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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범의 등산미학(47) 중국 차마고도 옥룡설산에 올라 

 

아름다운 인생은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고난의 길 위에 있다

히말라야 산맥 남쪽 끝자락에 있는 가파르고 뾰족한 옥룡설산(玉龍雪山) 정상은 오로지 구름만 그 자리에 오를 수 있고, 옥룡설산(5596m)과 하바설산(5396m)의 깎아지른 계곡 사이에 있는 호도협(虎跳峽)은 용맹한 호랑이만 뛰어 넘을 수 있다고 한다. 그만큼 인간이 범접하기 어려운 고산지대라는 얘기다. 그 어려운 길을, BC 400년 무렵부터 차(茶)와 말, 소금을 말에 싣고 밤낮으로 묵묵히 걸어 오갔던 이들이 있었다. 차마고도(茶馬古道)를 걸었던 마방(상인단)들이 그들이다. 우리네 인생길이 편안함보다는 고단함이 더 많긴 하지만, 마방들이 흘렸을 땀과 눈물의 그 인생에도 어떤 아름다움이 묻어 있었을 것이다. 그 아름다움을 직접 체험하고 만나고 싶었다. 세계 3대 트레킹 중 하나로 꼽힌다는 차마고도와 옥룡설산 산행을 결심하게 된 이유였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2024년 2월 22일~27일, 재경광주대동총동문회 대산회 회원들을 주축으로 꾸려진 차마고도/옥룡설산 산행 팀에 합류했다.


여정의 첫째 날, 인천공항을 출발해 중간 기착지 성도공항에 내려 호텔로 이동했다. 매운 사천 음식으로 저녁을 먹은 뒤 다음날 새벽 성도공항으로 가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목적지 여강을 향해 가는 성도공항 출국장은 새벽 시간인데도 사람들로 북새통이었다. 중국의 설날은 길어서 보름이 되어야 끝나는데, 고향에서 설을 쇠고 다시 일터로 돌아가는 연휴 마지막 날이라고 했다. 왠지 출발부터 마음이 불안했다. 아니나 다를까 마음은 조급한데, 공항 보안대원이 검색대에서 내 가방을 꺼내더니 내용물을 바닥에 쏟아붓기 시작했다. 나의 불찰이었다. 캐리어백에 넣어야 할 아이젠을 기내 반입 배낭에 넣은 것이다. 아이젠을 압수당한 뒤 배낭을 둘러메고 날다람쥐처럼 뛰어 가까스로 탑승 게이트에 도착했다. 비행기 출발시간 1분전이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1시간 30여분 구름 속을 날아 드디어 차마고도를 품고 있는 도시 여강의 공항에 도착했다.

윈난성 여강(麗江,리장). 해발 2250m 높은 고도에 30만 명이 산다. 차마고도의 중심지이자 24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고도(古都)다. 여강공항에서 호도협 트레킹의 시작점인 교두진으로 가는 도로는 편도 1차선이었다. 가던 도중 차가 멈춰 섰다. 앞쪽에서 교통사고가 나서 1시간 30분을 무료하게 기다려야 했다. 그래, 중국에서는 ‘만만디’라고 하지 않던가! 조급증을 떨쳐버리기로 했다. 교두진에 도착해 현지에서 ‘빵차’로 부르는 미니밴에 3~4명씩 나눠 타고 고갯길을 20여 분을 힘차게 올라 산 중턱 ‘일출소우’라는 곳에 도착했다. 날씨가 급변해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옷을 입고 한참을 더 올라가자 2400여년을 숙명처럼 살아왔다는 그 마방들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 눈에는 그들이 몇 년 전 KBS 다큐멘터리 〈차마고도〉에서 보았던 꼭 그 사람들, 그 말처럼 보였다.

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TV에서 보았던 차마고도, 마방이란 이미지가 내 마음속에 너무나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나보다. 2400여 년 동안 남몰래 흘렸을 마방들의 땀과 눈물이 내 마음속에서 파노라마 치기 시작했다. 어떤 젊은이는 어여쁜 새색시에 장가를 들기 위해, 늙으신 부모님 봉양을 위해, 줄줄이 딸린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큰 꿈을 실현하고 부자가 되기 위해 그 고난의 길을 걸었을 것이다. 구구절절 사연을 담고 그 무거운 소금과 곡식, 차와 도자기를 말에 싣고 이 산길을 힘들게 걸었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되어 한참 동안 마방들의 그늘진 인생을 생각했다.


