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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연 교수의 부동산 정책 오해와 진실(12) 빚내서 집 사는 게 어때서? 

 


▎최저 1%대 금리로 주택 구입 자금을 빌려주는 신생아 특례 주택 대출 신청 첫날인 1월 29일 오후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에 신생아 특례 대출 안내 배너가 설치돼있다. 연합뉴스
저출생 문제 해결과 청년주거문제 해결의 일환으로 ‘신생아 특례 구입대출’이 1월 29일부터 시행됐다. 최저 연 1.6% 금리로 최대 5억 원까지 빌릴 수 있다. 가계부채가 위험 수준만 아니라면 이런 대출완화정책은 젊은 부부뿐만 아니라 청년 전체에도 시행될 수 있었을 것이다.

내 집 마련의 꿈을 꾸는 청년들에게 주거 사다리 한 칸 보태주는 이런 정책은 역사가 길다. 생애 최초 주택자금 대출은 2001년에 처음 시작됐다. 그 이후 보금자리론을 비롯해 다양한 정책금융이 지원됐다. 그리고 이런 정책은 죄가 아니다. 오히려 권장되고 강화돼야 한다.

그러나 부동산이 정치와 결합해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발열’되는 나라에서는 종종 그 반대의 반응이 나오기 마련이다. 아니나 다를까 정책을 발표하자마자 바로 ‘빚내서 집 사라’는 죄악이라며 사방에서 화살이 날아온다.

그러면 ‘빚내서 집 사라’가 아닌 ‘현찰로 집 사라’는 것일까? 금수저가 아닌 다음에야 현찰로 집을 사는 이는 대한민국에 없다. 부모가 턱턱 내어주는 현찰 없이 자력으로 생활을 꾸려가는 능력 있는 흙수저에게 그 말은 어떻게 들릴까? “빚내서 집 사는 게 죄악이니 현찰 없는 게 죄악이구나!”라고 느낄 것이다. 그야말로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시대라 할 것이다.

“빚내서 집 사라가 죄악이면 현찰 없는 게 죄악이고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시대를 여는 사람들이다.”


“집값 하락기 지원 우선순위는 청년”


▎지난해 3월 23일 서울 종로구 광교에서 열린 청년 전세 사기 예방 캠페인에서 청년층 시민들이 부동산 계약 상담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정부는 말한다. “청년들이여! 빚내서 집 사라!” 미국 주택도시개발부(HUD)는 금융회사와 협약을 통해 저금리 대출을 제공한다. 집값의 20%는 다운페이먼트라고 해 청년이 마련하지만, 나머지 80%에 대해서는 저금리 대출이 가능하도록 길을 열어놓는다. 청년들을 자기 지역에 계속해서 거주하게 만들고 싶은 미국의 지방 정부들은 종종 그 20%의 다운페이먼트에 대해서도 절반을 지원해주거나 다양한 방법의 간접지원책을 마련한다.

“빚내서 집 사라가 뭐가 어때서?” 우리의 작금의 상황을 듣는다면 미국인들은 되물을 것이다. 가계부채가 천정부지 높다고 해서 미래 세대들에게 현찰로 집을 사라고 하는 것이 될 말인가? 집값 하락기인 이 시점에 누군가 집을 살 수 있게 지원해줘야 한다면 우선순위는 청년들이다. 그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것은 폭풍우 치는 밤에 마지막 남은 한장의 우비를 입히는 심정으로 기성세대들이 할 일이다. 처마 끝에 애처롭게 서 있는 그들에게 처마의 가장 안쪽에 앉아 있으면서 “어디 감히 능력도 없는 것이 우비를 입으려 드느냐”고 윽박지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신종 가스라이팅을 멈춰야 한다. 빚내서 집 사는 건 죄악이라는 세뇌는 우리 청년들을 영원히 월세 소작농으로 묶어놓기 위한 가스라이팅이다. 청년들에게는 빚내서 집을 사되 소득의 30% 이상을 이자상환에 쓰지 않도록 경제교육이 필요한 시점이다. 너는 신용불량자가 될 수도 있고 파산을 할 수도 있으니 아무것도 하지 말고 숨만 쉬라는 게 기성세대들이 할 말인가? 그들이야말로 청년들의 자립을 방해해 종속시키고자 하는 욕심 많은 사람들이라 할 것이다.

자기 능력에 기대 신용평가를 받고 그 능력껏 집을 사고 싶은 청년들을 지원하는데 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부동산 대책이 아닌 청년 정책의 일환으로 말이다.


※필자 소개: 제주대 경제학과 교수이자 한국감정평가학회 명예회장, 한반도선진화재단 부동산정책연구회장. 중앙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2019년 감정평가학술대상 최우수상, 2020년 서울부동산포럼 제1회 학술대상을 받은 바 있다. 부동산경제학‧부동산대량감정평가‧부동산계량경제학 분야에서 활발한 연구 활동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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