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th

health - “제 맨 낯 보는 게 치유의 시작” 

 

글 이용성 포브스코리아 기자 사진 오상민 기자
심리치료 전문업체 마인드프리즘의 정혜신 대표는 본연의 자아와 사회적 자아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면 마음이 병든다고 말한다.



정신과전문의 정혜신은 지난 8년간 SE(Self-Encounter: 자기조우) 프로그램을 통해 CEO·정치인 등 1000여명에게 자아성찰과 치유의 장을 마련했다. 특히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를 위한 치유 프로그램을 이끌어 관심을 모았다. 그는 최근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과 의기 투합해 ‘직장인 마음 건강 되살리기’에 뜻을 모으고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했다(김 의장은 지난해 초 정혜신 대표가 운영하는 마인드프리즘의 지분을 70.5% 인수했다).

올 한해 판매·서비스·상담 분야 종사자 등 다양한 직업군에서 500여 명을 선정해 마인드프리즘의 심리치유 프로그램 ‘내 마음 보고서’를 무료로 체험하게 하는 것이 골자다. 직업과 성격을 달리하는 많은 사람의 마음속 깊이 감춰놓은 이야기를 접하며 그가 내린 결론은 마음의 여유와 행복은 경제적 상황보다 개인의 성숙도와 관련 있다는 것. “가난한 사람은 행복할 수 있어도 부자들은 행복하기 어렵다”는 역설을 강조하는 정 대표에게 CEO의 행복을 자문했다.

행복이 성숙도와 관련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성숙한 사람은 자신의 사회적·직업적 페르소나(persona, 가면)를 상황에 맞게 바꿔 쓴다. 회사에서는 임원으로 대접받더라도 가정에 돌아오면 아버지와 남편 역할을 충실히한다. 반면 성숙하지 못한 사람은 직업적 자아와 자신을 과도하게 동일시하는데 그로 인한 자아상실이 불행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집에서 아내가 남편이 아닌 ‘회장님’이라 부르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TV 드라마 속 기업인의 모습이 그 전형이다.

성공한 경영자는 행복하기 어렵다는 의미인가?

내면으로 들어가면 직원이나 경영자나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본연의 자아와 사회적 자아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면 마음이 병든다. 성공한 기업 경영인은 그 거리가 멀어지기 쉽다는 것이 문제다. 사회적 성공이 어느 정도 자기 억압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옛말에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하는데 그래도 먹고 살만해야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것 아닌가?

오너 회장을 만나 이야기 나누면 ‘사실 나 돈 없어요’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수백억원을 들여 재단을 만들고도 자기보다 돈 많은 사람을 의식하며 부끄러워하는 사람도 봤다. 기업도 경기가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위기의식을 조장해 직원들을 압박한다. 결국 여유와 배려는 경제적 상황이 아닌 사람의 성숙도와 관련 있다.

오너와 경영자의 심리적 건강이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적잖다.

물론이다. 물질중심적인 가치가 팽배한 우리 사회에서 재계 리더의 영향력을 고려하면 국가 전체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할 수 있다. 달라이 라마에게 재테크를 자문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기업인으로서의 성공이 인격적인 성숙을 담보하지 않음에도 기업 오너에게 인생의 조언을 구하는 자연스런 모습이 이를 증명한다.

다분히 권위적인 우리 기업문화의 폐해는 없나?

우리 기업문화는 구성원 개개인의 차이에 주목하지 않는다. 회사에 일정 기간을 부분적으로 기여할 수 있지만 결국 ‘나’로 충실히 살기 위해 태어난 건데 말이다. 삶에는 가정·친구 등 여러 영역이 있고 직장도 그 중요한 일부다. 하지만 사람을 고용했다고 노예로 산 것이 아닌데도 과도하게 일을 시키고 희생을 강요하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모습을 종종 본다. 회사와 직원들 사이에도 돈과 성공을 위해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암묵적 동조가 이뤄진 듯하다.

그렇다면 치유는 어떤 과정을 통해 이뤄지나?

자신의 맨 얼굴을 보게 해 주는 것이 치유의 시작이다. 어떤 오너 회장은 친구도 소수만 만나고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지만 경영 성과는 좋았다. 너무 내향적이라 기업경영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적극적이고 외향적인 사람을 임원으로 뽑았다. 하지만 성격이 다른 임원과 관계를 형성하는데 에너지 소모가 너무 커져 힘들어 했다. 결국 심리분석을 통해 자신의 콤플렉스가 사실은 장점이라는 것을 깨닫고 편안한 마음으로 업무에 매진하게 됐다.

자신의 본 모습을 발견하는 것만으로 도움이 된다는 말인가?

성찰을 통해 자기 정리가 되면 현실을 합리적이고 담담하게 볼 수 있고 그로 인해 에너지가 축적될 수 밖에 없다. 운전 중 가장 사고가 많이 날 때가 안개 낀 날 아닌가? 대인관계의 안개가 걷히면 자동차 급브레이크 밟는다든지 조바심 내느라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가 없어진다.

CEO의 달라진 심리상태가 경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 예는?

어떤 오너 회장상담을 받고 돌아가서 “50년 넘게 살아오면서 자기 본 모습을 처음 봤다”며 “선생님 살려주세요”라고 문자를 보내왔다. 특별히 아픈 기억이 있지는 않았지만 평생 거울 없이 살다 본연의 모습을 마주 대하고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 후 다시 만나 이야기 했는데 “본인이 구조조정을 많이 했는데 그것을 정책적 결정이라고만 생각했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털어놨다.

자신을 돌아보고 오너가 아닌 한 인간으로 섬세한 감정을 회복하고 나니 직원은 물론 아내와 자식의 감정에 대한 공감이 일순간에 쓰나미처럼 밀려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에는 그 회사의 퇴직 임직원에 대한 배려가 많이 달라졌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구조조정을 하더라도 직접 당사자를 만나, 회사가 처한 상황 때문에 그런 것이지 당신의 부족함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며 격려한다고 들었다.

‘동업자’ 카카오 김범수 의장과의 인연은?

오래전 NHN 이해진 의장의 심리상담을 진행한 것이 인연이 돼 당시 (NHN의 관계사인) 한게임 대표였던 김 의장과 다른 임원들의 심리상담도 맡았다. 소박하고 좋은 분인데 다 인간관계에 대한 섬세하고 예민한 통찰의 소유자기도 하다. 무엇보다 그 소박함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대단하다.

김범수 의장과 이해진 의장을 비롯한 젊은 오너 기업인은 이전 세대 기업인과 어떤 부분이 다른가?

두 사람과 나성균 네오위즈홀딩스 대표처럼 자기가 가진 부를 사회적으로 어떻게 의미 있게 사용할지 고민하는 CEO가 많다. 정보기술(IT) 사업가뿐만이 아니다. 고무적인 현상이다.

지난 대선 기간 중 문재인 후보의 찬조연설자로 나섰는데 정치적인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닌가?

오랫 동안 (쌍용차) 해고 노동자의 심리치료를 맡으며 느낀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 나섰을 뿐 정치적인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images/sph164x220.jpg
201308호 (2013.07.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