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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RAN INTERNATIONAL CEO PARK, KI-HYUN - “자동번역은 우리가 구글보다 한 수 위” 

 

사진 전민규 기자
번역 솔루션 세계 1위 업체 프랑스의 시스트란을 한국의 벤처기업 CSLi가 550억원에 인수했다. 박기현 대표는 시스트란 인터내셔널로 사명을 바꾸고 한국이나 미국에서 3년 뒤 상장 계획을 갖고 있다.

세계 1위의 번역 솔루션 업체를 인수해 화제를 모으고 있는 박기현 대표.


한국의 소규모 벤처기업이 프랑스 상장기업을 인수합병(M&A)해 눈길을 끌고 있다. 프랑스 기업 역사상 한국 기업으로 주인이 바뀐 첫 사례다. 더군다나 그 프랑스 기업은 해당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달리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을 성사시킨 이는 자동번역 소프트웨어 제작업체 씨에스엘아이(CSLi)의 박기현(55) 대표다. 지난 4월 CSLi는 40년 역사의 번역 솔루션 제작업체 시스트란(Systran)의 지분 38.04%를 인수해 경영권을 확보했고 95%까지 지분을 모을 계획이다. 인수금액만 3965만 유로(약 550억원)다. 박 대표는 사명을 시스트란 인터내셔널로 바꾸고 구글과 한판 대결을 준비하고 있다.

시스트란은 1968년 피터 토마 박사가 설립했다. 세계 최대의 데이터베이스 및 사전을 보유하고 있고 89개 언어 번역 시스템을 갖췄다. 구글은 2001~06년까지 시스트란의 번역 프로그램을 사용했다. 2007년 구글이 인수하려고 했지만 시스트란이 거절했다. 구글은 현재 60개 언어를 번역할 수 있는 솔루션을 갖고 있다. 박 대표는 “시스트란 이사진은 아직도 구글이 주식을 준다고 했을 때 받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다”며 웃었다.

CIA·FBI 등 미국 정보국, 프랑스 국방부, 파리 교통공사 등 정부기관과 베링거인겔하임, 다소 팔콘 등 글로벌 기업이 시스트란의 번역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다. 2013년 매출은 1070만 유로(약 147억원)다.

굴지의 프랑스 기업을 한국 벤처기업이 인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미국과 프랑스 정부로부터 승인허가를 받는데 6개월 정도 걸렸다”고 박 대표는 돌이켰다. 그는 인수합병을 위해 최고의 팀을 꾸렸다. 컨설팅 회사로 딜로이트를 선택했고, 인수합병에 필요한 법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허버트 스미스 프리힐즈라는 글로벌 2위 로펌을 선임했다. 프랑스 정부는 CSLi가 시스트란을 인수한 후에 연구개발(R&D) 부서를 없앨 수도 있다며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박 대표는 “프랑스와 미국 정부가 허가를 내줄 수 없다고 했지만 꾸준히 설득했다”고 말했다. “지속적으로 회사를 성장시키겠다고 약속한 후에야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미 국방부는 CSLi의 인수자금 출처를 조사할 정도였다. 양국 정부가 CSLi의 인수합병 시도를 얼마나 민감하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CSLi의 시스트란 인수합병은 마치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것과 같다. 규모와 역사 면에서 CSLi가 뒤처졌기 때문이다. 시스트란은 유럽권 언어를 중심으로 89개 언어 번역 툴을, CSLi는 아시아권 언어를 중심으로 12개 언어 번역 툴을 갖고 있다. 40년 역사를 가진 시스트란은 프랑스 파리에 본사가 있고 미국 샌디에이고와 캘리포니아에 지사를 두고 있다. CSLi는 1992년 설립된 22년 역사의 벤처 기업이다. 이 같은 차이에도 CSLi가 시스트란을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것은 “기술력에 대한 신뢰가 쌓였기 때문”이라고 박 대표는 설명했다.

