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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EUAL - “공장이 어딘지 직원도 몰랐다” 

 

한국의 히든 챔피언 모뉴엘의 성공신화가 사기였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충격을 주고 있다. 설립 7년 만에 1조원 클럽에 든 것은 위장 수출 실적 덕분이었다. 모뉴엘에 몸담았던 이들로부터 모뉴엘의 민낯을 들어봤다.

“ 2012년 7월 국세청에서 세무조사가 있었다. 그때 회사를 바로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같은 달 수출입은행이 모뉴엘을 히든 챔피언으로 선정하면서 자금난을 넘기고 이 지경까지 왔다.”
2012년 10월, 기자의 휴대폰에 낯선 번호가 찍혔다. “(당신이) 쓴 기사를 보고 전화했다. 한번 만나고 싶다”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약속 장소에 나갔을 때 그는 “당신이 취재했던 그 업체에서 일했다. 이상한 것을 느끼지 못했나”라며 “그 업체는 문제가 많다. 한번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기자를 만난 취재원은 그 업체의 문제점을 알려주는 증거물은 내놓지 못했다. 별다른 자료없이 “문제가 많으니 특정 기업이나 인물을 취재해 보라”고 말하는 취재원이었던 셈. 별다른 소득없이 취재원과 헤어졌고, 그 업체에 대한 기억은 지워졌다. 이날 기자를 찾아온 사람은 모뉴엘에서 일했던 전직 부장 A씨였다.


설립 7년 만에 매출 1조원의 신화를 썼던 모뉴엘 박홍석 대표는 위장수출과 재산도피 혐의로 구속됐다
모뉴엘은 언론과 정부기관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기업이었다. 2007년 가전제품박람회(CES)에 출품한 홈씨어터PC가 빌 게이츠로부터 칭찬 받았다고 알려지면서 모뉴엘은 기술과 혁신을 상징하는 중소기업으로 부상했다. 결과물도 좋았다. 홈씨어터PC로 미국과 중국에 200만 대를 수출해 수천억원을 벌어들인 중견기업으로 주목 받았다. 매출의 90% 이상을 수출에서 벌어들인다는 한국의 히든 챔피언은 이후 로봇청소기로 성공신화를 이어나갔다. 이 중심에는 2007년 모뉴엘을 창업해 7년 만에 1조원의 매출 신화를 썼던 박홍석 대표가 있다. 하지만 현재 박 대표는 위장수출과 재산도피 혐의로 구속됐다. A씨의 말이 사실로 드러난 것.

지난 10월 31일 관세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박 대표는 2009년 1월부터 2014년 7월까지 3조2000억원 상당의 홈씨어터PC 120만 대를 허위수출하고 446억원의 재산을 해외에 도피한 혐의를 받았다. 이 사건으로 박 대표를 포함해 신모 부사장과 강모 재무이사가 구속됐다.

모뉴엘 사태가 터진 후 모뉴엘에 몸담았던 인사들을 만나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2년 전 기자를 찾아왔던 모뉴엘 전직 부장 A씨도 다시 만났다. 기자가 만난 모뉴엘 인사들은 “아쉽다. 기술력을 갖고 있는 중소기업 모뉴엘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있었다”고 토로했다.

A씨는 “미디어 기능을 강화한 홈씨어터PC는 실제 시장에 있는 제품”이라며 “미국 소비자가 미디어룸을 만들 때 함께 들어갔던 제품으로 문제는 판매량을 속인 것”이라고 했다. 그는 “2012년 7월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할 때 회사를 바로 잡을 수 있었지만 같은 달 수출입은행이 모뉴엘을 히든 챔피언으로 선정하면서 자금난을 넘기고 이 지경까지 오게 됐다”고 덧붙였다.

