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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 단장이 말하는 프로스포츠의 세계(3)] 내밀하게 이뤄지는 프로 선수 연봉 협상 

“대형 FA 계약은 구단주까지 보고(報告) 올라간다” 

연봉 산정 시스템은 구단마다 천차만별, 팀 성적 좋아져야 상승폭 커져
몸값 비싼 선수일수록 합의 도달 어려워, 비FA 다년계약도 점점 보편화


▎드라마 [스토브리그]의 백승수(오른쪽) 단장은 연봉 협상 방향성을 놓고 권경민(왼쪽) 구단주 대행과 대립하며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고액 FA 몸값은 구단주 승인 없이는 영입이 불가능한 사이즈로 커졌다. / 사진:SBS
프로구단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가 선수단 연봉 계약이다. 코칭스태프를 포함한 선수단 연봉은 구단 전체 예산 가운데 40~50% 수준을 차지한다. 대기업이 모기업인 구단들은 해마다 핵심성과지표(key performance indicator : kpi)를 도출한다. 여기서 팀 성적은 야구단의 경영 성과 가운데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그러나 체감적으로는 그 이상이다. 팀 성적이 마케팅, 비즈니스 등 모든 야구단 성과지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팀 성적이 잘 나오기 위해서는 선수단 전력을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아무리 명장으로 불리는 감독을 고액으로 데려온다고 해도 선수단 전력이 약하면 성적을 내기 어렵다. 야구는 선수가 하기 때문이다. 롯데가 한국시리즈 3회 우승을 경험한 명장 김태형 감독을 현역 감독 최고 대우로 영입했지만, 팀 성적이 전년과 비교해 부진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따라서 구단은 우수한 선수를 확보하면서 이들에게 적정한 연봉을 지급하기 위해 이를 뒷받침할 연봉산정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회사마다 각자 고유의 연봉 시스템을 보유하는 것처럼 프로 구단도 저마다 독자적인 연봉 산정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이를테면 삼성그룹 연봉 시스템이 다르고 하나금융그룹 연봉 시스템이 다르듯, LG 트윈스 연봉 시스템이 다르고 KIA 타이거즈 연봉 시스템이 다를 수밖에 없다. 출루율의 가치를 높게 보는 구단이라면 출루율에 가중치를 더 줄 수 있고, 타점의 가치를 높게 보면 타점에 가중치를 더 줄 수 있다.

대부분 구단은 경기 중 더그아웃에 상주하는 기록원이 선수들의 연봉 산정을 담당한다. 고과 항목이 100~200개 정도 있는데 80~90%는 경기 기록을 기반으로 전산화돼 자동적으로 산정된다. 나머지 부분은 더그아웃 기록원이 ‘정성적’으로 평가한다.

TV 중계를 볼 때 자주 잡히는, 경기 중 감독 옆에 있는 직원이 바로 더그아웃 기록원이다. 기록원은 선수들의 고과를 정성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매의 눈으로 더그아웃에서 경기를 관찰한다. 정성 평가는 기록만으로 반영되지 않는 공헌도 점수를 책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투수가 불펜에서 몸을 세 번 이상 풀게 되면 1경기에 출전한 것으로 고과 점수를 반영하기도 한다. 경기 전 일찍 출근해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열심히 하는 선수에게 팀워크 점수를 부여하기도 한다. 야수가 몸을 던져서 안타성 타구를 아웃으로 만들 경우 고과 점수에 반영되는 것은 당연하다.

선수들의 고과는 정규 시즌을 기준으로 산정된다. 프로야구의 경우, 정규 시즌이 144경기니까 144경기 동안 산출된 고과점수를 다 합산하고 여기에 팀 성적을 가중치로 곱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예를 들면 전년도 팀이 우승하면 25%, 준우승 20%, 3위 15%를 가중치로 곱하게 된다. 이에 따라 선수들은 개인 성적도 중요하지만 팀 성적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한다. 아무리 커리어 하이급 개인 성적을 달성했다고 해도 팀 성적이 하위권이면 연봉 인상 폭이 적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몰랐던 더그아웃 기록원의 ‘권한’


▎2021년 10월 정용진(왼쪽) SSG 랜더스 구단주는 당시 재활 중이던 투수 박종훈(오른쪽)과 문승원을 ‘용지니어스 키친’에 초대했다. 정 구단주의 노력으로 이 시점에 두 선수의 비FA 다년계약은 사실상 공감대를 형성했다. / 사진:정용진 인스타그램
구단은 다음 해 선수들의 연봉을 확정하기 전, 다년 계약(FA, 비FA 포함)을 체결한 선수를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을 대상으로 다음 해 재계약 대상자를 선정한다. 그리고 연봉 산정 시스템에 의한 고과 점수를 합산한다. 그런 뒤 단장, 운영팀장, 연봉 실무자가 참석하는 연봉 사정 위원회가 열린다. 여기에서 선수들의 연봉을 일부 조정하게 된다. 대략 3억원 이상의 고액 연봉 선수들은 연봉 산정 시스템으로는 높은 연봉 금액이 도출되지 않기 때문에 연봉 사정위원회에서 타 구단 선수들과 비교해 조정을 하게 된다. 3억원이 넘는 선수들은 대부분 1~2년 이내에 자유계약선수(Free Agent :FA)가 되기 때문에 고과 점수 이상으로 FA 프리미엄을 반영하기도 한다.

