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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토스벤처스 한 킴 대표 - “투자 없이도 잘한다는 열정 보여달라” 

 

최영진 포브스 차장 사진 지미연 기자

▎군인 출신의 이색경력을 가지고 있는 한 킴 대표는 한국 스타트업계에서 가장 손잡고 싶어하는 벤처캐피탈리스트다.
알토스벤처스는 요즘 한국 스타트업계가 가장 손잡고 싶은 벤처캐피탈이다. 실리콘밸리에 설립된 벤처캐피탈이 한국 스타트업계에 꾸준하게 투자하는 이유는 한국계 미국인 한 킴 대표 덕분이다. “1조원 이상의 가치가 있는 스타트업을 계속 만드는 게 목표”라는 김 대표의 계획은 한국에서 성공적으로 진행 중이다.

“첫 인상은 벤처캐피탈리스트가 아니라 옆집 아저씨였다. 그런데 몇 마디 나눠보고 깜짝 놀랐다.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식견이 느껴졌다.”

소셜데이팅 서비스를 운영 중인 김도연 대표는 유명한 벤처캐피탈(이하 VC) 알토스벤처스(Altos Ventures) 한 킴(Han J. Kim, 한국 이름 김한준·49) 대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땀에 약간 젖은 캐주얼 복장의 한 남자가 가방을 손에 들고 웃으면서 사무실에 들어 왔다. 김 대표는 당황했다. 그동안 숱하게 만났던, 양복을 입은 딱딱한 모습의 벤처캐피탈리스트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저 길거리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아저씨처럼 보였다. “내가 예상했던 모습은 아니 었다”고 김도연 대표는 회고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또 한번 놀랐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지식과 연륜이 느껴졌고, 김 대표가 운영하고 있는 소셜데이팅 서비스의 한계와 성장성까지 정확하게 지적했기 때문이다. VC 관계자들이 그동안 보여주곤 했던 공격적인 태도와 언사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부담없이 기대고 싶을 정도로 포근한 기운이 넘쳤다. 김 대표는 3~4년 전 김한준 대표와 인연을 맺은 후 힘들 때나 고민이 생겼을 때마다 그와 상의하는 관계가 됐다. “김한준 대표를 만난건 정말 행운이었다”고 말할 정도다.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이들은 알토스벤처스의 김한준 대표 이야기가 나오면 “지금까지 만나 본 VC 사람과는 정말 다르다”라거나 “언제든지 상의할 수 있는 멘토다” 등의 칭찬을 쏟아낸다. 그만큼 김한준 대표는 스타트업계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실리콘밸리에 설립된 알토스벤처스는 요즘 한국 스타트업이 가장 투자받고 싶어하는 VC 중 하나다. 기업 가치를 높게 평가해주는 VC를 만나도 알토스벤처스를 선택하는 스타트업이 나올 정도다. 상황이 이쯤되니 김한준 대표의 하루 일정은 바쁘기만 하다. 하루에도 2~3명의 스타트업 창업자를 만나는 것이 예사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가서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한 장교 출신 이력을 가지고 있는 김한준 대표에게 그가 보는 한국 스타트업에 대해, 그리고 한국 스타트업의 매력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김 대표는 기자에게 “한국에서 스타트업 붐을 느낄 수 있다. 능력있는 창업자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 대표는 한 달 중 2/3는 한국에 머물고, 나머지 시간에는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알토스벤처스의 운용자금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1996년 실리콘밸리에 설립됐는데, 현재 운용자금은 2000억원~3000억원 정도 된다. 한국 스타트업에 투자한 600억원 규모의 펀드도 운용 중이다. 운용자금 규모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 투자를 할 수 있는 자금이 얼마인지가 중요하다. 미국과 한국에서 100억원~200억원 정도는 언제든 투자할 수 있는 자금을 가지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활동하는 VC가 왜 한국 스타트업에 투자하게 됐나.

2006년 판도라TV에 투자를 하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됐다. 당시 유튜브가 인기몰이를 하는 상황이었고, 경쟁자가 누가 있는지 살펴보고 있었다. 그때 판도라TV를 소개받았다. 이용자가 접속하기 힘들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에 와서 직접 봤더니 미국 비디오 업체보다 경쟁이 높다는 판단이 들어 투자를 결정했다. 그때 판도라TV를 계기로 한국 스타트업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당시 알토스벤처스가 운용하는 자금이 1600억원 정도였는데, 그중 15%가 한국 스타트업에 투자 가능한 금액이었다. 2008년 한국 스타트업 3곳에 투자를 하면서 한국 투자 비중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국 투자 펀드를 독립적으로 만들기로 하고 2014년 9월 600억원 규모의 ‘알토스 코리아 오퍼튜니티 펀드’를 만들었다. 600억원 펀드가 소진되면 1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만들 계획이다.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이력도 한국 스타트업에 투자를 하게 된 계기가 되지 않았나?

