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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식 연재소설] ‘디지털 감성작가’ 김동식 단편소설(3) 

가장 공평한 복지 


▎매일 아침 5시, AI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정부방송을 전 국민이 시청하며 매일 달라지는 암구호용 문장을 확인해야 한다. / 사진:getty images bank
AI 특이점이 지나간 이 시대, 조금 기묘한 나라가 있었다. 이 나라의 국민은 매일 아침 똑같은 행동을 했다. 5시부터 시작되는 정부 방송을 시청하는 일이다. AI로 만든 정부 소속 아나운서의 미소는 항상 똑같았다.

“안녕하십니까? 국민 여러분. 오늘도 좋은 아침입니다. 자 그러면, 행복한 오늘 하루를 위한 암구호를 발표하겠습니다. 밝은 곳에서 잘 봐주시길 바랍니다.”

아나운서의 발언이 끝나면 매일 달라지는 ‘암구호용 문장’이 등장한다. 가령 오늘은 이러했다.

[ 호랑이가 토끼 고기를 먹으면 OOO이(가) 부러워한다 ]

암구호를 확인한 국민은 ‘OOO’에 무엇이 들어갈지를 떠올려야 하고,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을 내뱉어야 했다. 정답은 없다. 그냥 생각나는 아무거나를 떠올리고, 그것이 그날 하루 동안 사용할 본인의 암구호가 되는 거다. 가령, 이곳 아파트의 한 가정을 들여다보면 이러했다. 엄마는 ‘호랑이’ 아빠는 ‘고양이’ 딸은 ‘거북이’를 말했다.

“아으! 왜 난 이상하게 거북이를 떠올렸지? 다른거로 바꿀까?”

“안 되지. 가장 처음에 떠오른 것만 효과가 있잖니? 거짓말 뇌파가 다 잡힌단다.”

“거북이 좋은 암구호일지도?”

딸은 입을 삐죽 내밀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교복을 입고 등굣길에 나섰다. 계획적으로 잘 정비된 도시에는 자가용이 따로 없었다. 자율 주행으로 운영되는 ‘정부 택시’가 어디든 서 있다. 딸은 택시 앞문을 열고 암구호를 외쳤다.

“거북이.”

자율 주행 AI가 딸의 음성을 인식했고, 빠르게 판단 결과를 내놓았다.

[ 거북이. C등급 이동 수단 대상자입니다. 가까운 정부 자전거를 이용하세요.]

“으악! 이럴 줄 알았어!”

울상이 된 딸은 허탈하게 택시 문을 닫고 자전거를 타러 갔다. 반면, 출근길에 나선 아빠와 엄마는 달랐다.

[호랑이. A등급 이동 수단 대상자입니다. 환영합니다. 빠르게 목적지로 모셔다드리겠습니다.]

[고양이. A등급 이동 수단 대상자입니다. 환영합니다. 빠르게 목적지로 모셔다드리겠습니다.]

부부는 오늘 하루 동안은 정부 택시를 마음껏 이용할 수 있었다. 그게 이 나라의 교통 복지였다. 학교나 회사에 도착해서도 암구호는 사용되었다. 교문 앞에 도착한 딸은 긴장한 얼굴로 암구호를 말했다.

“거북이.”

그러자 교문에 설치된 AI가 딸의 음성을 인식했고, 빠르게 판단 결과를 내놓았다.

[ 거북이. A등급 교육 수단 대상자입니다. A등급 건물로 이동하세요. ]

“아싸! 이게 얼마 만이야?”

A등급이 된 딸은 들어가는 입구부터가 달랐다. 자율 주행 카트가 A등급 학생들을 최첨단 건물로 태워주었는데, 편하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나오는 교실은 무려 개인실이다. 푹신한 침대형 소파와 커다란 스크린, 간단한 음료와 간식이 든 냉장고, 기분 전환용 장난감들까지. 딸은 몹시 만족했다.

“교통이 C라 별로일 줄 알았는데 교육이 A네. 거북이 좋은 암구호일지도?”

딸은 하굣길에 또 기대했다. 정부 자전거를 타고 번화가로 나간 딸은 ‘정부 쇼핑센터’ 건물로 가서 암구호를 말했다.

“거북이!”

[ 거북이. D등급 쇼핑 지원 대상자입니다. D등급 카드를 받으세요.]

“으익! 그럼 그렇지.”

한숨을 내쉬었다. D등급 카드는 5% 할인 혜택에 불과했다. 만약 A등급이었다면? 100만 원 한도로 80% 할인이다. 파격적인 할인이라 그런지, 사실 쇼핑 등급은 A등급이 잘 안 나왔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매일 꼭 정부 쇼핑센터를 들러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딸은 별수 없이 눈요기만 즐기다가 부모님의 연락을 받았다.

“딸. 어디야? 오늘은 저녁을 좀 일찍 먹자. 정부 식당가로 올래?”

“진짜? 벌써 퇴근했어?”

“응. 엄마랑 아빠랑 둘 다 회사에서 노동 지원 B등급 떠서 3시 퇴근이야. 4시쯤 볼까?”

딸은 정부 식당가로 가서 부모님과 합류했다. 사실, 이 나라의 국민은 대부분 저녁을 외식했다. 정부 식당가의 암구호가 있었으니까 말이다.

