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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호의 일본 직설(直), 요설(妖) 그리고 곡설(曲説)(11)] 싸구려 나라?… ‘BQ구르메’로 본 일본의 파워 

A급 아닌 B급 음식에도 스토리와 철학 담겨 

편견은 금물… 지방 입맛 담고 글로벌 요리를 일본식으로 재창조
저렴한 가격에도 훌륭한 플레이팅… 플라스틱 식기 찾기 어려워


▎도쿄는 일본 BQ구르메 총본부다. 도쿄 한복판 긴자 지역이지만, 일본 열도 전역에서 창조된 로컬 BQ구르메를 199엔짜리 생맥주와 함께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다. / 사진:유민호
일본발 최고 인기 드라마라고 하면 ‘고독한 미식가(孤独のグルメ)’부터 떠오른다. 개인 수입상인 주인공이 전국을 돌며 허기진 배를 채워가는 식이다. 일본뿐 아니라 해외 출장을 이유로 한국이나 유럽 현지 음식점에도 들러 고독한 미식을 즐긴다. 원래 1994년부터 만화로 연재된 작품이다. 이후 TV 시리즈로 제작돼 한국에 넘어왔다. 일본 인기 드라마 상당 부분은 만화를 각색한 것이다. 현재 한국을 포함해 세계 10여 개 나라에서 방영되고 있다고 한다. 한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매력을 느낄 것이다. 한국 드라마에서는 보기 드문 자신과의 대화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항상 혼자 식사를 한다. 출장차 들른 지역에서 만난, 한번도 간 적 없는 식당이 주된 무대다. 미식 잡지나 음식 전문가 평가와 무관한, 현지에서 우연히 접한 식당이 고독한 미식가의 관심 영역이다. 유명한 식당이 아닌 중국 음식을 먹고 싶다고 생각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중식당에서 이뤄지는 스토리다. 역사적 의미를 가진 식당이라든지 전에 맛있게 먹었던 집에 다시 들르는 식의 회고조 방송은 더더욱 아니다.

‘고독한 미식가’를 함축하는 BQ구르메

시청자라면 모두 느끼겠지만 주인공의 시식 장면이 압권이다. 일단 너무 맛있게 먹는다. 음식점 선택과 메뉴 선정에도 정성이 들어가 있지만, 주인공의 식사 모습이 너무도 진지하다. 볼품없는 싸구려 요리라도 입에 대는 순간 곧바로 천하일미로 돌변한다. 독백을 통해 음식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지만, 필자 눈에는 마치 음식 하나하나에 기도를 하면서 혼을 불어넣는 듯하다. 프로그램 제목이 고독한 미식가라고 하지만, 사실 음식을 즐기는 모습을 보면 결코 고독하지 않다. 거꾸로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인간으로 느껴진다. 혼자 식사를 한다는 점에서 ‘고독한’이란 수식어가 붙지만, 사실 인간의 진짜 자유는 혼자 있을 때 절감할 수 있다. 집단 창작·사고 논리도 중요하지만, 내용으로 들어가면 피라미드 꼭대기 생각을 하나로 모으기 위한 강권·위선 논리로 변하기 십상이다. 서방 개인주의의 출발이 그러하듯 신(神)·국가·민족이 아닌 ‘깨인 개인으로서의 인간’이 자유의 기본 단위다. 그 같은 생각에 따른 결과인지 모르겠지만, 대만에서는 ‘고독한 미식가’를 대신해 ‘미식불고단(美食不孤單)’이란 타이틀로 방영하고 있다고 한다. ‘맛있는 음식이 있다면 결코 고독하지 않다’는 의미다. 필자가 타이틀을 바꾼다면 ‘혼자이기에 한층 더 자유롭고 정겨운 미식’으로 하고 싶다.

