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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기이사 이재용’의 승부수 

박태희·임미진 기자 adonis55@joongang.co.kr
삼성그룹에 ‘이재용 시대’가 열렸다. 이 부회장은 10월 27일 이사회에서 등기이사로 선임됐다. 지난 2008년 4월 이건희 회장이 퇴진한 이후 8년여 만에 오너 일가의 구성원으로는 처음으로 삼성전자 사내이사에 이름을 올렸다. ‘등기이사 이재용’이 헤쳐나가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

▎삼성그룹에 ‘이재용 시대’가 열렸다. 전문가들은 이재용 부회장이 당장 넘어야 할 장애물로 갤럭시노트7 단종 사태를 꼽는다. / 중앙포토
이재용 부회장은 부친의 시대와는 다른 경쟁 환경에서 어떤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것인가. 전문가들은 우선 당장 넘어야 할 장애물로 갤럭시노트7 단종 사태를 꼽는다.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주력 제품군의 핵심 모델이 품질 문제로 단종된 초유의 사태 한가운데서 등기이사로 등판했다. 경영학자들은 “타이밍이 좋다”고 입을 모은다. 위기를 극복하려면 기존 조직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이를 바꾸는 과정에서 조직의 틀을 새로 짜야하기 마련이다. 신동엽 연세대 교수는 “이 부회장이 노트7 사태의 원인을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삼성전자를 미래비전에 맞는 조직으로 싹 뜯어고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경영학자들은 특히 노트7 사태의 핵심 원인으로 지적되는 삼성전자의 수직적 조직문화와 속도 제일주의식 경영 문화를 개혁의 대상으로 지적한다. 노트7이 단종으로 치닫게 된 배경에는 경쟁 제품을 의식한 무리한 개발 기간 단축, 1차 리콜을 서두르는 과정에서 불거진 성급한 원인 지목, 이런 문제점을 예방하지 못한 배경인 상명하달식 조직 문화 등이 있었다는 게 이들의 분석이다. 송재용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삼성전자의 수직적 조직 문화는 삼성전자가 시장 추종자이던 과거에는 매우 효율적이었다”며 “하지만 시장을 선도해야 하는 지금의 상황에선 아래로부터의 창조와 혁신을 받아들이는 수평적 문화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송 교수는 최근의 단종 사태로 자칫 삼성전자가 ‘관리의 삼성’ 시대로 회귀해 ‘품질 제일주의’를 외쳐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의 저서 『삼성웨이』를 통해 삼성전자에 ‘양손잡이 경영’을 제안한 바 있다. 기존 사업 조직은 단기 성과와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조직 문화를 당분간 유지하되 연구개발(R&D) 조직이나 C랩 같은 사내 벤처 육성 조직은 창조와 혁신, 다양성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송 교수는 “이런 조직에서 심어진 수평적 문화를 기존 사업 조직에 점진적으로 확산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장기적으론 인수·합병(M&A) 등 신성장동력 확보 노력을 가속화하고 미래 성장 사업 중심으로 그룹 포트폴리오를 개편하는 작업을 지속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이 부회장은 이건희 삼성 회장이 쓰러진 뒤 지난 2년여 간 큰 폭의 그룹 사업구조 개편을 단행했다. 화학·방위산업 등 비주력 사업을 매각하고, 첨단 소프트웨어·전자장비 관련 기술 기업을 빠른 속도로 사들이고 있다. 특히 올해 들어선 미국의 전자장비(자동차 부품) 업체 하만, 애플 출신 엔지니어들이 만든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비브랩스, 미국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 조이언트 등 27곳의 기업을 사들였다(지분투자 포함). 이병태 KAIST 경영학과 교수는 “삼성이 잘 못하는 사업을 팔고 그렇게 마련한 현금으로 미래를 위한 인수합병을 적극적으로 하는 건 그만큼 혁신 능력이 생겼다는 얘기”라며 “이 부회장은 특히 M&A와 전략적인 큰 판을 짜는 것, 해외의 능력있는 인재를 들여오는 일 등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강점인 글로벌 네트워크가 빛을 발할 거란 게 교수들의 얘기다. 이 부회장은 애플의 최고경영자(CEO) 팀 쿡,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 등과 친분을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이런 네트워크가 급변하는 정보통신기술(ICT) 시장의 흐름을 읽고, 신성장 사업·기술을 확보하거나 인재를 영입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일상적인 경영은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고 네트워크를 활용해 큰 그림을 그리라”고 조언했다.

미래 성장 사업 중심으로 그룹 포트폴리오 개편


▎지난 9월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에서 이재용 부회장이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왼쪽)을 배웅하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이 미래 성장 사업 중심으로 그룹 포트폴리오를 개편하는 작업을 지속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 뉴시스
공식적으로 이사회 멤버가 된 만큼 그룹 내외에 자신의 경영철학 및 그룹의 비전을 직접 알리라는 주문도 나왔다. 이건희 회장은 종종 그룹이나 경제 현안에 대해 화두를 던지는 식으로 자신의 철학을 알려왔다. 삼성전자에 품질 제일주의를 강조할 때는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라는 직설적 화법으로 주목을 끌었고, “우리 경제가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설 곳이 없어질 수 있다”는 의미에서 꺼낸 ‘샌드위치론’은 경제계 전반의 화두로 떠오르기도 했다. 그에 반해 이 부회장은 직접 목소리를 내 그룹의 비전을 설파한 적이 없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위기 상황을 맞아 이 부회장이 직접 ‘내가 책임질 테니 이 방향으로 가자’는 목소리를 내야 직원을 결집시키고 외부 이해관계자를 설득시킬 수 있다”고 제언했다.

