면으로 수거하거나 접수할 수 있게 됐다. 이것이 근대적 우편제도의 시작이었다.

이후 미국·프랑스·독일 등에서 근대적 우편제도가 시행됐고, 1875년에는 국가의 경계를 뛰어넘어 제도적 안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만국우편연합(Universal Postal Union)이 결성되기에 이르렀다. 동아시아에 근대적 우편제도가 처음 도입된 것은 1842년 홍콩에 영국의 우체국이 설치되면서 부터다. 이후 서양 열강 국가들은 동아시아 주요 도시에 저마다 독자적인 우편기관을 설치했다.

동아시아의 국가가 자주적으로 운영하는 우편제도는 1871년에 일본에서 시작됐다. 한국에서는 전신(1885년), 전기(1887년), 철도(1899년) 등 다른 근대적 교통·통신 인프라보다 앞선 1884년에 우편제도 도입이 시도됐다. 근대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 우편제도가 갖는 파급력과 혁신성을 중대하게 인식했음을 엿볼 수 있다.

고대부터 도로라는 물리적 인프라는 어느 문명에나 보편적으로 존재했고, 먼 곳까지 서신이나 물건을 안정적으로 나르는 제도적 인프라 또한 존재했다. 기원전 2400년 무렵에 만들어진 점토판에는 고대 이집트에서 파라오의 사신이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시나이 반도까지 서신을 전달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또한 고대 중국에서는 주나라 이래로 역전(驛傳)제도를 통해 공용문서를 주고받고 사람이 오고 갈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운용해 왔다. 삼국사기에는 신라에서 중국의 제도를 본떠 전국 각지에 우역(郵驛)을 설치했다는 기사가 전하며, 일본에서도 고대국가의 기틀을 다지는 목적으로 비슷한 제도가 도입됐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편제도와 달리 근대 이전 사회에서는 그러한 제도의 혜택은 국가에 의해 전유되는 것이었다. 또한 근대 이전의 제도에서 교통과 통신은 분화되지 않은 상태였고, 통신이 취급 범위 또한 공용서신 등으로 한정했고 사적인 이용은 일부 특권 계층에 한정적으로 향유될 뿐이었다.

민간 통신이 발달하기도 했으나 이 또한 제도적 안정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서로 떨어져 있는 개인이 편지나 물건을 주고받기 위해서는 목적지 방면으로 떠나는 사람을 수소문해서 맡기는 방식으로 제도적 안정성이 담보되지 않은 방편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제도로서 안정적이고 보편적인 접근과 이용이 가능하다는 점이야말로 근대 우편제도의 핵심이었다.

영어의 post는 본래 교통통신 제도 운용을 위해 각지에 설치했던 ‘역참’을 의미했다. 역참이란 공용 통신을 위해 말과 같은 교통편과 숙박시설 등을 마련해놓은 거점을 말한다. 17세기 중반에는 서신 등을 접수해 배달하는 조직체를 가리키는 의미로 쓰이게 됐으며, 이후 19세기 중반 근대적 우편제도의 출현과 함께 그 제도를 포괄하는 어휘로 자리잡았다.

19세기 이후 서양의 제도와 개념이 동아시아에 수용되면서 기존에 없던 제도와 개념을 나타내기 위해 새로운 단어가 무수히 생산됐다. 우편제도를 포괄하는 개념어인 post에 대응하는 한자어 郵便(우편)은 그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탄생했다. 이 단어에 쓰인 郵(우)가 본래 ‘역참’을 의미하기에 post와 어원적으로도 유사하다는 점에서 절묘하다.

오늘날 한국어에서는 ‘우편’이라는 단어를 근간으로 삼아 우편물, 우편요금, 빠른 우편, 우편환 등 우편제도와 관련한 수많은 단어가 파생돼 쓰이고 있다. 한편 우체통·우체국 등의 단어에서는 ‘우체’가 post에 대응하는 요소로서 기능한다.

또 우표·우송 등에서는 ‘우’라는 글자 하나가 우편제도를 대표하는 기능을 갖는다. 관련한 어휘들을 모아 놓고 보니 각 단어 안에서 우편이라는 제도적 개념을 의미하는 부분은 형태가 일정하지 않아 보인다. 이렇듯 다양하고 어딘가 정연하지 않은 양상은 한국 사회의 근대화 과정에서 벌어진 역사적 곡절과 무관하지 않다.