선수들의 연봉 금액이 모두 확정되면, 연봉 실무자는 비활동기간이 시작되는 12월 1일 이후 선수 또는 선수대리인(agent)을 만나서 연봉 협상을 한다. 프로야구 선수들은 계약 기간이 2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이고, 나머지 기간은 비활동기간으로서 구단이 주관하는 단체 활동을 하지 않는다.

1군 경기를 뛰지 못한 선수(퓨처스 선수)들의 경우, 구단에서 방출되지 않고 재계약 대상으로 분류되더라도 다음 해 연봉이 동결 또는 삭감된다. 연봉 고과가 1군 경기 기록 기반이라 이들의 고과 점수는 0점에 가깝기 때문이다. 일부 구단의 경우, 퓨처스 선수들의 동기 부여 차원에서 퓨처스 연봉 시스템을 별도로 운영하기도 한다. 이 경우는 퓨처스리그 기록을 기반으로 연봉이 산정된다. 연봉 인상 폭은 적게는 100만원, 많으면 500만원 정도다. 퓨처스 선수로 분류되는 선수들은 본인들의 위치를 잘 알기 때문에 한 번의 만남에서 계약서에 서명한다. 그러다 퓨처스 연봉 시스템으로 단돈 100만원이라도 인상되면 무척 고마워한다.

퓨처스 선수가 아닌 1군 선수들의 경우는 한 번의 만남에서 계약하는 케이스가 드물다. FA가 아닌 일반 연봉 선수들은 본인들이 구단과 연봉 협상을 하기도 하지만 선수 대리인이 참석하기도 한다. 해가 지날수록 일반 연봉 선수들의 협상도 선수 대리인이 참석하는 비중이 늘고 있다.

FA·장기계약 아닌 한, 연봉 협상이 아니라 통보


▎SK와 한화 시절부터 라이벌이었던 김광현(오른쪽)과 류현진은 메이저리그에서 컴백하면서도 몸값으로 자존심을 겨뤘다. 2022년 김광현이 4년 총액 151억원에 SSG로 복귀하자 2024년 류현진은 8년 총액 170억원에 한화로 돌아왔다.
1군 선수들이 한 번의 만남에서 계약하지는 않지만, FA가 도입된 2000년대 이전과 비교하면 연봉 협상테이블이 부드러운 편이다. 2000년대 이전에는 선수가 구단 제시액에 불만을 갖고 책상을 뒤엎는 경우도 있었고, 구단 담당자와 선수가 음주 계약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FA가 도입되면서 선수들이 구단 제시액이 만족스럽지 않아도 ‘FA 때 보자’는 입장이 늘어났다.

구단은 선수들에게 제시하는 최초 금액에서 변화가 없다. 특정 선수의 연봉 제시액을 바꿔줄 경우 이미 계약한 선수들은 불만을 갖게 되고 계약을 아직 하지 않은 선수들은 계약을 미루게 된다. 과거에는 구단 제시액의 변화를 주기도 했지만 그 결과 부작용이 더 많아 지금은 모든 구단이 FA가 아닌 일반 연봉의 경우 구단 제시액에서 변화를 주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선수들은 연봉 ‘협상’이 아니라 연봉 ‘통보’라고 볼멘소리를 한다.

구단과 선수 간의 연봉 협상이 끝내 합의점을 찾지 못할 경우, 3년 차 이상 선수나 구단이 한국야구위원회(KBO)에 연봉 중재를 신청할 수 있다. 연봉 중재가 구단과 선수 간의 합의 도출이 안 될 경우에 KBO가 중재하는 합리적인 제도이기는 하나 중간 절충이 없고 승자와 패자로 갈리다 보니 구단과 선수 모두 꺼리는 경향이 있다. 메이저리그 연봉 조정처럼 중간 절충이 필요해 보이지만 KBO가 외부에서 위촉하는 연봉중재위원들이 외부인들이라 단기간에 해당 구단의 연봉 시스템을 완전히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선수 연봉 계약의 백미는 사실 FA다. FA가 선수 총연봉에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고 현재는 60% 수준(외국인 선수 제외)에 가깝다. 그러다 보니 FA 계약은 구단 운영의 방향성과 상호 작용을 이루고 있고, 고액의 FA 계약의 성공과 실패는 야구단 경영 성과에 직결된다. 2014년 SK 와이번스 구단주로 부임한 최창원 SK 부회장은 구단의 FA 정책을 직접 챙겼고 필자가 실무 팀장을 담당했는데, 그만큼 FA가 야구단 경영에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일반 연봉 선수 계약은 대표이사가 최종적으로 결정하지만 FA 계약은 금액이 크다 보니 구단주 보고를 해야 한다.