기술적 난제 극복이나 중장기적 비전을 세우는 것과 별도로 진행해야할 중요한 작업도 있다. 지배구조 개편이다. 현재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에 대한 지배구조는 이재용 부회장이 최대주주(17.08%)인 삼성물산을 중심으로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에 대한 지배력이 형성돼 있다. 이들 핵심계열사가 일반 계열사와 금융계열사를 각각 지배한다. 문제는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에 대한 이건희 회장 일가의 지분 보유율이 낮다는 점이다. 삼성은 이 약점을 전자의 자사주 보유와, 삼성생명이 보유한 전자 지분으로 보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종착역은 결국 ‘지주사 체제로의 전환’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경우 이재용 부회장이 최대주주인 삼성물산이 그룹의 지주사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다. 그 아래에 삼성전자를 ‘삼성전자 지주’와 ‘삼성전자 사업회사’로 분할한다. 물산이라는 지주사 아래에 ‘전자 지주’라는 중간 지주회사가 생기는 것이다. 전자 지주와 전자 사업회사 간에 주식 교환을 수행하면, 현재 삼성전자가 보유한 자사주를 삼성전자 사업회사에 대한 전자 지주의 지배력 강화에 활용할 수 있다.

금융계열사는 삼성생명이 중간지주사가 되는 방식이 유력하다. 그동안 삼성그룹은 삼성생명을 언제든 금융지주사로 전환시킬 수 있도록 사전 준비 작업을 해왔다. 지난달 24일 삼성생명은 삼성화재가 갖고 있던 삼성증권 주식 8.02%를 시간외매매 방식으로 매입했다. 이로써 특별계정을 제외한 삼성생명 보유 삼성증권의 주식 수는 1464만5770주, 지분율은 19.16%로 높아졌다. 현행 금융지주회사법상 금융지주회사가 되려면 자회사 지분을 30% 이상(비상장사의 경우 50% 이상) 보유해야 한다. 아직 삼성생명의 삼성증권 보유지분은 30%에는 못 미치지만 최대주주 자격은 갖춘 셈이다.

문제는 공정거래법상 ‘금융지주사는 비금융 계열사의 최대 주주를 차지할 수 없다’는 조항이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등 비금융 계열사의 최대 주주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는 얘기다. 삼성생명은 지난 9월 한 달간 장내에 삼성전자 주식을 지속적으로 매각해 지분율을 7.3%에서 6.59%까지 낮췄다. 하지만 여전히 최대 주주다. 2대 주주인 삼성물산(4.2%)이 1.6%를 사들여 최대 주주로 올라서면 되지만, 3조원에 달하는 매입금액이 큰 부담이다.

그런데 이같은 상황에서 호재가 등장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올해 말까지 중간금융지주회사 제도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나선 것이다. 금융·산업복합집단이 지주회사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금융사 보유를 허용해주는 중간금융지주회사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게 공정위의 구상이다. 바로 삼성이 그리고 있는 구도다. 공정위 관계자는 “중간금융지주사법은 금산분리(금융과 산업의 분리)를 강화하면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수 있는 여건을 조정해 준다”고 말했다.

삼성그룹이 삼성생명을 통해 삼성전자를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전자의 지배력 확보를 위해 삼성물산이 일반지주회사 체제로 가는 시나리오는 삼성생명에 의해 항상 발목이 잡혔었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물산)는 금융회사(생명)를 자회사로 지배할 수 없고, 자회사가 아닌 계열사의 지분을 보유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 때마다 삼성물산이 보유한 생명 지분 매각이 이슈로 부각됐다. 그런데 물산이 지주사, 삼성생명이 중간금융지주사로 전환하게 되면 이런 문제들이 대부분 해소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삼성물산이 갖고 있는 삼성생명 지분 19.34%를 처분하지 않고 그대로 둘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경우 이 부회장 입장에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 20%가량을 상속세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더불어 삼성물산 개인 최대주주인 이 부회장은 당분간 삼성생명을 통한 삼성전자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다.

