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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범의 등산미학 (45) 남덕유산, 상고대가 있는 겨울 산행 

 

청룡이 하늘로 솟구칠 새 봄이 온다

평온했던 김희범의 우주에 엄청난 충격파가 밀려왔다. 소행성이 떨어져 모든 것이 초토화되더니 후폭풍으로 엄청난 쓰나미가 몰려왔다. 광활한 폐허를 헤매다 지쳐 쓰러진 내 영혼은 시도 때도 없이 몰아치는 불안과 걱정, 스트레스의 융단폭격을 받아 수없이 넘어졌다가 또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오죽하면 즐기는 책과 글을 읽고 쓰는 것은 물론 잠을 제대로 잘 수조차 없었다. 회사 생각에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눈앞이 캄캄해지고 다리가 휘청거렸다. 그런데도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하게 먹고 걷고 웃고 말하며 견뎌내고 있었다. 극심한 불황기를 겪던 지난겨울, 그렇게 1분 1초가 10년, 100년 같은 날들이 지나갔다. 힘겹게 겨울의 한복판을 관통하는 동안 최강 추위와 눈보라가 몰려왔다 몰려갔다. 그리고 또 어김없이 동쪽에서 해는 뜨고 휴일이 찾아왔다. 불현듯, 눈부신 하얀 설산에 검은 재처럼 다 타버린 나의 어두운 흔적들을 털어내 묻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절친 산행 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천만다행으로 남덕유산 설산 산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새벽 6시 50분, 서울 사당역에서 출발한 산행 버스가 새벽을 힘차게 내달려 오전 10시 15분 남덕유산 남쪽 산기슭 주차장에 도착했다. 전국에서 설산을 보러 온 산행인들과 차량이 얽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눈 앞에 펼쳐진 남덕유산을 바라보았다. 눈 덮인 설산(雪山).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환해지고 맑아진다. 정말 얼마 만에 느껴보는 상쾌하고 깨끗한 느낌인가! 4개월여 만에 만난 절친 산행 친구들과 반갑게 악수를 하고, 재잘 재잘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며 등반을 시작했다.

남덕유산(南德裕山)은 경상남도 거창군, 함양군, 전라북도 장수군에 걸쳐있는, 1507m의 높고 멋진 산이다. 지리산 다음으로 넉넉하고 덕이 있다고 하여 덕유산이라고 하였는데, 덕유산 연봉들이 남쪽 끝자락에 위치한다고 하여 남덕유산이라고 부른다. 남덕유산은 덕유산의 최고봉인 향적봉(북덕유산) 남쪽에 있는 덕유산 제2봉을 가리킨다. 주봉우리인 향적봉을 중심으로 삼봉산에서 시작하여 대봉·덕유평전·중봉·무룡산·삿갓봉 등 해발고도 1300m 안팎의 봉우리들이 줄지어 솟아 있다. 산의 동·서 비탈면에서는 황강과 남강 및 금강의 상류를 이루는 여러 하천이 시작되어 굽이굽이 흐르다 낙동강과 금강에 이른다. 계곡은 8곳이 있는데, 북동쪽 무주와 무풍 사이를 흐르면서 금강의 지류인 남대천으로 흘러드는 무주구천동 약 30㎞ 구간은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명소다. 무이 구곡을 비롯한 구천동 33경과 칠연폭포·용추폭포 등이 장관이다. 6월 초순에는 20㎞의 능선과 등산로를 타고 펼쳐지는 철쭉 군락이 유명하다. 여름이면 시원한 구천동 계곡이 피서객들로 가득 차고, 가을에는 붉게 물든 단풍이, 겨울에는 눈 덮인 구상나무와 주목, 바람에 흩날리는 눈보라가 장관이다.


우리는 어느새 가파른 남덕유산의 하얀 설산을 한발 한발 오르고 있었다. 등산화를 신고 눈길을 밟는 그 느낌. 참 보드랍고 시원하다. 이렇게 가파르고 미끄러운 눈길을 걷는데도 하나도 차갑지 않다니……. 역시나 내가 좋아하는 산행은 모든 걸 감싸 안고 품어주는 편안한 아내처럼 숯검정이 되어버린 내 마음을 한 꺼풀 한 꺼풀 꺼내어 깨끗하게 씻겨주었다. 따뜻한 가족의 품에 안긴 듯 행복한 기분으로 남덕유산의 큰 능선을 넘자 눈앞의 풍경은 그 전과 확연히 달라진다. 응달진 곳에는 어김없이 하얀 눈을 머리에 가슴에 다리에 어깨에 이고 지고 있는 하얀 눈꽃 송이 나무들이 나에게 어서 오라며 미소를 머금는다. 서리가 나무나 풀에 들러붙어 얼어붙은 상고대다. 아, 아름답구나! 미치도록 아름답구나! 아! 그런데 저 나무들의 처지에서 생각해보면, 찬바람과 함께 몰아닥친 이 눈보라는 나무들에는 얼마나 큰 날벼락이란 말인가. 정말 1초 1초가 얼마나 무겁고 힘들고 고통스러울까 하는 생각에 갑자기 나무들이 안쓰러워졌다. 역지사지라고 했다. 한동안 나 자신이 그렇게 무거운 짐을 진 눈꽃 송이 나무가 되어 한참을 바라보았다. 어느 순간, 눈꽃 송이를 이고 진 저 나무들이 나의 멋진 동료이자 숱한 역경을 이겨낸 살아있는 영웅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알고 있는 세 분의 멋진 영웅들의 얼굴이 그 눈꽃 송이들에 하나둘씩 겹쳐졌다.