마방들을 따라나섰다. 하바설산 중턱 어느 산봉우리에 올라서자 눈앞에 경이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그토록 와보고 싶었던 옥룡설산, 차마고도 그리고 호도협이었다. 옥룡설산은 남북으로 35km, 동서로 13km의 국립공원 내에 13개의 봉우리가 있다. 최고봉인 샨지두봉은 해발 5596m다. 중국 국가 풍경 명승구로서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리장시 옥룡설산 풍경구로서 중국 최고 레벨(5A급)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차마고도(茶馬古道)는 중국의 높고 험준한 옛길로 실크로드와 함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교역로다. 윈난·쓰촨성의 차와 티베트의 말을 교환했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길이가 5000㎞에 이르며 평균 해발고도 4000m 이상인 높고 험준한 길이다. 5000m 이상의 설산(雪山)들과 진사강(金沙江), 란창강(瀾滄江), 누강(怒江)이 수천㎞의 아찔한 협곡을 이루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꼽힌다. 세 강이 이루는 협곡은 2003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호도협은 인도 대륙과 유라시아 대륙의 지각운동으로 만들어진 16km 길이의 대협곡이다. 이 협곡에서 사냥꾼에 쫓기던 호랑이가 바위를 딛고 한 달음에 강을 건넜다하여 호도협이라는 말이 생겼다. 까마득히 멀리 보이는 두 설산 아래 호도협의 물살이 파르스름한 빛을 띠고 아련하게 보였다. 무려 6300여km 내륙을 타고 흐르는 바로 그 양쯔강의 상류였다. 그 호도협을 조망하며 걸을 수 있는 하바설산 중턱에 우리가 걸어갈 차마고도가 꾸불꾸불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대륙의 장관에 내 가슴이 파도쳤다. 저 웅장한 대자연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작고도 작은가. 그래. 저 멋진 설산처럼, 나도 웅대하고 장엄하게 다른 사람에게 희망과 용기와 평화를 주는 멋진 사람으로 살아야하지 않겠는가! 옥룡설산의 저 날카로운 정상을 보라. 이 세상 모든 폭풍한설을 다 맞고도 당당하게 서있지 않은가. 아름다운 인생이란, 저 옥룡설산 정상처럼 수많은 인연을 다 품으면서도 담대하게 흔들림 없이 나답게, 묵묵히 잘 사는 인생일 것이다. 마음속 가득 감동을 안고, 대자연과 호흡하며 힘든 줄도 모르고 4시간을 걸어 ‘차마객잔’에 도착했다. 옛 마방들이 묵고 갔다는 숙소는 아늑하고 작았다. 침대와 전기시설, 샤워장이 갖춰져 있어 생각보다 괜찮았다.


여정의 셋째날 아침. 찬란히 떠오르는 태양빛에 반짝이는 설산 봉우리는 참으로 매혹적이었다. 왜 이곳을 가공의 이상세계를 뜻하는 샹그릴라(Shangri-La)로 부르는지 알 것 같았다. 자세히 보니 샹그릴라는 그냥 가만히 있지 않고 바람과 구름에 의해 사라졌다 나타났다 요술을 부린다. 어쩌면 세상만사는 태양과 작은 물방울에 놀아나는 그저 꼭두각시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아침 8시, 우리는 다시 차마고도 길을 다시 이어나갔다. 그림 같은 산수화 속 무릉도원 속을 걷는 듯 마음이 가벼웠다. 기암괴석 낭떠러지에 난 좁은 길을 조심조심 지나자 여강의 소수민족 나시족 여신을 모셨다는 사당 ‘관음사’가 발걸음을 끌어당긴다. 하바설산 정상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수백 미터 장관을 이루며 계곡으로 떨어졌다. 관음폭포였다.

점심을 먹고, 호랑이가 훌쩍 뛰어넘었다던 중도호협으로 발길을 옮겼다. 좁고 가파른 길을 1.5km 내려가자 하바설산 중턱에서 봤을 때 신비하고도 무섭게 보이던 그 파르스름한 빛깔, 그 무서운 소리의 정체와 마침내 만날 수 있었다. 옥룡설산과 하바설산에서 녹아내린 눈들이 무섭게 물살로 변해 좁은 협곡을 지나면서 울부짖는 소리였다.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앞 30m도 못 가서, 협곡이 깊고 넓어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 평화의 미소를 머금은 순한 양이 되어 유유자적 조용히 바다로 흐르고 있었다.


