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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석의 조선 후기史 팩트추적(12)] ‘토정비결’이 베스트셀러 된 비결 

점괘 다양, 1년 열두 달 운수까지 알려줘 

1910년대 처음 책으로 출간, 시간 지나면서 내용 추가돼
윷점·오행점보다 그럴 듯, 미래 알고 싶은 욕망 편승해 인기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운명과 미래를 궁금해한다. 미래를 아는 방법으로 동양에서는 사주·관상·점 등을 이용했다. 한 역술인이 손님의 신년 운세를 풀어주고 있다.
과거에는 음력으로 정초가 되면 그해의 운수를 점쳐보는 신수점을 보는 사람이 많았다. 신수점을 보기 위해서 무당이나 만신 같이 점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을 찾아가기도 하지만, 점치는 도구와 점괘를 풀이해놓은 점책을 가지고 있으면서 스스로 자신의 1년 신수를 점쳐보는 사람도 많았다. 이렇게 새로운 한 해에 자신에게 닥칠 운명을 미리 알아보기 위해서 치는 신수점에 많이 쓰이는 점책이 바로 [토정비결]이다.

전문 연구자들은 [토정비결]이 나온 시기를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라고 얘기하고 있으므로, 이 책이 토정 이지함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책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1900년을 전후한 시기에 [토정비결]이 어떤 경로를 통해 왜 나왔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고 있다.

이 글에서는 조선 후기에 유행한 점치는 책 [만보오길방]을 소개하고, 이 책에 들어 있는 몇 가지 점치는 방법이 [토정비결]로 이어진다는 얘기를 해보기로 한다.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은 너무나도 원초적인 것이어서, 이 욕망을 꺾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점성술이나 사주 같은 점술은 이러한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는데,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부동산 가격이나 주가의 상승과 하락을 예측하는 각종 언론이나 인터넷 사이트도 이와 비슷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은 미신이라고 외면하는 것 가운데 어떤 것은, 과거에는 과학적이라고 생각한 것도 있다. 점치는 일도 그런 것 중 하나다.

일찍이 15세기에 세종대왕은 우리말을 표기할 수 있는 훈민정음을 창제했으나, 조선에서는 이 문자를 공식적으로 쓰지 않았다. 그러므로 관리를 선발하기 위한 과거시험도 한문으로 답안을 썼고, 지방에서 중앙에 보고하는 문서도 한문이었으며, 하루하루 조정에서 일어나는 일을 기록한 조선왕조실록도 물론 한문으로 기록했다. 지식인 남성은 한자로 된 책을 읽었으나, 한자를 모르는 여성이나 하층 남성들은 읽을 책이 없었다.

이런 상황은 18세기까지 계속됐는데,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서울과 전주에서 여성과 서민을 대상으로 하는 한글로 된 책이 나타난다. 그런데 이런 책은 정부에서 간행한 것이 아니라, 민간에서 상업적으로 제작한 방각본(坊刻本)이었다. 지금의 출판인이라고 할 수 있는 조선의 방각본 제작자들은, 한문으로 된 책만이 아니라 한글로 된 책도 간행했다. 방각본 업자들이 간행한 한글로 된 책 대부분은 소설이었지만, [만보오길방]처럼 점치는 데 필요한 책도 있었다.

도·개·걸·윷·모… 윷으로도 점을 쳤다


▎대구시 중구 동성로 한 타로 전문점 앞에서 신년 운세를 알아보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는 시민들.
19세기 이전까지는 점치는 데 필요한 책인 점서(占書) 대부분은 중국에서 들여온 것이거나, 중국 책을 조선에서 다시 간행한 것이었다. 이처럼 점치는 방법에 관한 책이 한문으로 된 것뿐이어서 한문을 모르는 사람은 점을 칠 수 없었기 때문에 점치는 일은 자연스럽게 유식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조선시대에는 관상감에서 주관하는 잡과 시험에 명과학(命課學)이라는 분야가 있어서, 천문학이나 지리학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전문적인 직종을 이루고 있었다. 조선의 관청에는 점치는 일을 맡는 부서가 따로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유식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었던 점치는 일이 한글로 된 점치는 책이 나오면서 서민들도 쉽게 점을 칠 수 있게 됐다. 한글로 된 점치는 책의 원천은 중국의 점서이지만, 한글로 정착되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내용이 바뀌면서 조선식 점책의 모양을 갖춘다.