먼저 J 님. 시골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자수성가하여 대형 펌프카 여러 대를 보유한 사업가로 성장했단다. 그런데 원청 대형 건설사들이 lMF 사태로 한순간에 무너지면서 공사대금으로 받은 수억 원의 어음이 휴짓조각으로 변했다. 순식간에 회사와 집이 경매로 헐값에 넘어가 길거리에 나앉게 되었다고 한다. 술과 담배로 세월을 탕진하며 세상을 원망하며 살던 어느 날, ‘이렇게 살아서 뭐하느냐’며 술에 취해 수백km 속도로 가속시킨 차의 핸들을 한강 어느 다리를 향해 확 꺾어 버렸다고 한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한강 다리 인도 턱에 차바퀴가 먼저 받치면서 운전자인 자신은 차에서 튕겨 나와 비교적 가벼운 상처만 입었지만, 하늘로 튀어 올랐다가 2차로 한강 다리 안전 교각 펜스를 들이받은 차는 형편없이 부서져 곧바로 폐차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운 좋게 살아남은 J 님은 죽는다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신문 배달, 우유배달부터 시작해 삶의 터전을 다시 잡았다. 이어 식당과 작은 슈퍼마켓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누수 방수공사 기술을 배워 기술자가 됐다. 지금은 훌륭한 기술자 소장으로 능력을 인정받고 있으면서도 매사에 욕심부리지 않고 자족하면서 하고 싶은 것 다 하며 멋지게 사신다. 죽음의 고통을 극복하고 우뚝 선 J 소장의 멋진 모습은 힘든 눈꽃 송이를 이고 지고 있으면서도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주고 있는 저 눈꽃 송이 나무 같은 사람이 아닌가!


S 님도 빼놓을 수 없다. 부농 집안 막내아들로 태어나 당시 이름난 공고에 입학해 반에서 수석으로 졸업했단다. 몇 년 동안 작은 회사에 들어가 기술을 배우고 익힌 뒤 젊은 나이에 기계설비 회사를 차렸다고 한다. 뛰어난 머리와 타고난 성실함으로 사업은 나날이 번창하여 수도권 주요 학교 대부분의 공사를 수주하게 됐다. 관내 구청장과 국회의원들과 어울려 지낼 정도로 사업이 번창하고 인맥이 넓어져 예쁘고 똑똑한 선생님을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다. 그런데, 인생사 호사다마 새옹지마라고 학교 공사가 수의계약에서 경쟁 입찰로 바뀌면서 공사 수주가 급격히 줄어들자 50명이나 되는 직원을 놀릴 수 없어 대형 건설사 하청공사를 했다고 한다. 불행히도 앞서 J 님처럼 대형건설사 원청이 부도가 나자 공사대금으로 받은 수많은 어음이 휴짓조각이 되고, 미수금이 쌓여 모든 것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사재를 털어 협력업체와 직원들의 급여와 미수금을 모두 지급하고 신용을 지켜 지금도 그 인맥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S 님은 사업이 실패하면서 세상의 패배자가 되어 꼬박 1년을 골방에서 천장만 바라보며 반시체처럼 살았다고 한다. 어느 날, ‘이렇게 살아서 무엇하냐’며 갑자기 죽고 싶다는 생각이 몰려왔다고 한다. 집을 나가는 못난 아비를 보고는 ‘아빠 나랑 같이 가’ 방긋 웃는 어린 막내딸을 차마 뿌리칠 수 없어 막내딸을 가슴에 안고 하염없이 한강 다리 밑 차가운 물살만 바라보다가 다시 골방으로 돌아왔단다. 남들이 바보라고, 패배자라고 손가락질하는 것 같고, 세상이 무섭고 사람들이 무서워 골방을 박차고 나올 수가 없었다고 한다. S 님의 이런 못난 모습에 희망을 잃어버린 아내는 자기 재산을 정리해 두 딸과 함께 캐나다로 도피성 유학을 떠나버렸다. 그리고 그 뒤로 딱 1년이 지나서야 S 님은 세상으로 걸어 나올 수 있는 용기가 자라날 수 있었다고 한다. 택시 운전을 하던 중 우연히 국민연금으로 800만원을 일시불로 수령할 수 있다는 것을 안 S 님은 그 작은 종잣돈으로 중고 트럭을 사고, 중고 공구를 샀다. 이제는 사장이 아니라 노동자 소장님이 되어 뛰어난 능력과 성실성으로 밤낮없이 일해 재기에 성공했다. 서울에 집도 사고, 친구들을 만나면 항상 밥을 산다며 빙그레 웃는 S 님의 모습은 꼭 저 눈꽃 송이 아름다운 나무가 아닌가!


