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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수 이랜드그룹 회장 - 관광·소비왕국 꿈꾸는 ‘경매왕’ 

 

박성수 이랜드그룹 회장의 야망은 ‘이랜드 소비왕국’이다. 고객들이 이랜드가 만든 터전에서 의·식·주·휴·미·락을 누리길 원한다. 1980년 서울 이화여대 앞 두 평 보세의류가게로 시작한 사업은 지난해 글로벌 매출 3조원, 국내 매출 7조원으로 10조원을 넘어섰다.

▎박성수 회장은 세계 최정상의 희귀품을 모으고 있다. 의·식·주·휴·미·락 등 이랜드 6개 사업영역의 풍부한 콘텐츠를 확보하고, 세계적 규모의 박물관을 세워 해외 관광객 유치와 문화유산 보존에 나선다는 구상이다.
지난 2월 25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위치한 경매회사 네이트 디 샌더스는 미국 경제학자 고(故) 사이먼 쿠즈네츠가 1971년 받은 노벨 경제학상 메달을 온라인 경매에 부친다고 발표했다. 이 회사에 따르면 노벨상 메달이 옥션에 출품되는 사례는 종종 있지만 경제학상은 처음이다. 경매 마감은 한국 시간으로 27일 오전 10시. 최저가격은 15만 달러(1억6000만원)로 설정됐다. 아들인 폴 쿠즈네츠 미국 인디애나대 교수는 미 뉴욕타임스에 “메달은 40여 년간 금고에만 들어 있었다. 내게는 부모님의 사진과 추억이 더 소중하다”고 말했다.

크리스티·소더비 경매의 최고 고객


사이먼 쿠즈네츠는 국민소득 이론과 국민소득 통계에 관한 실증적 분석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그는 오늘날 통용되고 있는 국내총생산(GDP) 개념을 처음 도입한 학자다. 이 때문에 당초 쿠즈네츠 측은 대학이나 월가의 투자가가 낙찰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치열한 온라인 경매 경쟁 끝에 박성수 이랜드 그룹 회장이 메달을 품에 안았다. 낙찰가는 39만848달러(4억3000만원)까지 뛰었다. 1901년부터 지금까지 889명에게 주어진 노벨상 가운데 경매에 나온 메달은 5개뿐이라 경쟁자들이 그 희소성에도 주목한 것이다.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규명해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제임스 왓슨의 메달은 476만 달러에 팔린바 있다.

박성수(62) 회장은 이미 국제 경매시장에선 잘 알려진 ‘큰손’이다. 미술품 경매의 두 거인인 크리스티나 소더비를 통해 20년 전부터 유명인 소장품이나 역사적인 기념품을 조용히 사들였다. 지금까지 공개된 것만 3000여 점이 넘는다. 대표적인 소장품은 2011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881만8500달러(당시 101억원)에 낙찰한 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다이아몬드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 재클린 케네디의 진주목걸이, 영국 국왕 에드워드 7세 직위봉, 가수 마돈나와 마이클 잭슨의 무대 의상, 팝스타 비틀스가 직접 쳤던 기타와 앨범 등도 소장하고 있다.

그는 특히 영화, 야구 등에 관심이 많아 이 분야의 희귀품에 관심이 많다. 2011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경매회사를 통해 오선 웰스가 영화 ‘시민 케인’으로 1942년 받은 오스카 트로피를 86만1542달러(당시 11억원)에 사들였다. 아카데미상 트로피 28점 등 영화 관련 소장품이 7000점에 달한다. 2012년에는 미국 메이저리그의 전설적 유격수 아지 스미스가 경매에 내놓은 우승 트로피, 올스타 반지(20개), 골든 글러브(13개) 등 소장품 34개를 51만9203달러(당시 5억6000만원)에 사들였다. 브루클린 다저스 선수 60명의 친필 사인 석판화, 밥 깁슨의 올스타 트로피, 라마 호이트의 사이 영(Cy Young) 트로피도 그의 소유다. 고고학자들도 구하기 어렵다는 조선시대 영조·정조 전시품과 박정희·노태우·김대중 등 역대 대통령의 소장품 등 국내 희귀품도 여럿 갖고 있다. 박 회장의 희귀품 매입은 계열사인 이랜드월드의 전담팀에서 진행하고 있다.