고독한 미식가는 21세기 모바일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모바일은 자유인 동시에 고독이다. 그러나 고독한 미식가는 이념으로서의 자유만이 아닌, 생활로서의 자유도 선보인다. 방송에 등장하는 수많은 음식이 갖는 공통분모를 보자.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빠르고 간단하고 싼 음식이 주류다. 가격으로 치자면 하나에 1000엔 이하다. 일본 요리에 익숙하다면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음식 대부분이 서민용 음식이란 것을 알 것이다. 통상 일본에서 ‘BQ구르메(BQグルメ)’로 불리는 음식이 주인공의 메뉴다. A급이 아닌 B급, 2류 음식이 BQ구르메다. 고급 재료가 아닌 중저가 싸구려 채소·육류·곡류를 통한 음식이다. 삼각김밥·카레라이스·규동(牛丼)이 전형적 본보기지만, 정작 BQ구르메란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85년이다. 일본 버블이 최고조에 달하던 시기에 등장한 셈이다. 고독한 미식가의 주된 무대는 레스토랑이 아닌 식당이다. 좀 심하게 얘기하면 밥집이다. 거품이나 장식을 뺀, 음식 하나에만 주목하는 식의 공간이다. 빠르고 간단하고 싼 음식이 고독한 미식가의 주된 관심사다. BQ구르메는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음식이기도 하다.

최근 5년 만에 한국에 잠시 들렀다. 여러 가지 변화가 있지만, 음식과 관련해 깜짝 놀란 것이 하나 있다. 일본 음식을 파는 식당이 엄청 늘었다. 아예 간판부터 일본어로 만들어 영업을 하는 곳도 적지 않다. 글로벌 시대에 접할 당연한 모습이지만, 가격을 보면 황당하다. 최하 10만원짜리 오마카세(オマカセ) 요리에 관한 소식은 들었지만, 골목길 일본 식당 메뉴를 봐도 최소한 도쿄 가격의 두 배 이상이다. 800엔 정도 돈가스가 무려 2만원대다. 양이 많기는 하지만, 너무 비싸다. 메뉴 대부분이 BQ구르메인데도 가격을 보면 ‘AQ구르메’로 느껴진다. 한국에서 먹는 BQ구르메는 된장국이나 비빕밥 같은 토착 음식 가격의 배를 넘어선 특별 외식으로 변신해 있다. 귤이 바다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탱자라고 해도 싸고 맛있으면 그만이다. 귤도 아닌 탱자인데도 귤보다 더 비싸다.

지난 4월 일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수가 3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지난해 1년간 방일 관광객 수는 2500만 명 정도다. 올해는 3000만 명을 넘길 전망이다. 지난해 일본 관광 흑자 규모가 약 30조원이었다고 한다. 대략 하루에 1000억원 정도 일본 열도에 뿌려진 셈이다. 방일 여행객 폭증은 엔저(円低)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한국 신문·방송은 ‘싸구려 일본’이란 식의 보도를 연일 흘리고 있다. 글을 쓰는 순간 도쿄에 머물고 있다. 현재 일본은 분명히 싸다. 그러나 엔저가 사라진다고 해도 방일 관광 행렬이 줄지는 않을 것이다. 볼 것도 많지만, 안전하고 친절하며 물건도 좋기 때문이다. 싸다는 것은 일본이 가진 수많은 매력 중 하나에 불과하다. 마음에 든다면 비싸도 상관없다. 싸구려 일본이라고 경시하기보다는 왜 외국인의 관광 행렬이 끊이지 않는지부터 살펴야 할 것이다.

