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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어(雜魚)보다 고래” 안중근 결의도 빛났다 

하얼빈 방문 정보 듣고 ‘덩실덩실’, 제안 받고 주저 없이 결단
안창호가 독립위해 만든 국제 조직 지부 중요한 활약 중 하나

1958년 4월 23일 자 [국민보] 특집기사에는 “(을사늑약 후) 안창호, 장경 두 분 선생이 국사 문제로 주야 간 토의한 결과, 한 분은 귀국하여 또 한 분은 원동(遠東)에 가서 활동하기로 내정”이라는 내용이 있다. 이는 을사늑약 후, 미국 캘리포니아의 안창호와 동포들이 생각해 낸 국권 회복 방략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들은 국권 회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미국, 본국, 원동의 동포들을 아우를 수 있는 국제 조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당시 대한제국 본국에는 대략 2000만 동포가 있었다. 원동 즉 만주와 연해주에는 수 십만, 미국에는 1만여 동포가 있었다. 미국에는 이미 공립협회라고 하는 조직이 있었다. 따라서 미국 동포는 공립협회를 중심으로 국권 회복을 추진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본국과 원동에는 독립운동을 위한 전국 조직이 없었다. 그래서 공립협회에서 한 명을 선발해 본국에 파견하고, 또 한명을 선발해 원동에 파견해 전국 조직을 창설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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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호 (2021.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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