“중간금융지주회사 제도 도입이 최적의 시나리오”

그 다음엔 엘리엇의 구상처럼 삼성전자를 사업회사와 투자회사로 분할해 이 중 투자회사를 삼성물산과 합병시켜 새로운 합병 지주사를 만드는 방안도 실현 가능해진다. 동시에 올 여름부터 추진해 온 삼성SDS 물류사업을 분사시켜 삼성물산에 넘기는 시나리오도 다시 추진력을 갖게 될 것으로 보인다. 금산분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간금융지주회사법안이 발의돼 통과되면 삼성으로선 최적의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를 완성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중간금융지주회사 제도가 도입되면 이재용 부회장의 상속세 부담도 대폭 완화될 수 있다. 합법적인 절세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이 개인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삼성그룹 주요계열사 지분은 지난 9월 말 기준 삼성전자 3.38%, 삼성물산 2.86%, 삼성생명 20.76% 등이다. 이를 이 부회장이 정식으로 상속받을 경우 상속세만 최소 5~6조원으로 추산된다. 그런데, 중간금융지주회사 제도가 도입될 경우 이 부회장은 이 회장의 지분 대부분을 중간금융지주회사에 넘기고 삼성전자 지분에 대한 상속세만 내는 시나리오가 성립할 수 있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다. 여소야대라는 정치 지형에 ‘최순실 게이트’로 촉발된 극도로 불안한 정국, 그리고 내년 대통령 선거 등으로 이어진 각종 변수들로 인해 중간금융지주사법안의 발의와 국회 통과를 낙관하기 어렵다.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이 정국 전개 상황과 맞물려 있는 셈이다.

중간금융지주제도가 무산될 경우엔 전체적인 그림이 달라질 수 있다. 삼성생명을 금융지주사로 만들어 금융 계열사들을 지배하는 한편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투자회사를 지배하고, 삼성전자 투자회사가 다시 자사주를 바탕으로 삼성전자 사업회사를 지배하는 구조가 될 가능성이 높다.

- 박태희·임미진 기자 adonis55@joongang.co.kr

[박스기사] 첫 작품은 ‘오디오 공룡’ 하만(Harman) 인수


▎오디오 업체 하먼이 홈페이지에 ‘커넥티드카 세계 1위’라는 문구와 함께 띄워놓은 차량 내부 사진. 하만의 전장 사업을 인수함으로써 삼성전자가 최소 10년을 절약했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 중앙포토
“등기이사 이재용의 첫 작품.” 지난 11월 14일 삼성전자가 커넥티트카(Connected Car)와 오디오 분야 전문기업 '하만(Harman)'을 인수하기로 결정하자 증시에서는 이런 반응이 쏟아졌다. 기업 인수를 ‘작품’으로 표현한 것은 중의적이다. 새 사업 영역의 전망이 밝고, 인수 금액(9조3000억원)이 입이 벌어질 정도로 크며, 협상부터 최종 인수 결정까지 속전속결로 이뤄졌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 부회장이 하만 인수에 나선 것은 ‘자동차와 IT의 결합’에서 성장 동력을 찾은 것으로 풀이된다. 전세계 최고급 오디오 브랜드를 싹쓸이하다시피 한 ‘오디오 공룡’ 하만은 최근 10여 년 동안 자동차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투자에 공을 들여왔다. 인포테인먼트는 길 안내 같은 정보와 음악·영상 같은 콘텐트 제공을 합친 전자기기 분야를 뜻한다. 시장조사기관 알앤알마켓리서치 조사에서도 지난해 기준 하만의 인포테인먼트 분야 매출액은 43억2000만 달러(약 5조740억원)로 2위인 독일 콘티넨탈(32억1000만 달러)을 넉넉한 격차로 앞서있다. 하만은 삼성이 인수하기 직전 12개월 기준으로 매출 70억 달러, 영업이익 7억 달러를 기록했는데 매출 60% 가량이 전장사업에서 발생한 것이다.

삼성전자도 2015년 12월 전장사업팀을 신설하면서 이 분야에 공을 들여왔다. 그러나 새롭게 내놓는 기술이 많지 않아 속도가 더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전장 사업 분야에서 조기에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인수 후보를 물색해오다 지난 9월부터 하만과 본격 인수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커넥티드카 시장 성장 전망 밝아

삼성전자가 거액을 선뜻 쓴 것은 커넥티드카 시장의 성장 전망이 그만큼 밝아서다. 업계에서는 커넥티드카 시장이 매년 9%씩 성장해 2025년 1864억 달러로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 하만이 현재의 시장 점유율 55%만 유지해도 연간 100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게 된다. 현재 전세계 TV시장이 1000억 달러 규모다.

기술 시너지 효과도 크다. 삼성전자가 강점을 갖고 있는 반도체·디스플레이·통신기술 분야와 하만이 경쟁력을 갖춘 인포테인먼트·텔레매틱스기술이 결합되면 자동차 탑승자들은 선명한 화면으로 보다 빠르게 자동차와 커뮤니케이션하고 정보를 주고 받을 수 있게 된다.

김정하 국민대 자동차융합대학장은 “자동차 전자장비는 스마트폰이나 가전보다 훨씬 더 극한의 환경에 노출된다. 자갈밭을 시속 100㎞가 넘는 속도로 움직이고 사막부터 알래스카까지 다 돌아다닌다. 자칫 문제가 생기면 고객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자동차 부품 업체가 제대로 자리를 잡는 데는 최소 10년이 걸리는 편”이라고 말했다. 하만이 21년간 일궈온 전장 사업을 인수함으로써 삼성전자는 최소 10년을 절약했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201612호 (2016.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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