1881년에 일본에 파견됐던 박정양은 귀국 후 시찰보고서를 조정에 제출했다. 일본은 1871년에 근대적 우편제도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었다. 이 보고서에는 당시 일본에 도입된 근대적 우편제도의 규칙이 한문으로 번역돼 실려 있는데, 우편(郵便)과 그것에서 파생한 우편물(郵便物)·우편국(郵便局) 등의 일본 용어를 소개했다.

영어의 post, 교통통신 운영 위해 설치했던 ‘역참’


▎갑신정변의 주역으로 근대 우편제도 도입을 주도했던 홍영식.
1884년에는 개화파 홍영식의 주도로 한국 최초의 근대적 우편 규칙인 ‘대조선국 우정규칙’이 제정됐다. 이 규칙에는 post에 대응하는 용어로 郵征(우정)을 사용했고 우정물(=우편물), 등기우정(=등기우편) 등과 같은 단어가 사용됐다. 우편제도를 총괄하는 기관으로 문을 연 우정총국(郵征總局)의 이름도 이러한 용어들과 궤를 같이한다. 앞서 박정양에 의해 소개됐던 일본의 우편(郵便)이라는 용어를 답습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새롭게 고안해낸 것이다. 우편 용어를 창출하는 과정에서 자주적인 근대국가에 대한 지향을 내다보고 있었음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갑신정변의 실패로 정변의 핵심 인물이었던 홍영식이 죽음을 맞이했고, 그가 주도했던 근대 우편제도의 도입 또한 불과 보름 남짓 만에 폐지됐다. 따라서 郵征(우정)이라는 용어도 제도의 폐지와 함께 사라지게 됐다.

근대 우편제도가 실질적으로 시작된 것은 청일전쟁 직후인 1895년의 일이었다. 이때 새롭게 제정된 ‘국내우체규칙’에는 郵遞(우체)라는 단어가 post에 대응하는 용어로 채용됐고 우체물(=우편물), 우체사(=우체국), 우체료(=우편료) 등이 파생돼 쓰였다.

단어의 의미를 분석하면, 우정의 征(정)은 ‘세금이나 요금의 징수’를 의미하는데 누구나 비용을 지불하면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을 근대 우편제도의 핵심적 사항으로 이해했음을 엿볼 수 있다. 한편 우체의 遞(체)는 ‘편지를 보내다’는 의미인데 서신 및 물품의 교환이라는 제도적 기능에 초점을 맞춘 단어로 볼 수 있다.

郵便(우편)이라는 단어는 근대 일본에서 post에 대응하는 단어로 만들어졌다. 근대 이전 동아시아에서 ‘우편’이라는 단어가 전혀 쓰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일본에서는 일부 지식인들이 지은 문장에 더러 쓰이는 정도였다. ‘우편’이라는 단어에 근대적 제도를 가리키는 의미를 불어넣은 것은 일본 우편제도의 창시자 마에지마 히소카(1835~1919)였다. 마에지마가 만년에 저술한 회고록에는 당시 새롭게 시행하는 국영 우편제도의 명칭에 대해 고민한 사정이 적혀 있다.

회고록에 따르면 새로운 제도의 명칭 후보로는 郵便(우편)과 함께 飛脚便(비각편), 驛遞便(역체편)이 거론됐다. 마에지마는 이 가운데 ‘우편’이 가장 적당한 것으로 생각했으나, 郵라는 글자가 당시 일본인들이 일상적으로 쓰지 않는 생소한 글자였기 때문에 내부적인 반발이 있었다.

마에지마는 두 글자로 간결하고 발음하기 쉬워 관련 단어를 파생하기에 적합하다는 점을 들어 관계자들을 설득했다고 한다. 단어 자체는 분명 익숙하지 않고 난해했으나 새로운 제도의 명칭으로서 종래의 교통통신 제도와 차별화할 수 있었고 용어를 생산해 내기에 유리하다는 확신을 마에지마는 갖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우편이라는 단어의 의미에 대해서는 郵(우)가 ‘역참’ 즉 제도의 근간이 되는 시설을 나타낸다는 점을 앞서 이야기했다. 반면 便(편)은 일본어에서 tayori로 훈독돼 본래 중국에서는 없었던 ‘전달자’ ‘소식’이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었다. 따라서 ‘전달자’ ‘소식’이라는 제도의 기능과 취급대상을 나타낸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다시 마에지마의 회고를 보면 ‘우편’이라는 단어가 난해하다고 지적받은 것은 郵(우)라는 글자 때문이었다. 우편의 경쟁상대로 언급된 단어들이 모두 便(편)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 새로운 우편제도 명칭에 便(편)이 들어가는 점에는 이론이 없었다. 그만큼 ‘전달자’ ‘소식’이라는 의미를 연상하기 쉬웠기 때문이라고 해석해 볼 수 있다.

