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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 I] 박영렬 한국경영사학회장 - 한국 기업가들, 창업주의 초심 계승해야 

 

글 나권일 포브스코리아 편집장·사진 원동현

▎박영렬 교수는 과거의 창업주나 경영자들이 어떤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해 기업을 성장시켰는지, 그리고 기업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어떤 전략과 지혜를 찾아냈는지를 연구하면 미래를 대비 할 수 있다고 했다.
박영렬(58) 한국경영사학회장을 지난 2월10일 그가 재직하고 있는 연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연구실에서 만났다. 한국경영사학회 14대 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이번 특별기획과 관련해 포브스코리아에 많은 아이디어와 자료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포브스코리아와 1년간 공동기획을 진행할 경영사학회를 대표해 그가 생각하는 기업가정신과 경영사학에 대한 고견을 들어봤다.

최근에 중국 출장을 다녀오신 것으로 압니다.

경영대학원 세미나 참석차 상하이에 다녀왔어요. 한마디로 뭐라고 할까요. 중국의 기업인들에게서 우리나라가 본격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의 그런 분위기가 느껴지더라고요.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그런 역동성이라고 할까요. 중국 기업가들의 도전정신과 열정을 눈으로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중국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기업도 노령화되고 기업가정신까지 고령화된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요.

상당히 충격을 받으셨나 봅니다.(웃음)

국내 대학에서 경영학을 막 시작할 때인 60~70년대만 하더라도, 우리 CEO들이 선진 경영학이라는 것을 접해보지 못했으니까 강의시간에 뭘 들어도 재미가 있고, 뭔가 이것을 활용해서 제대로 해봐야겠다는 의욕이 충만했잖아요. 지금 중국이 딱 그 모습이더라고요. 야간 MBA과정을 공부하는 강의실에 가봤더니 출석률이 100%예요. 낮에는 일하고 야간이나 주말에 MBA 수업을 받는데도 얼마나 진지하고 학구열이 높은지 몰라요. 배움을 통해서 기업 성장의 단초를 찾으려는 의욕이 얼굴에 넘쳐나더라고요. 초창기 우리나라 창업주들이 조국을 위해서 우리가 가지지 못한 것들을 어떻게 하면 이뤄나갈 것인가를 연구했는데, 지금 중국 기업가들이 그것을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기업가정신을 우리 나라가 아닌 중국에서 피부로 느끼고 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바로 엊그제 연세대 경영대학원장 임기를 마치셨죠! 피부로 실감하셨다는 말씀이 맞을 듯 합니다.

지금 중국은 우리가 잃어버린 기업가정신과 도전정신을 투영해 볼 수 있는 창(窓)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중국을 단순히 경쟁상대라고 보기 보다는 우리가 경험했던 좋은 과거를 찾을 수 있는 배움의 장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면에서 우리가 겸손해져야죠. 왜 타산지석(他山之石)이라는 말도 있잖아요.(웃음)

기업 승계를 고민하는 기업인들


▎한국경영사학회는 그동안 한국기업들의 성장사연구를 통해 기업의 역사를 정립하는 역할을 해왔다. 14대 회장을 맡은 박영렬 교수도 국내 대기업의 창업주들에 대한 심도깊은 연구를 진행해왔다.
우리 기업들이 왜 초심을 잃어버렸다고 보십니까?

초심을 잃을 수밖에 없는 게, 20~30대 나이었던 창업주와 2세 경영인들이 지금 60~70대가 됐잖아요. 나이가 70~80대가 되면 승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요. 대기업이건 중소기업이건 대부분의 창업주들이 그런 고민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아직 현직에 있긴 하지만 자꾸 고령화 되니까 자녀들에게 기업을 승계해야 할지, 전문 경영인인게 맡겨야할지 결정할 시기가 점점 다가오고 있는 거죠.

창업주의 정신을 2~3세가 잘 계승해서 또 다른 도전정신으로 기업을 한 단계 도약시킨 사례도 많지요.

삼성그룹이 바로 그런 사례죠. 이병철 선대회장에 이어 2세인 이건희 회장이 기업을 키워놨는데 초창기와 비교해 보면 엄청나게 성장했죠. SK그룹도 최종건 회장이 창업해 최종현-최태원 회장으로 이어지면서 성장했고, LG그룹도 구인회-구자경-구본무 회장으로 이어지면서 외형과 내실을 키웠습니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대부분 3세 경영으로 승계가 이뤄지고 있는 시점인데, 할아버지·아버지대의 창업정신을 어떻게 계승해서 기업경영에 적용해 가느냐 하는 문제가 중요해졌습니다. 그것이 경영사학을 연구하는 저희들의 연구 과제이기도 하고요.

그런 맥락에서 지금 우리에게 기업가정신의 회복이 시급하다고 보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올해가 벌써 해방 70년이잖아요. 초창기 창업정신이 많이 사라졌기 때문에 변화의 모멘텀을 찾아야 할 때가 됐어요. 지금에 비하면 그때의 창업주들은 참 순수했다고 할까요. 한마디로 나라를 위해 사업을 한다는 사업보국의 정신이 있었습니다. 옛날 기업들은, 요즘 우리가 CSV(Creating Shared Value, 공유가치창출)라고 얘기하는 부분이 확고했어요. 쉽게 말해서 옷이 없었기 때문에 국민들에게 옷을 입히기 위해서 섬유사업을 시작했듯이 국민이 따뜻하게 밥을 먹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밑바탕에 있었습니다.

