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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글로벌 데이터 확보 경쟁 내막 

잘 키운 ‘라인’, 일본에 뺏기지 않으려면… 

안서진 매경닷컴 기자
라인, 부분 매각 가능성 높아… 네이버 글로벌 사업 타격 우려
주요국은 데이터 보호주의 열풍, 한국도 주권 강화 서둘러야


▎미국의 경우 국가 안보를 이유로 제정한 ‘틱톡금지법’이라는 명확한 법안을 이유로 매각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일본의 행정지도의 경우 이렇다 할 법적인 근거가 없다. 사진은 경기도 성남시 네이버 본사 모습. / 사진:연합뉴스
네이버가 쌓은 공든 탑 ‘라인’(LINE)이 무너질 위기다. 일본 정부가 네이버에 메신저 라인을 운영하는 라인야후의 지분 매각을 압박하고 있어서다. 라인 사태는 데이터 안보에 사활을 걸고 있는 국제사회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다. 최근 글로벌 주요 국가들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미래 신사업으로 데이터를 꼽고 이른바 ‘데이터 안보’ 관련 법안들을 재정비 중이다. 일본 정부 역시 자국 데이터 보호주의를 강화하기 위해 해외 기업인 네이버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라인야후를 일본 기업으로 만들겠다고?

사건의 발단은 2023년 1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네이버클라우드는 사이버 공격으로 악성코드에 감염돼 일본 라인 이용자 약 51만9000건의 개인정보가 노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라인야후의 전산시스템을 담당하던 네이버클라우드의 협력사 직원 PC가 악성코드에 감염된 것이 주요 원인이었다. 이를 문제 삼은 일본 총무성은 지난 3월 5일과 4월 16일 통신비밀 보호 및 사이버 보안 확보를 위한 행정 지도(시정 요구)를 실시했다.

같은 사안으로 일본 정부가 두 차례나 행정지도를 내린 것 자체가 이례적인 데다 라인야후에 네이버의 지배력 약화를 포함하면서 사태가 커졌다. 일본 정부는 라인야후가 시스템 업무를 위탁한 네이버에 과도하게 의존해 사이버 보안 대책이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하며 ‘네이버와 자본 관계 재검토’를 포함한 경영 체제 개선을 요구했다. 사실상 네이버의 지분을 일본 소프트뱅크에 넘기라는 의미다.

현재 메신저 서비스인 ‘라인’과 검색 서비스인 ‘야후재팬’을 운영하는 라인야후의 최대 주주는 지분 64.4%를 보유한 A홀딩스다. A홀딩스의 지분은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50%씩 나눠가지며 일종의 균형을 유지해왔다. 네이버가 단 한 주의 주식만 매각하더라도 지배권이 소프트뱅크로 넘어가는 구조다. 문제는 지분 매각과 유출 사고의 상관성이다. 일본 정부는 네이버에 지분 매각을 주장하고 있지만 지분 매각을 실시한다 하더라도 유출 사고가 방지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빌미로 라인야후를 완전한 일본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일본 정부의 욕심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 대목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국내 여론 역시 고울 리 없다. 보안 사고가 발생했을 때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를 마련하고 보안을 강화하는게 일반적이지만 이를 계기로 네이버의 지분을 매각하라는 일본 정부의 요구가 부당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에서 이 같은 비판 여론이 들끓자 마쓰모토 총무상은 지난 5월 10일 “경영권 관점에서 자본의 재검토를 요구한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행정지도에 ‘자본적 지배 관계 재검토’라는 표현이 명시돼 있지만 국내 여론이 안 좋아지자 “지분 매각을 요구한 건 아니었다”고 해명하며 여전히 찜찜한 물음표만 남긴 상황이다.