우리네 인생사와 저 협곡은 어찌 그리도 똑같단 말인가! 좁은 길이 나오면 곧 큰 길이 나오고, 험악한 바위가 나오면 또 한없이 부드러운 모래사장이 나오는 게 자연의 이치인데... 사람이건 저 물살이건 그저 잠깐을 참지 못하고 부화뇌동해서 요란을 다 떤다. 조금 더 가까운 곳에서 멋지게 포효하는 물보라를 보았다. 가만히 귀 기울여 한참을 보고 또 보았다. 그 멋있는 소리와 색깔의 정체는 바위에 부딪혀 환장하게 아픈 물의 비명이었다. 그렇다. 아름다운 인생은, 어쩌면 고통과 아픔이 승화되어 빛을 발할 때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가슴 벅찬 감동을 안고 오늘 하룻밤을 묵어갈 ‘장선생 객잔’에 도착해 잠을 청했다.


여행 나흘째, 드디어 이번 트레킹의 하이라이트인 옥룡설산에 오르는 날이었다. 축하라도 해주는 듯 처음으로 구름 한 점 없이 하늘이 맑았다. 아침 7시에 버스를 타고 2시간여를 달렸다. 아열대 기후에서 자라는 스타벅스에 납품하는 커피와 올리브 파인애플 농장이 있는 대구라는 작은 시골 도시를 지나 옥룡설산 등산로로 올라가는 케이블카를 탔다. 케이블카를 기다리는 이들 중에는 산소통을 멘 젊은이들도 보였다. 고산지대라는 사실이 그때서야 실감났다. 케이블카에서 보니 멀리서는 잘 보이지 않던 작은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차서 이색적인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있었다.

옥룡설산 정상으로 가는 등반 출발지는 해발고도 3500m나 되는 고지대였다. 내 눈앞에 있는 거대한 설산은 엊그제 이틀 동안 멀리서 봤던 옥룡설산이 전혀 아니었다. 범접하기 힘든 거대한 몸뚱이의 산이었다. 고산지대 산행을 준비하는 우리들의 안전을 위해 현지인 가이드 2명과 셰르파 2명이 추가로 합류한 뒤 드디어 옥룡설산 등반을 시작했다.

우리 일행은 깊이 20cm~50cm 눈 쌓인 등산로를 헤치고 한 발짝 한 발짝 다가갔다. 넓은 구릉지와 전나무 군락지, 야크목장을 지나자 아담한 산야목장이 나타났다. 그 목장에서 셰르파들이 가져온 물로 끓인 누룽지와 함께 3종류의 반찬을 맛있게 나눠 먹고 옥룡설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가이드 뒤에 바짝 붙어 선두를 놓치지 않았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에 가이드 발자국이 찍히고, 그다음 내 발자국이 찍혔다.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을 헤치고 턱까지 차오르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정상을 향해 힘차게 나아갔다. 시간이 지나자 체력이 고갈돼 포기하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가이드를 따르는 사람은 나밖에 남지 않았다. 다행히 나는 고산병은 없었다. 고산트래킹은 자기 호흡에 발걸음을 맞추어 걸어야 한다는 것을 가이드를 통해 배웠다.


어느 순간, 벌써 약속된 오후 2시라며 가이드가 더 이상 갈 수 없다고 내 앞에서 두 손으로 X자를 그었다. 하산을 위해서는 40%의 체력이 남아 있을 때 멈추어야 하고, 여강에 있는 숙소까지 무사히 도착하기 위해서는 여기까지가 최선이라고 했다. 내 생전 처음 4000m이상 고지를 스틱 하나에 아이젠도 없이 무릎까지 빠지는 폭설을 뚫고 당당히 4시간여를 두 발로 걸어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여기에서 멈춰야하다니...아쉽고 아쉬웠다. 고도를 찍어보니 4020m. 그래 여기에서 멈추자! 최선을 다한 뒤 포기하는 것도 멋진 사내가 아닌가! 그렇게 내 자신을 위로하고 달랬다. 삶을 더 알차게 살기 위해서는 항상 새롭게 마음을 먹고, 고통과 아픔도 인내하며 꾸준히 마음먹은 것을 실천하고, 또 하나의 이정표를 위해 힘차게 오늘을 달려가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인생의 월계관이라는 가르침을 준 것이 내겐 등산이었다. 그래 김희범. 너는 할 만큼 했다. 그렇게 나를 위한 오늘의 최고 찬사를 보내며 행복을 맛보고 있을 찰나, 이번 산행의 주인공 이재신 선배가 4020m 그 고지를 홀로 올라오고 있었다. 우리는 두 손을 잡고, 우리가 올라온 옥룡설산과 앞으로 남은 옥룡설산을 차례로 바라봤다. 이게 바로 인생이다. 우리가 매일 같은 삶을 사는 것 같으면서 다른 삶을 살아가듯 등산도 그렇다. 어차피 하산해야 하는 산이지만, 그래서 우리는 산을 또 올라야하는 게 아닐까?