근대 우편제도 시작은 청일전쟁 직후인 1895년


▎구한말 ‘우전부’라 불리던 우편배달부.
19세기 후반 청나라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많은 이가 근대국가로 발돋움한 일본의 제도와 어휘를 중국에 소개했다. 그렇게 소개된 단어 중에는 중국어에 뿌리내려 지금도 쓰이는 것들이 있지만, 郵便(우편)은 그러하지 못하다. 근대 중국인들에게 이 단어 속 便(편)의 의미가 선뜻 연상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설문해자]에서는 便(편)의 의미를 ‘安也’(편안하다)와 함께 ‘人有不便更之’(사람[人]에게 편안하지 못한 일이 있으면 그것을 고친다[更])이라는 설명으로 풀이했다. ‘전달자’나 ‘소식’이라는 의미는 본래 찾아볼 수 없었다.

일본에 머무르다 중국으로 귀국한 엽경이(葉慶頤)가 1889년에 출판한 [책오잡척(策鰲雜摭)]이라는 책에는 郵便切手賣捌所(우표판매소)라는 일본 단어를 풀이하면서 “우편을 보내는 것이 신속하므로 郵便(우편)이라고 일컫는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우체국을 郵便局(우편국)이라고 부른다”라고 설명했다. 앞서 ‘우편’이라는 단어에서 일본인들은 일본어 안에서 便(편)이 갖는 ‘전달자’ ‘소식’이라는 의미를 통해 이 새로운 제도의 기능을 쉽게 포착할 수 있었음을 이야기했다.

중국어에서 ‘우편’이 뿌리내리지 못한 이유


▎서울 서대문구 신촌 연세로 부근 패스트푸드점 앞에서 라이더들이 배달 준비를 하고 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올해 8월 온라인 배달음식 서비스 거래액은 2조4192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그러나 그러한 의미가 중국어에서는 일반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신속하다’라는 의미로 부회(附會)해 설명했지만,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郵便(우편)이라는 단어가 중국어에 뿌리내리지 못한 사정도 이와 같은 맥락이었을 것이다.

오늘날 중국어에서 post에 대응하는 단어는 郵政(yóuzhèng) 혹은 郵(yóu)이다. 관련한 시설이나 취급물 등을 나타내는 단어는 郵局(yóujú, 우체국), 郵件(yóujiàn, 우편물), 郵包(yóubāo, 소포) 등과 같이 郵를 포함한다. 베트남어에서도 마찬가지로 郵政(bưu chính)과 郵政(bưu)가 post에 대응하며 여러 용어를 파생하는 중심적 어휘로 쓰인다. 다만 郵電(bưu điện, 우체국), 郵寄(bưu gửi, 우편물), 郵件(bưu kiện)과 같은 단어를 보면 중국어와는 또 다른 양상을 엿볼 수 있다.

한편 일본에서 근대 우편제도라는 새로운 제도가 ‘우편’이라는 난해한 이름으로 도입되면서 초기에는 우스꽝스러운 촌극도 벌어졌다고 한다. 앞서 언급한 마에지마의 회고록에는 다음과 같은 우스갯소리를 소개하고 있다.

시골에서 상경한 어느 신사가 거리 곳곳에 설치된 상자에 郵便(우편)이라는 난해한 단어가 적혀 있었다. 좀처럼 보기 어려운 글자인 郵(우)는 편방으로 쓰인 垂(수)와 같은 ‘흘리다’는 의미로, 便은 ‘용변’이라는 뜻인 줄로 알고 결국 이 상자는 ‘용변을 보는 용도’라 착각하고 말았다. 그러나 용변을 흘려보내야 할 구멍이 상자의 위쪽에 달려 있기에 보통 사람들은 쓰기 어려운 물건일세라며 혼자 읊조렸다.