경매·수집품으로 테마박물관 계획


▎강원도 속초시 켄싱턴스타호텔 애비로드 식당은 비틀스 관련 소장품이 전시되어 있다.
이랜드 측은 “박 회장은 돈의 가치보다 문화·콘텐츠의 힘을 믿고 이를 성장 동력의 핵심으로 여긴다”며 “수집한 귀중품을 바탕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박물관을 건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회사 관계자의 말이다. “희귀품을 모으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이랜드가 진행하는 6개 사업영역의 필요한 콘텐츠 확보 차원이다. 장기적으로는 세계적 규모의 박물관을 건립해 해외 관광객 유치는 물론이고 인류 문화유산을 기업차원에서 확보한다는 개념이다.” 6개 사업이란 의(의류), 식(외식), 주(건설·가구·생활용품), 휴(호텔·리조트), 미(백화점), 락(테마파크·여행)을 말한다.

실제 박 회장은 어렵게 구한 물건들을 애슐리, 켄싱턴·렉싱턴호텔 등 이랜드 각 계열사 매장 및 영업 현장에 전시해 일반인들과 공유하고 있다. 애슐리 홍대점은 뮤지션이 많은 지역 특성을 고려해 매장 전체를 ‘미국 팝 뮤지션의 전당’ 콘셉트로 꾸몄다. 서울 렉싱턴호텔은 야구, 강원도 켄싱턴스타호텔은 비틀스의 공간이며 영화의 도시 부산 서면 애슐리 매장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 역대 명작 영화에 등장한 소품들로 꾸며졌다. 애슐리 중국 5호점인 난징동루점에는 미국 5대 대통령의 개인 소장품과 팝스타의 소장품, 농구스타의 소장품 등으로 눈길을 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의아한 반응이다. ‘짠물 경영’으로 꼽히는 이랜드가 경매품을 살 때는 돈을 아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술품 수집이 기업의 비자금 조성으로 왜곡된 사건들이 많아 싸늘한 시선도 존재한다. 기업 성장과 직접적 관계가 없는 ‘전시용 물품’에 수 억 원씩 쏟는 것이 국내 기업 정서와 맞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이랜드 관계자는 “경매품의 가치를 떠나 홍보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며 “이랜드가 세우려는 테마도시에 분야별로 10~15여개의 박물관이 들어설 예정으로 이곳에 희귀품들을 전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성수 회장은 밑바닥부터 시작한 ‘자수성가’의 아이콘이다. 1953년 목포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지난 1980년 27세의 나이로 서울 이화여대 앞 2평 남짓한 매장에 ‘잉글랜드’라는 보세의류전문점을 창업했다. 이후 ‘브렌따노’ ‘헌트’ 등 중저가 의류 브랜드를 연이어 히트시키면서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1990년대 들어 인수합병(M&A)을 통해 유통과 관광 등으로 사업영역을 넓혀갔다. 다 죽어가는 기업을 인수해 숨을 불어넣어 되살린 덕분에 업계에서 ‘재활전문가’라 불린다. 지난해 글로벌 매출 3조원, 국내 매출 7조원으로 총매출 10조원을 넘어섰다. 영업이익은 6000억원을 기록했다.

“우리의 사업군은 옷 중심에서 벗어나 고객 관점에서 의·식·주·휴·미·락 등 6대 핵심 콘텐츠로 확장될 것입니다. 2020년 여러분은 세계 곳곳에서 강력한 콘텐츠들로 구성된 이랜드 테마도시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10년 전 박성수 회장이 한 말이다. 현재 이랜드그룹은 동아백화점, 렉싱턴호텔, 켄싱턴리조트, 이월드, 애슐리, 더카페, 만다린덕, K-SWISS, 티니위니, 뉴발란스 등의 계열사와 브랜드를 보유한 재계 서열 44위의 대그룹으로 성장했다. 지난해엔 프로 축구단 창단을 선언한 데 이어 화장품사업 진출을 결정했다. 유통과 패션으로 몸집을 키운 뒤 호텔과 레저로 영역을 확대해 간다는 박 회장의 시나리오를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랜드 관계자는 “돌이켜보면 박 회장이 구상한 사업 전개에서 크게 벗어난 적이 없다”며 “이미 이랜드 테마도시 조각의 절반 이상은 맞춰졌다”고 말했다.

제주도에 세상에 없는 테마파크 구상


박 회장은 이랜드가 추구하는 테마도시의 중심으로 제주도를 결정했다. 이랜드는 2013년 3월 제주도 애월읍 일대 87만5346㎡ 넓이에 복합 테마파크를 조성하는 ‘더오름 랜드마크 복합타운’ 사업자로 선정됐다. 지난해 4월 사업계획서를 제출하는 등 인허가 절차를 밟고 있다. 1단계 사업은 2017년까지 K팝 타운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어 2단계로 국제컨벤션센터와 스타 셰프 레스토랑을 설립하고, 3단계로 외국인 전용 노블빌리지를 만든다. 총 6945억원을 투자해 2022년까지 레저와 외식, 교육은 물론 박물관까지 한데 묶은 복합단지를 조성하는 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평소 박 회장은 직원들에게 “테마도시가 성공하려면 관광객들이 몰려야하는데, 그러자면 먼저 풍부한 볼거리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경매를 통해 희귀품을 모으고 있는 이유다.