‘엔고’ 와도 관광객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


▎일본에는 제한된 시간에 마음껏 먹고 마실 수 있는 식당이 곳곳에 즐비하다. 아무리 비싸도 5000엔 정도면 음식과 술 전부 가능하다. 메뉴 대부분은 BQ구르메 백화점에 해당된다. / 사진:유민호
한국인 대부분이 그러하듯 미식은 일본 관광 최고 목적 중 하나다. 필자 주변 장년 세대에게서 자주 목격했지만 시골 료칸(旅館)에서 즐기는 아침·저녁 향토 요리에 대한 관심이 엄청 높다. BQ구르메 정 반대편에 선 비싼 음식인데도 가서 즐기고 싶은 최상위 리스트 중 하나가 료칸 식사다. 한·일 왕복 비행기를 타면서 확인했지만 방일 한국인 대부분이 2030세대다. 길거리 음식을 즐기고 익숙하게 받아들일 세대다. 이들에게는 료칸이 아닌 BQ구르메가 대세다. 도쿄에서 보면 라멘은 기본이고 덴푸라·오므라이스·오코노미야키(お好み焼き) 전문점에 포진한 한국 2030세대가 즐비하다. 모바일 시대 상식이지만 미쉐린(미슐랭) 가이드북 같은 음식 전문 평가서는 ‘꼰대들의 추억’으로 전락했다. SNS·유튜브에 실린 인기 식당이 100년 전통 미슐랭 가이드북을 압도한다. 아사쿠사(浅草) 주변을 지나는데 히잡을 두른 이슬람 신자들의 긴 행렬이 눈에 띈다. 식당 메뉴와 가격을 보니 전형적 BQ구르메다. 바로 옆 찻집 주인에게 행렬 이유를 물었다. “일본인이 경영하는 할랄 음식점이기 때문이다. 개장한 지 3개월도 안 된 식당인데도 손님으로 터져 나간다. 전부 모바일을 통한 입소문 덕분이다. 이슬람 신자가 아닌 일본 요리사가 만든 할랄 BQ구르메에 대한 외국인의 평가가 훨씬 더 높다.” 할랄 행렬을 보면 한국식 불고기집보다 일본식 야키니쿠(焼肉) 식당에 몰리는 한국인의 심리를 이해할 듯하다.

2024년 현재 일본에서 팔리는 음식 대부분은 BQ구르메 영역에 들어간다. 가정집에서 만든 정성이 담뿍 담긴 음식처럼 비치지만, 내막으로 들어가면 BQ구르메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일본은 음식 냉동·냉장 기술 선진국이다. 채소·육류·생선을 가장 신선한 상태로 장거리 이동할 수 있다. 음식 종류에 따라 냉동·냉장 기술이 전부 다르다. 거리·시간·습도에 맞춘 음식 보관 기술이 세계 최고다. 냉동·냉장과 무관한 현지의 신선한 음식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외국에서 수입한 재료가 대부분이다. 음식점에서 포장을 뜯는 순간 곧바로 요리에 들어가 먹을 수 있다. 전 세계를 대표하는 BQ구르메의 대명사는 맥도날드 햄버거다. 고기·채소·토마토·빵·소스로 버무려진 빠르고 간단하며 싼 음식의 상징이다. 한국이라면 인스턴트 라면 정도가 BQ구르메 범주에 들어간다. 일본의 BQ구르메는 전 세계 어떤 나라보다도 질적·양적으로 풍부하고, 맛도 좋고 가격도 싸다. 21세기 좋은 음식의 조건인 칼로리·염분·인공감미료라는 측면에서 봐도 그 어떤 나라보다도 우월하다. 음식에 따라 다르지만 같은 양을 기준으로 미국 BQ구르메가 일본보다 두 배 이상 칼로리가 높고 유해하다. 물론 가격도 최하 배 이상 비싸다.