마지막으로 E 님. 그는 도회지 부잣집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공부로는 대성하기 어렵다고 보고 대구 서면시장 안에 실 도매상 가게를 차려 주었다고 했다. 20대 초반의 미남이자 싹싹한 젊은 사장님이 귀엽기도 하고, 인사성도 밝아 전국 각지의 소매상 여사장님들이 금방 그 가게로 몰려들었고, 매일 현찰로 양동이가 넘칠 정도의 돈을 쓸어 담았다고 한다. 그때는 세상 어느 것 하나 무서울 것도, 부러울 것도 없었고, 영원히 잘 나갈 줄 알았다고 한다. 장사는 직원들에게 맡겨놓고 1970년대에 날마다 빳빳한 현금 100여만 원을 장지갑에 넣고는 낮에는 오토바이에 예쁜 아가씨들을 태우고 다녔다. 밤이면 친구들과 어울려 2차, 3차로 이어지는 술자리에서 술값을 물 쓰듯 뿌렸다. 아들의 방탕한 생활이 걱정된 아버지의 잔소리와 성화가 커지자 젊은 혈기를 주체 못 하고 다짜고짜 그 좋은 가게를 싼 가격에 몰래 팔아버리고는 가방에 돈다발을 담아 무작정 속초로 떠났단다. 그런데, 어떻게 귀신같이 돈 냄새를 맡고 찾아온 것인지 선원들과 노름꾼의 꾐에 빠져 단 6개월 만에 그 많은 돈과 멋진 옷을 노름판에서 다 날려버렸다고 한다. 사정사정하여 차비를 구걸해 다시 무서운 아버지가 있는 고향 집에 돌아왔지만 화려한 시절은 다시 오지 않았다. E 님은 그렇게 무일푼이 되고, 그 뒤로도 몇 번 사업했다가 홀라당 다 망했지만 좌절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아이스크림 사장님, 큰 새시 공장 사장님, 신발가게 사장님을 거쳐 마지막으로 본인과 딱 맞는 냉각탑 기술을 배워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최고 냉각탑 소장님이 되셨다. 지금 이렇게 멋지게 우뚝 선 E 님은 저렇게 아름다운 눈꽃 송이와 비교해도 절대 뒤지지 않는 너무나 아름다운 인간 눈꽃 송이가 아닌가!


세 분의 멋진 영웅들의 인생사를 추억하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남덕유산 1507m 정상이다. 굽이굽이 광대하고 장엄하게 펼쳐진 눈 덮인 덕유산을 찬찬히 바라봤다. 참으로 아름답고 멋진 절경이었다. 저 아름다운 남덕유산 풍경과 나 자신을 비교해 돌아봤다. 어쩌면 저 광활한 우주에서 보면 나는 티끌보다 훨씬 작은 문제를 가지고 세상 모든 근심 걱정을 다 가진 듯 호들갑을 떨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멀리서 보면 아름답고 행복한 천국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사납고 고통스러운 지옥이란 말이 있다. 우주 만물 삼라만상 모든 것들이 그런 원리로 만들어지고 작동하는 게 아니겠는가. 그런 면에서 보면 나는 참으로 복이 많은 사람이 아닌가!

