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경성대 HK+ 한자문명연구사업단·월간중앙 공동기획 | ‘한자어 진검승부’(12)] 전기(電氣)-여수 밤바다가 아름다운 이유 

조명 가득한 길 걸으며 좋아하는 가수 노래도 들을 수 있으니 

연규동 경성대 한국한자연구소 교수
電은 번개·빠르다·번쩍이다, 氣는 기운·기세·날씨라는 뜻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밤에서 인간 해방해준 고마운 존재


▎예암산에 바라본 여수 밤바다. 왼쪽 먼 곳에 있는 다리가 거북선대교, 오른편에 있는 것이 돌산대교다. 두 다리로 이어진 돌산도도 보인다.
"여수 밤바다 이 조명에 담긴 아름다운 얘기가 있어 네게 들려 주고파 전활 걸어 뭐 하고 있느냐고 나는 지금 여수 밤바다 여수 밤바다(…)” - ‘버스커버스커’의 노래 ‘여수 밤바다’ 중에서-

밤이 낮보다 아름답다고 한다면, 그 아름다움의 근원은 어두움을 밝히는 조명이다. 빛이 없다면 밤바다는 그저 깜깜하고 깊이를 알 수 없어 가까이하기에 두려운 대상에 불과하다. 여수 밤바다는 그저 어두움 그 자체일 뿐이다.

해가 져서 어두컴컴한 거리를 다채로운 빛이 가득 메우고 있는 도시의 밤도 마찬가지다. 밤늦도록 꺼지지 않는 불빛과 네온사인 가득한 거리의 밤 풍경이 주는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사람들은 이제 어두움을 기다리기까지 한다.

어둡고 컴컴한 밤에서 인간을 해방해준 것은 바로 ‘전기(電氣)’다. 전기가 없는 우리의 삶은 더 이상 상상할 수 없다. 만약에 전기가 없다면, 밤은 그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긴 시간에 불과하다. 심지어 햇빛이 들지 않는 곳에서는 낮에도 제대로 일상을 이어나갈 수 없을 것이다. 전기가 멈춰버린다는 것은 단지 빛의 부재(不在)만이 아니다.

전기밥솥·전자레인지가 작동되지 않으니 우선 음식을 제대로 만들 수가 없으며, 냉장고에 보관된 많은 식료품도 곧 상해버릴 것이다. 헤어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지 못하는 것은 그저 애교일 뿐, 세탁기가 움직이지 않으면 갈아입을 옷이 곧 동이 날 것이고, 청소기는 그저 장식품이 돼 집 안은 온갖 먼지로 가득 찰 것이다.

무더운 여름을 지켜주던 선풍기·에어컨은 물론, 한겨울 추위를 견디게 해주던 각종 전열기도 쓸모가 없어진다. 보일러는 가스를 연료로 쓴다고 하지만 점화시키는 데는 전기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고층아파트를 계단으로 다니는 것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텔레비전·컴퓨터·인터넷·휴대전화로 바깥세상과 소통할 수도 없게 된다. 거리의 교통신호도 마비될 뿐만 아니라, 주유기도 전기로 기름을 끌어올리게 돼 있어서 자동차 운행도 곧 중단된다. 약국이나 병원의 많은 전기 장치가 작동을 멈추면 수많은 환자가 서서히 죽음의 길로 들어설 것이다. 산업 현장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던 공장도 멈춰버린다.

전등의 효율성 일찍부터 인식했던 고종


▎서울시 광진구와 경기도 구리시에 걸쳐 있는 해발 295.7m 높이의 아차산에서 바라본 한강의 야경. / 사진:김홍준 기자
이처럼 우리의 생활은 구석구석까지 전기 없이는 작동이 안되는 문명의 도구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편리한 일상은 대부분 전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미 전기는 우리 삶에 깊게 스며들어, 전기가 없는 일상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가 돼버렸다.

전기를 일상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로, 인류의 역사에서 바라본다면 극히 최근의 일일뿐더러 인류는 전기 없이도 수준 높은 문명과 문화를 이룩해왔다. 하지만 전기가 사라진다면 인류의 삶은 전기가 없던 직전 시대가 아니라 훨씬 더 멀리 원시시대로 돌아가야만 한다. 어쩌면 종말에 이르게 될 수도 있다. 물이 모든 생명체의 근본이자 시작이고, 프로메테우스가 인류에게 불을 가져다줌으로써 인류 문명이 시작됐다면, 전기는 현대문명의 시작이다.

