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특별취재] 가짜뉴스와의 전쟁, 해외 정보기관들도 나섰다 

사이버로 무대 옮긴 ‘인지전(認知戰)’… 한국도 범정부 대응기구 설립 시급 

김태욱 월간중앙 기자
미국, 가짜뉴스와의 전쟁 선포하고 해외악의적영향력센터(FMIC) 신설
중국은 언론사 위장 웹사이트로 침투 시도… ‘총성 없는 전쟁’ 대응 절실


▎우리나라도 중국과 러시아의 인지전에 맞서 정부차원의 체계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사진:로이터
소셜미디어(SNS)와 인공지능(AI)의 발전으로 가짜뉴스와 딥페이크(Deepfake) 영상이 넘쳐나면서 각국 정보기관들이 발빠르게 대응에 나서고 있다. 가짜뉴스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가한다는 판단 하에 대응조직을 신설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SNS를 통해 빠르게 전파되는 자극적인 내용의 허위·조작 정보는 특히 인플루언서나 유명인들을 통해 증폭되면서 사회 혼란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미국과 유럽 등 서방은 최근 중국과 러시아가 조직적으로 거짓 정보를 가공해 전 세계 여론과 정책 결정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각국 정보기관들이 허위·조작 정보를 심각한 안보 문제로 보기 시작한 이유다.

미국은 일찌감치 가짜뉴스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미국 사이버보안전담 기관 CISA와 국가정보국장실(ODNI), 연방수사국(FBI) 등 정보공동체는 지난 4월 17일 ‘외국의 악의적 영향력 작전에 대비한 선거 인프라 확보(Securing Election Infrastructure Against the Tactics of Foreign Malign Influence Operation)’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공동 발표했다.

미국, 정보기관과 정부부처 공동 중·러 인지전 대응

미국 정보기관들은 이 보고서에서 “생성형 AI 등 기술 발달로 진위 구별이 어려운 가짜뉴스와 이미지, 오디오가 대량 유통될 위험성이 커졌다”며 “오늘날 공격 주체들은 자신의 신원을 숨기면서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이는 사회 분열을 촉진하는 것은 물론, 양극화를 증폭시킨다”고 경고했다. 이어 “선거의 공정성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저해하기 위한 ‘영향력 공작’은 지난 2016년부터 강해진 것으로 분석된다”며 중국과 러시아, 이란 등이 조직적으로 대미 영향력 확대를 꾀한다고 짚었다.

보고서에 언급한 나라들이 ‘영향력 공작’을 위해 전개하는 대표적인 방식은 위장 언론사 설립, 위조문서 유포, 가짜 녹음 전파 등이다. 미국 정보기관들은 보고서에서 “중국과 러시아, 이란 등은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키는 것을 넘어 자국에 유리한 인식을 심기 위해 각종 적대 행위를 감행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처럼 위협이 커지자 미국은 지난 2022년 9월 ODNI 산하에 ‘해외악의적영향력센터(FMIC)’를 신설했다. 미국의 정치, 경제, 군사, 선거, 여론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에 대응하기 위함이다. CIA 등 16개 정보기관과 국무부, 법무부가 FMIC에 참여하고 있다. 정보기관은 물론 정부 부처들까지 중·러 인지전에 함께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유엔차석대사, 페루·스페인 대사를 역임한 박희권 한국외국어대학교 석좌교수는 “미국은 대미(對美) 영향력 정보전에 맞서 전열을 재정비하고 있다”며 “범정부 차원의 전담조직을 만들어 대응하는 등 방어 역량을 끌어올렸다. 영국 등 우방국과의 공조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는 타 국가의 선거에 개입한다는 점에서 이 같은 협력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SNS로 대량 유통되는 허위·조작 정보 심각성 경고


▎중국 홍보업체 ‘Haixun’은 국내 언론사로 위장한 웹사이트를 개설해 기사 형식의 콘텐트를 무단 유포했다. / 사진:로이터
대만도 중·러와 인지전(認知戰)을 벌이고 있다. 대만 정부는 지난 1월 17일 법무부 조사국 산하에 ‘인지전연구센터’를 설립했다. 기존 조사국의 ‘양안 정세 분석처’와 ‘국내 안전 조사처’, ‘정보 통신 안전처’를 통합해 만든 이 센터는 인지연구팀, 자료분석팀, 대응반제팀으로 나뉜다. 센터는 현재 중·러 등이 다양하게 전개하고 있는 인지전을 분석해 대응하고 있다.