이 이야기가 실재했던 사건인지는 알 수 없으나 충분히 있을 법한 상황이었기에 항간에 우스갯소리로 회자했을 것이다. 그러나 처음엔 난해하게 여겨지던 ‘우편’이라는 단어는 근대 우편제도가 일상에 뿌리를 내려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일상어로 녹아들었다.

조선 정부에 의해 시행된 우편제도와는 별개로 부산·인천·서울 등 국내 주요 도시에는 일본에 의해 세워진 郵便局(우편국)이 운영되고 있었다. 타국에 독자적인 우편취급기관을 세우는 것은 오늘날에는 주권 침해 행위에 해당한다. 그러나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중국의 주요 도시에 조계지(租界地)를 갖고 있던 서양 열강 국가들이 스스럼없이 행하던 것이었다. 일본이 조선 각지에 우편국을 세워 운영한 행위는 조선의 우편 주권을 침해하는 행위였다.

조선 정부는 공식적으로 ‘우체’ 두루 사용


▎우체통에 편지를 넣고 있는 초등학생 여자 어린이. 90년대까지만 해도 흔한 모습이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조선 정부는 우편제도와 관련한 용어에서 공식적으로 ‘우체’를 두루 사용했고 ‘우편’이라는 단어는 최소한 공식 규정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각지에는 일본의 우편국이 운영되고 있었고 [독립신문]의 기사 등을 보면 ‘우편’이라는 용어도 널리 쓰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897년에 출판된 제임스 게일(James S. Gale, 1863~1937)의 [한영자전](A Korean-English Dicitionary)에는 post office(우체국)에 대응하는 한국어 단어로 우편국(郵便局)과 우신국(郵信局)을 싣고 있다. 공식 용어인 우체사(郵遞司)는 1911년의 개정판에서야 등장한다. 일본에서 유래한 ‘우편국’이 먼저 항간에 유포돼 쓰이다가 자주적 근대 우편제도가 안착돼 가면서 공식명칭인 ‘우체사(郵遞司)’가 어느 정도 힘을 얻게 됐을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한영자전] 초판에는 便(편)의 의미로 ‘messenger’(전달자)를 싣고 있는데, 이것은 중국어적인 맥락이 아닌 한국어로서의 용법으로 파악된다. 실제로 便(편)의 본디 의미에는 전달자와 같은 의미는 존재하지 않는데, 한국어에서 일어난 의미 변화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앞서 이야기한 일본어에서 便(편)이 ‘전달자’ ‘소식’이라는 뜻이 있었던 것과도 유사한 사정이었다.

이러한 便(편)의 한국적 의미가 서신의 전달이라는 우편제도의 주요 기능과 맞물려, ‘우편’이 제도를 대표하는 단어로서 세간에 뿌리내리기 용이했을 수 있다. 또한 우편제도의 주된 취급물인 ‘편지’의 한자 표기가 片紙 또는 便紙로 나타나는 점도, 근대 한국인들이 새로운 단어 ‘우편’을 받아들이는 데 힘을 실어줬을 것이다.

[한영자전]의 1911년 개정판에는 이 밖에도 우체·우편, 우체통·우편상, 우체물·우편물 등과 같이 우편 관련 어휘에서 ‘우체’와 ‘우편’을 포함하는 단어를 함께 싣고 있다. 1900년 전후 한국어에서 우체와 우편이 비등하게 경쟁하던 상황이었음을 엿볼 수 있다.

1905년 우편제도를 비롯한 통신제도 전반의 운영권을 일본 정부에 위탁한다는 내용의 통신협정이 체결됐고, 기존 한국 우편시설은 이미 각지에 설치돼 있던 일본 우편시설에 흡수 통합됐다. 또한 우편용어 또한 공식적으로 일본의 것에 따르게 됐다.

‘우체’와 ‘우편’의 혼용 상태는 이러한 정치적 상황의 큰 변화와 맞물려 ‘우편’으로 기울게 됐다. 다만 ‘우편’이라는 용어의 정착을 일본의 식민통치라는 정치적 상황만이 작용한 결과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앞서 이야기한 언어 내적인 요인, 즉 ‘편’이 갖는 ‘전달자’라는 의미와 ‘편지’라는 단어와의 연관성 등 또한 단어의 수용에 힘을 미친 결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 신웅철 경성대 한국한자연구소 연구교수 cbkim@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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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호 (2021.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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