초에 불을 붙여 밤을 보냈던 이 땅에 처음 전깃불이 들어온 것은 1887년이다. 임금의 거처 및 외교관 접대 장소로 이용되던 경복궁 내 건청궁(乾淸宮)에 마침내 우리나라 최초로 전등이 점화된 것이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한 지 고작 8년 만에 서울에 전등이 켜졌으니 당시로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조선 왕조의 고종 임금은 주로 밤늦게까지 업무를 보고 새벽이 돼서야 잠자리에 들었기에 밤을 밝히는 전등의 효율성을 일찍부터 인식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10여년 뒤 우리나라 최초의 전력회사이자 지금 한국전력공사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한성전기회사가 설립되고 민간 전기가 점등됐다. 전기의 도입은 조선 백성들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꾼 문화의 혁명이었다. 길거리에 조명용 전등을 설치한 것은 전차(電車)를 야간에 운행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수천 년 동안 해만 지면 길거리가 캄캄해지는 것이 당연한 이치였던 이 땅에 경천동지(驚天動地)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이 시기의 근대 문물은 전기와 전차로 시작돼 이내 우리의 일상생활을 혁명적으로 바꿔놓았다.

동서양 신화에서 빠지지 않는 번개의 신


전기 현상 자체는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에게 낯선 것만은 아니었다. 구름과 지표면 사이에서 공중 전기가 방전해 발생하는 ‘번개’를 봐왔기 때문이다. 다만 번개의 원인을 알지 못했던 고대 사회에서는 이를 인간이 다가설 수 없는 힘의 영역으로 여겼다. 그렇기 때문에 번개를 기상 현상 중 가장 두려워했었고 번개는 ‘신’이나 신이 내리는 ‘벌’을 상징했다. 그렇기에 그리스·로마 신화의 제우스나 북유럽 신화의 토르, 인도 신화의 인드라 등 대부분의 동서양 신화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번개의 신이다.

인류가 전기 현상을 구체적으로 인지하게 된 것은 고대 그리스 자연철학자 탈레스부터였다고 한다. 탈레스는 기원전 6세기경 보석의 한 종류인 호박(琥珀)을 헝겊이나 짐승 가죽에 문지르면 종이나 먼지·깃털·지푸라기같이 가벼운 물체가 호박을 향해 날아와 들러붙었다가 얼마 후에는 부드럽게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보고 전기 현상을 발견했다. 당시에는 아직 정전기(靜電氣)가 발생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마치 호박 속에 마법의 힘이나 영혼이 깃들어 있어서 물질을 잡아당겼다가 놓아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 현상에 이름이 붙게 된 건 이로부터 2000년이 지난 1600년이었다. 영국의 윌리엄 길버트는 호박 외에도 유리 막대나 종이·빗·유황·수정 등을 문지르면 가벼운 물질을 잡아당긴다는 사실을 알아내게 된다. 그리고 문지른 호박이 작은 물체를 끌어당기는 현상을 electricity라고 불렀는데, 호박이 고대 그리스어로 일렉트론(ēlektron)이라는 데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니까 ‘전기’라는 말은 원래 ‘호박이 가벼운 종이나 털을 끌어당기는 힘’ 즉 ‘호박력(琥珀力)’이라는 뜻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호박력 즉 전기가 자연의 모든 곳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낸 사람은 18세기 중반 미국의 정치인이자 과학자인 벤저민 프랭클린이다, 프랭클린은 전기가 사물을 문지를 때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며 전기는 벼락과 비슷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비구름 속에 있는 전기가 연줄을 타고 내려와 줄 끝에 매단 열쇠에 불꽃을 일으킬 것이라는 착상을 하고, 천둥치는 날 하늘 높이 연을 띄워 올리는 실험을 한다. 생명을 담보로 한 이러한 실험을 통해서 비구름 속에 전기가 존재하고 있으며, 번개는 전기 현상임을 확실히 알게 된 것이다. 이제 번개라는 자연 현상은 신의 영역에서 인간의 영역, 신화의 영역에서 과학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됐다.