[만보오길방(萬寶五吉方)]은 바로 이런 배경을 갖고 태어난 책이다. [만보오길방]은 “보배스러운 다섯 가지 점치는 방법”이라는 의미로 여기서 말하는 다섯 가지 점치는 방법은 직성법·행년법·오행점·윷점·30일병점 등이다.

직성법은 사람의 나이에 따라 그 운명을 맡은 아홉 개의 별에 관한 것이고, 행년법은 그해의 나이에 따라 운명을 관장하는 보살과 귀신에 관한 내용이다. 나이에 따라 어떤 직성이 해당하는지, 또 어떤 보살과 어떤 신장을 모셔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이 책에 들어 있다. 오행점이나 윷점은 윷이나 동전을 던져서 나오는 괘에 따라 한 해의 운수를 알아보는 것이다.

그리고 30일병점은 귀신이 붙어서 생기는 병에 대처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만보오길방]은 이상의 다섯 가지 점치는 방법을 한글로 기록해놓은 책이므로 이 책이 있으면, 점쟁이에게 가지 않고도 스스로 점을 칠 수 있다. 그런데 이 다섯 가지 중 [토정비결]과 관계가 있는 것은 ‘윷점’과 ‘오행점’이다.

윷점은 윷놀이에 쓰는 도구인 윷을 이용해서 치는 점이다. 윷놀이는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해본 경험이 있는 민속놀이이므로, 윷놀이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윷놀이에 쓰는 윷으로 점을 치는 일은 현대인에게는 생소한 일이니, 윷점에 대해서 약간 설명을 해보기로 한다.

윷점을 치는 데는 윷과 점괘를 해석할 수 있는 책만 있으면 된다. 윷은 약간 굵은 나뭇가지만 있으면 쉽게 만들 수 있으므로, 점괘를 해석할 수 있는 책이 있으면 언제 어디서라도 윷점을 칠 수 있다. 윷을 던져서 나오는 도·개·걸·윷·모에 각각 1에서 4까지 숫자를 대입하는데, 도는 1, 개는 2, 걸은 3, 윷과 모는 4로 본다. 그리고 윷을 세 번 던져서 매번 나오는 숫자를 나열해 하나의 괘를 만든다.

1·2·3·4의 네 숫자를 셋씩 묶는 조합은 64이므로, 윷을 세 번 던져서 매번 나오는 숫자를 순서대로 나열하는 경우의 수는 64가 된다. 그러므로 윷점의 전체 점괘는 64개다. 첫 번째 괘는 도·도·도로 숫자로 치면 1·1·1이 되고, 마지막 괘는 윷이나 모가 연속으로 나오는 4·4·4다. 이렇게 윷을 세 번 던져서 나오는 괘의 해석을 점책에서 찾아보면 한 해의 신수를 알 수 있게 된다.

[만보오길방]에 나와 있는 윷점의 해석 몇 가지를 보면 다음과 같다.

도·도·걸(1·1·3): 밤에 등잔을 얻다. 의식이 풍족하고 소원성취하리라

걸·걸·도(3·3·1): 고기가 변해 용이 되다. 과거하고 벼슬할 수라

윷·개·윷(4·2·4): 사람이 집이 없다. 의식이 부족해 떠돌아다닐 수라

윷·윷·걸(4·4·3): 홀아비가 장가들다. 영화를 볼 수니, 불공 축원하라

그런데 정조의 총애를 받았던 유득공이 쓴 [경도잡지]에도 이 윷점의 해석이 실려 있는 것으로 봐 윷점은 19세기에 처음 시작된 것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있었던 민속임을 알 수 있다. [경도잡지]는 한문으로 쓴 책이므로, 이 책에는 윷점의 풀이가 한문 넉 자로 돼 있다. 앞의 [만보오길방]에서 예로 든 괘의 해석을 [경도잡지]에서 보기로 한다.