두 회사는 삼성의 갤럭시S4에 들어간 번역 앱 ‘S-Translator’를 함께 개발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스마트폰에 들어갈 번역 앱을 함께 만들어보자”고 박 대표가 먼저 시스트란에 제안했다. “프랑스인이 얼마나 콧대가 높나. 유명하지도 않은 한국 벤처회사가 그런 제안을 하니 처음에는 코웃음쳤을 것이다. 우리의 실력을 시험해보고 싶어서 응했던 것 같다.”

정부보다 먼저 자동번역 시스템 개발


스마트폰에서 4개 국어를 자동번역하는 앱 ‘통역비서’.
2012년 말부터 2013년 4월까지 두 회사는 앱을 함께 개발하면서 시스트란은 CSLi의 기술력을 다시 보게 됐다. 두 회사의 합작품은 올해 상반기까지 갤럭시S4, 노트 3 등 총 2억대의 스마트폰과 태블릿에 장착됐다.

신뢰를 쌓고 기술력을 인정받은 후 박 대표는 시스트란에 인수합병 의사를 밝혔다. 지난 5월 방한한 당시 시스트란 CEO 드미트리 사바타카키는 “시스트란은 언어의 장벽을 넘어 활발히 소통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CSLi는 우리의 비전을 공유하고 실현할 수 있는 전문성과 열정을 모두 갖췄다. 양사의 협력으로 더욱 큰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인수금 마련에는 스틱인베스트먼트, 한국투자파트너스, 한국투자증권과 소프트뱅크벤처스 등의 금융회사가 참여했다.

박 대표는 “시스트란은 구글에서 로얄티를 받았지만 구글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며 “회사의 존속성을 고민하던 시기에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했다.

“구글과의 경쟁을 이길 수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박 대표는 “우리 번역 시스템은 문법 기반이고 구글은 통계 기반이다. 문법 체계가 받쳐주지 않으면 번역 기술은 떨어진다”고 강조했다. “구글은 우리의 상대가 아니다.”

CSLi의 기술력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인정 받고 있다. 2001년 CSLi가 내놓은 ‘ezTrans2001’은 그해 정보통신부로부터 신소프트웨어상품대상을 수상하면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다음과 네이버는 해외 사이트 번역 솔루션으로 채택됐고, 2009년에는 일본 지자체 140개 사이트의 번역 프로그램으로 수출되기도 했다.

CSLi를 정상 궤도에 올려놓은 것은 2010년 12월 SKT를 통해 론칭한 음성 자동번역 시스템 ‘통역비서’였다. 당시 정부가 비슷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그때 난리가 났었다. 지식경제부가 200억원을 투자해 음성 통역비서를 만든다고 했는데, 우리가 먼저 상용화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당시 통역비서는 50만 건이 다운로드됐다. 휴대전화 제조사는 모두 CSLi를 찾았고, 지자체도 경쟁적으로 CSLi의 번역 솔루션을 사이트에 올리기 시작했다. 2012년에는 NTT 도코모에 통역시스템을 납품했다. 당시 경쟁자는 뉘앙스였다. 애플 시리를 만든 글로벌 기업으로 삼성전자가 인수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면서 번역의 중요성이 높아졌다. 세계 각국에서 언어 장벽을 허물려는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힘들게 버텨온 것이 이제야 빛을 보기 시작했다.”

IT 연구기관 윈터그린 리서치는 2012년 16억 달러(약 1조6237억원)였던 세계 기계번역 시장이 2019년에는 69억달러(약 7조24억원)로 성장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시스트란을 인수한 시스트란 인터내셔널에는 더 많은 기회가 있는 것이다. 박 대표는 더욱 공격적인 경영을 펼쳐나갈 계획이다. “한국이나 미국에서 시스트란을 상장할 계획이다. 우리는 그 시기를 3년 뒤로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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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호 (2014.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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