전기를 일상생활에서 이용해 지금과 같은 생활을 누릴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준 이는 바로 영국의 과학자 마이클 패러데이다. 18세기 중반 패러데이는 전선 주위에서 나침반 바늘이 회전하므로, 자석을 고정하면 전선이 회전할 것이라는 발상을 했다. 즉, 자기장이 변화할 때 전기가 발생한다는 것을 발견했는데, 이것이 발전기(發電機)가 전기를 만들어내는 기본 원리다. 아울러 전기 에너지에서 회전력을 얻어 운동 에너지로 사용하는 모터도 비슷한 원리로 가능하게 됐다.

당시에는 산업혁명이 시작돼 증기(蒸氣)의 힘으로 기계를 동작시켰지만, 패러데이의 연구를 기화로 발전기와 전기모터가 만들어지면서 인류는 전류를 이용한 기계로 온갖 장치들을 작동할 수 있게 됐고 전기를 생산해 이용할 수 있도록 세상을 변화시켜줬다.

이후 패러데이의 정밀한 실험을 깔끔한 4개의 방정식으로 정리해낸 사람이 동시대의 수리물리학자인 제임스 맥스웰이다. 그리고 이 맥스웰 방정식으로부터 20세기 물리학의 최대 업적 중의 하나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유도된다.

일상생활 속에 빠르게 침투한 전기


▎수많은 응용기술로 인류의 삶을 바꿔놓은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
동아시아에서 쓰이는 ‘전기(電氣)’라는 용어는 ‘번개의 힘’이라는 뜻으로 중국에서 electricity를 번역한 것에서 비롯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는 그 이전에는 ‘越列吉的爾(월열길적이)·越暦的里(월력적리)·越列幾的爾(월열기적이)·越列機(월열기)’ 등과 같이 electricity를 한자로 음역한 표기가 사용됐다고 한다.

‘電’자는 ‘번개’라는 뜻으로 만들어진 한자다. 이 글자는 원래 번개가 칠 때 사방으로 펼치는 모습을 상형화해 ‘电’의 모양을 가졌다. 이후 ‘电’이 ‘申(펼 신)’의 형태로 변해서 12간지(十二支)의 하나로 쓰이게 되자, ‘雨(비 우)’를 더해 ‘電(번개 전)’으로 분화됐다.

비가 올 때 번개가 자주 나타나므로 ‘雨’ 자와 결합한 모습으로 비구름 사이로 벼락이 내려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번개가 치는 속도는 매우 빠르므로 이후 ‘電’자는 ‘빠르다’나 ‘번쩍이다’는 뜻이 파생됐으며 현대에서는 주로 ‘전기·전류’라는 의미로 쓰인다. 흥미로운 것은 중국 간체자에서 ‘電’은 다시 ‘电’이 되어 고대의 자형으로 돌아갔다는 점이다.

‘氣’자는 ‘기운·기세·날씨’라는 뜻으로 쓰이는 글자다. 원래 이 글자는 구름이 이리저리 떠다닌다는 모습을 상형화해서 길이가 서로 다른 세 개의 가는 선으로 표현됐다. 이후 ‘三(석 삼)’자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 세 개의 가는 선이 구불구불한 모양으로 바뀌었다. 아울러 본래 의미는 ‘구름’이었지만, 하늘에 감도는 공기의 흐름, 숨을 쉴 때 드나드는 호흡 등 모든 기체를 가리키게 됐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氣’자는 ‘气(기운 기)’자와 ‘米(쌀 미)’자가 결합한 모습으로, 밥을 지을 때 나는 ‘수증기’가 올라가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氣’는 기후, 기상과 같이 자연계의 현상을 가리키는 데에 쓰이기도 하며, 사람의 정신상태 또는 성격·도량 등을 가리키는 추상 개념으로도 쓰인다. 중국 간체자에서 ‘氣’는 다시 ‘气’가 돼 옛 자형과 비슷하게 됐다.