도·도·걸: 혼야득촉(昏夜得燭, 어두운 밤에 촛불을 얻다)

걸·걸·도: 어변성룡(魚變成龍, 물고기가 변하여 용이 된다)

윷·개·윷: 각궁무현(角弓無弦, 좋은 활에 활시위가 없다)

윷·윷·걸: 비조우인(飛鳥遇人, 나는 새가 사람을 만나다)

[경도잡지]는 [만보오길방]보다 50년 정도 앞서는 책인데, 두 책에서 점괘의 풀이는 같은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다. 예로 든 네 가지 중에 어두운 밤에 촛불을 얻는 괘와 물고기가 변해 용이 되는 괘는 둘 다 좋은 괘이고, 두 책의 내용이 같다. 그리고 사람이 집이 없어서 떠돌아다니는 괘와 좋은 활에 활줄이 없다는 괘처럼, 표현은 다르지만 좋지 않은 괘라는 면에서는 같은 것도 있다.

그러나 홀아비가 장가를 드는 것은 좋은 괘인데, 새가 사람을 만나는 것은 좋은 괘는 아닌 것 같다. 이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괘의 해석이 달라진 것도 있다. 윷으로 점을 치는 풍속이 언제부터 있었던 것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한글로 된 점치는 책에 그 점괘의 풀이가 실리면서 크게 퍼진 것임은 분명하다.

금·목·수·화·토, 삼라만상 이루는 원소로 여겨


▎19세기 민간의 점치는 책의 대세였던 [만보오길방] (감곡사이버기록역사관 소장). / 사진:이윤석
우주의 만물을 이루는 요소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리스에서는 모든 물질은 물·불·공기·흙의 네 가지 원소로 이뤄졌다고 생각했고, 과거 동양에서는 금(金)·목(木)·수(水)·화(火)·토(土)의 다섯 가지가 우주 삼라만상을 이루는 원소라고 여겼다. 이 다섯 가지를 오행(五行)이라고 한다. 오행점은 이 오행의 원리를 바탕으로 치는 점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 점을 치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오행점을 치기 위해서는 윷점과 마찬가지로 오행점의 점괘를 풀이해놓은 책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점치는 도구로는 동전 다섯 개나 동전처럼 납작한 크기의 나무 조각 다섯 개에 오행의 각 글자를 한 자씩 쓴 것이 있으면 된다.

오행점은 다섯 개의 동전을 한꺼번에 던진 후에 나오는 글자로 괘를 만든 다음, 그 괘를 점책에서 찾아 맞춰보면 된다. 다섯 개의 글자가 모두 나오는 경우부터 한 글자도 나오지 않는 경우까지 32개의 괘가 있다. 앞에서 윷점은 4의 3승이므로 64괘가 되는 것이고, 이 오행점은 2의 5승이므로 32괘가 된다. [만보오길방]에서 오행점의 괘를 풀이한 예를 하나 보기로 한다.

다섯 개의 동전을 던졌는데 수(水) 자 하나만 나오는 경우에, 점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해석해놓았다. “여울에 배를 띄웠다가 보배 구슬을 얻도다. 마땅히 크게 쓸 것이니, 재앙이 흩어지고 복록이 오도다”라고 한 다음에, 다시 풀이를 더해서 “북방에 물이 왕성하니 복록과 경사가 많고, 길이 재앙이 없으리라”고 했다. 이 괘는 상당히 좋은 괘다.

