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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크엔드 스페셜] 문재인의 두 번째 하산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 참여정부 대통령 비서실장 이어 5월 9일 대통령으로 임기 마쳐
■ 마지막까지 지지율 40%대 유지했지만 정권 재창출에는 실패
■ “정책 방향 옳았다는 응답 높았던 盧 대통령과 대조적” 지적도
■ 올해 13주기 추도식 참석한다면 文, 현직 아닌 전직 신분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5월 9일 임기를 마치고 청와대에서 나온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임기를 마치는 마지막 대통령으로 기록될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직전인 2020년 1월 1일 서울 아차산에 오른 문 대통령이 차를 마시며 잠시 쉬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참여정부에 하산(下山)은 없다. 끝없이 위를 향해 오르다가 임기 마지막 날 마침내 멈춰선 정상이 우리가 가야 할 코스다.”(2007년 3월 12일 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장의 취임사)

“문 대통령은 2007년 3월 참여정부 비서실장에 취임하면서 흔히 임기 후반부를 ‘하산’에 비유한다고 했다. 저는 동의하지 않는다. 끝없이 위를 향해 오르다가 임기 마지막 날 마침내 멈춰선 정상이 우리가 가야 할 코스다.”(2020년 12월 31일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의 퇴임사)

문재인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임기 말을 하산에 비유하든 안 하든, 40여 일 후면 문 대통령은 청와대를 나와야 한다. 참여정부 대통령 비서실장으로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청와대를 나온 것을 포함하면 이번이 두 번째다.

문 대통령은 일찍이 비서실장 시절 “하산은 없다”고 힘줘 말했지만, 현실은 문 대통령의 바람과 아주 달랐다. 참여정부는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데 이어 노 전 대통령을 비롯한 그의 측근들이 검찰 수사를 받았다. 노 전 대통령은 극단적 선택을 했고, 국민은 헤어날 수 없는 충격에 빠졌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에서 모두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낸 김종인 전 의원은 최근의 저서 〈대통령은 왜 실패하는가〉에서 노 전 대통령의 극단적 선택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 노무현 자신의 부끄러움도 컸을 것이다. 노무현은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일국의 대통령을 역임한 사람이 그런 선택을 한 것은 과연 옳았을까 하는 점을 냉정하게 돌아본다. (…) 노무현은, 본인의 바람과는 완전히 반대로, 화합의 상징이 아닌 복수의 상징처럼 되었다. 우리 정치사에 참 허망한 대목이다. 다시는 그런 정치가 되풀이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

‘노무현의 친구’였던 문 대통령은 그의 저서 제목(〈운명〉)처럼 드라마틱하게 대권에 도전했다. 그리고 2012년 한 차례 실패를 거친 뒤 2017년 재도전을 통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문 대통령은 취임 14일 뒤인 같은 해 5월 23일 봉하마을을 찾았다. 노 전 대통령의 고향이자 그가 잠들어 있는 곳이다. 8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문 대통령은 “노 대통령님이 그립고 보고 싶지만, 앞으로 임기 동안 대통령님을 가슴에만 간직하겠다”며 “현직 대통령으로서 이 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일 것이다.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돼 임무를 다한 다음 다시 찾아뵙겠다”고 했다.


▎2017년 5월 23일 문재인 대통령이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8주기 추도식에서 인사말을 한 후 단상에서 내려오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성공한 대통령이 돼 임무를 다한 다음 찾아뵙겠다” 다짐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돼 임무를 다한 다음 다시 찾아뵙겠다”는 다짐에는 정권 재창출에 대한 문 대통령의 강한 의지도 담겨 있었을 것이다.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을 때 겪었던 일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문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도 대선 기간 “김대중-노무현-문재인에 이어 제4기 민주정부를 열어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 민주당의 간절한 바람과 달리 문재인 정권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핵심으로 ‘조국 사태’와 ‘부동산 정책 실패’가 꼽힌다. ‘조국 사태’는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었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정계 등판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 윤 당선인은 대선 기간 현 집권세력의 내로남불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고, 제20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번 제20대 대선은 가장 극적인 대선으로 기록됐다. 김대중과 이회창이 맞붙었던 1997년의 39만 표차를 넘어 24만 표차(0.73%p)로 윤석열 당선인과 이재명 전 후보의 희비가 엇갈렸다. 이 전 후보는 역대 최다 득표 패자, 최소 표차 패배 타이들을 동시에 얻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대선 이후로도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40%대를 이어간다는 점이다. 한국갤럽 3월 4주 차(3월 22~24일) 조사 결과에 따르면 문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평가는 44%, 부정평가는 51%로 집계됐다. 무려 12주 연속 40%대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3월 10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더불어민주당 개표 상황실에서 개표 방송을 지켜보던 의원과 당직자들이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의 득표율 역전이 이뤄지자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김경록 기자
조기숙 “부동산 정책, 국가 억압으로 보일 수도”

이처럼 문 대통령 지지율은 40%대를 꾸준히 유지했지만, 대선 전부터 정권 교체 여론은 50% 이상이 이어져왔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과 정권 교체 여론을 단순 비교하면, 박빙 승부로 끝난 이번 대선 결과가 다소 의외라는 분석도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홍보수석으로 근무했던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는 최근 [중앙일보] 기고에서 정권 교체 여론이 높았던 원인을 이렇게 진단했다.

“대선 전 정권교체 요구가 높았던 건 반드시 문 정부 실패 탓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임기 말 문 대통령의 지지도는 50%에 육박할 정도로 역대 최고지만, 정책 방향이 잘못됐다는 응답은 높게 나온다. 비록 지지도는 낮았지만, 정책 방향은 옳다는 응답이 매우 높았던 노 대통령과 대조적이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타다 금지법, 시장을 무시한 규제 일변도의 부동산 정책 등은 태어나면서부터 민주주의만 경험했던 20~30대에게는 유럽의 68세대처럼 받아들이기 어려운 국가의 억압으로 보일 수 있다.”


▎2007년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장. 중앙포토
청와대 “당선인도 임기 말까지 인사 권한 행사하면 돼”

원인이 어디에 있는 문 대통령의 하산은 기정사실이다. 더구나 윤 당선인은 청와대 시대를 접고 용산 시대를 열겠다고 한 만큼 어쩌면 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하산하는 마지막 대통령으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임기 말 청와대에 앉아 있으면 하루에 저수지 하나만큼씩 권력이 빠져나가는 걸 실감할 수 있다. 그게 권력의 속성이다.” 김대중 정부 마지막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박지원 국정원장은 수년 전 월간중앙 인터뷰에서 임기 말 청와대 분위기를 그렇게 비유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좀 다른 듯하다. 신인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 지명만 해도 그렇다. 3월 23일 문 대통령이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을 새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로 지명하자 윤 당선인 측은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에 청와대 관계자는 24일 기자들과 만나 “당선인께서도 대통령이 되셔서 임기 말까지 차기 대통령으로서의 인사 권한을 행사하면 되는 일”이라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도 마지막까지 인사를 했다”고 맞불을 놓았다.

문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보좌관이자 ‘문재인의 복심(腹心)’으로 통하는 윤건영 민주당 의원도 25일 보도자료를 내고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됐으나, 문재인 정부에서도 정해진 임기를 모두 마치고 퇴임한 공공기관장은 63.9%, 상임감사 87%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청와대를 거들었다.

5년 전인 2017년 5월 23일,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 8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현직 대통령으로서 이 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일 것”이라고 했다. 약속대로 문 대통령은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는 추도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만일 문 대통령이 올해 13주기 추도식에 참석한다면 그의 신분은 현직이 아닌 전직이다.

-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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