전기가 인류의 일상 삶 안으로 빠르게 들어오게 된 계기는 미국의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이 1879년 전구(電球)를 발명한 일이다. 인간이 빛을 만들어내는 전기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이후 전기는 여러 나라에 보급돼 일상생활 속에 빠르게 침투해 널리 쓰이게 됐다. 에디슨 이전에도 이미 여러 종류의 전구가 존재하기는 했지만, 전구 안에서 들어 있는 실처럼 가는 금속 선인 필라멘트에 쓰이는 재료가 전류가 통할 때 나오는 뜨거운 열을 견디지 못했다. 하루 만에 녹아서 끊어지거나 가정에서 사용하기에는 너무 비싸다는 등 단점이 너무 많아서 상용화하기 어려웠었다.

사실 에디슨이 발명한 것은 전구라기보다 필라멘트라고 할 수 있다. 에디슨은 얇은 대나무 조각을 그을려 새로운 필라멘트로 사용했는데, 대나무에 함유된 섬유소가 탄화(炭化)돼 강력한 탄소섬유로 변했다고 한다. 에디슨은 세계 여러 곳의 대나무 산지에서 재료를 모은 결과 일본 교토 야와타시에 있는 신사에서 찾아낸 대나무가 가장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필라멘트로 녹는점이 매우 높은 텅스텐이 사용되고 있다.

에디슨이 필라멘트의 재료를 찾기 위해 자신의 머리카락에서부터 주변의 수많은 물질을 바꿔가면서 1200번의 실험을 거친 것은 유명하다. 하지만 에디슨은 그의 수많은 실패를 비웃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1200번의 실패를 한 것이 아닙니다. 전구를 켤 수 없는 1200가지 방법을 알아낸 것뿐입니다.”

직류는 에디슨, 교류는 테슬라


▎토머스 에디슨에 버금가는 ‘발명왕’ 니콜라 테슬라.
전기와 에디슨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또 한 명의 천재를 떠올리게 된다. 에디슨의 경쟁자였던 니콜라 테슬라다. 크로아티아 출신인 테슬라는 직류(DC; Direct Current) 송전 방식을 끝까지 고집한 에디슨과 대립해 오늘날과 같은 교류(AC; Alternating Current) 송전 방식을 확립하는 데 크게 공헌한 인물이다. 직류는 시간이 지나도 항상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는 전류를 의미하고, 교류는 흐르는 방향이 크기가 시간에 따라 주기적으로 변하는 전류를 말한다.

초기의 직류 방식은 전압이 낮아 높은 전압을 얻기 위해 많은 개수의 전지를 직렬로 연결해야 했고, 수명이 짧다는 단점이 있었다. 게다가 당시 사용했던 110V 직류는 낮은 전압으로 에너지 손실이 커서 먼 거리에 전력을 보낼 수 없어 3~5㎞마다 송전소를 설치해야 하거나 전기 소비 지역과 가까운 곳에서 발전소를 설치해야 한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반면 교류는 발전에 필요한 석탄이나 물만 있으면 거리에 상관없이 발전소를 세울 수 있었다. 중앙 발전소에서 고전압으로 전기를 장거리 전송한 뒤 어디든 전기 소비 지역에 설치된 전신주의 변압기에서 전압을 110V로 바꿔주기만 하면 됐다.

에디슨은 직류 방식의 안전성을, 테슬라는 교류 방식의 경제성을 각각 강조했지만, 결국 전 세계 시장에서 송배전의 표준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비용이 적게 드는 교류 방식이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가전제품 중 직류를 사용하는 노트북·디지털카메라 등에는 바깥에서 집으로 들어오는 교류를 직류로 바꿔주는 장치가 따로 달려 있는데 그것이 바로 어댑터다.

최근 전기차 시대가 도래하면서 140여 년 전 에디슨과 테슬라 사이에서 펼쳐졌던 ‘전류 전쟁(Current War)’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전기차는 교류 전기를 직류로 변환해서 저장하고, 그 전기를 다시 교류로 바꿔 달리는 데 사용한다. 또한 전기차는 충전 방식에서도 직류와 교류 전기를 모두 사용한다. 번거롭기는 하지만 한정된 전기를 효율적으로 저장하고 사용하기 위해 두 가지 방식을 모두 쓰는 것이다.

