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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 UP] 전통 한지로 만드는 무형유산 ‘지화’ 

1000년 역사의 종이꽃, 석용 스님의 손끝에서 피다 

최영재 기자
한지를 천연 염료로 염색한 후 접고 자르고 붙이고 엮는 고된 작업
굳은살과 상처로 단단해진 손… 감로탱화 등 연구해 잃어버린 15종 복원


▎드라마 [역적]에 소품으로 사용된 꽃상여로, 지난달 열린 지화 전시회 ‘꽃길 따라 생과 사’에서의 전시를 위해 석용 스님이 마무리 손질 중이다.
두꺼운 손이 잘 마른 한지를 지난다. 그렇게 몇 번이나 접고 펴기를 반복하자 한 장의 종이는 서서히 꽃의 윤곽을 닮아 있었다. 같은 자리에서 한참 지화를 접던 석용 스님은 “손가락이 끊어질 듯한 고통을 참아내야만 피워낼 수 있는 꽃이 지화”라며 굳은살과 상처로 뒤덮여 단단해진 손을 보여주었다. 지화는 전통 한지로 만든 전통 공예로, 현재 경기도 무형문화재 63호 지화장 석용 스님이 불교 지화의 명맥을 잇고 있다.

지화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해서는 꼬박 반나절에서 하루의 인내가 필요하다. 그 시작은 먼저 한지에 자연스러운 색을 입히는 작업이다. 염료의 온도를 60도로 유지하고, 화려하지만 정제된 색감을 위해 한지의 끝을 살짝 염료에 담가 서서히 색이 스며들도록 한다. 그렇게 한지를 염료에 담그고 색을 들여 말리기가 한참이나 이어졌다. 그다음에는 끈과 대나무를 사용해 한지에 주름을 잡아 꽃잎을 만든다. 그렇게 만든 20장의 꽃잎의 끝을 한 땀 한 땀 실로 꿰매 감고 매듭지어 꽃잎 만들기를 반복해야 비로소 밑 작업이 끝난다. 이후 대나무 살에 모양을 잡아가면서 밀죽으로 한 잎 한 잎 붙여 나가자 어느새 화려한 연꽃이 피어났다. 석용 스님은 “지화 전시를 하면 관객이 투박한 손으로 아름다운 지화를 펴내는 것에 놀란다”며 완성된 종이 연꽃을 손 위에 올려 보여 주었다. 한 송이 지화를 완성하기까지, 그 꽃을 피우기까지 수백 번의 손길이 닿았다. 스님은 완성된 연꽃을 보며 “이게 곧 성불이다”며 합장했다.

살생을 하지 않는 불교에서는 꽃을 꺾는 것도 금기시한다. 그래서 불교 의례에는 여전히 지화를 사용한다. 불교 의례에 지화를 사용하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는데, 부처의 세계는 다채로운 꽃으로 화려하게 장엄(장식)한 곳이라 믿기 때문이다. 불교 지화는 작약, 모란, 연꽃, 국화, 불두화, 수국, 동백 등 56종으로 다양했지만 12종만이 전수되었고, 조선 시대 감로탱화 등을 통해 석용 스님이 15종을 복원했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의 지리적 특성상 예로부터 지화는 사찰뿐 아니라 궁중이나 민간에서도 널리 쓰이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민간의 지화는 혼례, 회혼례, 농악, 상여 등 우리 삶의 중요한 순간에 사용되었으나, 지금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지화는 만들기도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다, 요즘은 사시사철 원하는 때에 생화를 쉽게 구할 수 있게 된 까닭이다. 지화는 이제 불교 의례에서만 간신히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석용 스님은 지화와 함께해온 우리의 삶을 알리고자 지난달 한국문화재재단이 운영하는 국가무형문화재전수교육관에서 ‘꽃길 따라 생과 사’를 주제로 지화 전시회를 열었다. 돌잔치부터 결혼식, 회갑, 죽음 이후까지 이르는 우리 삶의 여정을 지화로 표현한 전시로, 그중에서도 전시장 한가운데 자리한 흰 상여는 관객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드라마 [역적]의 소품으로도 사용한 꽃상여는 석용 스님이 전승자들과 함께 1년간 준비한 작품이다. 한편에는 고인의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싶은 유족의 마음을 담아 지화로 꾸민 관도 두었다. 지화를 사용하던 우리의 전통과 생화로 관을 장식하는 현대의 모습이 접목되어 보였다. “지화는 불교 의례가 끝나면 태워 없앴다. 지화로 꾸민 관이야말로 화장에 더 적합하다”고 경화 스님이 말했다.

석용 스님은 “1000년 전통의 지화가 8명의 전승자를 통해서 이어져 나갈 수 있어서 뿌듯하다”며 “사라진 지화를 복원하고, 현대에서도 그 의미가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경화 스님이 불두화와 달리아, 모란으로 장식한 꽃꽂이를 선보이고 있다.



▎경기도 무형문화재 63호 지화장 석용 스님이 그의 스승인 지광 스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지화 도구로, 100년 넘게 이어진 것이다.



▎경화 스님(왼쪽)과 경원 스님이 지화 꽃잎을 정리하고 있다.



▎‘쪽’으로 물들인 한지를 물에 씻고 말려야 파란색에 가까운 쪽빛의 한지가 완성된다.



▎석용 스님이 치자로 노랗게 물들인 지화 꽃잎을 실로 엮고 있다.



▎경기도 무형문화재 63호 지화장 석용 스님이 불교 지화의 명맥을 잇고 있다.
- 사진·글 최영재 기자 choi.yeongjae@joongang.co.kr

202406호 (2024.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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