美틱톡 규제와 결 다른 일본의 라인 압박

지난해 일본에서는 개인정보가 100만 건 이상 유출된 사례가 8건에 이른다. 또 일본 정부는 지난 2021년 페이스북 해킹으로 무려 5억 명의 정보가 유출됐을 때는 미국에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그랬던 일본 정부가 51만 건이 유출된 라인 사태에 대해서만 유독 제재의 칼날을 빼든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 사태의 핵심은 ‘데이터 주권’(主權)에 있다. 데이터 주권이란 국가에서 생성되고 보관되는 데이터는 그 국가에서만 접근하고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을 말한다. 이 데이터 주권은 나아가 개인정보, 기업 기밀 사항 등에 대한 통제권을 자국 정부와 기업이 가져야 한다는, 이른바 ‘자국 데이터 보호주의’를 촉발했다.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상은 자국민들의 개인정보 관리를 한국 기업에 맡길 수 없다는 게 일본 정부의 본심이다. 특히 일본은 한국과의 외교적 분쟁을 감수하면서까지 데이터 주권 확보 측면에서 절박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 정부의 이 같은 복잡한 속내를 이해하려면 메신저 라인이 일본에서 갖는 위상에 대해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라인은 한국에서 국민 메신저 역할을 하는 ‘카카오톡’처럼 사용률이 높은 애플리케이션이다. 라인 글로벌 누적 이용자가 10억 명에 달하는데, 일본에선 월간 이용자 수가 9600만 명 이상으로 집계될 정도로 전 국민 메신저로 통한다. 지난 3월 현재 일본 내 사용자 수(MAU)는 약 970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80%에 육박한다.

즉, 일부 고령자나 영유아를 제외하고 일본인 대부분이 사용하고 있는 메신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라인이 일본에서 공공 인프라로 자리잡고 있다는 의미인 동시에 더 이상 한국 기업이 라인을 지배하도록 지켜볼 수 없다는 판단이다. 경제안보 정책의 수장인 경제안보담당상을 지낸 고바야시 다카유키 자민당 의원은 최근 일본 현지 인터뷰를 통해 “국민 데이터는 되도록 일본 주권이 미치는 범위에서 보관해야 한다”며 “보안 문제 등에 입각해 (나는) 라인을 이용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일본의 행정지도는 정치적 명분·정당성 없어

사실 미국에서도 비슷한 사례는 있었다. 지난해부터 미국 정부는 중국의 동영상 공유 플랫폼 ‘틱톡’에 대해 규제를 시행 중이다. 틱톡은 미국 인구 절반 정도인 1억7000만 명이 사용할 정도로 인기가 높은 플랫폼이다. 최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중국 틱톡의 미국 사업권을 매각하지 않을 경우 미국 내 서비스를 금지하도록 하는, 이른바 ‘틱톡 퇴출 법안’에 서명했다. 틱톡이 수집한 민감한 사용자 정보가 중국 당국에 흘러갈 경우 심각한 안보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 법안에는 틱톡의 모회사 중국 바이트댄스를 향해 ‘6개월 안에 틱톡 지분을 매각하라’는 주문이 담겨 있다.

미국과 일본의 사례는 유사한 측면이 많다. 자국 데이터를 지키기 위해 해외 기업의 데이터 유출은 물론 수집하는 것조차 차단하는 초강경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점에서 두 사례는 닮아 있다. 다만 미국의 경우 국가 안보를 이유로 제정한 ‘틱톡금지법’이라는 명확한 법안을 이유로 매각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일본의 행정지도의 경우 이렇다 할 법적인 근거가 없다. 실제 마쓰모토 총무상은 두 차례 발언에서 라인야후의 자본 관계와 관련된 과제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다.

두 나라의 관계성 면에서도 일부 차이가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적대국으로 보고 있는 중국 기업이 만든 서비스에 대한 대응이다. 그마저도 틱톡의 미국 내 서비스에 대해서만 시정을 요구한 상태다. 반면 한국과 일본은 적대국이 아니다. 심지어 라인은 한국인 개발자가 만든 뒤 일본 야후 재팬과 합병해 탄생한, 이른바 한·일 합작 형태의 서비스다. 또 라인은 일본뿐 아니라 대만, 태국, 인도네시아 등에서도 국민 메신저로 통하는 만큼 만약 지분이 소프트뱅크로 넘어갈 경우 해당 시장마저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물론 국제 관계에서는 영원한 적국도 우방국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일본 정부가 직접 나서서 라인야후의 소유권을 일본 기업에 넘기라고 압박하는 작금의 사태는 그 어떠한 정치적 명분도, 정당성도 없다는 점이다.