이를 위해 이랜드는 제주도의 호텔뿐 아니라 리조트와 골프장 인수를 공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 레저시설을 싸게 사들인 뒤 리모델링을 통해 정상화하는 방식이다. 지난해 4월 풍림리조트 제주점을 인수했고, 6월엔 제주도 서귀포에 5성급 호텔인 켄싱턴제주호텔을 열었다. 이미 제주도 내 객실보유 1위 기업에 올라섰다. 박 회장의 여동생인 박성경 이랜드그룹 부회장은 제주도 테마파크사업에 대해 “세상 어디에도 없는 테마파크를 만들 것”이라며 “재밌는 콘텐츠로 디즈니랜드를 뛰어넘을 것”이라고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그는 “테마파크는 놀거리뿐 아니라 공연, 박물관, 유통, 패션, 외식 등 모든 분야를 아우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이랜드 소비왕국’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랜드의 제주 테마파크는 해마다 늘어나는 중국인관광객을 타깃으로 한다. 이랜드 관계자는 테마파크 건립지로 제주도를 선택한 데 대해 “이랜드 중국법인이 관리하는 1000만명의 중국 VIP들이 관광지로 제주도를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07년 본격적으로 중국에 진출한 이랜드는 현지화와 고급화 전략이 통하면서 중국 시장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중국의 경제성장도 박 회장을 도왔다. 중국 진출 이후 매출이 연 20%가 넘게 증가해 지난해 중국 매출만 2조4000억원에 이른다. 중국이랜드는 현재 249개 도시, 1070개 백화점과 쇼핑몰에 7000여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이랜드는 중국사업 성공을 테마파크로 연결하겠다는 전략이다.

최근 이랜드그룹은 중국 상하이에 제2기 복합물류센터 착공에 들어갔다. 이 물류센터는 2011년 완공한 1기에 이어 2기로 진행되는 것이며 연면적 44만㎡, 축구장 60개 규모로 그야말로 매머드급이다. 투자비만 2000억원에 달하는 이곳은 4개동으로 구성되며 2018년까지 단계적으로 완공한다. 연간 물동량은 패션의류 기준 3억3000만장에 달해 1기 물류 센터의 4배 이상 규모를 자랑한다.

중화권에서 ‘제2 성공신화’


제2기 물류센터는 중국뿐 아니라 아시아 전역으로 비즈니스를 확대한다는 박 회장의 의지를 강하게 담고 있다. 그는 2009년 베트남 국영 패션기업 탕콤, 2010년에는 인도 의류 직물 제조업체 무드라라이프스타일을 인수하며 아시아 확장에 시동을 걸어왔다. 최근엔 대만과 홍콩에 이랜드 복합관을 대규모로 오픈하며 화제를 모았다. 결국 제2기 물류센터는 아시아 전역에 상품 공급 확장을 위한 플랫폼이자 동남아시아 직원교육과 기술지원 센터가 되는 것이다. 이랜드 관계자는 “상하이 복합물류센터는 20년 전 중국 진출에 첫 걸음을 내딛은 것처럼 아시아 전역으로 사세를 확장하기 위한 포석”이라며 “아시아 각국의 이랜드 직원들이 상하이 복합물류센터에서 활발한 연수를 통해 글로벌 패션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시장에선 이랜드의 기업공개(IPO, 상장) 시점을 주목하고 있다. 의류사업은 물론 유통사업과 레저호텔사업에서도 대부분 인수합병을 통해 규모를 키운 이랜드의 부채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2014년 9월말 연결기준 총 차입금이 창사 이래 최대치인 약 4조8000억원까지 증가했다. 이 중 70%가 1~2년 내에 만기도래해 단기차입금 부담이 크다. 한국신용평가는 최근 이랜드 관련 리포트에서 차입금 증가는 높은 부채율(366.4%)의 주원인이 되고 있으며, 차입금 의존도 또한 58.3%로 부담스러운 수준”이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이랜드리테일의 국내 상장, 중국법인의 홍콩증시 상장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 조득진 포브스코리아 기자

201504호 (2015.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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