산골에서 태어나 여러 형제자매 중 나 혼자만 어머니가 나의 일주일 생활비와 용돈 차비를 주기 위해 온 동네를 다 돌아 1만원을 겨우 빌려 꼬깃꼬깃해진 1만원 지폐를 나의 호주머니에 넣어 주신 그 돈으로 대학을 나왔다. 그리고 바로 대기업에 들어갔고, 풍족하진 않았지만 부족하지 않게 살았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사업을 했지만 남들의 우려와는 달리 남에게 아쉬운 소리 않고, 지금까지 큰 어려움 없이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대기업 관공서는 물론 여러 공장 건물의 유지보수 공사를 하며 여기까지 잘 왔다. 그런데, 내 인생 처음으로 창업 12년 만에 큰 시련과 어려움이 찾아왔다. 3년간 코로나 사태로 매출이 정체하더니 연이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에 따른 불확실성으로 세계 경제가 침체의 늪에 빠졌다. 긴 병에 장사 없다고 건설 경기 불황이 쓰나미처럼 몰려오고, 겨울철 비수기까지 겹쳐 회사 창립 이후 처음으로 3~4개월간 매출이 수직으로 격감했다. 사람으로 보자면 혈맥인 자금이 잘 돌지 않게 된 것이다. 학생 시절 어머니가 주신 눈물 어린 돈은 일찍 알았지만 정말 난생처음 돈이 주는 위력과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껴보고서야 돈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사람은 언제나 영원히 모든 것이 잘 될 수는 없으니 늘 유비무환 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배웠다. 지게에 무거운 짐을 져보면 알듯이 처음 짐을 지고 일어나기 위해서는 얼마나 힘이 들던가! 옆에서 누가 밀어주고 잡아주면 어떻게라도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듯이, 살면서 얻는 작은 도움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도 새삼 깨달았다. 그래서 남은 내 인생을, 사랑하는 가족과 더 재미있게 살고, 어렵고 힘든 사람을 위해 돕고 살겠다는 새로운 다짐도 해 봤다. 그렇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가 ‘지금의 나의 고통이 죽음에 이르지 않으면 한 움큼 나를 성장해 준다’고 했던 말처럼 어쩌면 지금 내가 겪는 고통은 ‘인생을 좀 더 성숙하고 겸손하게 살라’고 하는, 신이 주신 선물이 아닐까? 그렇다. 지금의 고통과 시련은 나에게 인생의 참맛을 알게 해주고 보다 큰 사람으로 성장시켜 줄 것이다. 그렇게 큰 희망과 행복을 마음에 품고 집에 도착했다.

신기하게도 덕유산을 다녀온 한 주 내내 그렇게 오매불망 기다리던 대기업 및 관공서, 공장 등에서 문의가 쏟아져 들어왔고 그 가운데 절반 정도의 공사를 수주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이 입춘이다. 참 따뜻하고 포근하다. 이제 어엿한 새봄이다. 이제 어둠의 긴 터널을 뚫고 기지개를 활짝 켜고 청룡이 더 넓은 창공을 활짝 날아갈 날도 멀지 않았나 보다. 그래. 그게 세상사의 원리가 아니던가! 역시 등산은 언제나 힐링과 희망을 준다. 남덕유산아! 고맙고 고맙다.

삶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 마음가짐 10가지와 정약용 선생님이 삶이 지옥 같을 때 되새겼다는 마음가짐 10가지를 담아본다.

● 삶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 가져야 할 마음가짐 (10)

1. 이것 또한 지나간다.

2. 기회는 어려움의 모습으로 찾아온다.

3. 지금 힘든 것은 단지 지나가는 먹구름이다.

4. 성공은 가장 큰 실패에서 나온다.

5. 모든 성공은 끈기로 시작된다.

6. 희망은 어둠 속에서 피어난다.

7. 오늘은 어제의 꿈이고 오늘의 행동이다.

8. 과거는 이미 사라졌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9. 숱한 경험이 삶의 지혜와 통찰력을 키운다.

10. 나 자신을 믿고 기회를 잡아라.

● 정약용이 삶이 지옥 같을 때 되새겼다는 마음가짐 (10)

1. 분노는 독한 술과 같아서, 내가 분노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분노가 나를 집어삼킨다.

2. 기적은 힘차게 내딛는 첫걸음에서 시작하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 내딛는 마지막 걸음에서 완성된다.

3. 스스로 생각하며 길을 걸어야, 앞의 풍경이 새로워진다.

4. 오늘을 고치지 않고서 내일을 기대하지 마라

5. 두려워할 만한 것은 두려워하고, 맞서야 할 만한 것은 맞서야 그것이 참된 용기다.

6. 실수를 인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길이 멀다 해서 거꾸로 걸을 수 없다.

7. 인간은 격하게 행동할 때가 아닌, 잠시 멈출 때 오히려 길을 찾는다.

8. 나를 깨닫는 과정은, 나를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

9. 어른은 축적된 지식이 아니라, 드러난 태도로 증명된다.

10. 희망이란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전과 확실하게 결별하는 것이다.


※필자 소개: 김희범(한국유지보수협동조합 이사장)- 40대 후반 대기업에서 명예퇴직. 전혀 다른 분야인 유지보수협동조합을 창업해 운영 중인 12년 차 기업인. 잃어버린 낭만과 꿈을 찾고 워라밸 균형 잡힌 삶을 위해 등산·독서·글쓰기 등의 취미와 도전을 즐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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