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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지는 업무용 메신저 시장 

사생활은 떼내고 협업 효과는 높인다 

박수련 기자 park.suryon@joongang.co.kr
카톡 피로감을 호소하는 직장인이 늘면서 카카오톡 대신 별도의 ‘업무용 메신저’가 기업과 직장인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카카오톡은 개인용 메신저로 쓰고 업무에 필요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메신저를 따로 쓰는 것이다.

▎중앙포토
국내 한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유모(33)씨는 밤이고 주말이고 가리지 않고 날아오는 부장의 카카오톡 메시지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내일 보고용 문서를 미리 보내라”며 날아오는 카톡 메시지에 잠자리에 누웠다가 다시 노트북을 펴기가 일쑤다. 유 씨는 “부서 단체 카톡방에서 끊임없이 울려대는 ‘까톡’ 알람 소리에 항상 긴장하고 피곤한 상태”라며 “회사 사람들과는 카카오톡 친구를 끊고 싶은데 그럴 수도 없어 짜증만 난다”고 말했다.

카톡 업무지시 차단하는 기업용 메신저 각광


▎잔디의 화면.
유 씨처럼 카카오톡 업무지시로 스트레스 받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 직장 동료나 상사로부터 수시로 날아오는 카카오톡 메시지 때문에 업무 시간이 퇴근 이후까지 연장되는 부작용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노동연구원 김기선 연구위원의 연구에 따르면 국내 직장인들이 업무시간이 아닌 휴일이나 저녁에 스마트폰 등을 이용해 회사 일을 하는 시간이 주당 11시간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6월부터 두 달간 전국 17개 시·도 제조업 및 주요 서비스업 종사자 240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다.

이런 카톡 피로감을 호소하는 직장인이 늘자 LG유플러스 등 일부 기업은 밤 10시 이후에는 카카오톡 업무 지시를 금지하기도 했다. 국회에선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6월 퇴근후 문자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 통신수단으로 업무지시를 내릴 수 없도록 하는 일명 ‘퇴근후 업무카톡 금지법’을 대표 발의했다.

이런 ‘직장 내 안티 카톡’ 흐름의 영향으로 최근에는 카카오톡 대신 별도의 ‘업무용 메신저’가 기업과 직장인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카카오톡은 개인용 메신저로 쓰고 업무에 필요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메신저를 따로 쓰는 것이다. 특히, 국내외에서 각광을 받는 업무용 메신저들은 사생활 보호 효과 뿐만 아니라 ‘모바일 워크’나 ‘협업’에 특화된 다양한 도구를 제공한다. 대용량 문서를 손쉽게 공유하거나 업무 주제별로 다른 대화방을 편하게 관리할 수 있고 정보 보안 수준도 높다. 이런 업무용 메신저들은 보통 직원 1인당 월 1만원 안팎의 사용료를 내고 월·년 단위로 빌려 쓰는 클라우드 기반의 소프트웨어 서비스(SaaS·Software as a Service)들이다.

국내에선 스타트업 토스랩이 개발·운영 중인 업무용 메신저 ‘잔디’가 인기다. 잔디는 서비스를 시작한 지 14개월 만인 지난달 누적 가입 팀(기업) 규모가 6만 개를 돌파했다. 한국어와 중국어(간체ㆍ번체), 일본어, 영어를 지원하며 아시아 기업들의 오피스를 공략 중이다. 업무 주제에 따라 다수의 채팅방을 손쉽게 만들 수 있고, 대용량 문서를 손쉽게 공유하고 전용 파일함에 보관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구글 드라이브나 드롭박스 등 외부 대용량 저장공간과 연동도 된다. 현재 잔디는 티켓몬스터·YG엔터테인먼트·KOTRA IT사업단 등 다양한 기업(팀)들이 업무에 쓰고 있다.

프랜차이즈 피자 업체인 알볼로에프앤씨도 그중 하나다. 지난해 12월 잔디로 직장 내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을 바꿨다. 이전까지는 카카오톡이나 네이버 밴드로 업무 관련 연락을 주고 받았다. 이 회사 총무팀 김현우 대리는 “다른 SNS와 달리 대화 내용 및 공유한 파일 등 업무용 데이터가 오래 저장되고, 커뮤니케이션 통로가 하나로 정리돼 업무 효율이 높아졌다”며 “새로운 직원이 업무에 추가돼도 기존 흐름을 보고 파악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잔디는 지난해 퀄컴의 벤처투자사 퀄컴벤처스가 주관하는 글로벌 스타트업 투자대회에서 한국 스타트업 최초로 우승했다. 올해초엔 퀄컴벤처스·HnAP 등으로부터 30억원의 투자도 유치했다. 다니엘 챈 토스랩 대표는 “잔디를 통해 아시아권 직장인들의 업무 생산성을 높이고 활기찬 업무 환경을 만들겠다”며 “동남아에 진출해 지속적인 성장을 이끌어 내겠다”고 말했다.