지난 10월 27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박병석 의원은 “국세청은 2012년 세무조사에서 모뉴엘의 탈세 혐의를 확정하고 추징했지만 가공매출로 부당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금융위나 금감원에 알리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당시 국세청은 회사에 100억원, 박홍석 대표에게 50억원 정도를 추징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뉴엘에 몸담았던 B씨도 “2012년은 모뉴엘에 중요한 해였다”고 말했다. “그해 말 박홍석 대표가 임원들을 불러 회의를 한 적이 있다. 회사를 분할하자는 요지였던 것 같다. 하지만 당시 임원회의에서 결정을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모뉴엘의 사기가 중단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는데 아쉽다.” 모뉴엘의 매출액은 서류상으로 2010년 2900억원, 2011년 4600억원, 2012년 8200억원으로 수직상승 중이었다. A씨는 “매출액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면서 박 대표와 일부 임원들이 스스로 제어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A씨와 B씨는 모뉴엘 사태가 터지기 전에 퇴사했다. 회사의 운영이 뭔가 심상치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들이 가장 황당했던 것은 실체를 알 수 없는 공장이었다. 수천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중견기업인데도 회사 내에서 공장의 위치를 아는 이가 거의 없었던 것. “직원들마다 이야기가 달랐다. 누구는 공장이 시흥에 있다고 하고, 누구는 안산에 있다고 하더라”라고 A씨는 설명했다. 지난 10월 서울세관이 홍콩 모뉴엘 공장을 찾았을 때도 문이 닫혀 있었다고 한다. 모뉴엘 공장은 은행 실사 때만 운영됐다고 밝혀졌다.

모뉴엘 전직 인사들이 의심하는 또 다른 점은 ‘아하닉스’다. 박 대표가 2004년 인수한 미국 기업으로 모뉴엘의 전신이다. B씨는 “아하닉스를 조사해보니 미국 한인사회에 TV를 팔았던 유명기업이었는데, 부도가 나 대표가 도망 갔다”고 했다. “모뉴엘과 스토리가 비슷하더라. 모뉴엘에 몸담았던 사람들끼리는 박 대표가 아하닉스에서 배운것 아니냐고 추측하고 있다.”

아하닉스 사태와 판박이


모뉴엘의 사기가 여기까지 온 것은 대다수의 직원과 임원이 회사 재무상황을 정확히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박 대표를 포함한 핵심 측근만이 회사 상황을 자세히 알고 있었다.

회사 고위 임원들은 직원들에게 장밋빛 소식만 전해줬다. 대표적인 것이 제주도 사옥이다. 지난 2월 오픈한 모뉴엘 제주사옥은 보통의 중견기업이라면 꿈꾸기 어려운 프로젝트였다. 2012년 모뉴엘을 취재했을 당시 강모 재무이사는 기자에게 “직원 자녀가 국제학교 입학시 지원하고, 의료타운을 조성하는 등 직원들이 제주도에서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다양한 복지혜택을 주겠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뉴엘 임원이 자랑했던 제주도 사옥은 분위기가 썰렁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도 사옥 분위기를 알아보기 위해 책임자에게 전화해봤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모뉴엘의 또 다른 공동창업자이자 모뉴엘 제품의 디자인을 책임졌던 원 모 부사장도 퇴사한 상황. 원 모 부사장을 알고 있는 부장 출신의 C씨는 “원 부사장이 공동창업자이지만 모뉴엘 지분은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는 잘 모른다”고 답변했다.

이외에도 제주도 사옥 프로젝트를 책임졌던 임 모 부사장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모뉴엘에 몸담았던 대다수의 임직원은 모뉴엘 사태가 터진 후 언론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제2의 모뉴엘 사태를 막으려면… - 김현준 포브스코리아 기자


은행들의 안일한 대출심사 관행이 ‘모뉴엘 사태’의 주 원인으로 지목된다. (왼쪽부터)모뉴엘 사태로 손해를 입은 기업은행, KDB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외환은행.
모뉴엘 사태의 후폭풍이 금융권을 강타하고 있다. 금감원은 모뉴엘과 거래한 은행들에 대해 현장검사를 진행 중이다. 검찰은 부실대출 의혹에 연루된 한국무역보험공사(이하 무보)와 수출입은행(이하 수은) 직원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금융당국 일각에서는 히든 챔피언 제도를 비롯해 무역금융시스템 전반을 구조적으로 개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금융권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곱지 않다. 수백만원을 빌리려는 개인에게는 깐깐하게 대출조건을 따지던 은행이 기업에게는 서류 한 장 달랑 받고 수백억원의 돈을 융통해줬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물론 모뉴엘 사태를 일으킨 주범은 박홍석 대표를 위시한 회사 임원들, 그리고 이들로 부터 뇌물을 받고 사기행각에 참여한 금융당국 관계자들이다. 그러나 이들 몇 사람이 천문학적인 사기사건을 일으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무보와 은행의 구멍 뚫린 대출심사가 있었다.