일반 연봉 계약이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데에 반해 FA 계약은 정말 치열하다. 선수 입장에서는 본인의 인생이 걸린 계약이고 구단 입장에서는 경영 성과에 직결되는 중대한 사안이다. 대부분 선수들은 대리인을 선임하고 대리인이 협상을 대리한다. 필자는 FA 계약 및 협상을 수차례 담당했는데 단 한 번도 쉬운적이 없었다. 필자는 우스갯소리로 “FA를 통해 선수는 연봉을 받고 대리인은 수수료를 받지만 구단 담당자는 스트레스만 받는다”고 말하곤 했다. 담당자로서 피가 마르고 잠도 안 오지만 비난은 있어도 보상은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폐지됐지만 예전에는 원소속구단 우선협상 기간이 있었다. 2014년 FA 김강민(현 한화)은 우선협상 기간 마지막 날 구단 사무실에서 못 나가게 하고 10시간에 가까운 마라톤협상 끝에 계약서에 서명을 받았다. 같은 해 FA 조동화(현 SSG 코치)는 호프집에서 생맥주를 마시면서 계약에 합의했다. 2015년 FA 채병용(전 SSG 코치)은 우선협상기간 마지막 날 자정이 넘어가면서 KBO에 양해를 구하고 계약서를 넘겼다. 2016년 FA 김광현(현 SSG)은 팔꿈치 수술을 앞두고 있었지만 선수의 자존심을 고려해 수술을 일절 언급하지 않고 협상을 진행하기도 했다. 2018년 FA 이재원(현 한화)은 대리인과 열 번의 만남 끝에 무옵션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타 구단이 이재원 선수 영입에 뛰어들 움직임이 포착돼 많은 금액을 써야 했다.

2021년부터 비FA 다년계약이 허용되자 FA 자격을 취득하지 않아도 다년계약이 가능해졌다. 필자는 다음 해부터 샐러리캡이 도입되는 점을 고려해 내부 전력을 지키는 차원에서 예비 FA 선수들을 다년계약으로 확보했다. 이는 국내 첫 사례였다. 이를 통해 다음 해 SSG 랜더스가 KBO리그 유일의 ‘와이어 투 와이어 통합 우승’을 달성하는 밑거름이 됐다. 비FA 다년계약 역시 FA처럼 치열한 협상 끝에 결론에 도달한다. FA와 다른 점은 선수가 자유계약 신분이 아니다 보니 경쟁 구단이 없어 소속 구단 입장에서는 경쟁으로 인한 몸값 폭등을 피할 수 있다.

SSG 우승 밑거름 된 선제적 비FA 다년계약

일반 직장인들도 연봉이 본인들의 가치 척도인 것처럼 프로 선수 역시 연봉은 본인들의 가치 척도이자 자존심이다. 우수한 직장인들이 보다 나은 대우 조건에 따라 이직을 하듯이 프로 선수 역시 FA가 되면 조건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예전에는 프로 선수들의 고액 연봉이 사회적으로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분위기 같지 않다. 프로 선수들도 연예인처럼 자신의 가치를 연봉으로 인정받을 만한 프로페셔널이다. 다만 연봉만큼 성적을 내지 못하면 팬들의 매서운 질타를 받게 된다. 프로는 결과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프로 선수들의 연봉은 스토브리그 기간 동안 팬들과 일반인들에게 또 다른 재미 요소가 되고 있다. FA, 비FA 다년계약으로 프로 선수 연봉 형태가 진화하고 있는 가운데, 앞으로도 새롭고 보다 세밀한 계약 형태가 나올 공간은 충분하다.

※ 류선규 - SK 와이번스의 마지막 단장이자 SSG 랜더스의 초대 단장을 역임했다. 26년간 프로야구단(LG 트윈스·SK 와이번스·SSG 랜더스) 프런트로 근무하며 홍보·마케팅·운영·육성·전략기획 등 거의 모든 부서를 경험했다. 단장으로서 우승 1회(2022년 SSG 와이어 투 와이어 통합 우승)를 포함해 총 다섯 번의 우승을 경험했다.

202406호 (2024.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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