이메일 이어 사무실 풍경 바꾸는 메신저 문화


잔디 외에도 국내에 이 시장을 노리는 스타트업은 더 있다. 클라우드가 확산되고 협업을 지향하는 기업들이 늘면서 관련 소프트웨어의 국내 시장은 매년 20% 이상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IDC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통합커뮤니케이션 및 협업 툴 관련 소프트웨어 시장은 지난해 495억원에서 2019년 1075억원으로 커진다. 업무용 메신저 ‘그랩’을 개발한 스타트업 파트너의 마현규 대표는 “자체 그룹웨어를 가진 대기업의 내부 시스템과 연동해 구축할 수 있고 근태 표시 기능으로 업무 피로감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랩은 지난 7월 신세계그룹의 IT서비스를 하는 신세계I&C와 손잡고 그랩을 공식 출시했다. 현재 스타벅스와 신세계L&B, 대덕전자 등에서 쓰고 있는 그랩은 각 지원의 근태 상황을 연동한 게 특징이다. 동료의 휴무·출장·외근 등 상황을 표시해 업무용 메신저의 스트레스를 줄였다.

보안 소프트웨어 ‘알약’을 서비스하는 이스트소프트가 지난해 출시한 ‘팀업’도 현재 9400여 개 기업(팀)이 쓰고 있고, PC 시절 MSN과 경쟁했던 SK커뮤니케이션즈의 네이트온도 ‘팀룸’이라는 협업용 메신저를 서비스 중이다.

기업용 소프트웨어 시장이 큰 미국에선 페이팔의 임원 데이비드 삭스 등이 2008년 창업한 ‘야머’가 유명하다. 야머는 모바일 기기에 편하게 설치해 쓸 수 있는 편리함을 무기로 인기를 끌었다. 이메일 대신 실시간으로 문서·정보를 공유하며 팀워크를 키워 직장 내 기업문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평가를 받았다. 오피스 소프트웨어 거물인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 2012년 12억 달러에 야머를 인수해 손에 넣었다.

‘이메일 킬러’로 불리는 슬랙 급부상


최근엔 스타트업 ‘슬랙’이 기업용 메신저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사진·비디오 공유서비스 플리커를 창업했던 스튜어트 버터필드가 2014년 서비스를 시작한 슬랙은 ‘통합’이 특징이다. 구글 드라이브나 드롭박스, 모바일결제 시스템 등 기업들이 업무에 활용하는 다양한 외부의 클라우드와 소프트웨어를 슬랙에서 불러와 문서 작성부터 프리젠테이션까지 끝낼 수 있다. 또 직장 내 구성원들에게 정보가 분산돼 있는 e메일과 달리 슬랙은 구성원이 업무에 필요한 각종 파일과 대화 내용 등을 검색하고 공유할 수 있다. 원래 게임을 개발하던 슬랙 창업팀은 샌프란시스코·뉴욕·벤쿠버 등에 분산돼 있던 팀의 정보 공유 수단으로 슬랙을 만들었다가 아예 창업 아이템을 바꿔 지난 4월 기준 기업가치가 36억달러(약 4조1300억 원)에 달하는 기업으로 키웠다. MS는 야머에 이어 올해 초엔 슬랙 인수를 검토하기도 했다. MS는 최근 슬랙 대 항마로 키울 기업용 메신저 ‘스카이프 팀’을 개발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이런 업무용 메신저가 확산되면서 직장인들의 일하는 방식도 크게 바뀌고 있다. 특히 지난 반세기동안 직장인의 데스크톱을 지배해온 이메일이 이제 저물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실제로 ‘이메일 킬러’로 불리는 슬랙은 “슬랙을 쓰는 기업 고객들의 직장 내 이메일이 48.6% 줄었다”고 밝혔다. 아시아의 슬랙을 표방하는 잔디도 “잔디를 쓰는 기업의 이메일 수발신 건수가 잔디 사용 전 대비 80% 가량 줄었다”고 밝혔다. 타자기, 복사기, 팩스, 이메일로 이어지는 사무용 혁신 기술에 모바일 메신저가 추가될 가능성이 커졌다.

- 박수련 기자 park.suryon@joongang.co.kr






201610호 (2016.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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