21세기 BQ구르메에 열광하는 서방 선진국


▎전 세계 요리가 일본에 몰리는 증거는 서점에 가보면 알 수 있다. 아시아의 경우 중국, 대만, 부탄, 라오스, 캄보디아, 네팔 로컬 푸드에 대한 책과 관련 역사에 대한 책이 넘친다. / 사진:유민호
필자가 전 세계 여행 중 목격했지만, 21세기 들어 서방 선진국 대부분이 BQ구르메에 열광하고 있다. 뉴욕, 파리, 로마, 빈, 마드리드, 런던, 베를린 어디에 가도 일본 BQ구르메 식당이 들어서 있다. 외국 음식점으로 치면 한국, 중국, 베트남, 태국, 인도, 중동 요리점도 적지 않지만 대세는 일본 BQ구르메다. 손님은 현지 청년만이 아닌 장년층, 심지어 실버 세대에 걸쳐 있다. 가격을 보면 현지 음식에 비해 비싸지 않다. 주기적으로 등장하지만, 한국은 비빕밥이나 인스턴트 라면을 통한 이른바 K푸드 확산에 주력하고 있다. 최근에는 냉동 김밥을 K푸드 리스트에 추가하면서 기세를 높이고 있다. 한국 보도만 보면 전 세계가 K푸드에 빠진 듯하다. 과연 그럴까? 음식조차도 국가·민족 차원에서 평가하는 것이 K푸드의 출발점일지 모르겠다. 일본은 어떨까? 과연 어떻게 해 일본 BQ구르메가 서방 입맛을 사로잡게 됐을까? 싸구려 BQ구르메가 21세기 첨단 음식에 올라선 이유를 이하 세 가지 관점으로 나눠 살펴본다.

1. 지역을 기반으로 한 스토리텔링으로서의 BQ구르메_ 한때 한국 전역에서 미인 콘테스트 열풍이 불었다고 들었다. 2024년 일본에 밀려든 지역 내 최대 이벤트로 무엇이 있을까? BQ구르메 축제가 답이다. 일본열도 어디서든 쉽게 접할 수 있다. 1년에 한 번만 열리는 것이 아닌 네 번, 나아가 매달 열리기도 한다. 21세기 일본 BQ구르메는 국가·민족이 아닌 지역 공동체 차원에서 출발한다. 일본이나 도쿄가 아닌 지방 도시가 BQ구르메의 원점이다. 일본 문화의 특성이지만 지역 한정 스토리텔링이 반드시 들어간다. 역사·전통·문화는 기본이고 음식 재료나 맛에 관련한 특정 지역에 한정된 스토리가 지방 BQ구르메를 통해 전국에 확산된다. 초대형으로 열어서 휘황찬란하게 끝내는 일회성 축제가 아니다. 현지 주민이 직접 참가해 만들고 즐기는 지역 공동체 차원의 축제다. 돈이 들 이유가 없다. 최근 한국인의 새로운 관광 스타일로, 일본 지방을 향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지방으로 간다면 들르기 전 현지 BQ구르메 축제에 관한 정보를 살피길 바란다. 지역민의 도움과 함께, 현지 재료와 레시피에 기초한 음식을 1000엔 이하로 즐길 수 있다.

2. 요리법의 국제화_ 세계 어떤 국가, 민족, 인종이 와도 대응할 수 있는 만국 요리 대국이 바로 일본이다. 특히 도쿄는 글로벌 음식 박람회 현장에 해당된다. 전 세계 그 어떤 희귀한 음식이라도 도쿄에 가면 만날 수 있다. 일본 밖에서 온 사람이 만드는 외국 음식도 있지만, 일본인 스스로 배워 만드는 창작 외국 음식도 많다. 외국에 나가 현지 언어도 배우면서 문화를 습득한 뒤 일본으로 돌아와 음식점을 연다. 미국이나 유럽 같은 서방 선진국만이 아닌 아프리카를 포함한 개발도상국에 가 현지인과 결혼해 함께 돌아오는 사례도 많다. 2013년부터 5년간 TV에 방영된 ‘세계의 일본인 처를 만났다(世界の日本人妻は見た)’는 전 세계 어디를 가든 일본인이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케 한 현장 리포트다. 아프가니스탄 전쟁터, 아프리카 광산촌, 남미 사막에도 일본인 처가 있다. 남성보다는 일본 여성에 해당되는 얘기지만, 결혼을 통해 전혀 새로운 제2의 인생을 꿈꾼다. 돈이나 명예가 아닌 새로운 도전으로서의 결혼을 통해 새로운 세계와 만나는 것이다. 현지 생활 자체가 워낙 척박하기 때문에 대부분 자식을 낳은 뒤 다시 일본으로 돌아온다. 현지인 남성도 일본 생활을 원하면서 귀국하고, 대부분 생활 터전으로서 외국 음식·의류·장식품 비즈니스를 시작한다. 도쿄의 수많은 외국 음식점은 이같은 일본 특유의 국제화가 창조한 결과물이다. 일본이 글로벌 음식 박람회 무대가 된 이유다.