왕쥔리(王俊力) 조사국장은 개소식에서 “해외 적대세력은 대만 정부를 비방하는 영상물을 제작하고 있다”며 “국방, 외교, 정부 정책, 민생경제 등에 관한 허위 사실을 SNS 등을 통해 전파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대만 인지전연구센터는 지난 3월 6일 ‘인지전으로 본 중국의 대(對) 대만 영향력 조작’을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도 개최해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이 행사에는 차이칭샹(蔡淸祥) 법무부장, 주(駐) 대만 공관원 등 130여 명이 참석해 중국의 영향력 공작 대응에 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차이 법무부장은 이 자리에서 “중국은 SNS 등을 통한 허위 정보 배포로 우리 사회의 단결을 훼손하고 민주주의 제도 작동을 파괴하려 한다”고 경고했다. 실제 오늘날 SNS에선 중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민간 SNS 유저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은 대부분 중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물론, 민주진영 국가들을 향해 거친 언사를 일삼는다. Zhao DaShuai라는 이름으로 X(구 트위터)에서 활동하는 중국인이 대표적이다. 8만9000여 명의 팔로어를 보유한 그(@zhao_dashuai)는 소개란에 “모든 형태의 미디어는 선전(Propaganda)”이라며 중국 정부 대변인을 자청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그는 자신의 X 계정 분류를 아예 ‘국영미디어’로 설정했다. 주일 미국 대사가 X에 “한·미·일 협력이 강화되고 있다”는 게시글을 게재하자 Zhao는 한국과 일본을 ‘미국의 개’에 빗대며 한·미·일 협력을 비하하기도 했다.

중국, 대만 인플루언서를 현지 협조망으로 구축

오늘날 중국의 인지전 전술은 대만 법무부 조사국이 발간한 [시진핑 집권기 중국의 대(對)대만 인지전 및 대만의 방어전략]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보고서는 중국 인지전에 대해 “중국 공산당은 선전부 주도로 대중매체를 통제한다. 중국 공산당은 대중들의 인식 변화를 이끌어내는 인지전을 적극 전개한다”고 짚었다.

최근 중국의 인지전 전술은 과거보다 훨씬 정교해졌다. 중국 공산당이 과거 내부 사상통제에 초점을 뒀다면, 시진핑 중국 주석은 집권 이후 줄곧 자신의 ‘중국몽’ 실현과 자국 중심 국제질서의 당위성을 전파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미디어 환경 변화에 맞춰 국내외 언론은 물론 SNS 등 다양한 형태의 가짜뉴스 유포원(源)을 집중 양성하고 있다. 중국은 특히 자국 언론사인 CCTV, 신화사 등 전통매체에 틱톡과 같은 뉴미디어를 결합하는 ‘미디어 융합’ 전술을 펼치고 있다. 가짜뉴스가 틱톡 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빠르게 퍼져나가는 이유다.

이뿐만이 아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거액의 자금을 통해 대만 언론인, 인플루언서, 학생을 현지 협조망으로 구축하고 있다. 대만 여론 분열 및 대중(對中) 우호여론 형성을 획책하기 위한 것으로 파악된다. 최근에는 다수 유포원 간 분업체계도 구축하고 있다. 중국은 현재 러시아, 이란 등과 인지전 공조를 통해 가짜뉴스를 동시다발적으로 유포, 확산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대만도 이에 대한 나름의 방어 전략을 세웠다. 대만의 방어 전략은 긴밀한 민·관(民官) 협력 및 공세적 ‘반(反)인지전’ 전개로 요약된다. 대만은 정부, 언론, 민간단체 간 전방위적·유기적 협력체계 구축을 통해 대응하고 있다. 정부는 ‘언론 자유’를 보장하되, ‘방송통신법’ 등 기존 법률에 가짜뉴스 유포 매체 처벌규정을 마련해 언론의 자율 책임 강화를 유도하고 있다. 대만 시민·민간단체는 중국 인지전 연구, 대중교육 등을 담당하는 민간 전문 인력·단체를 육성해 시민사회 내 가짜뉴스에 대한 집단면역력 형성에 앞장서고 있다.

유럽에도 비슷한 성격의 민간단체가 있다. 리투아니아에 본부를 두고 있는 ‘The Elves’가 대표적이다. The Elves는 러시아 정부를 대변하는 대형 SNS 채널을 추적하는 단체로, 회원들은 보안을 위해 전부 가명을 사용한다. 매(Hawk)라는 가명을 사용하는 이 단체의 대표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며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온라인에서 러시아와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다. 페이스북과 X 등에서 친러 성향의 여론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주 7일 일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가짜뉴스는 허위정보(거짓·악의), 과장정보(사실·악의), 와전정보(거짓·악의×) 등으로 대별된다. 대만은 오늘날 중국 인지전 대응을 위해 ‘허위정보’ 차단에 초점을 두고 있다. 또한 가짜뉴스 내용 분석뿐 아니라 유포 경로 색출을 통해 의심스러운 유포원을 발견할 시 선제적인 모니터링으로 허위정보 확산 차단에 나서고 있다.

캐나다도 본격적인 대응에 나섰다. 캐나다는 지난해 3월 공공안전부 산하에 외국의 영향력 공작에 대응하는 기구인 ‘반(反)외국 개입 국가사무소(National Counter-Foreign Interference Office, NCFIO)’를 신설한다고 발표했다. 캐나다 정부는 NCFIO에 2023~2024 회계연도부터 향후 5년간 약 1000만 달러(약 137억원)의 예산을 투입한다.

