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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한 사람들을 제일 먼저 공격한 현실화 로드맵의 조세정의부자에게 더 걷어 빈자에게 나누어준다는 환상에서 출발한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은 ‘실거래 가격 추종 공시가격 작성 방법’과 결합해 화학작용을 일으키더니 빈곤한 사람들에게 즉시 타격을 입혔다. 다음 차례는 중산층이었다.고가주택은 대체 얼마부터인가. 자문하던 정책당국은 자의적으로 9억 원을 고가주택과 저가주택의 기준으로 잡았다. 이에 8억9000만 원짜리 집은 공시가격이 내려가고, 9억1000만 원짜리 집은 공시가격이 올라가면서 균형을 깨트렸다. 부자들만 증세한다는 핀셋증세는 누가 부자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납세자 형평성도 무너뜨렸다. 빈곤한 순서대로 타격하는 이런 방식이 조세정의에 부합할 리 없다.
얼마부터가 고가주택이며, 누가 부자인가?러시안룰렛 같은 ‘다음은 네 차례’ 종부세 게임도 그때쯤 시작됐다. 종부세 6억 원 기준은 9억 원이 되고 12억 원이 됐다. 그 기준이 불과 2~3년 사이에 바뀌었다. 서울 아파트 가격이 28번 부동산 정책 실패로 급상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준 상승보다 매매 가격 상승 속도가 더 빨랐다. 어제의 중산층이 갑자기 오늘은 종부세를 내는 부유층이 됐고 징벌적 과세 벌금 고지서를 받았다. 강남구 사람들의 세금폭탄에 고소해 하던 노원구 사람들은 자고 일어나 치솟은 아파트 가격에 느닷없이 부자증세의 대상이 됐다.누가 부자가 돼 종부세의 탄환을 맞을지는 운에 맡겨야 했던 시절이었다. 막상 손에 들어온 현금은 없는데, 세금은 대출을 해서라도 내야 하는 판이었으니 날벼락이라면 날벼락이고, 원치 않는 러시안룰렛 게임에 참여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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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에게 종부세를 물리는 가혹한 증세로드맵현실화율이 상승하면 공시가격도 상승한다. 시장이 침체해도 8억9000만 원짜리 집은 현실화율 로드맵 때문에 9억1000만 원이 되고 종부세의 대상이 된다. 중산층에게 종부세를 물리는 가혹한 현실화 로드맵은 그래서 증세로드맵인 것이다.그러니 이 로드맵은 멈추는 것이 맞다. 만약 이 로드맵 폐기를 부자 감세라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명칭을 정정해주어야 한다. 부자 감세가 아니라 중산층 감세라고 말이다.
중산층감세를 환영한다부자와 빈자를 갈라치기 하려는 정치적 목적에서 벗어나 공시제도를 이제는 제대로 개선할 기회가 왔다. 드디어 고르디우스의 매듭이 끊어진 것이다. 현실화율을 벗어던진 공시가격, 즉 주택산정가격과 토지감정평가가격을 직시할 때다. 거래가 빈번한 주택이라고 해서 공시가격에 실거래가격을 더 많이 반영하고 거래가 빈번하지 않다고 해서 덜 반영하는 지금의 방법을 바꿔야 한다.이를 위해서는 부동산가격공시에 관한 법률에 명시된 ‘적정가격’의 개념을 미국처럼 ‘시장가치’로 바꿔야 한다. 그리고 주택가격에 영향을 주는 특성들의 현장조사가 정확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전체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공시가격제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것은 단순히 제도개선의 의미만을 가지지 않는다. 이는 우리 사회가 선진화되는 길의 일보전진이다. 계속된 전진을 위해서는 동력이 확보돼야 한다. 공허하기 그지없는 부자 감세 논쟁에 휘말리지 말아야 한다. 현실화율 로드맵을 폐기하고 공시가격의 정확성, 적정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허리, 중산층을 보호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