윷놀이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놀이로 주변의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볼 수 없지만, 오행은 중국에서 나온 세계에 대한 인식으로 주변의 여러 나라에서 공통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윷점은 한국에서 독자적으로 만든 것으로 보인 데 비해 오행점은 중국에서 전해진 점술이다. 중국의 [관세음보살감응영과(觀世音菩薩感應靈課)]라는 점치는 책이 조선시대 전해져서 [관음영과(觀音靈課)]라는 제목으로 간행된 바 있다.

[관음영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관세음보살의 영험함을 빌려서 치는 점이다. 다섯 개의 동전에 5행의 한 자씩을 붙인 다음, 이를 공중에 던져서 떨어진 동전에 표시된 글자를 모아 괘를 만든다. 그리고 이 괘의 해석을 점책에서 찾아보면 된다.

이 점의 명칭은 ‘관음점(觀音占)’으로 사찰에서 행해지던 것이고, [관음영과]라는 점책도 사찰에서 간행됐다. 관세음보살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하는데, 특히 32가지 모습으로 나타나므로 32괘가 됐다고 한다. 이 관음점의 점치는 방식을 그대로 빌려와서 민간에서 치는 점이 바로 오행점이다.

오행점과 관음점은 점치는 방식이나 괘의 기본 해석은 같은데, 관음점의 해석은 오행점보다 훨씬 더 자세하다. 위에서 본 오행점의 수(水) 자가 나오는 괘의 해석을 [관음영과]에서 보면 먼저 다음과 같은 한시 한 수가 있다.

선범강호내(船泛江湖內, 강호에 배를 띄웠다가)

탄변획보다(灘邊獲寶多, 여울 가에서 보물을 많이 얻었네)

갱의장대용(更宜將大用, 장차 마땅히 크게 쓰이리니)

재산복여하(災散福如何, 재앙이 흩어지니 복은 어떤가)

그리고 이 시 다음에 한시 한 수가 더 있고, 거기에 더해서 재물·혼인·장사·여행·질병 등 여러 가지 사항의 길흉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다. [관음영과]의 한시 내용은 오행점의 점괘 풀이와 같은 것으로 봐 오행점은 [관음영과]의 한시를 번역해서 실은 것이다.

위 두 그림의 하나는 민간 소장품이고, 다른 하나는 사찰 소장품인데, 점치는 엽전이나 나무 조각이 들어 있는 주머니를 책에 메어놓은 형태가 완전히 같다. [만보오길방]의 오행점이 [관음영과]에서 온 것임을 증명해준다.

관세음보살의 영험함 빌렸던 '관음영과'


▎주로 사찰에서 점을 칠 때 사용했던 [관음영과](조계종 원각사 소장). / 사진:이윤석
19세기 조선에서 유행한 한글로 된 점책 [만보오길방]에 들어 있는 신수점은 오행점과 윷점이 대표적이다. 윷점은 64개의 아주 간단한 풀이가 있고, 오행점은 윷점의 풀이보다는 약간 긴 내용이지만 점괘는 32개가 있을 뿐이다. [만보오길방]은 19세기에 적어도 여섯 군데 이상의 출판사에서 수십만 부 이상 발행됐다.

19세기 말에 서양의 새로운 인쇄기술이 들어오면서 20세기 초부터는 이 새로운 인쇄기술로 만든 책이 대세가 됐다. 더 이상 목판본으로 책을 만들지 않게 되자 [만보오길방]은 점차 없어지면서 이를 대체한 새로운 점치는 책이 나오기 시작한다.

서양에서 들어온 인쇄기술로 쉽게 책을 간행할 수 있게 되면서 1910년대에 한글로 된 대중 서적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데, 이때 점서도 역시 여러 가지가 나온다. 이 시기에 점치는 데 필요한 책은 독립적인 단행본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 필요한 여러 가지 상식을 수록한 [가정보감]이라는 이름으로 된 책에 들어 있었다. 이러한 책에는 편지 쓰는 법, 관혼상제의 예법, 궁합 보는 법, 관공서의 서류 양식, 점치는 법 등의 다양한 내용이 포함됐다.