모뉴엘은 사후송금(Open Account, O/A)방식을 이용해 사기대출을 받았다. O/A방식은 수출기업이 국외 수입자와의 외상매출거래로 발생한 수출채권을 은행에 매각해 현금화하는 것이다. 국외 수입자가 만기일에 수출대금을 상환하지 못하더라도 은행이 수출기업에 수출대금을 청구하지 않는 조건으로 진행한다. 이 때문에 은행은 O/A방식 수출채권을 매입할 때 선적서류 사본, 수출계약서원본, 수출채권 양도에 따른 대금지급지시서등의 서류를 꼼꼼히 챙겨야 한다.

모뉴엘 사태에 휘말린 은행들의 규모로 미뤄볼 때, 적어도 서류를 확인하지 못해 벌어진 일은 아닐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그 이상의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번 사태를 지켜본 금융업계 관계자들은 “피해 은행들이 모뉴엘의 재무제표만 꼼꼼히 살펴봤어도 피해 규모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수천억원 규모의 대출이니만큼 현장 확인이라는 원칙을 지켰다면 피해를 사전에 방지하는 것도 가능했으리라는 얘기도 나온다.

이에 대해 피해 은행들은 억울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피해 은행의 한 관계자는 “기업이 사기 치겠다고 마음먹으면 지금과 같은 서류위주의 심사로는 사실상 막을 방법이 없다”며 “모뉴엘의 외부감사를 맡은 회계법인과 수출채권을 보증한 무보가 사전에 걸러냈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 항변했다. 그러나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에서 피해 은행들의 해명은 힘을 잃는다. 이와 관련, 최근 감사원이 모뉴엘의 사기대출과 유사한 사례들을 지목하며 관련은행들에 경고 메시지를 보낸 일이 있어 눈길을 끈다.

금융업계에 따르면 감사원은 지난해 9월부터 두 달 간 무보와 수은,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들을 대상으로 한 ‘수출입 및 해외투자 금융 지원실태’에 대한 감사 결과를 지난 5월 해당 기관들에 통보했다. 그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은행은 2012년 모 수출업체의 수출채권 매입하는 과정에서 관련 서류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약 893만 달러(약 98억원)의 손해를 입은 바 있다. 수출채권 매입은 모뉴엘과 동일한 O/A방식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이 같은 지적에도 기업은행은 수출채권 매입 과정에서 달라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결국 모뉴엘 사태로 1508억원을 피해봤다. 감사원의 주의요구를 무시한 것은 수은도 마찬가지다. 수은은 2011년 O/A방식으로 발생한 수출채권을 매입했다가 약 45억원을 떼였다. 당시 감사원은 “앞으로 허위 수출채권을 매입하는 일이 없도록 구매주문서 및 수출신고필증에 대한 확인 업무를 철저히 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이를 간과한 수은은 이번에 1135억원의 손해를 입게 됐다.

모뉴엘 사태의 핵심인 무보도 당시 감사원으로부터 수출신용보증제도를 보완하라는 지적을 받았다. 감사원은 은행이 무보의 보증서만 믿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채 수출기업에서 위조·허위 수출서류로 O/A방식의 수출채권을 매입할 경우 고스란히 무보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감사원의 경고는 현실화됐고 무보는 이번 사태로 3300억원을 떼일 위기에 처했다.

옛 속담처럼 열 사람이 지켜도 한 사람의 도둑은 막기 어려운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지키는 사람들이 눈에 불을 켜고 있다면 적어도 같은 곳을 두 번 털리는 것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201412호 (2014.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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