일본, 범정부 차원 ‘전략 커뮤니케이션실’ 신설


▎지난해 12월 9일 조태용 당시 국가안보실장과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아키바 다케오 일본 국가안전보장국장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한·미·일 안보실장회의 공동 브리핑을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며 손을 맞잡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캐나다는 특히 중·러의 선거 개입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캐나다가 지난해 9월 총리실 산하에 외국 개입을 방지하는 위원회(Foreign Interference Commission, FIC)를 설립한 이유다. FIC는 정부 고위 공직자는 물론, 선출직 공무원이 접하는 각종 정보의 흐름에 주목한다. 오늘날 FIC는 정보 흐름에 대한 조사와 평가를 전문적으로 하는 기관으로 거듭났다. 앞서 캐나다 통신보안국(CSE)은 중국 통일전선부의 업무를 지원하는 한 연구기관이 캐나다 총선에 개입했다고 발표했다. 캐나다 공개조사위원회도 지난 5월 3일 “외부의 침투 노력이 포착됐다”고 발표하며 중국의 인지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

일본도 범정부 차원에서 가짜 정보에 대응하기 위해 ‘전략 커뮤니케이션실’을 신설한다. 러시아, 중국 등이 벌이는 가짜 정보의 확산 등 인지전에 대응하기 위해 신설되는 이 조직은 정보의 집약분석, 대외 발신 강화, 정부 이외 기관과의 제휴 강화 등의 업무를 맡는다. 지난해 일본 정부는 전략 커뮤니케이션실 신설을 발표하며 “가짜 정보의 확산이 안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정부는 가짜 정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도 해외발(發) ‘거짓정보’로부터 결코 안전하지 않다. 미국처럼 ‘해외악의적영향력센터(FMIC)’를 신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앞서 캐나다 토론토에 본사를 둔 디지털감시단체 ‘시티즌랩’은 지난 2월 7일 “중국 웹사이트 최소 123개가 전 세계 30개국에서 현지 언론 매체로 위장한 뒤 가짜뉴스를 유포하고 있다”며 “이 중 한국에서 활동하는 위장 웹사이트가 17개로 가장 많다”고 발표한 바 있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위협분석센터(MTAC)도 지난 4월 보고서를 통해 “스톰 1376(Storm-1376)이라고 명명된 중국 조직이 AI로 생성한 허위 콘텐트를 퍼뜨리고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韓, 주변국 정보전에 노출… 국가 차원 대응 필요”


▎중국 비밀경찰 국내 거점으로 지목됐던 서울 송파구 소재 중식당 ‘동방명주’ 전경. / 사진:김태욱 기자
우리나라가 인지전 대비에 나서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이미 중국의 공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국정원은 지난해 11월 중국 업체가 국내 언론사로 위장한 웹사이트 38개를 개설해 기사 형식의 콘텐트를 무단 유포한 정황을 포착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2월에도 국내 언론사로 위장한 웹사이트 178개를 추가 포착하기도 했다. 이들 웹사이트는 중국 홍보업체 ‘Haixun’이 운영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 웹사이트 중 일부는 중국 지역 행사를 홍보하는 기사와 함께 친중(親中)·반미(反美) 콘텐트를 게재했다. Haixun은 이들 웹사이트의 이름으로 ‘조선주간’, ‘글로벌금융뉴스’, ‘인천속보’, ‘서울시보’ 등 국내 언론사와 유사한 이름을 사용했다.

이처럼 안보에 빨간불이 켜지자 국회에서도 대응안 마련에 나섰다. 김장겸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6월 12일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의 허위조작정보 유통 방지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다만 우리나라도 국회를 넘어 범정부 차원의 대응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중국이 친중 성향의 SNS와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를 통해 국내에 빠르게 침투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을 지낸 자오 리젠(@zlj517)이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 ‘누누티비’와 연동된 X 계정(@N)을 팔로(Follow)한다는 점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우리 정부는 누누티비 등 저작권 침해 신규사이트에 대한 접속을 차단해 왔으나, 누누티비 운영진은 접속경로(URL)를 변경해 유사한 사이트를 내놓고 있다. 업계에서는 왓챠, 티빙, 웨이브 등 국내 OTT 플랫폼들이 누누티비와 같은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로 인해 최근 2년간 4000억원에 달하는 손실을 봤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윤민우 가천대학교 경찰안보학과 교수는 이와 관련해 “오늘날 SNS로 다른 나라의 여론에 영향을 미치기 쉬워졌다”며 “적대국의 사회적 갈등을 부추겨 국력 낭비를 불러일으키는 방법도 사용되고 있다”고 짚었다. 이어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하면 한국도 주변국의 정보전에 항상 노출돼 있다. 국가 차원의 체계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김태욱 월간중앙 기자 kim.taewook@joongang.co.kr

202407호 (2024.06.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