교류 전송 방식 외에도 오늘날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리모컨·형광등·네온사인·레이더 등도 테슬라가 고안했거나, 그가 제안한 기술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다. 전기 시대에 에디슨과 더불어 테슬라도 기억돼야 하는 또 다른 이유다. 에디슨과 쌍벽을 이뤘지만, 당대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테슬라의 이름은 자기장의 세기를 나타내는 단위인 ‘테슬라’(기호 T)에 남아 있다. 그리고 최근 전기차 제조업체의 이름으로 더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에디슨이 발명한 것 중 세상을 바꾸는 데 큰 공헌을 한 것은 전구 외에도 축음기·영사기라고 할 수 있다. 축음기(蓄音機; 소리를 쌓아두는 기계)는 음을 기록하고 재생하는 기구이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어에서 만들어진 이름인 ‘유성기(留聲機; 소리가 머무는 기계)’가 먼저 사용됐으나 곧 일본에서 부르던 축음기로 바뀌었다. 전기 동력을 사용하는 ‘전기축음기’의 줄임말인 ‘전축(電蓄)’이라는 표현이 매우 오랫동안 사용돼 1980년대까지도 ‘오디오’ 전반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였다.

에디슨이 만든 축음기는 이전에 이미 있던 소리의 파형을 기록할 수 있는 기계를 보완한 것으로서, 소리를 재생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한 것이다. 다만 에디슨은 축음기를 사람의 목소리를 재생하는 사무용으로만 생각하고 크게 의의를 두지 않았다고 한다. 축음기가 그저 신기한 물건에서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것은 음악을 듣는 용도로 쓰이면서부터다. 이제 특정 부류의 사람들이 특정 시간에서 특정 장소에서 즐기던 호사스러운 고급 취미였던 음악 듣기가 대중적인 여흥이 된 것이다.

또한 1887년 에디슨은 ‘키네토스코프’라는 영사기를 개발한다. 동전을 넣고 상자의 틈 속을 보면, 연속되는 동작의 사진들이 빠르게 지나가면서 마치 움직이는 영상처럼 보이게 하는 원리였지만, 한 번에 한 명밖에 볼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그래서 나중에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가 에디슨의 영사기 한계를 극복하고 영상을 스크린에 옮겨 여러 사람이 볼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최초의 영화라는 타이틀은 그들에게 돌아간다). 어쨌든 축음기와 영화라는 에디슨의 발명이 새로운 필요를 낳은 것이다.

발명는 필요의 어머니

독일의 매체학자 프리드리히 키틀러는 정보를 저장·전달·재현하는 방식을 매체라고 정의하며, 언어나 음성은 정보를 저장하지 못한 채 사라진다는 점에서 매체가 아니라 문자(文字)를 최초의 매체라고 선언한 바 있다. 언어는 문자 없이는 저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키틀러는 특히 ‘소리·이미지·기호’라는 정보를 따로따로 기록할 수 있게 한 ‘축음기·영화·타자기’라는 기술 매체의 발명을 통해서 문자가 독점하던 시대가 마무리되고 새로운 기록 체계의 시대가 시작된다고 봤다.

매체의 변화가 역사를 진행하는 혁명적인 변화라고 파악했던 키틀러의 매체 이론을 여기에 뜬금없어 보이지만 간단하게 소개한 것은 바로 문자의 독점을 무너뜨린 기술 매체라고 강조했던 것 중 두 가지가 에디슨의 발명품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인간의 의식이라는 필터를 통과한 소리만이 문자나 악보 등을 통해 기표로 남겨질 자격을 얻었다면, 축음기의 등장으로 청각 데이터라는 무의식의 대륙이 인류의 역사에 등장하게 된다.

또한 영화는 실재적인 것을 상상적인 것으로 대체하는 기제가 돼 과거의 독자들이 문학작품을 읽으며 영혼 깊숙한 곳에서 상상하던 내면의 영상은 이제 기술적 ‘조작’을 통해 스크린 위에서 실현된다. 발명이 인간의 인식을 바꾸고 종속시킨 것이다.

조명 가득한 밤바다를 걸으며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듣다가 사랑하는 이에게 전화(電話)를 걸 수 있는 시대. 바로 전기(電氣)의 시대다. 그리고 키틀러에 따르면 전기를 이용하는 기술 매체는 인간의 감각과 지각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 연규동 경성대 한국한자연구소 교수 iamyur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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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호 (2021.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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