맞다. 나는 한국인이기 때문에 한국이 낯설지 않다. 투자를 하는 데 도움이 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에 좋은 스타트업이 많이 나오고 있기 때문에 투자를 계속하게 됐다고 말하는 게 더 맞다. 알토스벤처스는 미국 실리콘밸리와 한국 스타트업에만 투자하고 있다. 내가 한국에 투자하는 타이밍도 좋았다. 한국의 스타트업은 PC에서 모바일 베이스로 바뀌었다. PC 시대의 절대강자였던 네이버는 모바일 시대에는 강자가 아니다. 한국 스타트업에 기회가 많이 생기고 있다고 본다.

알토스벤처스가 투자한 한국 스타트업은 몇개 업체인가?

모두 18개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스타트업계에서 알토스벤처스는 함께 일하고 싶은 곳으로 꼽히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알토스벤처스는 스타트업 경영진과 대화를 많이 하는 곳으로 꼽힌다. 다른 VC와 달리 우리는 굉장히 다양한 채널을 통해 창업자들과 많은 이야기를 한다. 그게 우리 성격에 맞는다. 흔히들 VC가 갑(甲)이라고 하던데, 우리는 동등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 점들이 미국에서도 좋게 평가받고 있다.

한국 스타트업에 투자했다가 회수한 업체가 있나?

딱 한 개 업체다. 2008년 200만 달러를 투자했던 네이블커뮤니케이션스가 코스닥에 상장하면서 원금과 이익금을 회수했다. 지분의 반은 팔았고, 반은 여전히 가지고 있다.

알토스벤처스가 투자한 스타트업은 대부분 한국에서 유망한 기업으로 꼽히는 업체들이다. 대표적으로 쿠팡, 배달의민족등이다. 모바일을 통해 방을 구하는 서비스인 직방, 인터넷 구인구직서비스 잡플래닛, 모바일 소셜데이팅 서비스 이음,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비트패킹 등도 주목받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알토스벤처스가 투자한 스타트업 중 문을 닫은 곳이 지금까지 한 곳도 없다는 점이다. 투자 특징은 짧은 시간에 회수하지 않고 길게 본다는 것. 10억원을 투자해서 빠른 시간 내에 20억원을 만드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대기업과 경쟁해도 밀리지 않는 스타트업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그는 “현재 쿠팡의 가치는 2조원~2조5000억원 정도다. 팔려면 언제든 팔 수 있지만, 좀 더 키우기 위해 투자를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투자 기준은 “3~5년 이내에 1조원 가치를 만들 수 있는 스타트업”이라고 했다.

김 대표가 스타트업의 규모를 키우는 것에 집중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대기업과 당당하게 경쟁할 수 있는 스타트업이 계속 나온다면 한국 사회에 큰 변화를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1월 14일 현재 다음카카오의 시가총액은 8조5000억원이다. 구직자들이 꿈의 직장이라고 불렀던 KT의 시가총액은 1월 14일 현재 7조8000억원이다. 쿠팡의 기업가치는 2조5000억원으로 평가되는데, 광고업계 1위 기업 제일기획의 시가총액은 1조9000억원이다. 김 대표는 “한국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거대한 기업이 스타트업에서 나오기 시작했다”면서 “스타트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상황이 많이 생겨야 기업을 바라보는 인식이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를 ‘사회의 혁신’이라고 설명했다. 스타트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사례들이 계속 이어진다면 수많은 이들이 창업에 도전을 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알토스벤처스와 내가 하는 일은 창업자들에게 할 수 있다고 계속 용기를 주는 것이다. 창업자들이 좀 더 큰 꿈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나의 역할이다.”

한국 스타트업의 살길은 글로벌화라는 지적이 많다.

한국 시장이 좁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그렇지 않다. 단적으로 한국의 상거래 전체 시장 규모가 130조원 정도다. 이중 전자상거래 시장 규모는 50조원 이다. 몇 년 안에 전자상거래 시장이 10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다. 이 시장에서 30%만 선점해도 수십조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다. 쿠팡이 굳이 해외에 진출해야 하나. 한국 시장 규모가 작다고 하는데, 분야마다 다르다.