물론 기업은 이익을 내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한다는 목표가 있기는 하지만, 그 목표를 달성함과 동시에 그것을 통해서 이웃과 국민들에게 무엇인가를 도우려는 생각이 확고했지요.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먹고 사는 걱정은 덜었지만 더 나은 삶, 더 많은 사람들이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기업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조금 소홀한 측면이 있습니다.

한국경영사학회는 그동안 어떤 일들을 해왔는지요?

한국기업들의 성장사연구를 통해 기업의 역사를 정립하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우리나라의 어지간한 대기업은 모두 연구했지요. 기업연구 분야는 ‘기업가’사(史)와 ‘기업’사(史)가 있는데, 기업가사는 기업성장의 역사로서 창업주들의 철학과 기업가정신을 연구합니다. 저희가 오랜 세월 연구한 바에 따르면 어느 조직이건 사회건 역시 리더가 어떤 모습으로 방향으로 어떻게 끌어나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는 기업가와 리더십에 대한 교육이 미흡한 것이 현실입니다. 때문에 경영학과 커리큘럼에 기업가정신을 주요과목으로 설정해 가르칠 필요가 있습니다.

경영학을 제대로 공부하려면 과거의 창업주나 경영자들이 어떤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해 기업을 성장시켰는지, 그리고 기업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어떤 전략과 지혜를 찾아냈는지를 연구해서 이를 바탕으로 미래를 대비 할 수 있는 훈련을 할 수 있어야합니다. 우리가 경험해온 역사 속에서 미래의 트렌드가 있을 수 있는데 우리는 그런 것들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나 깊이가 아직까지는 많지 않거든요. 아직 우리는 외국처럼 앞으로 10년 후의 시장을 예측하고 시장을 리드하는 혜안이 부족하다고 봅니다.

결단력과 리더십이 기업가정신의 핵심

‘기업가정신’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무엇일까요?

한국의 창업주들의 사례를 보면, 창업주들은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미래를 내다보고 자신만의 확신과 신념을 가지고 결단을 내립니다. 그리고 반대가 있더라도 주위 사람을 설득해냅니다. 리더로서 팔로워를 이끄는 것. 즉, 결단을 내리고 열정과 도전정신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기업가 정신이라고 봐야죠.

창업주의 기업가정신을 오늘에 되살려 지금의 경제위기를 극복할 지혜를 찾아보자는 것이 이번 공동기획의 취지인데요...

한국의 경영사를 연구해보면, 옛날 창업주들은 남을 위해, 내가 도와주고 싶은 이웃을 위해 기업활동을 하고 사업을 고민했습니다. 그에 비해 지금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기업을 위해 기업활동을 한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물론 환경의 변화도 있을 겁니다. 초창기에는 경쟁자들이 많이 없었지만 현재는 사업영역의 구획이 없어질 정도로 경쟁이 심해서 남을 생각할 만한 겨를이 없어졌습니다. 그래도 기업인들의나 최고경영자들은 나와 이웃들이 어떻게 하면 같이 잘 살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또 이를 위해 어떻게 공헌 할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의식이 투철할수록 더 오래 존속하고 장수하는 기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기업들이 선대 경영인들의 역사를 스토리텔링으로 재구성해 적극 홍보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없는 이야기를 가공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 중에서 어떤 흐름을, 즉 맥을 이어가는 것을 잘 정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기업과 창업주를 주제로 한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까?

“저는 ‘기업은 역사가 브랜드다’라고 생각합니다. 창업주가 허름한 집 뒤의 작은 창고에서 사업을 시작해서 지금의 글로벌 기업이 되었다고 하는, 어떤 기업가정신의 역사 즉, 스토리텔링이 있고, 10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정신을 가지고 지금까지 기업을 경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려준다면 사실 브랜드가 따로 필요 없게 되는 거죠.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에 사람들에게 이미 브랜딩이 되는 건데, 우리나라 기업가들은 아무래도 어려웠던 시절이나 역사를 잘 이야기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스토리텔링이 왜 필요할까요! 예를 들어 중국은 어마어마한 역사가 있는 나라지만 그에 비해 기업의 역사는 짧잖아요. 그런데 중국기업가들이 한국에 왔을 때 ‘한국 기업가들은 해방 이후 많은 우여곡절과 위기를 겪은 끝에 이렇게 성공했다’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경외감을 갖고 바라볼 수 밖에 없지요. 단순히 ‘한국에서 만드는 스마트폰 제품의 품질이 좋다’고 한다면 샤오미라는 회사도 노력하면 그런 스마트폰을 만들 수는 있겠지만 삼성의 역사는 만들 수 없으니까요. 때문에 우리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우리의 아름다운 스토리를 만들어서 외국인들도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유럽의 유명 기업이나 오래된 기업들을 한 번에 따라잡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그 ‘역사’ 때문입니다.

우리가 과거의 역사에서 배우지 않으면 미래를 준비할 수가 없다는 보편적인 말씀으로 들립니다.

저는 우리나라 기업가들도 유럽의 장수기업의 역사에 대해 공부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들이 어떻게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졌는지를 알게 되면 그들이 자긍심을 갖고 일류제품을 만드는 이유를 알 수 있는 거죠. 우리 할아버지가 이렇게 열심히 해서 성공했고, 나는 그 전통을 이어가고, 지켜가는 역할을 한다는 그 자부심이 바로 지금 우리 경영자들이 배워야 할 기업가정신이라고 봅니다. 한국경영사학회와 포브스코리아의 공동기획이 그런 의미에서 좋은 기업가들에게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 글 나권일 포브스코리아 편집장 / 사진 원동현

201503호 (2015.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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