가정마다 꼭 갖춰둬야 할 책이라는 의미의 [가정보감]류의 서적은 비슷비슷한 이름으로 수많은 출판사에서 나왔다. 이런 책에는 대부분 점치는 방법 여러 가지를 실어놓았는데, [만보오길방]에 실려 있던 윷점이나 오행점은 물론이고, 새롭게 [토정비결]이라는 점치는 방법도 들어가게 된다. [토정비결]은 점치는 방법이 윷점이나 오행점에 비하면 약간 복잡하다. 그렇지만 윷점은 64개, 오행점은 32개의 점괘가 있는 데 비해서 [토정비결]은 144개의 점괘가 있어서 두 가지 점치는 법보다 훨씬 많다.

서양의 문물이 들어오고 개화가 진행되면서 점치는 방법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만보오길방]이라는 구식의 이름보다는 [가정보감]이라는 이름이 멋있어 보이고, 윷점이나 오행점보다는 [토정비결]이 훨씬 더 그럴듯했다. 윷점이나 오행점과 비교했을 때 토정비결이 훨씬 더 정확하게 미래를 예측하게 해주는 것은 아니다. 윷점이나 오행점이 여전히 성행했지만, 새롭게 나타난 좀 더 자세한 [토정비결]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된다.

'토정비결' 한창 때는 1년에 수만 부씩 팔려


▎한 학부모가 사주 상담소에서 자녀의 진로를 조언받고 있다. 과거 ‘점집’으로 통했던 곳이 이젠 전문 ‘멘토링’ 업체로 대우받는다.
[토정비결]의 첫 괘는 1·1·1 괘인데, 이 괘의 괘사는 ‘동풍해빙고목봉춘’(東風解氷 枯木逢春, 봄바람에 얼음이 녹고, 마른나무가 봄을 만났다)이다. 1910년대 [토정비결]이 처음으로 인쇄된 책으로 나왔을 때는 주로 한문으로 된 여덟 자의 점괘와 간단한 해설이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여기에 점점 더 다양한 내용이 덧붙여져서 20세기 중반 이후에는 1년 12개월의 각 달의 운수까지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초기에는 여러 가지 잡다한 내용이 들어 있는 책의 한 항목이었는데, 많은 내용을 덧붙여서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냈다. [토정비결]이 한창 잘 팔릴 때는 1년에 수만 부씩 팔렸다.

요즈음은 인터넷에서도 토정비결을 볼 수 있고, 무료로 점을 칠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도 있으므로, 과거보다 [토정비결]의 출판 부수는 훨씬 줄어들었다. 그리고 서양의 여러 가지 점술이 들어오면서 [토정비결]의 인기는 예전만 못한 것이 사실이다.

세상은 많이 바뀌어서 [만보오길방]이나 [토정비결]로 미래를 예측하던 시대에서 방대한 정보를 수집해서 이를 컴퓨터로 분석해 미래를 예측하는 시대로 변했다. 그러나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3년 전에 현재와 같은 코로나시대를 예측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19세기에 [만보오길방]이 민간의 점치는 책의 대세였다면, 20세기에는 [토정비결]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21세기에는 어떤 점액이 주류를 차지하게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런데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은 줄어들지 않기 때문에, 과거보다 더 다양한 미래를 점치는 사업이 번창하고 있다.

※ 이윤석 - 한국 고전문학 연구자다. 연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2016년 연세대 국어국문학과에서 정년 퇴임했다. [홍길동전]과 [춘향전] 같은 고전소설을 연구해서 기존의 잘못을 바로잡았다. 30여 종의 [홍길동전] 이본(異本) 가운데 원본의 흔적을 찾아내 복원했을 뿐만 아니라 작품 해석 방법을 서술했다. 고전소설과 관련된 30여 권의 저서와 80여 편의 논문이 있다. 최근에는 [홍길동전의 작자는 허균이 아니다]와 같은 대중서적도 썼다.

202202호 (2022.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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