스타트업이 내수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대기업과 경쟁해야 하는데.

한국에서 만난 이들 대부분이 대기업과의 경쟁을 무서워했다. 대기업에 있는 사람들은 스타트업 정도는 쉽게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런 풍토를 바꿔놓고 싶다. 우리는 대기업과 경쟁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스타트업에 투자한다. 스타트업은 자본력이 떨어진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알토스벤처스가 모든 네트워크를 동원해 도와줄 것이다. 많은 창업가들이 대기업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믿고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다.

승부사적 기질이 강한 것 같다. 미국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한 장교 출신이라서 그런가.

웨스트포인트와 군대에서 프로페셔널한 태도를 배운것 같다. 웨스트포인트에 다닐 때는 소련이 존재했던 시절이다. 소련의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이 웨스트포인트에서 교육을 받기도 했다. 그들과 헤어질 때 ‘절대 전쟁터에서는 만나지 말자’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군인은 전쟁터에 나가면 최선을 다해 싸워야 한다. 어떤 역할이 주어지든지 최선을 다하는 태도를 웨스트 포인트와 군대에서 배웠다.

김 대표는 초등학교 6학년 1학기를 마치고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갔다. 1980년대 당시 젊은이들의 엘리트코스로 꼽히는 웨스트포인트에 입학했다는 소식은 그가 살았던 시카고에서도 뉴스가 될 정도였다.

동양에서 온 한 청년이 웨스트포인트 입학을 꿈 꿨던 이유는 뭘까. 그는 “사회를 위해서 무언가를 하고 싶었고, 리더십 능력도 키울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웨스트포인트에 입학할 당시 경쟁률은 10:1. 미국 대학에서 이 정도의 경쟁률을 기록한 곳은 전체 대학의 10%도 안됐다. “겁도 없이 선택했는데, 막상 겪어보니 버티기가 상당히 어려웠다”고 회고했다. 그는 1987년 졸업한 뒤 주한미군으로 2년을 보냈고, 이후 미국 공병대 본부로 발령이 났다. “한국에서 일할 때는 정말 재미있었다. JSA에서 근무도 했고, 한국에서 홍수가 나서 대민봉사 활동도 해봤다. 별의별 작업이 많았다. 하지만 미국 공병대 본부로 옮겼더니 너무 갑갑했다.”(웃음)

그는 군대에서 별을 달고 싶은 포부가 있었지만,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이 적성에 맞지 않았다고 했다. 제대 후 미래를 고민하던 그에게 웨스트포인트를 나온 선배가 ‘MBA’를 권유했다. 김 대표는 스탠퍼드대학교 MBA 과정을 밟았고, 그곳에서 만난 친구와 함께 컨설팅사를 창업했다. 당시 나이 29살이었다. 그는 “컨설팅 일을 할 때도 괜찮은 평가를 받았다”며 웃었다. 이후 알토스벤처스 설립 멤버로 참여하면서 그는 벤처캐피탈리스트로 일하기 시작했다.

예상보다 한국 말을 잘한다.

아직도 영어가 더 편하다.(웃음) 그런데 한국에서 일을 많이 하다 보니까 해가 갈수록 한국어 실력이 쑥쑥 늘고 있다.

한국에 스타트업 붐이 일고 있다고 보는가?

그렇다. 1990년 말에 불었던 한국의 벤처 붐과는 다르게 스타트업 붐은 오래 지속될 것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와 같은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생태계를 말하는 것인가.

성공했던 창업가들이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분위기가 많아지고 있다. 네오위즈 창업자인 장병규, 다음 공동창업자 이택경, 이니시스 창업자 권도균 등이 모두 VC를 만들고 후배에게 투자하고 있다. 실리콘밸리가 저렇게 성장할 수 있는 이유는 돈을 번 사람들이 초기 스타트업을 밀어주는 생태계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3~4년 전부터 한국에도 그런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다.

스타트업이 VC의 투자를 받으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나.

투자를 받았다고 성공한 게 아니다. 투자를 받지 않아도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성공한 창업자들을 보면 정말 1주일에 100시간씩 일하면서 경쟁자를 이겨내는 방법을 고민한다. 편안하게 일하면서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 글 최영진 포브스코리아 기자 사진 지미연 기자




201502호 (2015.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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