일본 특유의 국제화가 창조한 결과물


▎10분 만에 즐기는 BQ구르메 최고의 향연. 레바 요리와 일본 정종을 합쳐 900엔 정도로, 주문 2분 만에 등장한다. 술 한 잔과 요리용 안주 하나를 합쳐 1000엔을 넘지 않는다. / 사진:유민호
일본 서점에 가본 사람이라면 느꼈겠지만 요리 서적이 무궁무진하다. 일본 음식에 관한 요리책이 대세지만, 외국 요리에 관한 것도 대략 30% 정도를 차지한다. 이들 책은 여러 각도에서 접근한다. 예를 들어 한국 음식 서적을 보면 나물 반찬을 주제로 하면서 채식주의와 조선 불교에 관한 얘기를 담고 있다. ‘맛있다’만이 아닌 싸고 빠르고 간단히 만들 수 있는, 역사·문화·전통에 관한 스토리텔링으로서의 나물 요리 서적이다. 한 나라를 이해하는 방법으로서의 요리책이 되는 셈이다. 입맛뿐만 아닌, 저자의 한국 체험에 기초한 머리로서의 요리다. 아프리카 구석에 박힌 작은 나라라도 현지 음식에 관한 서적을 통해 구석구석 치밀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일본은 현지 음식을 소개하는 것뿐만 아니라 일본식 BQ구르메로 재창조한다. 도쿄 시부야 근처에서 곤충 요리 전문식당을 만난 적이 있다. 괴상한 이름을 단 곤충들을 먹을 수 있는 공간으로, 음료수를 포함해 2000엔 정도였다. 흥미롭게 본 것은 곤충을 스시처럼 밥 위에 얹어 먹고, 파스타 속에 넣어 즐기는 요리법이다. 곤충 알도 간장과 함께 섞어 밥 위에 토핑해 먹는다. 남성 주인은 탄자니아에서 5년간 살았다고 한다. 주인에 따르면 곤충식에 익숙한 유럽인이나 아프리카인이 와도 일본식 BQ구르메 곤충식 메뉴에 놀란다고 한다. ‘화혼양재(和魂洋才)’라고나 할까? 정신은 일본이지만, 재료나 방식은 외국을 따른다. 한국은 K푸드 확대가 해외 관광객 유치에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조금 다른 생각도 필요하다. 일본에서 보듯 마다가스카르 음식 전문점이 있을 경우 아프리카인은 물론 일본인의 미식욕도 만족시켜 줄 수 있을 것이다. 비빔밥 총력전도 좋지만 중동, 남미, 아프리카 현지 음식의 한국 내 활성화도 중요하다. 물론 싸고 빠르며 간단한 BQ구르메가 기본이다. 밖도 좋지만, 안에서부터 다지는 것이 필요하다.

3. 청결과 그릇_ 서울에 머문 동안 개인 젓가락과 컵, 티슈를 항상 들고 다녔다. 식당 어디든 안심하고 사용할 만한 분위기가 아니다. 쇠 젓가락이라 무겁기도 하지만 뭔가 청결하지 못한 느낌이다. 스테인리스 컵을 봐도 뭔가 불안하다. 입을 닦는 티슈는 아예 화장실 두루마리이거나 형광물질로 범벅이 된 재활용 냅킨이다. 유난히 난리법석을 떤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필자 판단이지만 한국 식당의 테이블 서비스는 아직 개발도상국 수준에서 머물러 있다. 지저분한 식탁 위에 젓가락과 숟가락을 얹어놓고 먹어야만 한다. 베트남에 가면 흔하지만, 식탁 위에 화장실 두루마리 휴지를 올리는 나라도 극히 드물다. 필자가 가장 놀란 것은 젓가락이나 컵, 휴지가 아닌 식기다. 간혹 스테인리스 그릇도 있지만, 대부분 아직도 플라스틱 식기다. 플라스틱이 얼마나 몸에 나쁜지는 새삼스럽지도 않다. 싸고 씻기도 쉽다는 이유겠지만, 플라스틱 용기에 담는 순간 그 어떤 음식도 ‘천박한 수준’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1000달러짜리 와인이라고 해도 플라스틱 와인 잔에 마시는 순간 1달러 이하 수준으로 돌변한다.