현재 라인 사태는 사실상 장기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대통령실이 일본 정부가 요구한 기간 내 라인 지분 매각 여부에 대한 입장을 제출하지 않겠다는 견해를 밝히면서 장기 협상 태세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당장 라인야후는 7월 1일까지 일본 총무성 행정지도에 대한 조치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다만 이 보고서에는 네이버에 지분 매각에 대한 내용이 담기지 않을 예정이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최근 브리핑을 통해 “적절한 정보보안 강화 대책이 제출되는 경우 자본구조와 관련해 일본 정부가 네이버의 의사에 배치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며 “우리 기업이 해외에서 어떤 차별적 조치나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정부가 강력히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까지 상황을 종합해 봤을 때 네이버가 취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보유한 지분을 전량 매각하는 방안, 일부를 매각하고 2대 주주가 되는 방안, 현상 유지 등 총 3가지로 압축된다.

장기전 돌입한 라인 사태, 다음 시나리오는?


▎네이버가 취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보유한 지분을 전량 매각하는 방안, 일부를 매각하고 2대 주주가 되는 방안, 현상 유지 등 총 3가지로 압축된다. 사진은 라인야후가 입주해 있는 일본 도쿄 지요다구의 도쿄가든 테라스기오이타워. / 사진:연합뉴스
첫 번째 시나리오는 사실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 한국 정부까지 나서서 강경 대응을 예고한 만큼 네이버가 지분 전량을 매각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가능성은 적지만 매각 시 관건은 매각 단가다. 업계에서는 라인야후의 시가총액을 고려한 네이버의 라인야후 지분 가치를 8조원대로 추산하는데 여기에 경영 프리미엄을 얹으면 약 10조원대로 계산된다. 다만 소프트뱅크가 모든 지분을 사들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두 번째 시나리오인 부분 매각이다. 네이버가 A홀딩스 일부 지분을 넘겨주고 2대 주주로 내려오는 것으로, 가능성이 가장 높다. 하지만 라인야후 지분 일부가 소프트뱅크로 넘어가게 될 경우 라인플러스 경영권도 소프트뱅크가 갖게 되면서 글로벌 사업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마지막은 지분 변동 없이 현 상태의 구조를 유지하는 방법이다. 일본 정부의 행정지도는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일본 정부의 규정에 맞춰 보안 시스템을 정비하되 지분 구조는 현 상태를 유지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이번 사태는 단순히 기업 간의 알력 다툼이 아니라 한·일 양국 간 기술 주권을 둘러싼 신경전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일본은 데이터 보안을 강조하며 네이버에 라인 경영권을 포기할 것을 압박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일본의 부당한 요구에 맞서고 있다. 지난 5월 26일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도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라인야후 사태가 확전되지 않도록 소통하자는데 한목소리를 냈다.

윤석열 대통령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라인야후 사태’와 관련해 “우리 정부는 이 현안을 한·일 외교 관계와 별개 사안으로 인식하고 있고 따라서 앞으로 양국 간 불필요한 현안이 되지 않게 잘 관리해 나갈 필요가 있겠다”고 밝혔다. 기시다 총리 역시 “일본 총무성의 행정지도는 한국기업을 포함해 외국 기업들의 일본에 대한 투자를 계속 촉진하겠다는 기존의 입장에 불변이 없다는 원칙하에서 이해되고 있다”며 “한·일 양국 정부 간에 잘 소통하며 협력해 왔고 앞으로도 계속 긴밀히 소통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양국 정상은 결국 구체적인 해결책을 도출해 내지는 못했다. 사태가 장기화할수록 한·일 관계 악화가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다.

세계 주요 국가가 데이터 주권을 강화하기 위해 데이터 관련법을 새로 만들며 장벽을 높이고 있다. 우리 정부 역시 이번 라인 사태에 적극 뛰어들어 제2, 제3의 라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나라 기업과 자국 데이터 보호에 앞장서야 할 때다.

- 안서진 매경닷컴 기자 seojin@mk.co.kr

202407호 (2024.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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