[ 거북이. B등급 식사 지원 대상자입니다. B등급 메뉴를 선택해주세요. ]

[ 호랑이. A등급 식사 지원 대상자입니다. A등급 메뉴를 선택해주세요. ]

[ 고양이. C등급 식사 지원 대상자입니다. C등급 메뉴를 선택해주세요. ]

가장 공평한 복지는 ‘무작위 복지’

등급별로 지원받는 무료 메뉴는 달라도, 가족이면 그냥 같이 모아서 먹어도 됐으니 외식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사실 이 나라는 혼자보다 대가족이 유리했다. 과거 핵가족화 흐름은 등급별 복지정책이 탄생하면서부터 대가족 체계로 바뀌었다. 식구가 많을수록 유리한 점이 많았으니까.

“ABC 다양하게 나왔네?”

“저번처럼 CDD가 아니라서 다행이네. 그러면 메뉴를 골라볼까?”

“일단 A등급은 푸팟뽕커리 먹자! 양 곱빼기로 시켜서!”

“커리? 며칠 만에 A등급인데, 소고기 구워 먹는 건 별로야?”

가족은 토론을 통해 훌륭한 저녁 식탁을 차렸다. 식사 중에 딸은 오늘 받은 교육 복지 A등급을 자랑했고, 부모님은 기뻐하며 뭘 배웠느냐고 물었다. A등급 교육은 세계적인 석학들이 수업해주니까 말이다.

“응! 전 세계에서 가장 공평한 복지를 실현한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라고 배웠어.”

기술 혁명으로 인해 넘쳐흐르는 복지가 가능해졌을 때, 사람들은 궁극의 공평을 추구했다. 선별적 복지나 보편적 복지는 완벽하게 공평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그렇다면 가장 공평한 복지는 무엇인가? 그 답을 내린 것이 바로 ‘무작위 복지’였다. 사람들은 운명에 맡길 때야 공평하다고 받아들였던 거다. 처음 정책 시행 때는 저항을 예상했지만, 의외로 괜찮았다. 사람들은 운을 가장 공평하다고 여겼고, 암구호를 선택하는 게 자신이라는 점에서 만족했다. 비록 그 자유의지란 게 얼마든지 유도가 가능한 착각이란 것을 모르긴 했지만 말이다. 특이하게도 이 국가의 복지 예산은 매년 평이했다. 운에 맡긴 무작위 복지임에도 그렇다는 것은 분명 이상한 일이다. 누군가는 이것이 정부가 국민의 무의식을 조종한 증거라고 말했지만, 사람들은 그저 음모론으로 치부했다. 암구호를 결정하는 게 나 자신인데 무슨 조종이냐고 말이다.

특히 국민이 의문을 품지 못하게 하는 결정적 존재가 있었으니, S등급이다. 낮은 확률로 등장하는 S등급의 미친 혜택은 사람들의 도파민을 폭발시키기에 충분했으니, 이 도박 시스템에 중독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이 나라의 국민은 이 기묘한 복지 시스템을 좋아하고 자랑스러워했다. 어떤 등급을 받게 되더라도 공평했다고 순순히 받아들이면서 말이다.

기묘한 복지 시스템이 만든 풍경

“밥 먹고도 시간이 남는데, 문화생활 등급도 확인해볼까? 혹시 S등급 뜨면 해외여행 바로 출발해야지.”

아쉽게도 S등급은 안 떴지만, 그래도 세 가족은 알차게 뮤지컬까지 즐긴 뒤 밤늦게 귀가했다. 아파트에 도착한 세 사람은 암구호를 말했다.

[ 거북이. A등급 거주 지원 대상자입니다. 10포인트를 적립합니다. ]

“오! 거북이로 점수 많이 올랐다! 이렇게만 모으면 우리 다음에는 펜트하우스 갈 수 있는 거 아니야?”

정부 지원 주택은 2년 단위로 이사를 해야 했는데, 2년 동안 적립한 포인트로 이사 갈 곳을 정할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가족이 많을수록 유리한 제도였다. 그래서 이들 가족은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를 굳이 집에 모시고 살았다. 방 안에 틀어박혀서 거의 움직이지도 못하지만, 하루 두 번 암구호는 말할 수 있었으니까. 아파트 포인트 적립할 때 한 번, 그리고 요양 지원 등급 받을 때 한 번. 노인은 쓸모가 있었다.

“아버님. 저희 왔어요. 저녁은 아주머니가 차려주셨죠? 오늘 A등급 떴으니까 두 분이나 와서 돌봐주셨을 거잖아요.”

“으응… 그래…”

세 가족은 예의상 할아버지 방에 얼굴을 한번 비춘 뒤, 곧장 거실로 나와 앉아 각자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았다. 아직 암구호를 사용할 수 있는 곳들은 남아 있었으니까. 온종일 암구호로 살아온 세 가족은 내일의 암구호를 기대하며 그렇게 하루를 마감했다. 전국의 모든 가정이 그러했다. 이것이 이 나라의 기묘한 복지 시스템이 만들어낸 풍경이었다.

※ 김동식 - 1985년 성남 출생. 부산 영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2006년부터 서울 성수동 주물 공장에서 10년 넘게 근무했다. 2016년부터 인터넷에 소설을 올리기 시작했고, 2017년 12월 27일 초단편 소설집 [회색인간]을 내며 전업 작가로 활동 중이다. 2018년 제13회 세상을 밝게 만든 사람들(사회 분야)을 수상했고, 강연 활동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202406호 (2024.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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