단순 가성비 넘어 ‘가심비’에도 충실

일본 BQ구르메의 특징이지만, 플라스틱이나 스테인리스를 사용하지 않는다. 다양한 색상과 모양의 세라믹 접시를 통한 서비스가 기본이다. 음식과 세라믹의 조화도 중요하다. 음식 고유의 색상과 세라믹 기본 바탕과의 화음이 중시된다. 희멀건 플라스틱 접시를 보면 그 어떤 신선하고도 아름다운 음식이 나와도 싸구려로 추락한다. 한국인이라면 예외 없이 K푸드 세계화를 지지하고 응원할 것이다. 그러나 ‘국뽕식’ 접근법이 아닌 실질적 의미의 현장 중심 K푸드의 발전이 한층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식기를 교환하는 것부터 권한다. ‘플라스틱 식기 박멸 캠페인’을 펴서라도 세라믹을 통한 K푸드 진흥책을 하루라도 빨리 시행하길 기원한다. 화장실 두루마리 휴지와 재생 싸구려 냅킨도 박멸 대상이다. 식당에 돈을 더 내더라도 깨끗한 젓가락과 숟가락을 원한다. 청결은 일본 BQ구르메의 매력 중 하나다. 엄청 저렴한데도 뭔가 산뜻하고 깨끗하다. 1960년대 미국 TV의 맥도날드 광고를 보면 키워드가 ‘클린(Clean)’, 즉 청결이다. 빠르고 간단하며 싸기 이전에 식당 전체와 화장실 그리고 주방 전체가 깨끗하다는 것이 맥도날드 햄버거 성공의 첫 출발점이었다. 대충 넘어가는 사람도 적지 않겠지만, 김치 자국 남은 플라스틱 접시보다는 감청색 빛 세라믹 식기 음식이 맛도 좋고 가격도 높다. ‘비빔밥 만세’ 이전에 스테인리스 비빔밥 그릇부터 바꾸기를 원한다.

‘식욕(食欲)’의 시대에서 ‘식육(食育)’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먹는 것 자체가 아닌 먹는 것에 관한 교육과 지식이 중시된다는 의미다. 좋은 식당의 기준은 여러 각도에서 분석할 수 있다. ‘싸고 맛있다’가 핵심 키워드가 될 듯하다. 일본 BQ구르메는 싸고 맛있다는 조건을 기본으로 하면서 ‘청결, 스토리텔링, 이국의 맛, 지방 토착요리, 신선과 신속, 창조’로 채워진, 고독한 미식가 전용 음식이다. 엔저가 아닌 엔고(円高)라도 일본 BQ구르메가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자, 일본행 외국인 관광객 행렬이 한층 더 늘어날 수밖에 없는 근거이기도 하다.

※ 유민호 - 미국 워싱턴에 있는 에너지·IT 컨설팅 회사 ‘퍼시픽21’의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방송(SBS) 기자로 일하다가 1994년 일본 마쓰시타정경숙 15기로 입숙해 5년 과정을 마치는 동안 125개 나라를 순회했다. 조지워싱턴대학 E-Politics 프로젝트 디렉터, 일본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을 지냈다. [백악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국 소프트파워] [미슐랭을 탐하다]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202406호 (2024.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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