마방들이 고뇌와 고통의 길 위에서 삶의 아름다움과 보람을 찾았듯, 이번 우리의 산행은 눈과 비, 바람, 태양, 우정, 인내와 함께한 종합선물셋트 같은 여행이었다. 위도상 옥룡설산의 2월 하순 날씨는 눈이 많이 내리지 않고 영상의 기온에 금방 녹아내린다는데, 찬란한 새 봄에 새하얀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라는 듯 영험한 옥룡설산의 여신은 10년 만에 웅장하고 아름다운 이 설산을 우리에게 선사해 주신 게 아니겠는가! 그래, 다시 한 번 힘을 내어 독수리가 비상하듯 힘차게 저 멀리까지 날아보자꾸나!

우리는 여강 시내에 있는 고풍스런 숙소에서 만찬을 하고, 힘들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2000여년의 고도, 차마고도의 옛 시장을 구경했다. 옹기종기 이색적인 다양한 가게들과 빛의 향연이 아름다웠다. 잦은 지진으로 거의 대부분이 2층 목재 건물이었고, 알록달록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시장 중심을 관통하는 작은 개울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정말 피곤하다고 안 봤으면 후회할 뻔했다.


여행 5일째 아침 9시, 버스를 타고 옥룡설산 관광구역으로 들어갔다. 옥룡설산에서 흘러내린 아름다운 호숫가에서 사진을 찍고 여유로움을 만끽했다. 그리고 히말라야 산맥 옥룡설산을 배경으로 한 장예모 감독의 인상여강가무(印象麗江歌舞)쇼를 관람했다. 옥룡설산을 배경으로 대형 무대가 장엄하게 펼쳐져 있었다. 총 6부로 이뤄진 공연이었는데, 1부는 척박한 생활환경으로 인해 당시 강성했던 티베트로 차와 소금 등을 싣고 한번 떠나면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마방들의 애환과 대소사를 책임져야 했던 아낙들의 눈물이 주제라고 했다. 2부는 대주설산, ‘설산과 마주보며 술을 마신다’는 뜻으로 소수민족 남성들이 척박한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도 정열적이고 낙천적인 생활상을 보여주었다. 3부는 고무제천으로 여강을 대표하는 소수 민족으로 하늘을 숭배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나시족의 제신의식과 남녀 간의 사랑을 주제로 하는 공연이었다. 4부는 운남성을 대표하는 10개의 소수민족이 육성으로 노래하며 춤추는 모습을, 5부는 이들이 종교처럼 믿는 옥룡설산에 대한 제사의식을, 6부는 이 공연을 보러 온 관람객과 함께 옥룡설산에게 소원을 비는 퍼포먼스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히말라야 남쪽 거대산맥 옥룡설산을 배경으로 3600m 세계 최고 높이의 공연장에 10개 소수 민족, 500여명의 일반 현지인 배우와 100필의 말이 등장하는 공연은 깊은 여운을 남겼다.


여강시내로 들어와 삼결살집 사장님의 배려로 삼겹살을 옴팡지게 상추에 싸서 된장찌개와 함께 배불리 먹었다. 상처 없는 영광은 없다더니 무사히 집에 돌아와 거울을 보니 4000여m 설산에 반사된 자외선이 선크림을 바르지 않은 내 얼굴의 껍질을 홀라당 벗겨 사방에 스크래치를 내놓았다. 이 또한 얼마나 큰 아름다움이고, 배움이 아닌가! 이번 차마고도/옥룡설산 트레킹은 참으로 멋지고 아름다운 여행으로 오래오래 내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필자 소개: 김희범(한국유지보수협동조합 이사장)- 40대 후반 대기업에서 명예퇴직. 전혀 다른 분야인 유지보수협동조합을 창업해 운영 중인 12년 차 기업인. 잃어버린 낭만과 꿈을 찾고 워라밸 균형 잡힌 삶을 위해 등산·독서·글쓰기 등의 취미와 도전을 즐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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